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PART-35 (33/94)

PART-35

지훈과의 큰 싸움이 있던 다음날 민형은 깨어진 주먹과 엄망으로 얻어터진

얼굴에 하나 가득 반창고를 붙이고 학교에 갔다. 어제의 일은 어떻게 생각

해 보면 전화위복이 될 수 있었던 괜찮은 사건, 덕분에 유지영 선생님에 

대한 믿음도 더욱 커졌고 그녀의 오빠 지훈의 반대도 원만하게 해결할 수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처음으로 유지영 선생님을 가슴에 안아 보기 까지

했으니 그야말로 마지막에 행복했던 그날이 아니었던가. 민형은 손 끝에 

전해져 왔던 유지영 선생님의 허리 감촉과 자신의 가슴에 닿았던 봉긋하고 

부드러운 젖가슴을 생각하면서 얻어맞은 상처가 아픈 줄도 모르고 히죽히

죽 웃었다.

  "야 너 왜 그러냐? 마치 바보 같다?"

  민형과 함께 복도를 걷던 성우가 상처를 가득 입고 학교에 와 실실 거

리는 민형을 이상하다는 듯이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동시에 얼굴이 빨개

진 민형이 웃던 얼굴을 재빨리 감추었다. 그리고 태연하게 입을 열었다.

  "음, 아무것도 아니야."

  "아무것도 아니긴, 그나저나 도대체 어제 무슨 일이 있었길래 이렇게 얻

어 맞았어? 서울 전지역 캡틴을 이렇게 팬 녀석이 누구야?"

  "어제 좀 그럴일이 있었지."

  민형은 어제의 일을 성우에게 들키고 싶지 않아 대충 얼버무리려 했

다. 그러나 성우는 끈질기게 따져 물었다.

  "솔직히 말해봐. 왠만하면 이렇게 얻어 맞을일이 없잖아? 누가 인질 극

이라도 벌였어?"

  "얌마, 어제 좀 흥분한 일이 있어서 그랬다니까! 그리고 나도 맞을 수

있지 왜그래?"

  "흥, 그러셔......"

  민형이 대뜸 외치자 성우가 뾰루퉁한 표정으로 여전히 의심이 간다는 얼

굴을 지우지 못한채 민형을 쳐다보았다. 민형은 귀찮기도 하고 괜히 여자

때문에 싸웠다는 말이 창피하기도 해서 끝까지 입을 다물기로 했다.

  - 툭

  그때 누군가가 성우의 어깨를 건드리고 지나갔다. 멀쩡히 잘 걸어가던 

성우는 무방비 상태로 비틀 균형을 잃고 말았다. 

  

  "뭐야 너......? 어......?"

  짜증섞인 목소리로 고개를 든 성우가 한순간 입을 다물었다. 동시에 옆

에서 걷고 있던 민형역시 좋지 않은 표정으로 누쌀을 찌푸렸다. 성우의 

앞에는 양복을 입은 그리 좋아 보이지 않는 인상의 한 남자가 서 있었

다.

  "한성우, 너 지금 나보고 지껄인거냐......"

  "아, 서,선생님. 선생님 인줄 모르고......하하."

  "닥쳐 이 버르장 머리 없는 자식!!!"

  한순간 선생님의 묵직한 주먹이 성우의 면상을 그대로 갈겼고 성우는

욱 소리와 함께 무방비 상태로 바닥에 널부러 졌다. 깜짝 놀란 민형이 급

히 성우를 부축하며 외쳤다.

  "성우야!"

  "아야야......"

  성우는 터진 입술을 손으로 닦으며 인상을 찡그렸다. 그런 민형과 성

우의 앞에 우두커니 선채 학생주임인 김원규가 거만하게 눈살을 부라렸

다.

  "야,정민형. 너 또 어디서 싸움박질이나 하고 학교에 와 자빠진거야.

그러려면 당장 학교 때려쳐 임마."

  "......"

  그의 목적은 애초에 민형 이었다. 학생주임의 입장에서 공부도 못하고

싸움만 하는 민형은 눈에 가시 같았다. 게다가 민형을 따르는 추종자들

은 다른 학생들 처럼 학생주임의 권위에 비굴하지 않았기 때문에 더욱 마

음에 들지 않았던 것이다.

  "뭐야 그 눈은? 불만있어!"

  민형이 똑바로 선생을 노려보자 욹그락 붉그락 해진 김원규 선생이 손

바닥으로 민형의 따귀를 갈겼다. 민형의 얼굴이 돌아갔으나 민형은 비틀

거리지도 않고 또다시 똑바로 김원규 선생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가도 됩니까?"

  "뭐야?"

  "가도 되냐구요. 노려본 대신 한 대 맞았잖아요."

  "흥, 이놈이...... 빨리 꺼져!"

  민형이 좀처럼 꺽이지 않자 울화가 터진 김원규가 복도 끝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윽박 질렀다. 민형은 김원규 선생을 무시한채 성우와 함께 복

도를 빠져 나와 운동장으로 나갔다. 뒤에 남은 김원규 선생이 그런 민형

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거만하게 중얼거렸다.

  "흥, 건방진놈...... 반드시 퇴학 시킬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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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유 열받아!! 주임 그자식 언제 애들 시켜서 뒤지게 패 버릴까보

다!! 야 정민형 너 열받지 않냐!?"

  운동장으로 나온 성우가 맞은 볼을 어루만지며 문통이 터진다는 듯이 소

리쳤다. 그러나 민형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벤치에 앉아 그저 잠자코 있

을 뿐이었다.

  "그자식 진짜 재수없어. 심심하면 아무나 붙잡아서 소지품 검사하고 꼬

투리라도 잡히면 뒤지게 팬단 말이야. 으 씨발, 좆같애 정말."

  "교칙에 위반되는 물건을 가지고 다닌게 잘못이니까 할 수 없어."

  "으, 너 마음 좋다 진짜? 어구구!"

  민형이 좀처럼 화를 내지 않자 답답해진 성우가 주먹으로 자신의 가슴을

펑펑 때렸다. 민형은 그런 성우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마음속을 분한 마음

을 삭였다. 김원규...... 이 학교의 학생 주임이지만 학생에 대한 이해심

이 없고 자기 중심적이며 폭력을 심하게 사용해 학생들의 원망을 사고 있

었다.   

  "제길, 학생 신분이면 개냐. 우리는 이렇게 개처럼 맞으면서 다녀야 되

는거냐? 공부 못한다고 맞고! 옷 잘 입는 다고 맞고! 똑바로 쳐다본다고 

맞고! 우와 이건 대한민국이 후진국이자 개 법치국가라는 살아 있는 증거

다! 어휴 짜증나!!"

  "야야, 들어가자 들어가. 운동장에서 추태 부리지 말고......"

  민형은 분해서 어쩔줄 모르는 성우를 잡아 끌고 교실로 발걸음을 옮겼

다. 분한 것은 사실이다. 민형역시 이유 없이 얻어맏고 기분이 괜찮을리

는 없다. 하지만 학생의 주권은 포기 되고 교사의 폭력은 정당화 되는 것

이 현재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학생은 아무리 옳은 소리를 해도 교사의 

음모에 방해가 되는 한 그것은 그릇된 사상으로 풀이 된다. 정민형 18

세. 그 역시 대한민국에서 태어난 고교 3년생으로 학교에 소속되 있는 것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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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서 빵사와."

 "야, 나는 고로케로 사와!"

 책상위에 걸터 앉은 두세명의 학생이 같은반 급우에게 심부름을 시키고

있었다. 그들은 몇푼의 돈을 쥐어주고 힘없어 보이는 키작은 학생에게 

은근한 웃음의 협박을 강요하고 있었다. 그러나 힘이 없는 자는 언제나

그들의 협박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한 도리가 없었다. 

  "야 민태기."

  마침 교실로 들어오다 그 광경을 보게 된 민형은 심부름을 하기 위해 

막 교실을 빠져나가려던 민태기를 불러 세웠다. 그는 공부도 못하고 힘도 

없고, 집까지 가난하여 항상 같은반 급우들에게 무시를 당하는 대표적인 

케이스 였다. 민형이 부르자 민태기는 깜짝 놀라 자리에 우뚝 멈추어섰

다. 민형은 그런 태기에게 뚜벅 뚜벅 다가가 그가 들고 있는 돈을 빼았았

다. 그리고 책상위에 앉아 낄낄 거리고 있는 3명의 같은 반 급우들에게 다

가갔다.

  "박지용, 김택현, 강성기"

  "어, 무슨 일이야."

  민형이 셋의 이름을 부르자 그중 가장 덩치가 큰 박지용이가 고개를 들

어 아는 척을 했다. 그순간 민형은 그대로 돈을 셋의 얼굴에 집어 던졌

다. 그리고 책상위에 올라가 있는 녀석들의 면상에 주먹을 한 대씩 갈겨

주었다. 쿠당탕 소리와 함꼐 비명이 울리고 셋은 나가 떨어졌다. 

  "왜, 왜그래! 왜 때려!"

  겁먹은 지용이 민형의 앞에 쓰러진채 울먹이며 외쳤다. 민형은 한없이

더러운 것을 바라보는 눈으로 셋을 내려다 보며 중얼 거렸다.

  "박지용, 너 이번에 중간 고사에서 4등했지. 공부 잘하면 그래도 돼?"

  "저,정민형 너 왜그래."

  그때 자리에서 일어난 김택현이 민형을 말리려는 듯이 그에게 가까이 다

가왔다. 그순간 민형이 발로 택현의 복부를 걷어 찼다.

  "엎어져 있어!!"

  "악!!"

  민형에게 얻어 맞은 택현은 우는 소리를 하며 자리에 털썩 무릎을 꿇었

다. 민형은 이글거리는 눈으로 그들 셋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김택현, 너 저번에 박지용이랑 컨닝했지. 다음부터 컨닝하지마. 학교가

컨닝하라고 다니는덴 줄 알어!?"

  "아,알았어......"

  민형이 눈을 한 번 부릅뜨자 택현은 죽어가는 소리를 하며 고개를 조아

렸다. 민형은 그런 세명이 한심했다. 강자에게 약하고 약한자에게만 강한

그런 더러운 부류가 어느 학교에고 꼭 한둘씩 있는 법이다. 그것은 선생

과 다를 바 없다. 이 나라의 사회 제도는 공부 하나로 대부분의 직업에 취

직할 수 있기 때문에 인간성에 관계 없이 선생과 법관이 될 수 있다. 그런

자들이 이 나라의 법을 관리하고 학생을 가리치는 것이다. 민형은 마지막

으로 구석에 조용히 쓰러져 있는 강성기에게 한마디 했다.

  "그리고 이건 그냥 하는 말인데. 친구한테 심부름 시키지 마."

  민형은 이렇게 말한후 자리로 돌아가 털썩 주저 앉았다. 옆 자리에 있던

성우가 민형을 향해 중얼 거렸다.

  "야, 너 화풀이 그렇게 하냐. 머리 좋다."

  "시꺼 임마."

  민형은 과히 기분 좋지 않은 얼굴로 자리에 앉아 골똘히 생각에 잠겼

다. 자신이 왜 학교에 다니고 있는지 의심이 갔다. 

 '어째서 나는......'

  유지영 선생님은 서울대를 나왔다. 그녀 역시 이것과 같은 시련을 겪고

서울대를 나온 것이다.

  '어째서 나는 이 학교에 다니는 거지......'

  그 착찹한 심정은 이 나라의 모든 수험생들이 한 번쯤 가질 수 있는 의

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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