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0화
파주 NFC.
검은색 차량에서 호리호리한 몸매의 남자가 한 명 내렸다. 그러자, 기다리고 있던 기자들이 달려들었다.
“한상준 선수! 국가 대표 합류를 축하드립니다. 소감 부탁드립니다.”
“대칸 감독이 독단적이라는 소문이 있습니다. 한상준 선수의 생각은 어떠신가요?”
“새로운 국가 대표 선수들이 많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분데스리가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셨는데? 어떠셨습니까?”
“호주와의 경기 어떻게 보셨나요?”
한상준은 부드럽게 웃으면서 기자들의 말에 대답했다.
“죄송합니다만, 공식적인 기자회견이 아니면 답변드릴 수 없습니다. 제 인터뷰를 원하시면 에이전시 통해서 연락 부탁드립니다.”
그는 공손하게 인사를 하고서는 건물로 들어가 버렸다.
“아… 오늘도 한상준은 조용하네.”
“예의 있고 점잖다 보니, 이런저런 말을 하지 않는 타입이니…….”
그렇게 기자들이 아쉬워하는 가운데, 잠시 후에 빨간 스포츠카가 도착하였다.
“이무열이다!”
차 안에서 잔득 멋을 부린 이무열이 나타났다.
“이무열 선수!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대칸 감독님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어제 있었던, 호주 평가전은 어떻게 보셨나요?”
“혹시, 국가 대표 선수 선발에 대해서 불만 있으신가요?”
기자들의 질문에 이무열은 기대했던 것처럼 아주 당당하게 외쳤다.
“대칸 감독님요? 최고의 감독이죠! 유럽 무대에서 두 번의 트레블을 달성했는데, 그런 감독님이 명장이 아니라면 누가 명장입니까?”
“호주 평가전요? 어린 선수들이 많던데… 대단하더군요! 호주는 무시할 팀이 아닙니다. 그런 팀을 상대로 저랑 상준이가 없는데 그 정도라? 최고죠!”
“국가 대표 선발요? 하하하… 대칸 감독님이 선발했는데, 믿어야죠!”
그러고는 기자들을 보고서 당당하게 외쳤다.
“대칸 감독님을 보고 이상한 소리를 하는 사람이 많은데, 개소리 그만하라고 하고 싶네요. 유럽에서 인정받는 분입니다. 그런 분이 우리나라의 국가 대표 감독을 해준다는 것만으로 감사해야 해요!”
이무열은 당당하게 자신의 의견을 표시하고서는 건물로 들어갔다.
한상준과 이무열이 도착해서 처음으로 이동한 곳은 감독인 대칸이 머물고 있는 감독실이었다.
“한상준 선수, 이무열 선수! 잘 오셨습니다.”
대칸이 맞이하자, 한상준은 공손하게 인사를 하였다.
“정식으로 인사드리는 것은 처음이네요. 한상준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한상준과 대칸은 문난하게 인사를 주고받았다.
“정말! 영광입니다! 감독님!!”
반면에 이무열은 호들갑을 떨면서 대칸과 인사를 나누었다.
“정말이지, 뵙고 싶었습니다! 감독님!”
이무열은 대칸에 대한 존경심을 감추지 않으며 인사를 나누었다.
두 선수는 바로 훈련에 합류하였다.
“자~ 다들 주목! 한상준 선수와 이무열 선수가 합류했다!”
김종일 수석 코치의 말에 선수들이 환호하며, 두 선수의 합류를 반겼다.
“자! 다음 벨기에와의 평가전! 다들 잘 준비해 보자!”
“네!”
그렇게, 대칸이 이끄는 국가 대표 선수들은 다음 평가전 준비에 들어갔다.
훈련 과정은 평범했다.
“자~ 어제 경기에서 많이 뛰었던 선수들은 회복 훈련을 하고, 경기를 안 뛰었던 선수들은 전술 훈련에 들어간다.”
김종일 수석 코치의 지시에 따라 선수들이 갈라졌다.
“…….”
그런데, 이번에 새로 합류한 해외파 선수들은 전술 훈련에 속해있었고, 기존 1차에 소집되었던 선수들은 회복 훈련에 속해있었다.
‘저번 평가전에서 새로 합류한 해외파… 아무도 안 나갔었구나.’
눈치가 빠른 이무열은 이미 여기서 미묘한 느낌을 바로 받았다.
점심시간.
식당에서 선수들은 친한 사람끼리 삼삼오오 모여서는 밥을 먹기 시작했다. 그리고 해외파 선수들은 자연스럽게 같이 밥을 먹었다.
“상준 형님이랑 무열 형님이 합류하니, 정말 든든하네요.”
서소승의 말에 한상준은 조용히 웃었고, 이무열은 궁금한 표정으로 물었다.
“무슨 일이야? 분위기가 왜 이렇게 미묘해?”
이무열의 질문에 서소승이 나서서 설명해 주었다.
“그게… 우리를 너무 대접 안 해줘서요.”
사실, 여태까지 국가 대표 팀을 소집하면, 기존 감독들은 해외파들에 대한 기본적인 대우가 있었다. 그래서 해외파들을 중심으로 뭉치고, 국내파들이 숙이면서 들어가는 그림이 자연스럽게 그려졌던 것이다.
하지만, 이번 국가 대표에서 해외파에 대한 대접은 단 하나도 없었다. 아니, 오히려 1차 소집 선수들이 똘똘 뭉쳐있었기 때문에 콧대가 높았던 해외파 선수들에게 아무런 대우가 없었던 것이다.
게다가 이가람과 노인찬, 강재섭, 김훈 등 몇몇 선수들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이 국가 대표로 처음 선발되었기 때문에 해외파 선수들과 친분도 없었다.
팀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해외파 선수들이 알아서 적응해야 하는 분위기였던 것이다.
기존 소집된 선수들을 통해 분위기를 이해한 이무열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렇군…….”
이무열의 반응에 서소승은 아쉽다는 듯이 말했다.
“아무리 그래도… 국대에서 우리가 핵심일 건데… 이렇게 푸대접해도 되나요?”
하지만, 이무열은 전혀 다른 마인드를 가지고 있었다.
“대칸 감독님과 코치님들이 만든 분위기라면… 따라야지.”
“네?”
서소승을 비롯한 다른 해외파 선수들이 살짝 놀랐다. 하지만, 이무열은 단호하게 다른 선수들에게 말했다.
“솔직히, 우리가 해외에서 뛰고 있다지만… 트레블 한 감독님 입장에서 보면 특별한 것이 없는 선수에 불과하지.”
이무열의 말이 현실이었다. 트레블을 달성한 대칸 입장에서는 해외파라고 해도, 대부분이 부족한 선수들에 불과했다.
“대칸 감독님에게 인정받기 위해서라면, 우리가 숙이고 들어가야지. 지금 팀의 분위기가 그렇다면, 그 분위기에 따라야지.”
해외파 중에서도 가장 잘나가는 선수가 이가람과 이무열이었는데, 이무열까지 이렇게 말하자. 다른 선수들은 할 말이 없어졌다.
이무열은 빈 식판을 들고 먼저 일어나면서 말했다.
“오후 훈련에는 다른 선수들과 더 적극적으로 대화해야겠다!”
이무열이 먼저 식당을 나갔고, 다른 해외파들은 벙 찐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오후 훈련.
이무열은 먼저 가장 친하다고 할 수 있는 이가람에게 다가갔다.
“가람 주장님!”
이무열이 다가가서 말을 하자, 이가람이 웃으면서 말을 받아주었다.
“무열아, 어때? 이번 대표 팀은 분위기가 조금 다르지?”
이가람의 질문에 이무열은 웃으면서 말했다.
“하하하 그렇네요. 다들 잘하네요?”
이무열이 예의상 했던 말이었는데, 이가람은 뿌듯하게 대답했다.
“그렇지? 3개월 훈련 만에 모두가 완전 달라졌다니까! 정말 대단해!”
그러고는 이무열을 보며 한마디 하였다.
“너도 방심하면, 김유재 선배님이나 하훈이한테 밀릴걸?”
“네? …하…하… 그럴 순 없죠!”
이가람의 말에 이무열은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이무열은 적극적으로 다른 선수들과 함께 훈련을 받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느꼈다.
‘어라? 김유재 선배님… 생각보다 잘하네?’
김유재 선배는 서른네 살이라는 나이답지 않게 좋은 움직임을 보여주었다. 특히, 완숙하고 기교 있는 베테랑다운 플레이를 보여주었던 것이다.
‘하훈 선수도 개인 마크 스폐셜리스트라고 했지? 잘하네.’
하훈도 자신의 역할을 잘 수행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하하… 가람 형의 말이 사실이었네. 해외파라고 해도… 방심하면 밀리겠구나.’
이무열은 진지한 마음가짐으로 적극적으로 훈련에 동참하였고, 빠르게 팀에 녹아 들어가기 시작했다.
5월 27일, 벨기에와의 평가전 하루 전날.
대칸은 회의실에서 김종일 수석 코치와 함께 평가전 선발 출전 명단을 작성하고 있었다.
“감독님, 이번에는 어떤 진형을 준비할까요? 저는 벨기에의 변칙적인 3-5-2나 3-4-3을 고려해서 안정적인 진형을 추천합니다.”
대칸은 이미 충분히 벨기에 대표 팀의 특징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김종일 수석 코치가 말한 부분도 고려하고 있었다.
‘벨기에는 피파 랭킹 27위로 묵직하고 단단한 조직력을 가진 선수들로 구성된 팀. 축구 매니저의 평균 능력치는 430대지만, 선수들의 평균 연령이 높고 스피드가 느리다는 단점이 있다.’
대칸은 여기서도 벨기에의 최대 빈틈인 평균 연령 31세와 느리다는 점을 노릴 생각이었다.
“그래서 플랫 4-4-2 진형으로 나가려고 합니다. 상황에 따라 4-4-1-1이나 4-5-1로 변경하면서 사이드를 노리려고 합니다.”
웨스트 릴링에서부터 갈고닦았던 플랫 4-4-2 진형을 이미 대표 팀에 장착시킨 대칸이었다. 그리고 김종일 수석 코치도 플랫 4-4-2의 유연성과 장점에 대해서는 충분히 이해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대칸은 선수 선발에 앞서 한 가지를 언급하였다.
“이번 선발 선수 명단에는 백형준 선수와 이가람 선수를 빼도록 하겠습니다.”
대칸이 두 선수를 제외한 이유는 아주 단순했다. 월드컵은 짧은 기간에 많은 경기가 열리는 일정! 두 에이스급 선수에게 문제가 생길 경우를 대비하기 위한 방법 마련도 필요했다.
“두 선수가 없는 경우를 대비하시겠다는 말씀이죠? 알겠습니다. 이번 경기에서는 두 선수가 출전 못 하는 경우를 고려해서 경기를 준비해 보시죠.”
대칸과 김종일 수석 코치는 두 선수를 제외하고 선발 명단을 작성하기 시작했다.
“일단 투 톱은 김요한(411/433)과 한이수(417/406)가 들어가겠습니다.”
드리블에 재능이 있는 빠른 스피드의 김요한과 볼 감각이 좋고 움직이는 범위가 넓은 한이수가 공격을 담당하게 되었다.
“좌우측 미드필더에는 임강민(422/446)과 강재섭(447/450)이 수시로 스위칭을 하면서 침투하며 벨기에 수비진을 흔들도록 하겠으며.”
사이드에서 집중력과 침착성 그리고 팀 전술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임강민과 개인기와 창조적인 침투가 가능한 강재섭이 때에 따라 자리를 스위칭을 하며 침투할 예정이었다.
“중앙은 곽하윤(433/471)과 강한울(447/464)이 책임지겠습니다.”
공격적인 움직임을 수시로 보여주며 중앙에서의 장악력이 좋은 곽하윤과 공격적인 움직임은 약간 부족하지만 가끔씩 좋은 패스를 보여주며 안정적인 플레이를 선호하는 강한울이 중앙을 든든하게 받쳐줄 예정이었다.
“수비 라인은 한번 많이 변경해 볼까요?”
그리고 대칸은 훈련에 잘 적응하고 있는 두 해외파 선수를 언급하였다.
“우선, 노인찬(469/461)과 박현우(457/461)의 센터백 라인을 한번 점검하겠습니다. 호흡이 어떤지? 가능성이 있을지 확인해야겠죠.”
빠르고 똑똑한 지능형 수비수이지만, 피지컬이 약간 부족한 노인찬에게 딱 좋은 파트너인 기술 수비가 빼어나서 레스터 시티에서 뛰고 있는 박현우가 센터백 파트너로 당첨되었다.
“좌우측 윙백에는 김유재(422/461) 선수와 이무열(460/452) 선수를 투입하여 밸런스가 맞는지 테스트해 보죠.”
경험이 많아서 노련한 수비형 윙백인 김유재 선수와 분데스리가에서도 인정받고 있는 밸런스형 선수이자 다재다능하며 약점이 없다고 평가받는 이무열을 테스트해 보기로 하였다.
여기에서 조혁(444/442) 주전 골키퍼를 집어넣자, 준수한 선발진이 완성되었다.
FW : 김요한(411/433)―한이수(417/406)
LMF : 임강민(422/446), RMF : 강재섭(447/450)
MF : 곽하윤(433/471)―강한울(447/464)
LWB : 김유재(422/461), RWB : 이무열(460/452)
DF : 노인찬(469/461)―박현우(457/461)
GK : 조혁(444/442)
“괜찮아 보이죠?”
대칸의 질문에 김종일 수석 코치가 웃으며 답했다.
“훌륭합니다. 일단은 안정적인 수비에 든든한 미드필더들, 여기에! 패기가 넘치는 공격진이라니, 벨기에를 상대로 정말 좋은 모습 기대가 되네요.”
그렇게 벨기에와의 평가전 선발 선수들이 결정되었다.
라커룸.
김종일 수석 코치가 입장해서는 말없이 내일 있는 벨기에와의 평가전 선발 선수들의 명단을 게시판에 붙였다.
“선발 명단 나왔어요!”
“그래?”
먼저 발견한 선수가 크게 소리치자, 다른 모든 선수들은 달려와서 선발 명단을 확인하였다.
“내 이름이 있다!”
“내일은 오래간만에 선발이네.”
“아~ 조금 쉬어야 하나?”
“아쉽네.”
선수들은 자신의 이름이 있으면 환호했고, 없으면 아쉬워했다.
해외파 선수들도 마찬가지로 확인하였다. 그런데, 선발에 해외파 선수들은 두 명밖에 없었다.
“아…….”
특히, 한상준은 살짝 충격이었다. 명색이 분데스리가에서 우승을 노리는 팀의 주요 선수였다. 이번 시즌 챔피언스 리그 조별 예선에서 탈락했지만, 챔피언스 리그 경험도 있었는데, 그런 그를 과감하게 선발 명단에서 뺐던 것이다. 게다가 교체 명단에도 없었다.
“이건 아니지 않나요?”
서소승이 입으로 내뱉은 말… 그 말에 공감하는 해외파 선수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