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PART-16 (16/94)

PART-16

  '아...... 확실히 공부하는 타잎이 아니었기 때문에 어느 과목이라도 힘

든건 마찬가지야. 내가 게으른건데 뭐......'

  공부를 싫어하는 것은 자신도 익히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자기가  원해 

시도하는 일본어 회화까지도 결과가 시원치 않으니 민형의 마음은 답답하

기만 했다. 어쨋든 회화는 회화. 영어든 일어든 어려운 것은 마찬가지. 열

심히 예습 복습 하지 않으면 처지기 마련이다.

  '후유......'

  민형은 마음속으로 한숨을 내쉬며 라면가락을 후루룩 빨아 들였다. 문득 

열심히 라면을 먹고 있는 유지영 선생님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젓가락

으로 집은 라면을 입으로 후후 불며 보기에도 맛있게 먹고 있었다. 남자앞

이라고 해서 예쁘게 예의를 차린다거나 다소곳이 먹는다거나  이런 절처는 

전혀 없었다. 민형은 라면을 먹다말고 물끄러미 그런 유지영 선생님을 바

라보았다.

 '......'

  머리를 손으로 넘겨가며 라면을 후후 부는 유지영 선생님의 모습을 바라

보고 있자니 민형은 라면이 목구멍으로 넘어가지 않았다. 그녀의 가는 

팔,머리를 넘길때 마다 들어나는 새하얀 목덜미. 민형을 솔직히 참기 힘들 

지경이었다. 만약 연애 경험이 한번이라도 있었다면 이런 상황에서 좀더 

대담하게 대처할수 있으련만 지영을 앞에 둔 민형은 거의 목석같은 몸을 

이끌며 간신히 라면을 입에 집어 넣고 있었다. 우,한심한 놈. 

  "?"

  그때 김치에 젓가락을 가져가던 지영이 문득 고개를 들었다. 민형이 좀

저럼 라면을 먹지 않고 있는 것을 눈치챈 그녀가 민형에게 물었다.

  "왜...... 안먹어요?"

  "아, 아니요!"

  깜짝 놀란 민형이 허겁지겁 라면을 집어 삼켰다. 순간 뜨거운 면발에 혀

를 댄 민형이 기겁을 하며 입에 비명을 질렀다.

  "우웁! 뜨거!"

  "어머!"

  당황한 지영이 얼른 물컵에 물을 따라 민형에게 들이대자 민형은 황급이 

물컵을 받아들고 벌컥 벌컥 삼켰다. 체 씹지도 않은 면발이 물과 함께 꿀

꺽꿀꺽 목구멍을 타고 내려갔다. 민형은 물컵을 식탁에 내려놓으며 질린 

얼굴로 숨을 내쉬었다.

  "푸하~!"

  빨개진 혀를 내밀며 민형은 식은땀을 흘렸다. 지영이 그런 민형에게 물

었다.

  "괜찮아요 민형씨? 혀 안 대었어요?"

  "괘,괘안아요(괜찮아요). 혀 가은거(혀 같은건) 근강 나으니까요(금방 

나으니까요.)"

  부어오른 혀 때문에 시원치 않은 발음으로 민형이 이렇게 대답했다. 지

영은 못말린다는 듯이 한 손으로 입을 가리고 쿡쿡 웃었고 민형은 멋적은 

김에 한손을 머리뒤로 올리며 바보처럼 벌쭉 웃었다.

  '으 내 혓바닥......'

  웃는 와중에도 화끈거리는 혀를 침에 굴리며 민형이 속으로 혀를 내둘렀

다.

......................................... . . . . . . .  .  .  .  .

  밤이 되었다. 아니 아까부터 게속해서 밤 이었으나 민형의 밤은 지금부

터 시작 되었다. 이불을 깔고 벼게를 벤체 누운 민형의 얼굴은 온통 시뻘

겋게 달아 올라 있었고 온몸에 식은 땀이 가득했다. 지금 민형의 바로 옆

자리 30센티 전방에 다름아닌 유지영 선생님이 누워 있었던 것이다. 참으

로 건강한 18세 청소년에게 견디기 힘든 시련. 지영은 알고 있을까? 알고 

있다면 정말 악독한 여자다. 아니 악마다 악마. 마녀.

  "코오...... 코오......"

  새끈 새끈 숨소리를 내며 지영은 잠들어 있었다. 오늘 있었던 일이 매우 

피곤한 듯 정신 없이 잠들어 있는 지영을 민형은 차마 돌아볼수도 없었다. 

태어나서 엄마가 아닌 여자와 한방에서 함께 잔 경험은 이번이 난생 처음

이었다. 아니 생각나는 걸로는 처음이지만. 민형은 심장이 두근두근 뛰고 

정신이 아득하며 식은땀이 축축하게 배어 나왔다. 그야 말로 정신이 없었

다. 잠이 올리가 만무했다.

 '으...... 이거 정말 심각하군.'

  민형은 가까스로 얼굴을 천장으로 고정시킨 후 천천히 숨을 몰아 쉬었

다. 왜 이렇게 방이 좁은 건지 원망스럽기만 했다. 아니 아니, 선생님의 

집이   은 것을 탓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러니까 방이 좋은 것을 탓

할뿐, 하지만 이집은 선생님 집이니까...... 그게...... 뭐야 뭐야 모르겠

다!! 결론은 선생님이 너무 딱 달라 붙어 있다는 것이잖아!! 민형은 머리

속으로 복잡한 심정을 진정시키지 못하고 어쩔줄 모른체 두눈을 말똥말똥 

뜨고 있었다.

  "......"

  지영의 머리 맡에서 상큼한 샴프향이 민형의 코를 찔렀다. 저절로 시선

이 지영의 얼굴을 향해 돌아 갔다. 안돼...... 견뎌야 해. 이 정도를 견디

지 못하면 앞으로 어떻게 이 험난한 세상을 살아 가겠어!? 게다가 난 대학

도 못 가니까 고난을 견디는 훈련을 해야만 하잖아. 맞아! 이 정도 쯤이

야! 여자가 다 뭐야! 견딜수 있어! 하하하!!

 "하......"

  어느새 민형의 얼굴을 유지영 선생님의 얼굴을 향하고 있었다. 머리카락

이 흘러내려 벼게 양 옆으로 이리저리 흘러 내려 있었다. 우오......! 여

자가 가장 섹시해 보일때는 바로 이럴때가 아닌가! 귀엽고 깜찍하고 사랑

스러워서 미칠것만 같았다. 만지고 싶다. 정말 만져보고 싶지만 그랬다가

는 큰일 날 것이다. 아마 다음날 스포츠 신문에 실리겠지. 학원강사를 희

롱한 고등학생. 대서 특필! 그럼 인생 끝장! 최악이자 마지막! 그런 것은 

싫다! 안락한 스위트 홈과 사랑하는 아내 귀여운 아이들! 존경받는 만화가

의 꿈은 한 순간에 끝나고 만다. 민형은 이 지옥의 샴프향 지옥에서 벗어

날 방법을 모책하며 자기도 모르게 지영의 머리카락에 손을 대고 말았다.

'와아아아아아아아!!!'

 이거 어째 이거 어째! 이건 경범죄! 아니 아니! 근친상간?이 아니고!!!

그러니까 유부녀 희롱!? 일리가 없지! 그럼 뭐야? 아까 생각이 났었는데?

뭐였더라...... 간통?! 아니야 선생님은 결혼 안했어......

  '결국은......'

  결국은 아무런 죄도 아니라는 것을 민형은 뒤늦게 깨달았다. 그렇구나.

처녀 총각이기 때문에 별다른 죄에 해당되지 않는 거구나...... 역시 우리

나라는 좋은 나라야. 라고 머리속으로 떠올리면서 민형은 조십스럽게 지영

의 머리카락을 쓰다 듬었다. 지영은 전혀 아무것도 모르는 얼굴로 곤히 잠

들어 있었다.  

  '......'

  갸녀린 얼굴로 밤이라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도톰한 입술이 눈에 들어왔

다. 정말 여자란 동물은 남자를 미치게 만드는 최고의 무기다. 혈기왕성한

피가 끓어 오르는 민형은 그 패기(?)를 가까스로 참으며 자신을 진정시켰

다. 결국 민형은 지영의 얼굴에서 손을 때고 돌아누었다.

  '이러면 안돼......'

  비록 반년전에 정신 차림 수험생 깡패지만 양심과 도덕만은 지키는 것이 

신조인 민형이 아닌가. 학원 강사를 상대로 허툰 수작 부릴 만큼 어리석은 

수컷은 아니다. 아,아니 남자가 아니다!! 민형은 이렇게 마음속으로 다짐 

하며 침을 꿀꺽 삼켰다.

  '자자.'

민형은 이렇게 마음먹으며 억지로 눈을 감았다. 잠이 오지 않아 몸을 뒤척

이면서도 민형은 결국 지영을 향해 돌아 눕지 않았다.

  "....."

  그리고 그런 민형의 등뒤에서 민형의 누운 뒷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는 

한 여자의 눈길이 있었다. 지영은 가까스로 욕구를 참으며 뒤척거리는 민

형을 가만히 바라보며 다시금 눈을 감았다.

  '잘자요 민형씨......'

  지영은 인내심이 많은 여자...... 그것이 그녀의 장점이었다.

..................................................... . . .  .  .  .

  여러가지 잡념과 망상이 물컹물컹 솟아 오르던 그날밤. 본래 태평한 성

격 때문이었는지 신의 도우심인지 어쨋든 18세 소년 정민형은 제법 깊은 

잠에 빠져 들수 있었다. 저녁에 다수의 불량배를 상대로 심하게 몸을 움직

였기 때문에 피로 했던데다 본래 잠자리를 잘 가리지 않고 어느 곳에서나 

잘자는 편한 성격 때문에 잡념을 커트한 그 순간 부터 민형은 쿨쿨 골아 

떨어졌던 것이다. 그리고 민형이 잠든 후로 부터 8시간이란 긴 시간이 지

나갔다.

 "......"

 햇빛이 창틀 사이로 스며들어 잠들어 있는 민형의 얼굴 정면을 간지럽혔

다. 민형은 두눈을 게슴츠레 뜨며 이내 고개를 돌렸다. 민형은 수면에 있

어서는 게을렀기 때문에 늦게 잔만큼 반드시 더 자는 버릇이 있다. 보통 

수면 시간은 10시간. 즉 어제 2시에 잠들었기 때문에 12시에 일어나야 정

상이었다. 누가 정했는지 원.......

  "음......"

  햇살이 자꾸만 민형의 시야를 따라 그를 괴롭혔다. 지금까지 한번도 이

런일이 없었는데. 커텐이 쳐져 있지 않나? 민형은 귀찬은 듯이 억지로 눈

을떴다.

  "......"

  그리고 민형은 눈을 뚠 그 시점부터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어찌된 일일

까. 옆으로 누운 자신의 눈앞에는 볼륨감 있는 하늘색 쉐타가 있었다. 얼

굴에 바짝 밀착되어 있는 하늘색 쉐타에서 향긋한 비누 냄세와 함께 보드라

운 털실의 감촉이 느껴졌다.

  "......"

  정신을...... 정신을 차려야 해. 민형은 현실의 냉혹함과 싸우며 간신히 

평정을 유지하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민형은 옆으로 누운 상태에서 천천히 

고개를 위로 돌렸다.

  "[email protected]?#?$?"

  한순간 민형은 큰소리로 소리를 지르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날 뻔 한것을 

가까스로 참았다. 자신의 얼굴이 파묻혀 있던 것은 유지영 선생님의 가슴. 

그,그,그 그것도 정면으로 아주 가깝게 밀착! 밀착! 숨이 널어갈 것 같았

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욱 중요한 사실은 유지영 선생님이 민형 자신을 안

고 있었다는 것이다. 즉 민형의 머리를 두손으로 잡고 가슴으로 끌어 안은

체 잠들어 있었다는 사실! 우왁!!! 

  "......!"

  이라고 외치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야 했으나 민형의 이성은 훌륭했

다. 용케도 모든 것을 참아내며 평정을 유지하기 위해 두눈을 희번덕 거렸

다. 분명 유지영 선생님은 옆 자리에 있는 자신을 벼게 쯤으로 생각하고 

끌어 않았을 것이다. 그래 평소 혼자 자는 것이 버릇 되었을 테니까 옆에 

다른 남자가 누워 있을 것이라고는 잠결에 실감하지 못한 것이겠지. 민형

은 이렇게 생각하며 자신을 가다듬었다. 그러고 보니 이곳은 유지영 선생

님의집. 커텐이 있을리가 없다. 여기는 민형의 방이 아닌 것이다.

  "으음...... 민형씨."

  그순간 간신히 평정을 유지하고 있는 민형의 얼굴을 지영이 두손으로 꽉

끌어 당기며 가슴으로 더욱 더 세게 밀착 시켰다. 게다가 이번엔 무어라고 

중얼 거리기 까지 했다. 그것이 자신의 이름이라는 것을 눈치챈 민형은 얼

굴이 귀 밑까지 새 빨개졌다. 꿈이라도 꾸고 있는 걸까? 무슨꿈? 내꿈? 그

럼 꿈에서 나를 안고 있나? 우와앗! 너무 좋은 꿈! 아니 아니 이 상황을 

벗어나야지! 선생님이 6살 연하의 남자아이를 끌어 않는 꿈 따위를 꿀리가 

없지! 민형은 스스로 이렇게 합리화 시키며 천천히 아주 천천히 지영의 손

에서 얼굴을 빼내어 뒤로 물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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