소설리스트

PART-51 (47/94)

 PART-51

  "무,무슨 소리야? 그런 소리 하지마, 누가 듣겠다 얘."

  얼굴이 빨개진 의연이 황급히 고개를 흔들며 주위의 눈치를 살폈다. 주

리는 빨개진 의연을 뚫어지게 바라보며 은근히 입술을 치켜 올렸다. 

  "얼굴이 빨개지는 걸 보니 뭔가 있어. 너 유난히 전학생한테 관심이 있

는것 같고 말이야."

  "전학생은 처음이니까 친절의 기준을 못잡았을 뿐이야."

  주리의 은근한 접근을 딱 끊으며 의연이 책상위에 책을 탁 덮었다. 주리

는 조금 기가 죽은 얼굴로 의연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의연은 침착한 표

정으로 주리에게 시선을 맞추었다.

  "그밖에 할말 있니?"

  "너 그렇게 말하니까 무섭다?"

  "후훗, 무섭긴 얘는......"

  의연이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다시 책을 펼쳤다. 주리는 그런 의연을 잠

시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한숨을 푹 내 쉬었다. 모처럼 한 크라스에서 썸씽

이 생기나 했더니...... 하지만 저렇게 부정하는걸 보면 수상하단 말씀이

야? 그때 머리를 굴리는 주리를 향해 의연이 불쑥 한마디 했다.

  "그리고 난 좋아하는 사람 따로 있으니까."

  "뭐? 그랬어?"

  야,이건 정말 뜻밖에 사실이네. 의연이 좋아하는 남자가 있었을 줄이

야. 하긴 누구에게나 첫 사랑은 있는 법이니까...... 주리는 의외라는 듯

이 고개를 끄덕이며 손으로 턱을 만지작 거렸다. 음 의연인 미인이니까 남

자도 잘 생겼겠지...... 좀 부러운데?

  "그래, 지금 사귀니? 어디 살어?"

  "서울에 살아. 그 밖에 사항은 안 가르쳐 줘."

  "에~ 얌체 아니야~!"

  "문답무용이다."

  약오른 얼굴로 보채는 주리에게 의연이 씨익 웃으며 사악한 얼굴로 눈을

빛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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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영 실업고는 대전시를 총괄하고 있는 유택천의 아지트. 그는 대전 지

역 고교 주먹의 실질적인 보스로 이 학교의 명성역시 그의 이름하에 날리

고 있는 실정이었다. 당연히 많은 학교에 표적이 되고 내 놓으라 하는 전

투고교와 동맹을 맺고 있는 실정이었다. 이것은 서울의 있던 민형의 이강 

실고와 마찬가지였다.

  "삼목 공고에서 27일날 붙자는데. 거기 1,2년 꿇은 녀석들이 대량으로 

들어 왔나봐. 서울에서 내려온 녀석들이라는 말도 있고. 어쨋든 삼목에 허

지원이가 전해주라고 하더군."

  학교 건물 뒷 공터는 유택천 패거리들의 모임 장소였다. 오늘 패거리가

모여든 이유는 총무겸의 서한영이가 패싸움의 도전장을 가지고 왔기 때문

이다. 한영의 설명을 들은 유택천은 천천히 빨고 있던 디스의 꼬랑지를 손

가락으로 탁- 쳐 떨어 뜨렸다. 꽁초를 버린 후 발로 밟으며 그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의 움직임에 패거리들이 동요했다.

  "삼목의 허지원이라고...... 몇달전에 깨부쉈는데...... 왜 또 귓가에서

아른거리지......"

  "그때의 복수를 하려는것 같은데."

  서한영이 어깨를 으쓱 하며 훗- 미소 지었다. 유택천은 관심 없다는 듯

이 다시 자리에 앉으며 서한영에게 말했다.

  "그런 녀석들은 관심없어. 진드기 같은 놈들 이번에 박살내고 와. 더 이

상 내 귀에 귀찮은 녀석들이 아른거리지 않게. 내 도움이 필요하면 그때 

불러."

  "그러지 대장."

  서한영이 싱긋 웃으며 대답했다. 한영의 지시로 패거리가 해산하고 공터

엔 유택천과 서한영 둘만 남았다. 한영은 또다시 담배를 빨고 있는 택천의

앞으로 다가가 물었다.

  "이제 슬슬 움직여줘야 하는거 아냐 택천? 벌써 6월이야."

  "아아......"

  택천은 한영의 말을 흘리며 담배재를 털었다. 그는 왠지 힘이 없는 듯 

했다.

  "네가 적극적으로 싸우지 않으니까 기어 오르는 녀석들도 많은 거라고.

도대체 왜그래? 작년에 서울에 가서 얼마나 큰 충격을 받았길래."

  "......"

  유택천은 작년 2학년 시절 서울에 원정을 간적이 있었다. 동맹을 맺고 

있던 모 전투고교에 지원차 갔던 것. 그곳에서 돌아와 택천은 알 수 없는

실의에 빠져 버렸다.

  "무서울 것 없는 대전시 총 보스가 왜 이렇게 힘이 빠져 있냐고!!"

  답답한 나머지 한영이 언성을 높히자 택천은 잠시 말없이 바닥을 응시

했다. 그가 고개를 들었을때 그의 얼굴 가득히 허무함이 서려 있었다.

  "글쎄, 작년까지는 아무것도 무서운게 없었어...... 그렇지만 서울에 있

는 괴물을 본 후에는......"

  "도대체 그 괴물이란 녀석이 사실이야!? 난 도무지 믿을수가 없어! 혼자

서 총보스 31명을 때려 눕히다니 스테미너는!? 사각은?!"

  서울에서 돌아온 후부터 때때로 이야기하는 유택천의 말. 그것은 한영에

게는 도무지 납득이 가지않는 이야기 였다. 서울 전투고교 연합에서는 어

느날 서울 지역의 패권을 차지하기 위해 그 지역 총보스가 있는 이강실고

를 치기로 결정했었다. 그때가 1993년 서울 전 연합은 이강실고에 도전했

다.

  "그리고 단 한명에게 무참히 깨졌지. 난 그것을 지켜보다가 홧김에 뛰어

들었지만...... 그 녀석에게는 나도 31한명중 하나에 지나지 않았어."

  지방에서 까지 용병을 모집한 서울 전투고교 연합은 그 당시 서울 총보

스를 맞고 있던 단 한명에게 무참히 짓밟혔다.

  "그 녀석 이름은 정민형이라고 했어...... 그 녀석을 생각하면 소름이 

끼쳐. 그 레벨의 차이란 것은......"

  정민형. 그는 명실공히 전국 최강이며 한국의 모든 전투고교를 통합한 

히로. 당시 전 불량배들의 영웅적인 존재였다. 유택천은 작년 그것을 직접 

느꼈던 것이다.

  "어쨋든 그 녀석은 인간이 아니니까......"

  유택천이 생각하기 싫다는 얼굴로 부르르 어깨를 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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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점심 시간에 먹을 컵라면 하고 샌드위치 사와. 4교시 끝나고"

  기현은 책상위에 발을 올려 놓은채 같은 반 학생들에게 이렇게 외쳤다. 

그러나 명령은 들은 급우들은 그것이 마치 어기면 안되는 철칙처럼 아무런

대꾸도 반항도 없었다.

  

  << 우리 반에선 돌아가면서 기현이 도시락을 사와야 하는거야. >>

  누군가가 얘기해준 이 사실이 민형을 끓어오르게 했다. 우와 나쁜 개자

식...... 나도 학교에서 그런짓은 해 본적 없다. 민형은 시간이 지날수록 

이 중영고교에 똘마니들에게 정나미가 떨어졌다. 제길 졸업하면 찾아가서

모두들 지져 버릴테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고 있을때 4교시가 끝났고 민

형은 매점으로 내려갔다. 언제부터인가 이곳에 온지 몇일 되지도 않았는데

점심을 사먹는 것이 습관이 되어 버렸다. 민형은 학생들로 가득해 북적거

리는 매점의 문을 열며 한숨을 쉬었다. 전쟁이 일어난 시장바닥도 무색하

지 않은 학교의 매점. 외국처럼 넓은 설비와 깨끗하고 다양한 매뉴는 준비

되지 못하는 걸까...... 등록금은 더 비싼데 말이야.

  "아저씨 고로케 주세요!!"

  "튀김이요 튀김!!"

  여기저기서 터져나오는 학생들의 목소리를 들으며 민형은 등을 돌렸

다. 어차피 시간이 좀 지나면 학생들이 빠지니까 그때 와서 먹는 것이 

낫겠다 생각이 들었다. 순간 고개를 돌리는 민형의 눈앞에 의연이 보였

다. 그녀는 학생들에게 마구 밀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발만 동동

구르고 있었다. 민형이 얼른 그녀에게 다가갔다.

  "의연아?"

  "어 민형? 너도 도시락 안싸왔니? 너 항상 안싸오더라?"

  "아, 그게 좀 그래......"

  의연의 물음에 민형이 머리를 긁적 거리며 대답했다. 

  "그런데 너도 도시락 안 싸왔어?"

  보통   항상 주리와 함께 먹는 것을 봤기 때문에 이상해진 민형이 물

었다. 그러자 주리가 어깨를 으쓱하며 괴롭다는 듯이 한숨을 쉬었다.

  "기현이 빵사러 왔잖아 빵. 우리반의 평화를 위해서 반장도 변함없이 순

서가 도는 법이야."

  "그,그랬어......?"

  왠지 말을 잘못 꺼낸 것 같아 민형은 꺼름직한 표정으로 시선을 돌렸

다. 그러나 의연은 상관없다는 얼굴로 민형의 어깨를 툭툭쳤다.

  "괜찮아. 뭐 어쩔 수 없는 일이니까. 그보다 사람 너무 많다."

  "돈 이리줘. 내가 사줄께."

  "어? 괜찮은데......"

  왠지 의연이 딱해 보여 민형은 얼른 돈을 낚아채고 사람들 속으로 파고

들었다. 그러나 사람이 워낙 많아 쉽사리 들어갈 수 없었다. 점점 학생들

이 민형을 밀치고 조여들기 시작했다. 민형은 울컥 화가 났다.

  "제길!"

  반사적으로 조금 힘을 준 것 뿐이었다. 그러나 그것이 무의식적으로 너

무 힘이 들어가 본래 민형의 파워를 되살리고 말았다. 민형을 중심으로 양

쪽에 모여들던 수많은 학생들이 일제히 비명을 지르며 와르르 무너져 내렸

다.

  "우와아아앗!"

  "와악!!"

  쿵-쿵- 소리가 나고 매점 카운터 앞에는 머쓱한 표정의 민형만이 서 있

었다. 주위에 쓰러진 아이들이 기가질린 얼굴로 멀뚱히 서 있는 민형을 바

라 보았다.

  "저...... 컵라면 하고 샌드위치 주세요......"

  민형이 머쓱해져 조용히 중얼 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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