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PART-17 (17/94)

PART-17

  "!"

  그순간 지영이 두눈을 반짝 떴다. 갑자기 어색해진 민형은 그녀의 두손

에서 머리를 빼내다 말고 그대로 두눈을 깜빡 거리며 움직임을 정지했다.

지영과 민형의 사이에서 잠시동안 초연한 잠잠함이 흘러가던 때쯤. 머쓱한

표정으로 지영이 먼저 말을 꺼냈다.

  "미,민형씨 잘 잤어요?"

  "아, 아 예. 안녕히 주무셨어요 선생님."

  두 사람은 이말을 마지막으로 휙 하고 서로 등을 돌린체 이불속으로 파

고 들었다. 지영은 가슴이 두근두근 떨리고 얼굴에 홍조가 잃어 손바닥으

로 볼을 감싼체 두눈을 두리번 거렸다. 지금 자신이 무슨 짓을 하고 있었

는지 잘 판단이 가지 않았다. 민형씨의 꿈을 꾼것 같긴 했는데 눈을 뜨자 

마자 그 당사자가 눈앞에 있으니 짐짓 당황해서 고개를 돌려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한편 민형은 민형대로 쿵쾅거리는 가슴을 억누르며 두눈을 희번덕

거리고 있었다. 자신이 잘못한 일은 없지만 왠지 모르게 초조함이 몰려왔

다. 자신이 하고 있던 자세가 유지영 선생님께 오해를 살 행동은 아니었는

지 걱정이었다.

  한순간 서로를 향해 은근슬쩍 고개를 돌리던 두 사람의 눈이 딱 마주쳤

다.

"......"

  잠시지만 또다시 어색한 침묵이 흐르고 두 사람은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

며 싱거운 표정으로 웃기 시작했다.

  "저...... 우리 얼마나 잔거죠 민형씨?"  

  "여,열신데요. 이제 그만 일어나죠."

  민형이 엉거주춤 시계를 보는체 하며 자리에서 상반신을 일으켰다. 지영

역시 머리를 매만지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머리가 헝클어진 것 같아 손거

울을 찾았으나 화장대위에 놓여 있는 손거울은 지영의 손에 닿지 않았다. 

지영은 억지 웃음을 지어 보이며 민형의 등뒤로 몸을 돌려 주방으로 향했

다.

  "무,물을 좀 데울테니까. 조금만 기다리세요. 잠깐만요."

  "아, 예에."

  황급히 후다닥 방문을 열고 주방으로 나가버리는 지영의 뒷 모습을 물끄

러미 바라보며 민형이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였다. 주방에 나간 지영은 재

빨리 찬물로 세수를 하고 벽에 걸려있는 거울앞 에서 머리를 빚었다. 그리

많이 헝클어진것 같진 않아 속으로 내심 안심하면서 지영은 칫솔에 치약을

묻혔다. 양치질을 하면서 지영은 전날밤 꾼 꿈을 상기했다. 그 꿈에는 민

형이 나타났다. 위험에 처해 있는 자신을 구해주는 왕자님의 모습으로 나

나난 민형이 지영은 너무나 멋잇어 보여 꿈에서 보이는 민형을 힘껏 껴안

았던 것이다. 그리고 그녀가 눈을 떴을때 현실의 민형이 그녀의 두팔에서

얼굴을 빼내고 있었다.

  '아이참...... 설마, 난몰라......'

  지영은 내심 자신이 한 행동을 짐작하며 새빨개진 얼굴로 묵묵히 양치질

을 계속했다. 지금 방안에는 민형이 와 있다. 자신과 함께 한방에서 같이 

잔 것이다. 집에 가족이 아닌 남자를 데려와 본것은 민형이 처음이다. 학

교에 다닐때도 남자친구 하나 없었기 때문에 전혀 그럴 기회가 없었다. 지

영의 가슴이 왠지 모르게 두근두근 떨리고 알수 없는 기대감 같은 것이 스

물스물 올라오기 시작했다. 지영은 사람을 좋아했다. 친구나 손님이 집에

있다는 것 만으로 가슴이 벅차고 즐거웠다. 게다가 오늘은 민형이 와 있는

것이다. 지영은 그가 자신보다 6살이나 연하라는 것은 전혀 의식하지 못

하고 좋아서 싱글벙글 웃으며 양치질을 끝 마쳤다. 솥에 물을 담아 가스레

인지 위에 올려 놓고 지영은 방문을 드르륵 열고 민형에게 활짝 웃어 보였

다.

  "물이 금방 끓을 거예요. 잠깐만 기다리세요."

  "아, 고맙습니다 선생님."

  민형이 꾸벅 고개를 숙여 인사하며 지영에게 대답하자 지영은 한순간 자

신은 학원의 강사이고 민형은 일본어를 수강하러 온 자신의 학생이라는 것

이 실감났다. 게다가 동시에 자신보다 6살이나 연하라는 것도 상기했다. 

지영은 갑자기 가슴 한구석이 뜨끔뜨끔 아파오기 시작했다. 민형이 씻으러

나간 사이에 지영은 이불을 걷으며 계속해서 생각에 잠기었다. 민형은 남

자답고 자상하며 또 자신과 잘 맞는 아이였다. 아니 남자였다. 게다가

몇개월이라는 시간을 지내오며 느낀것이지만 민형은 같은 타잎을 지영은 

좋아했다. 지금까지 왜 느끼지 못했는지 의문이 생길 정도였지만 어젯밤

민형이 자신을 도와준 이후부터 자꾸만 민형의 얼굴만 바라봐도 얼굴이 붉

어지고 생각만 해도 온몸이 간질간질 달아 올랐다. 지영은 그런 자신을 주

책맞은 철부지라고 스스로 꾸짖으며 이불을 바깥으로 가지고 나가 팡팡 소

리나게 털었다. 이불을 터는 통쾌한 소리가 지영의 가슴을 시원하게 쓸어

주었다.

  "?"

  이불을 털던 지영은 문득 자신의 셔츠에 밴 향긋한 냄새에 고개를 돌렸

다. 팔뚝에 밴 제취가 느껴지고 지영은 그것이 민형의 것이라는 것을 알아

챘다. 민형의 몸에서는 비누냄세가 난다. 아직 어린 아이 같이 비누냄세 

같은 것을 풍기고 다닌다고 생각하니 지영은 민형이 새삼 귀엽게 느껴졌

다. 하지만 어제나 예전에 그 무서운 모습을 생각하면 확실히 어른이었

다. 자기 보다는 확실히 몸을 지킬줄 아는 어른이다. 그리고 민형은 남자

인 것이다.

  "저 선생님 제가 할까요?"

  문득 이불을 터는 지영의 뒤로 다가온 민형이 팔뚝에 걸고 있던 지영의

이불을 슬쩍 뺏어 들었다. 괜찮다고 사양하려 했는데 어느새 뺏어 들어 한

손으로 펑펑 터는 민형의 모습이 보기 좋아 지영은 그대로 민형이 하고 싶

은 대로 내버려 두었다.

  "......"

  지영은 잠시동안 이불을 걸고 있는 민형의 팔뚝과 이불을 내려치는 주먹

을 보았다. 확실히 자신과는 스케일 자체가 틀린것이 한번 내려 칠때 마다 

대포가 터지듯이 펑펑 소리가 났다. 게다가 그 곧고 굵은 팔뚝. 피부는 흰

것 같았지만 적당히 근육이 올라 단단하게 보였다. 지영은 자기도 모르게 

그런 민형의 팔목을 멍하니 쳐다 보았다. 그때 문득 지영의 시선을 눈치챈 

민형이 멋적은 얼굴로 물었다.

  "왜 그렇게 보세요?"

  "예? 아,아, 아니예요!"

  당황한 지영이 번쩍 고개를 들며 자신은 절대 쳐다보지 않았다는 듯이 

고개를 좌우로 세차게 흔들었다. 지영은 황급이 민형이 들고 있는 이불을 

빼앗아 들며 다그치듯 외쳤다.

  "드,드,드, 들어가서 기다리세요! 아침식사 준비해 가지고 들어갈테

니."

  엄청나게 당황하는 지영을 영문을 모르는 표정으로 바라보던 민형이 머

리를 긁적이며 방으로 돌아가자 지영은 휴 하고 한숨을 내쉬며 주먹쥔 손

으로 자신의 머리를 내리쳤다.

.............................................. . . .  .  .  .  .  .  

  두 사람은 식사를 하고 있었다. 아침 메뉴는 수수했가. 지영이 준비한 

간단한 음식 으로 끼니를 때우고 있는 것이다. 작은 밥상에 올라가 있는 

찌개와 밑반찬이 민형이 먹어 주기만을 기다리며 보이지 않는 눈을 반짝이

고 있었다.

  "선생님 음식 솜씨가 썩 좋으시군요."

  하마터면 시집가도 되겠어요 라고 말할뻔 한 민형이 가까스쓰로 그말을 

삼켰다. 덕분에 채 씹지 않은 밥알이 그대로 목구멍으로 꿀떡 넘어갔다. 민

형의 칭찬을 들은 지영은 금세 얼굴이 빨개져서 한손으로 볼을 감싼체 기

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아니요...... 혼자 살다 보니까 밥하는건 도가 텄어요. 민형씨가 갑자

기 오게 될줄 몰라서 준비한게 없어서 미안해요."

  "무슨 말씀을요. 이것도 충분히 맛있어요. 친구놈 집에 가면 아침도 점

심도 저녁도 손수 끓인 라면으로 때워야 하거든요. 이렇게 밥을 만들어 주

는 사람이 있으니까 얼마나 감격스러운지 선생님은 모르실 거예요."

  민형은 정말 기분 좋은 얼굴로 신나게 밥을 먹고 있었다. 지영은 음식을

씹으며 그런 민형의 얼굴을 흘끔흘끔 보고 있었다. 음식을 먹는 민형의 모

습이 참 남자 답다고 느껴졌다. 건겅미가 넘쳐 흐르는 민형은 물론 여자들

에게 있기가 많을 것이다. 게다가 요즘 고교생들은 이성교제 진전 팬턴이 

매우 빠르다고 들었다.

  "저 민형씨."

  지영은 문득 밥을 먹고 있는 민형에게 물었다.

  "여자친구 있어요?"

  "흡!"

  그순간 밥이 목에 걸린 민형이 기겁을 하며 시뻘개진 얼굴로 고개를 두

리번 거렸다. 깜짝놀란 지영히 서둘러 물컵에 물을 따라 주자 민형은 그것

을 벌컥벌컥 들이키고 이내 살았다는 듯이 희번덕 거리는 눈으로 지영을 

바라보았다. 그런 민형의 표정은 심히 긴장 되어 있었다.

  "여,여자 친구요!?"

  전혀 예상치 못한 질문에 민형은 어쩔줄 모르며 지영의 앞에서 두눈을

이리저리 굴렸다. 그러니까 자신이 여자 친구가 있었던 적이 있었던가. 가

만히 생각해 보자...... 아, 그러고 보니 국민학생 때에 꽤 많았던 것 같

은 기억이 난다. 그때는 남녀 합반으로 짝이 모두 여자였었다. 하지만 그

런 일로 여자친구가 있다고 얘기하면 하하...... 얼간이지 그건.

  "아,아직 없어요."

  민형은 쑥쓰러운 듯이 한손으로 뒷통수를 긁적거리며 이렇게 중얼 거렸

다. 기왕이면 멋들어진 연애 경험이 있다고 얘기하고 싶었지만 그러다 밑

천이라도 바닥나면 어쩌겠는가. 이럴때는 역시 단순함으로 밀고 나가는 것

이 최고다. 힘으로 안되는 여자가 상대니까 어쩌겠는가. 민형은 여자한테

약했다. 아니 솔직히 말하자면 힘이 안통하는 상대한테는 약했다. 남자한

테 힘이 안통하는 사례는 18년동안 거의 없었지만......

 "정말? 의외네요......"

  그말을 들은 지영의 얼굴에 화기가 돌았다. 그러나 민형은 고개를 숙인

체 머리를 긁적이느라 그런 지영의 표정으로 알아보지 못했다. 민형은 현

재 다음에 이을 대사를 골똘히 생각하는 중이었다. 여자친구가 없었지만 

결코 능력이 없어서가 아니라는...... 무엇가 멋들어지고 자신의 위치를 

살릴수 있는 재미있는 그런 대사를......

  "사실은 남자를 더 좋아했거든요 하하~!"

  바로 이거다. 이거라면 남자들의 의리를 좋아하는 순수한 젊은이로 인

식 되어질 수 있다. 민형은 스스로 이런 멋진 대답을 생각해낸 자신이 놀

라워 활짝 웃었다. 그러나 민형의 그런 말을 들은 지영의 표정은 의외로

못 들을것을 들은 것처럼 창백했다.

 "왜그러시죠 선생님?"

 "아, 아니요 그냥......"

 민형이 아무것도 모르는 표정으로 묻자 지영은 억지로 쓴 웃음을 지으며

밥그릇 쪽으로 고개를 숙였다. 지영도 민형 만큼 쑥맥이라는 칭호에 걸맞

는 여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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