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3
"그래 계획대로 잘 되어가냐? 네 미래 계획 말이야"
점심시간 책상에 들어 누운체 꿈지럭 거리고 있는 민형에게 가까이 다가온
성우가 누워있는 민형의 머리를 손가락으로 툭툭 건드리며 질문하자 민형
은 귀찮다는 듯이 한손을 뻗어 그런 성우의 면상을 주욱 섞어 내렸다.
성우는 인상을 찡그리며 힘없이 쳐져있는 민형의 앞에서 두눈썹을 실룩
거렸다.
"왜그래..? 그렇게 원하던 일본어 회화도 시작 했잖아. 이제 열심히 공부
해서 자격증 취득만이 남은거 아니야..?"
"....."
그러나 민형을 그런 성우의 물음에 대답하지 않고 한숨을 푹쉬며 고개를
들었다. 그런 민형을 이상하다는 듯이 바라보며 성우가 물었다.
"왜그래? 무슨일 있냐..?"
그런 성우에게 민형은 얼굴을 찡그리며 머리를 긁적 거렸다.
"바로 네가 말하는 미래 계획에 차질이 생기고 있기 때문에 신경 쓰여서
그런다. 우리 학원 선생이 멍청해서 잘 배울수 있을것 같지 않아. 옮겨
버릴까...?"
"이런이런.."
이렇게 대답하며 한숨을 푹푹 내쉬는 민형에게 성우가 핀잔을 주듯이 손가
락을 까닥거리며 대답했다.
"꼭 공부 안하는 놈들이 선생탓을 해요. 누구든지 열심히 하는 사람에게는
어떤 선생이라도 좋아 보이기 마련이다. 너 싫증난거 아니냐?"
"닥쳐라 임마!! 난 열심히 하고 있다! 의무감,책임감!! 그리고 돈이 아까
워서 라도 말이다!! 알겠냐 짜식아----!!"
갑자기 큰소리로 소리치는 민형을 놀란듯이 바라보며 성우가 주춤주춤 입
을 열었다.
"어..알았다. 그래...누구 뭐랬냐.."
"제길.."
머뭇거리는 성우의 앞에서 민형은 다시 책상 머리에 고개를 묻었다. 책상
에 부딪친 민형의 얼굴에서 쿵 소리가 울리고 성우가 킥킥 거리며 웃음지
었다. 순간 고개를 번쩍든 민형이 또다시 발끈하여 성우에게 소리쳤다.
"왜 웃는거냐 임마!! 내 머리가 돌이라고 생각했냐!? 그래서 웃는거냐?
그래!! 난 돌이다! 근데 그건 우리 부모님이 물려주신거라 어쩔수 없
단 말이다!! 알겠냐!? 비웃을 테면 비웃어라! 난 돌이니까! 하지만 다른
건 포기 할수 없어! 기필코 자격증을 취득해서 일본에 가야 한단 말이
다! 네가 보기엔 현실도피에 멍청한 얼간이나 하는 짓으로 보일지 모르지
만 난 거기에 사명을 건 것이란 말이다! 너처럼 대학을 나와야 인간 구실
을 할수 있다고 생각하는 멍청이나 누구나 똑같은 대한민국 전체 학생
90%와는 난 달라!! 알겠냐? 난 5%다! 꼭 보여주겠어!! 그리고 마지막에
웃는것은 나야!! 나라구!! 알겠냐 ------------!!!!!!!"
민형이 흥분하여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고 성우는 그런 민형이 태도에 질린
나머지 아무 말도 할수 없었다. 그때 점심시간을 이용하여 교실에 남아 있
던 학급의 급우들이 큰소리로 민형에게 야유를 퍼부었다.
"야야!! 질렸다!! 니 맘대로 참도 잘되겠다!! "
"그래 그래! 넌 열심히 학원가서 일본에 가라!! 난 한국에서 잘살면 되잖
냐!?"
"시끄러 임마들아! 난 너희들보다 부자가 될수 있어! 그리고 큰집에 멋진
여자!! 그리고 빨간 스포츠카를 타고 다닐거란 말이다!!"
발끈한 민형이 대들었고 교실은 한바탕 시끄럽게 변모했다.
............................................. . . . . . . . . . . .
그날 저녁 민형은 힘없는 발걸음을 터벅터벅 옮겨 집에서 버스로 4정거장
거리에 있는 학원을 향했다. 버스를 탈수도 있었지만 왠지 걸어가고 싶었
다. 그래서 조금 일찍 떠나야 겠다고 생각한 탓에 이른 걸음을 하였지만
어쩐 일인지 평상 시간보다 1시간 반이나 빨리 도착하고 만 민형은 학원앞
에서 서성 거리기 시작했다.
'제길..내 걸음이 이다지도 빨랐단 말인가. 하긴 나는 체력장 70점 만점
을 100점으로 패스한 선택된 인류였지 하하. 그래 맞아..분명히 도보 속
도도 빠른게 당연하지..제길 그런데 왜 인문계에 못들어갔지..열받게시
리..."
민현은 이렇게 스스로 허튼생각을 나열하는 것을 허탈하게 느끼면서 학원
근처를 어슬렁 거렸다. 학원으로 들어가 대기실에 앉아 있어도 되었지만
1시간 반이나 되는 시간을 맨숭맨숭 앉아 있기는 거북했다. 게다가 대기실
에는 수많은 사람들과 외국인 무엇보다 모두 무시무시한 자세로 공부하고
있는 것이다. 그 분위기에 휩싸여 공부를 하기란 민형에겐 실로 끔찍한 일
이었다.
'어쩔수 없군..오락실이나 갈까...'
민형이 결정했다는 듯이 들고 있던 가방을 어깨에 둘러매고 근처에 있는
오락실로 향하기 위해 발걸음을 돌렸을 때였다.
"아~안녕~! 민형씨~"
"....."
언제나 밝은 얼굴에 밝은 목소리 유지영 선생님 이었다. 고개를 돌리자 마
자 제일먼저 눈에 띈 그녀가 한손을 치켜들며 반갑다는 듯이 민형을 향해
달려오기 시작했다. 그런 그녀를 바라보며 민형은 인상을 찌푸렸다.
'제길..이 여자는 왜 이다지도 자주 눈에 띈다냐 ..다른 여자들은 찾아다
녀도 없없잖냐...도대체 나랑 무슨 원수를 졌길래 학원 바깥에서 까지
눈에 띄어 성가시게 만든단 말이냐...'
우뚝 멈춰선 민형의 발걸음이 갑자기 휙하고 고개를 돌리고 민형은 굳어진
걸음을 황급히 옮겨 다가오는 선생님에게서 멀어지기 위해 걸어 나가기 시
작했다.
"어..? 정민형씨......?"
민형이 자신을 모른체 하자 유지영 선생은 의아한 듯한 얼굴로 다시금 민
형의 이름을 부르며 종종 걸음으로 그에게 달려오기 시작했다. 민형의 옆
얼굴에서 식은땀이 흐르고 민형은 계속하여 그녀를 모른척 한체 뚜벅뚜벅
빠른 발걸음을 어디론가 옮겨가고 있었다.
"이봐요~ 정민형씨!!"
한순간 유지영 선생이 걸음을 빨리하여 민형을 따라잡았다. 민형의 오른팔
을 붙든 유지영 선생이 그의 앞으로 나가서 활짝 웃으며 입을 열었다.
"안녕"
민형은..일그러진 얼굴을 들고 내리깔린 목소리로 조용히 중얼 거렸다.
"아...선생님. 왠일이세요 이렇게 일찍..."
"오늘 시계를 잘못 보는 바람에 글쎄 한시간이나 일찍 나왔지 뭐예요
정말 바보 같죠?"
하하하 웃으며 잘도 지껄이는 그녀를 곁눈으로 바라보며 민형은 조용히 한
숨을 내쉬었다. 정말 바보같잖냐..게다가 스스로 그것을 인식하고 있다니
황당하다. 제발 그렇게 큰소리로 거리에서 나를 아는척 하지 말아줘 사람
들의 눈도있고 창피하단 말이다.
"아..그러세요..가끔그럴 때가 있지요..그럼 이만.."
민형은 고개를 까닥 숙이고 급하게 선생님의 옆을 가로질러 발음 옮겼다.
그때 그런 민형의 팔을 붙잡으며 유지영 선생이 외쳤다.
"정민형씨는 왜 이렇게 일찍 나왔어요?"
"저도 시계를 잘못 봤습니다."
어떨결에 튀어나온 대사...나참..나는 왜이리도 멍청하고 썰렁한 인간이
라냐..이 분위기에 이대사..그리고 이표정..전혀 어울리지 않잖야..게다
가 그녀의 말을 받아들여 농담을 건네준것 처럼 보였으니..제길..민형은
한순간 자기 자신의 허무함을 질책하며 고개를 들었다. 아뿔사 그녀는 금
방이라도 웃음을 터트릴듯이 입가에 함박 웃음을 머금고 있었다. 그녀가
기쁜듯이 입을 열었다.
"그래요~? 그래서 학원 앞에서 얼쩡거렸구나~ 잘됐네 나도 지금 똑같은
상황인데요 우리 어디라도 가서 시간 때우다 와요~"
잘도 얼쩡거린다는 말을 쉽게 하는군..민형은 어이없는 표정으로 자신의
팔을 잡아끄는 유지영선생님에게 변명하듯 외쳤다.
"아..아니.사실 난 지금 오락실에.."
"정말? 나도 오락 좋아해요! 같이가서 진 사무라이 스프릿츠라도 해볼까
요? 나코루루로 하고...민형씨는...."
"패왕가요"
"아하 그래요? 하오마루? 간지를 쓰는군요. 그렇게 익혀두면 좋아요 게임
은 일본어 회화에 많은 도움을 주니까 많이 많이 해둬도 나쁠것은 없어
요 그럼 가자구요!"
"아..하..하지만 나는!?"
어떨떨한 얼굴로 선생님의 팔에 이끌려 가면서 민형은 자신의 흐지부지한
결단력을 한탄했다. 하필이면 거기서 패왕가라고 대답해 버리다니..이런
꼭 동조 한것처럼 들리고 말았겠어. 게다가 여자가 왠 오락..아니 게임이
라고 부르는 것으로 보아 꽤 일가견이 있어 보이기도 하지만..하지만 어쨋
든!! 난 이 여자랑 같이 오락실에 가고 싶지 않단 말이야!!
"서..선생님 잠깐만요....곧 시간이..."
"아니예요 아니예요 아직 한시간이나 남아 있다구요 괜찮아요"
"그..그래도...이건..앗 선생님!! 잠깐만요!"
앞장서는 유지영 선생의 손에 이끌려 민형은 어쩔수 없이 허겁지겁 근처
오락실로 향하게 되고 마는 운명에 처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