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10
"이봐요 아가씨, 뭘 그렇게 서서 보고 있는 겁니까? 주문 다 끝났잖아
요?"
멍한 표정으로 민형을 바라보는 지영을 이상하다는 듯이 쳐다보며 성우가
퉁명스럽게 물었다.주위에 있는 여자아이들의 시선도 지영에게 일제히 쏠
렸으나 지영은 아직 아무것도 실감나지 않는 얼굴로 우두커니 메뉴판을
들고 서 있었다.
"이봐요! 가서 음식을 가져와요! 우리가 동물원 원숭이야? 빤히 쳐다보고
있게!"
왠지 놀림받는 기분이 든 성우가 언짢은 얼굴로 조금 언성을 높혔다. 그
때였다.
- 쾅 -
"왓?"
탁자 위에 식기들이 공중으로 붕 떠오를 정도의 강력한 민형의 주먹이 성
우의 눈앞에서 내려쳐졌고 그 무시무시한 민형의 눈을 보며 성우가 침을
꿀꺽 삼켰다. 왜...왜? 뭔가 잘못한건가?
"너 말이야..."
민형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며 성우를 노려 보았다. 그러나 성우가 그런 민
형의 뜻을 이해할리없었다. 민형은 성우의 앞에서 메뉴판을 들고 있는 지
영을 슬쩍 쳐다보았다.
'핫'
민형의 시선을 느낀 지영도 황급히 메뉴판을 등뒤로 돌리고 고개를 꾸벅
숙였다.
"죄, 죄송합니다. 손님!"
"......"
어색한 분위기에 식탁 주위는 고요했다. 고개를 숙이고 있는 지영을 제외
한 세사람은 이유없이 흥분해 있는 민형을 바라보며 슛아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민형은 유지영 선생님에게 버릇없이 구는 성우에게 자기도 모르게
화가 난 것이지만 퍼뜩 정신을 차리고 애써 침착해지려고 애썼다. 민형은
헛기침을 한번하고 방금 한 자신의 행동에 대해 변명 비슷한 말을 늘어 놓
았다.
"그, 그러니까 아무리 서빙을 보는 아가씨라도 그렇게 말해면 안돼!"
지영의 얼굴이 빨개지고 성우는 여전히 이상한 다는 듯이 민형의 얼굴을
힐끗힐끗 살펴 보았다. 저게 돌았나? 갑자기 민형의 파트너가 민형의 팔
짱을 끼며 바짝 달라붙었다.
"멋져라. 민형씨는 참 상냥하구나."
"아, 아니 난."
민형은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들어 유지영 선생님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메뉴판으로 입을 가린체 놀라운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
다. 이대로는 오해의 소지가 크잖아! 민형은 자신에게 달라붙은 미팅
파트너를 밀쳐내며 재빠르게 말을 내뱉었다.
"떠, 떨어져. 뭐하는 짓이야 이게!"
그 와중에도 눈은 유지영 선생님에게 향해 있었다. 자신의 애교가 실패
로 돌아가자 뾰루퉁해진 소녀가 가슴앞으로 팔을 빼 모으며 휙 돌아 앉
았다. 지영은 왠지 모르지만 가슴이 두근두근 떨렸다.
"저, 주문이......"
왠지 모르게 정신이 혼란스러워 지영은 이렇게 물었다. 한순간 날카로운
성우의 목소리가 지영의 귀를 때렸다.
"아까 시켰잖아요!"
"에... 엣?"
화들짝 놀란 지영은 재빨리 입가에 가져가 있던 메뉴판을 눈앞으로 가져
왔다. 그러나 긴장한 나머지 손에서 미끄러진 메뉴판이 지영의 손을 빠
져 나왔다.
"아, 이 이런!"
당황한 지영이 공중으로 떠오른 메뉴판을 붙잡으려 손을 뻗었으나 메뉴판
은 잘도 지영의 손을 이리저리 빠져나가 폴짝폴짝 도약했다.
"이봐요!"
참다못한 성우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을 때였다.
- ! -
빡, 소리와 함께 메뉴판의 모서리가 성우의 머리를 향해 내려 꽂혔고 성
우는 비명을 내질렀다. 그모습을 본 지영은 놀란 강아지 마냥 숨소리도
내지 못하고 두눈을 크게떴다.
"아, 아하하하 저 꼴좀봐!"
"어머, 호호호호!!"
메뉴판을 뒤집어 쓴 성우의 얼굴을 올려다 보며 두 여자아이들은 자지러
질듯이 웃어 재기기 시작했다. 성우의 입술이 일그러지고 얼굴 근육이 경
련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정말 이 아가씨가!!!"
"이,이봐 성우!!??"
성우의 오른손이 머리위로 높게 치켜올려지고 깜짝놀란 민형이 황급이 자
리에서 일어났을 때였다. 분노한 성우의 오른손이 놀란 토끼눈의 유지영
선생님을 향해 날아갔다.
- 짝 -
"......!!!???"
민형은 그것이 꿈이 아닌가 생각했다. 메뉴판이 땅바닥으로 떨구어지고
눈앞에 서있던 유지영 선생님의 머리카락이 펄럭였다.
"선생님-----!?"
미쳐 상황을 파악하기도 전에 테이블이 엎어지며 두눈이 휘둥그래진 민
형이 지영을 향해 달려 나갔다. 모두들 그런 민형을 바라보며 숨을 죽
였다.
"서, 선생님...?"
성우가 황당한 표정으로 이렇게 혼자말로 중얼거렸다.
"선생님 괜찮으세요!!"
바닥에 부릅을 꿇은 지영을 부축하며 민형이 외쳤다. 그녀는 얻어맞은 오
른쪽 볼을 두손으로 꼬옥 감싼체 입을 다물고 있었다. 민형의 손에 잡힌
그녀의 어깨가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심한 가슴의 요동소리가 느껴졌
다.
"서, 선생님....?"
민형은 민망하고 죄스러워 어쩔줄 모르며 지영의 앞에서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어떻게 이런일이... 유지영 선생님이 이런곳에서 일하고 있을 줄
은 생각도 하지 못했어. 오지 않는건데. 미팅 따위 오지 않는건데! 민형
은 학생의 신분으로 이런곳에 오게 된것을 뼈저리게 후회했다.
"선생님 괜찮으세요?"
다그치는 민형에게 유지영 선생님이 고개를 들었다. 여전히 꼬옥 쥐고 있
는 오른 쪽 볼이 부어있었다. 그리고... 순간 민형은 가슴이 철렁 내려 앉
았다. 그녀의 입술에서 피가 흘러내리고 그녀는 눈물을 흘리고 있었던 것
이다.
' 아... 이런 '
주위가 온통 깜깜한 암흑으로 변하고 민형의 심장이 요란하게 요동쳤다.
선생님의 입술에서 피가 흘러... 자신의 친구에게 따귀를 맞아서... 이것
은 폐륜이다! 도대체 내가 무슨 짓을 저지른거야! 민형은 자신이 직접 저
지른 일은 아니지만 너무나 큰 죄책감을 느끼며 몸을 떨었다. 성우 너 이
자식!! 여자를 이렇게 세게 때리는 놈이 어딨냐! 야만인!!
"아퍼라..."
한순간 지영이 조용히 혼자말로 중얼거렸다. 민형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아아... 그녀를 쳐다볼수가 없다. 하지만 긴장하고 있는 민형과 달리 지영
은 성우의 발아래 떨어져 있는 메뉴판을 집어들고 자리에서 일어나 치마에
묻은 흙을 털었다. 그제서야 테이블에서의 시끌벅적함을 눈치챈 가게 주인
이 달려왔다.
"아, 아니 무슨 일입니까 손님?"
주인은 피가 흐르는 지영과 쓰려져 있는 테이블, 결코 좋지 못한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서 있는 성우와 민형을 번갈아가며 쳐다보았다. 주인의 목구
멍으로 삼켜 넘기는 침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았다. 갑자기 주인이 지영을
향해 다그쳐 물었다.
"무슨일이야 지영양! 어떻게 된거야?"
"아 잠깐만요. 그게..."
민형이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주인을 불러으나 그는 가게의 체통 때문인
지 운영상의 문제인지 민형은 아랑곳하지 않고 지영만을 향해 더욱 큰소리
로 다그쳤다.
"어떻게 된거냐니까!!"
"......"
고개를 숙인체 아무말도 못하던 지영이 잠시후 조용히 입을 열었다.
"죄송합니다......"
불안해 어쩔줄 모르는 그녀의 얼굴, 문득 민형은 그것이 모두 자신 때문
이라는 생각이 들어 눈앞이 캄캄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