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 데여도 좋다
하지만 난 막상 은지를 만난다면 예전같은 얼굴로 예전같은 마음으로 편한.. 오래된 친구같은 마음으로 대할 수 없을 거 같아서.. 은지를 찾기로 마음먹고 흩어져 걷고있지만 주변에 있는 사람들의 얼굴. 제대로 보고있지 않았다. 그렇게 마치 눈을 감은 듯, 술에 취한 듯 몽롱해져있는 시야로 난 정처없이 발걸음을 내디뎠다.
"나 여깄어.."
우뚝-
난 발걸음을 멈추고 커진 동공으로 주변을 두리번 거렸다. 분명하게 내 귀로 들려온 나 여깄어. 라는 4마디.. 나즈막하게 울먹이는 듯한 목소리.. 꿈결에 들려왔던.
그렇게 미친놈처럼 주변을 두리번 거리고 있었을 때, 내 등에 뜨거운 손길이 느껴졌다. 다시.. 이렇게 내게로 다가와준 것.. 정말로 은지일까? 난 나도 모르게 올라간 입꼬리를 내리지도 못한 채로 빠르게 뒤 돌았다.
"은지.."
"응?"
내 뒤에있는 것은 갸우뚱하면서 어리둥절해 하는 표정을 하고있는 보미였다. 나는 나도 모르게 실망해버려서 다시 내려가버린 입꼬리에 내게 은지가 이렇게 큰 존재였구나 하는 생각을 하고있었다.
"뭐야~ 은지 인줄 알았어? 급실망하네~"
"휴.. 뭐 어쩔 수 있.. 것보다 갑자기 말 놓는거에요?"
"어차피 동갑인데 뭐 히히"
"그래라.. 것보다 은지는?"
"못찾았어.. 이상하다. 분명히 은지가 여기 있을텐데."
그렇게 난 보미와 함께 다시 은지를 찾기 위해 걷기 시작했다. 방금 보미 덕분에 내가 은지가 내 마음 속에 얼마나 크게 자리잡았는지 알게 된 나이기에.. 앞에서, 뒤에서 걸어오는 사람들의 얼굴을 살피면서.
"그렇게 사랑해?"
"응?.. 은지?"
"응."
"은지가 날 좋아해줬어. 사랑해줬어."
"그럼 넌 별로라는 뜻이야?"
"에헤이 한국말은 끝까지 들어야돼거든."
"크크크킄"
"..에휴 암튼 결론은 그런 은지의 사랑을 받은 만큼, 내가 주고싶어."
물론 중간에 들어온 보미의 태클에 약간은 이상해질 뻔 했다만, 그래도 약간은 멋있는 말을 한 것같아 내심 뿌듯해하고 있던 그 때 저 멀리서 두리번거리며 천천히 걸어가고있는 한루가 보였다. 그런 모습이 뭔가 멍청해보이면서도 귀여워서 보미랑 난 크게 웃으며 한루를 부르며 손을 흔들었다.
"한루야~!"
그러나 워낙 먼거리라 한루는 우리의 말 소리를 듣지 못한 듯 계속 두리번거리며 걸어가고있었다.
"내가 가서 부를게."
"그러세요~"
보미는 히힛 웃으면서 한루 쪽으로 달려갔다. 난 그런 보미의 뒷모습을 보며 피식 웃음을 짓곤 몰려오는 졸음에 얼굴을 쓸어내렸다. 그리고 다시 눈을 떳을 때
"쪽.. 쭈웁.."
내 목에 감겨오는 가녀린 팔, 내 몸에 닿는 부드러운 살갗, 입술 위로 덮어진 달콤한 입술, 내 입으로 들어오는 짜릿한 혀의 감촉.. 태어나서 이렇게 아찔한 느낌은 내게로는 처음이었다. 하지만 심장은 뛰지 않는 듯 보였다. 왜냐면..
너무나도 빨리 뛰고있어서 마치 멈춘 것만 같았으니까.
이내 내게 입을 맞춘 그 녀가 내게 입을 떼고는 나의 눈을 마주보았다. 너무나 가까워 서로의 숨결마저 느껴졌다.
"으.. 은지야.."
은지의 얼굴은 온통 눈물 범벅이었다. 나는 그런 그 녀의 눈물을 닦아주려 손을 뻗었지만 은지는 다시 내게로 입을 맞춰왔다. 나의 잘못과 나의 후회와 나의 고통이었는데, 정작 가슴이 아프도록 눈물을 흘린 것은 은지였다.
"넌.. 넌.. 타오르는 화염이야.."
"어?"
"난 작디 작은 반딧불이고.."
"어.."
코가 찡해졌다. 눈물이 눈에 가득고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데여도 좋아.. 너는 그대로.. 내게로 와줘.."
그 것은 나에대한 용서의 말이라기는 보다는.. 나에대한 사랑의 말이었다. 내가 무슨 짓을 해도 나를 사랑한다는.. 그럴 수 밖에는 없다는.. 그런 너무나 초라하고 슬픈 말이었다. 내 눈에서 눈물이 줄줄 흘러내렸다. 흐르는지도 모르게 흐르고있었다. 이번엔 내가.. 은지의 허리를 꽉 껴안고 입을 맞췄다.
이렇게 우린 서로 하나가 되었다.
이렇게 은지는 내 품에 안겼고,
이렇게 나는 은지를 품에 안았다.
데여도 좋다.
너는 불이되어
내게로
오라.
더 이상은 은지를 품에서 떨어트리지 않을거라고..
to be continu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