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11
레스토랑을 나온 민형은 정신없이 복잡한 상황에서 화를내며 일행을 떠나
보냈다. 미팅도,친구도, 오늘에 모든 사건은 처음 부터 끝까지 전부 엉망
이 되어 버렸다. 친한 친구 성우는 물론이고 자신의 파트너에게 까지 반색
하며 화를 내어버린 민형은 자신의 행동이 당황스럽고 난처하기는 했지만
성우에게 따귀를 맞고 식당 주인에게 꾸중까지 들은 유지영 선생님을 생각
하니 온몸에 피가 바싹바싹 말라 붙었다. 그렇게 민형은 친구들이 모두 돌
아간 늦은 저녁까지 식당앞 입구에 몸을 기댄체 유지영 선생님의 퇴근 시
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도대체 내가 오늘 무슨 짓을 한거야. 선생님이 내 친구에게 따귀를 맞고
아무말도 못하다니. 내가 그녀에게 무슨 못되먹은 짓을 한거냔 말이야.
아 인간 정민형. 넌 최저다. 남자도 아니고 엉멍진창이야. 도대체 뭐라고
사과를 하면 좋을까."
이렇게 시간이 가기를 기다리는 와중에서도 민형은 불안하고 초조하여 미
칠것만 같았다. 도대체 유지영 선생님 그녀와의 만남은 계속되는 악순환의
연속인 것이다. 첫 인상의 조짐이 좋지 않았기 때문일까. 그녀가 트러블
메이커 이기 때문일까. 확실히 그런 여성따위 보기도 싫다고 생각하던 때
가 얼마전의 일이었는데... 어째서 지금은 그녀에게 대한 처사따위에 신경
을 쓰며 초조해 해야 하는 걸까. 최소한 스승과 제자의 도리라고 마음을
달래 며 민형은 자신을 위로했다.
"뭐라도 좋으니 빨리 나와라. 미치겠군 정말!"
기다리다 지친 민형은 홧김에 입구에 반쯤 닫힌 나무문을 주먹으로 내리쳤
다. 쾅 소리가 나고 우지끈 문이 부서져 나갔다. 당황한 민형이 깜짝놀라
며 얼른 주먹을 빼어 냈을때는 이미 그럴싸한 나무장식은 박살이 나고 판
자가 일그러진체 괴상한 모양을 자아내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보다 더욱
더 민형을 당황하게 한것은 그 부숴진 나무분 바로 옆에 놀란 눈을 커다랗
게 뜨고 우두커니 서있는 유지영 선생님 이었다. 한순간 민형은 화들짝 놀
라면서 안절부절 큰소리로 외쳤다.
"서, 서, 선생님!!"
퇴근후 2층계단을 내려오던 지영이 문을 열려는 순간 눈앞에서 문이 박살
나며 파편과 함께 커다란 주먹이 쑥 들어오고 만것이다. 그리고 반쯤 열린
입구가 천천히 개방되며 그앞에서 민형의 모습이 보였다. 안절부절하여 뻘
뻘 땀을 흘리고 서있는 민형은 매우 초조한듯 보였다.
"미,민형씨...?"
지영 역시 약간은 당황스럽고 뜻밖인지라 엉거주춤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
다. 그런 지영의 앞에서 민형은 더욱 당혹스런 표정으로 이마에 가득한 식
은땀을 닦아 내었다. 무언가 말을 꺼내야 겠는데 할말이 아무것도 생각나
지 않는 것이다. 그때였다. 쩔쩔매던 민형의 눈에 정면에 서있는 지영의
얼굴이 들어왔다. 그리고 그녀 입가에 붙어 있는 살색의 밴드를 눈치챈 민
형의 얼굴색이 시커멓게 달아 올랐다. 저것은 성우에게 따귀를 맞아 생긴
상처. 그렇다. 그때의 유지영 선생님은 피를 흘리고 있었다. 갑자기 변한
민형의 표정을 느낀 지영이 재빨리 한손으로 입가를 가리며 고개를 숙였
다. 그리고 두사람 사이에서 잠시지만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저, 저기... 선생님......"
이대로 서 있을수 많은 없다고 생각한 민형이 숙이고 있던 고개를 들고 입
을 열려는 찰나였다.
"민형씨 미안."
갑자기 이 한마디만을 남기고 그녀가 민형이 앞에서 휙 스치고 사라졌다.
그 순간 민형은 멍한 표정으로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못한데 그 자리에 우
두커니 서 있었다. 눈앞에서 사라진 유지영 선생님의 자취를 실감하며 정
신을 차린것은 수초후 민형이 황급히 몸을 돌려 빠른 걸음으로 달음질쳐
가는 유지영 선생님의 뒷모습을 향해 외쳤다.
"서,선생님 잠깐!"
민형이 외쳤으나 지영은 못들은체 하고 종종 걸음으로 사라져 갔다. 뒤에
남은 민형은 지영은 향해 무색하게 뻗어 있는 자신의 손을 힘없이 내리며
비참한 심정에 빠졌다. 지금까지 그녀가 자신에앞에서 미소를 보이지 않았
던 적은 한번도 없었다. 그렇다. 이제서야 깨달은 것이지만 그녀는 항상
미소를 짓고 있었다. 민형이 아무리 심한 말을 해도. 여자의 자존심을 건
드리는 품위없는 대사를 내뱉더라도. 마음에 들지 않는 행동을 해도. 그녀
를 무시해도 그녀는 항상 민형 앞에서 미소 지으며 모든 것을 받아 주었
다. 그런 편한 지영을 민형은 좋아했고 또 지금 이상황에서도 그녀가 미소
지으며 이해해 줄것이라고 생각 했었는지 모른다. 하지만 미안하다는 알수
없는 한마디를 뒤로하고 급하게 사라져가는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민
형은 알수 없는 착찹함과 비참함을 느꼈다. 몸이 떨리고 눈물이 날것만
같았다.
'아아... 제길!'
민형은 힘없이 발치에 있는 돌맹이를 걷어 찼다.
'어차피 그녀는 교사지.'
학원 교사라도 교사는 교사다. 민형은 자신이 그녀를 너무 쉽게 생각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으며 바보 같은 자기 자신을 뉘우쳤다. 그녀는 친절한
것 뿐이다. 수험생인 자신에게 누나같은 아량을 배풀어 주었던 것 뿐일게
다. 하지만 오늘의 사건을 다르다. 버릇없는 꼬마라고 따귀를 맞지 않은
것만도 다행이라고 스스로를 위로하면서 민형은 힘없는 걸음을 옮겼다.
'내일 학원에 가면 그녀에게 뭐라고 해야할까.'
생각만 해도 거북한 상황이 머리속에 스크롤 되며 민형은 한손으로 자신의
머리채를 뒤집어 엎었다.
'미팅 따위를 하는게 아니었는데.'
결국은 애꿎은 미팅으로 원망의 화살이 쏠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미팅
이란것도 결국은 자기의 의사가 허락을 내려 행하여 진것이 아닌가. 민형
은 모든것을 흘려버리려는 듯이 커다란 한숨을 내쉬며 양손을 주머니에 집
어 넣고 터벅 터벅 어두운 종로의 거리를 걷기 시작했다.
"......"
침침한 골목의 정면에는 거대한 차도가 곧은 대로를 자랑하고 있었고 요란
한 네온사인과 여러 사람들이 바빠 자신의 길을 걸어가고 있었다. 문득 민
형은 자신이 걷고 있는 어두운 골목에 멈춰서서 주위를 돌아보았다.
"......"
바로 눈앞에, 불과 수십미터 앞에 놓여져 있는 도시는 너무나 화려했고 또
아름다웠다. 수많은 커플과 여러 개성의 사람들이 각자 자신의 본분을 다
하며 살아가는 도시는 아름다웠다. 민형은 자신이 서 있는 골목과 그 거대
한 도시의 도로를 비교하며 알수 없는 착찹한 심정에 빠져 들었다. 그것은
바로 자신의 눈앞에 닥친 현실의 차이와 비슷한 느낌으로 그에게 다가서고
있었던 것이다.
'18살......'
고교3년생이란 그런것이다. 그것이 한국이란 개발 도산국이 안고 있는 18
살 청소년들의 거대한 적. 이런 압박감과 초조함을 이곳의 18세는 누구라
도 가지고 있다. 한국이란 이런곳이다.
'제길......'
민형은 자포자기 한듯이 눈에 띄는 깡통을 걷어차며 걸음을 옮겼다. 애꿎
은 깡통을 걷어차며 어두운 골목을 걸어가는 자신을 돌아보며 민형은 문득
1년전 자신의 모습이 떠 올랐다. 1년전...... 민형은 흔히 사람들이 멀리
하는 그런 부류, 민형은 불량배였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잖아. 아니라고"
과거를 변명하듯 혼자말로 되뇌이면서 민형은 빠른 걸음으로 걷기 시작했
다. 주위에는 아무도 없고 음침한 골목은 어두 컴컴했다. 익숙한 느낌. 민
형은 이런 분위기에 꽤 익숙해져 있는 자신을 보고 씁쓸한 생각에 잠기었
다. 유지영 선생님은 잘 돌아 가셨을까... 이런 골목을 지나 다니다니 여
자의 몸으로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얼마전 까지 이런곳에서
주로 어울렸던 민형 자신이 잘알고 있는 일인 것이다. 지나가는 여자들,
특히 젊고 여려 보이는 여성들은 좋은 표적이다. 간단한 협박만으로도 손
쉽게 가지고 있는 모든 물건을 내놓고 사라진다. 뒷감당 같은것도 필요없
다. 최고의 사냥감이란 바로 거리의 분위기와 여자들이 만들어 내는 것이
다. 그리고 이런 곳에서는 의례 여성의 겁에 질린 비명소리가 들려오곤 했
던 것이다.
"꺄악!"
민형은 똑똑히 알고 있다. 자신이 저질렀던 일들을...... 비명을 지르는
것은 순간 뿐이다. 그 한번을 제외하고는 재빠른 동료들의 손에 입에 틀어
막힌다. 그리고 아무것도 할수 없는 것이다.
"그러니까 첫방을 크게 질러야......"
민형은 피식 웃으며 귓가에 들린 비명소리의 나약함에 혀를 찼다. 저렇게
짧은 비명은 거리에 울리지도 않는다. 게다가 비명을 지르면 따귀를 얻어
맞기 일수인 것이다. 비명을 지른 누군가가 분명 따귀를 얻어 맞았을 것이
라고 생각하며 민형은 걸었다.
"......"
잠시 걷던 민형은 멈추어 섰다.
"비명?"
방금 비명소리가 들렸다. 짧은 것이지만 똑똑히 들을수 있었다. 그 순간
민형은 이것이 자신의 상상이 아닌 현실의 상황이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
었다. 이것은 진짜다.
"설마!?"
조용한 골목을 가로 질렀던 여자는 딱 한명. 바로 유지영 선생님 뿐이다.
그렇다면 비명을 지를 여성은 한사람 뿐인 것이다.
"제길!? 선생님!!"
초조함에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르고 숨이 가빠지기 시작한 민형은 더 이상
생각하는 것은 그만두고 정신없이 뛰기 시작했다. 바로 앞이다. 짧은 비명
이 급하게 가로 막히긴 했지만 민형은 분명히 알수 있었다. 여성의 비명이
다. 그리고 가까운 곳에서 들린 것이다. 이럴때 놈들이 붙잡은 여자를 끌
고가는 곳은 몇군데로 제한 되어 있다.
'이놈들!!'
민형은 이를 악물며 근처 식당가 은 골목으로 정신없이 뛰었다. 그런 것
은 의례 놈들의 패거리가 몰려 있다.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 버려진 공포속
에서 놈들이 사냥감을 처리하는 곳. 민형은 불안함과 초조함 속에서 미친
듯이 달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