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BJ, 천재 감독이 되다-324화 (324/445)

324화

* * *

대칸의 집.

오래간만에 있는 휴가… 하지만 비시즌임에도 구단 일이 너무 많은 대칸은 오랜 기간 외지로 휴가를 나갈 수가 없었다. 그래서 이번 휴가 기간에는 특별한 곳을 가지 않고, 집에서 휴가를 지내면서 틈틈이 업무를 보기로 하였다. 그리고 레이첼도 대칸과 함께 집에서 같이 휴가를 보내기로 하였다.

두 사람이 집에서 보내는 휴가는 너무 단순했다. 맥주를 마시며 소파에서 조용히 TV를 보면서 쉬는 것, 정말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는 것, 한동안 너무 바빴던 그들에게 가장 필요한 휴식이자 휴가였다.

휴가 3일째, 이날도 집의 거실에 있는 소파에서 대칸은 레이첼의 허벅지를 베고서는 TV를 보고 있었다. 그런데, 대칸이 3일 만에 리모컨을 계속 조작하면서 처음으로 투덜거렸다.

“아. 넷X릭스… 이제는 볼 게 없네.”

“하~ 감독님! 3일째 TV만 보니까 그렇죠. 이제는 다른 것도 해보시죠?”

아무리 넷X릭스에 많은 콘텐츠가 있다지만, 3일 동안 계속해서 보니, 대칸이 좋아하는 것은 대부분 보았고, 지루해졌던 것이다.

그러던 대칸이 고개를 돌리자, 레이첼과 눈이 마주쳤다. 그리고 그녀의 아름다운 눈을 보면서 입을 열었다.

“레이첼, 근데…….”

“네? 뭘 말하고 싶으신 건가요? 감독님?”

궁금해하는 레이첼에게 대칸이 뜬금없이 말했다.

“레이첼? 우리… 결혼할래요?”

“…….”

뜬금없는 대칸의 말에 레이첼이 순간 굳어버렸다. 그런 레이첼에게 대칸은 계속해서 말을 하였다.

“생각해 봤는데, 레이첼과 결혼하면 좋겠더라고요. 우리 둘 다 잘 맞잖아요. 평소 생활하는 거나, 잠자리나, 취미나. 만난 지도 벌써 4년이 지났고, 결혼하면 좋을 듯?”

대칸의 말에 레이첼은 오래간만에 혈압이 약간 올라오는 느낌이 들었다.

“감독님, 프러포즈인 거죠?”

“프러포즈? 네, 프러포즈죠. 결혼하자고 하는 거니까.”

“아니, 어떤 남자가 프러포즈를 이런 식으로 하나요? 저는 절대! 이런! 프러포즈는 인정 못 해요! 당장 다시 준비하세요!!”

레이첼은 화를 내며 자리에서 일어나서 방에 들어가 버렸고, 대칸은 머리를 긁적거리며 혼잣말을 하였다.

“영국 여자에게도 제대로 프러포즈해야 하는 거구나.”

그러고는 휴대폰을 들어서 프러포즈하는 방법에 대해서 검색하였다.

3일 뒤 요크 시티의 레스토랑.

대칸은 요크 시티에 있는 대형 레스토랑을 대여해서 레이첼에게 정식으로 프러포즈를 하였다.

“레이첼, 나랑 결혼해 줄래요?”

엎드려 절받기지만, 대칸이 정식으로 반지를 내밀며 프러포즈를 하자, 레이첼은 얼굴에 홍조를 띠면서 말했다.

“흥… 원래라면 이런 프러포즈 거절하겠지만, 특별히 받아줄게요.”

그러고는 레이첼은 손을 대칸에게 주었고, 대칸은 그녀의 약지에 반지를 끼워주었다.

레이첼은 반지가 끼워진 손을 휴대폰으로 찍으면서 밝게 웃었다. 그리고 대칸은 만족해하는 그녀를 보면서 계속 식사를 하며 말했다.

“이번 프러포즈는 통과인 거죠?”

“네, 이 정도 성의면 만족해요.”

레이첼의 말에 대칸은 스테이크를 한 점 입에 넣고서는 다음 질문을 던졌다.

“그럼, 우리 이제는… 레이첼의 부모님부터 뵈러 가야 하나요?”

대칸의 말에 웃고 있던 레이첼의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졌다.

“…….”

그리고 잠시 두 사람 사이에 침묵이 흘렀는데, 생각을 정리한 레이첼이 먼저 말을 하였다.

“그런데, 꼭 부모님을 모시고 결혼해야 하나요? 그냥 우리 둘이서 하죠?”

“왜……?”

대칸의 왜라는 질문에 레이첼의 입이 다시 닫혀버렸다.

또 고민하던 그녀가 걱정스러운 말투로 결국 다시 입을 열었다.

“그게… 그러니까… 제가 솔직히 말할게요. 우리 부모님이 아주 고지식한 분들이라서… 아마 감독님이 찾아가면 여러 가지 부분에서 상처를 많이 받으실지도 몰라요.”

레이첼의 말에 대칸은 고개를 끄덕였다. 잉글랜드에서 생활한 지도 벌써 8년이 지났다. 그동안에 대칸은 감독이라는 직책이 있었음에도 보이지 않는 차별을 많이 받았었다.

레이첼의 부모가 동양인과 결혼을 반대하거나 싫어한다고 할 가능성이 충분히 있었다. 아니, 높았다.

“그래서…….”

레이첼의 난감해하는 모습에 대칸은 웃으면서 여유롭게 말했다.

“나는 걱정하지 말아요. 충분히 이해할 테니까요. 그리고 영원히 레이첼의 부모님을 보지 않을 것도 아니잖아요. 그러니까 보러 가요.”

대칸의 말에 레이첼은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2일 뒤.

대칸과 레이첼은 런던 근교에 있는 할로(Harlow) 지역에서도 약간 떨어진 지역에 있는 저택에 도착했다.

“헐…….”

저택을 보고서는 대칸의 입이 살짝 벌어졌다. 마치, 그림처럼 보이는 유럽풍의 거대한 저택이 거대한 고목들이 채우고 있는 잘 꾸며진 정원과 함께 그림처럼 서있었던 것이다.

3층이지만, 엄청난 규모의 주황색 벽돌로 만들어진 저택을 오래간만에 보면서 레이첼이 한숨을 쉬고서는 말했다.

“저희 집이에요.”

레이첼은 러셀 가문… 영국의 유서 깊은 백작 가문의 후손이었다.

대칸과 레이첼, 두 사람이 집으로 들어갔다.

“레이첼~ 오래간만이다!”

그녀의 어머니는 레이첼을 반갑게 맞이하였다. 그녀가 독립하고 나서 집에 방문한 것이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보수적인 아버지와 트러블이 많았던 레이첼은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 공식적으로 독립하였다. 그리고 아버지와 따로 연락한 적이 없었고, 어머니와는 가끔씩 전화 통화를 하거나, 밖에서 만났던 것이다.

그래서, 레이첼도 오래간만에 어머니와 만난 상황이었다.

“엄마, 잘 지냈어?”

두 사람은 반갑게 손을 잡고 안부를 주고받았다. 그리고 두 사람의 대화가 끝나자, 대칸이 인사를 하였다.

“안녕하세요. 대칸이라고 합니다.”

“아, 네…….”

대칸의 인사에 레이첼의 어머니는 어색하게 인사를 받아주었다.

그리고 그 순간.

“레이첼!”

대칸이 소리가 들린 방향으로 머리를 들어 올렸다. 2층 난간에는 백발의 근엄한 표정의 잉글랜드 남성이 자리 잡고 있었다.

“아버지.”

그가 바로 레이첼의 아버지 야곱 러셀이었다.

식당.

저녁 식사 시간이었기 때문에, 그들은 자연스럽게 같이 식사를 하게 되었다. 대칸은 레이첼과 함께 식당에 들어섰는데, 정말 영화에서 보던 긴 식탁이 놓여있었고, 레이첼과 함께 나란히 앉자, 레이첼의 아버지는 상석에 앉았고, 어머니도 자신의 자리에 앉았다.

어색한 침묵이 감도는 가운데… 중년의 메이드가 식당에 입장하였다.

“가주님, 오늘 저녁 식사는 말씀하신 대로 정찬을 준비했습니다.”

메이드의 말에 레이첼의 아버지인 야곱이 고개를 끄덕였고, 메이드들이 음식을 들고 입장하여서는 각자에게 음식을 서빙하기 시작했다.

달그닥… 달그닥…….

침묵하는 가운데, 포크와 숟가락이 식기와 부딪치는 소리만 식당을 메웠다. 그 소리도 대칸과 레이첼만 내는 소리였지, 야곱과 러셀 부인은 소리도 안 내고 조용히 식사를 하였다.

정적이 가득한 식사 시간, 레이첼의 아버지인 야곱이 들고 있던 나이프와 포크를 놓고서는 입을 열었다.

“결혼하겠다고?”

그의 질문에 레이첼도 들고 있던 포크를 놓고 대답했다.

“네, 저 대칸 감독님이랑 결혼하려고요.”

레이첼의 대답에 아버지는 대칸을 보고는 약간 비웃으며 말했다.

“혹시 저 녀석은 영어도 못하는 거니? 대답을 안 하네?”

그의 말에 레이첼이 흥분해서 일어나면서 외쳤다.

“아버지!!”

다행히 레이첼이 다음 말을 하기 전에 대칸이 손으로 그녀를 저지하고서는 직접 말을 하였다.

“아닙니다. 잠시 생각하느라 대답이 늦었습니다. 저는 레이첼과 결혼하고 싶어서 인사드리려고 온 것이 맞습니다.”

대칸의 말에 야곱이 고개를 끄덕이고, 다시 포크를 들었다. 그리고 레이첼도 다시 자리에 앉아서는 다시 식사를 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다시 조용해졌다. 그리고 어색하고 무거운 분위기에서 그들은 다시 식사를 시작하였다.

모든 식사가 종료되었다. 그리고 메이드가 디저트를 들고 들어오자, 이 타이밍에 레이첼의 아버지인 야곱이 다시 입을 열었다.

“어차피, 내가 반대해도 두 사람 결혼할 거지? 그러면 왜 찾아온 거지? 인사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어서?”

야곱의 질문에 이번에는 대칸이 바로 대답했다.

“제가 레이첼이랑 결혼해서, 레이첼의 부모님인 아버님이랑 얼굴 안 볼 것이 아니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인정받으려고 왔습니다.”

“인정? 인정이라… 무슨 인정?”

“사위로 인정받고 싶습니다.”

대칸의 사위라는 말에 그는 살짝 웃었다.

다시 디저트 타임 동안 조용했다. 그리고 이제는 마지막 음료인 커피가 나오자, 그것을 마시면서 야곱이 입을 열었다.

“사위로 인정이라… 자네, 그 의미가 어떤 것인지 아는가? 나에게는 딸 한 명밖에 없어.”

“…….”

“즉, 내 후계자나 다름없다는 거지.”

생각지도 못한 야곱의 말에 대칸이 살짝 당황하였다. 그럼에도 겉으로는 아무런 내색을 안 하며 그의 말을 계속 들었다.

“그런데, 내가 자네를 사위로… 가문의 후계자로 인정해 줄 것 같나? 근본도 없는 동양인을?”

야곱이 이런 식으로 말하자, 레이첼이 나섰다.

“아버지가 인정 안 해도 상관없어요. 이미 업계에서 최고의 축구 감독으로 인정받고 계신 분이라! 감독님도 후계자 자리에는 전혀 관심도 없고요. 그래도 인사는 드리자고 해서 여기에 온 것이고요.”

그리고 대칸도 말을 더했다.

“저는 후계자가 아닌 사위로 인정받고 싶습니다. 그러니, 어떻게 하면 인정해 주시겠습니까?”

대칸의 당당한 대답, 그 대답이 야곱의 마음을 조금 흔들었다. 무엇보다, 그도 다행히 잉글랜드 사람, 축구광이었기 때문이다.

“좋아. 자네의 자세는 약간 마음에 드는군. 그리고 후계자라면 완전 평가 방식이 다르겠지만, 사위로서 인정을 원한다면 나도 다시 고민해 볼 만하지. 하지만, 내가 동양인 사위를 인정하려면 평범해서는 안 되겠지?”

“그러면?”

대칸의 말에 야곱은 아주 재미있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자네가 감독으로 있는 팀이 웨스트 릴링이지? 그 팀이 아주 재미있더군. 그리고 이번에는 챔피언스 리그까지 진출했지?”

야곱의 질문에 대칸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야곱이 말을 이었다.

“적어도 트레블을 달성한 세계 최고의 감독쯤은 되어야, 동양인이라도 우리 가문의 사위가 될 만하지 않겠어?”

야곱의 말도 안 되는 말! 갑작스러운 트레블이라니! 레이첼이 화가 나서 외쳤다.

“아버지! 말도 안 되는 말이에요! 그냥 우승도 힘든 일인데? 트레블이라니요!”

하지만, 대칸이 이번에도 그녀를 말리면서 말했다.

“그러면, 제가 트레블을 달성하면 인정해 주시는 건가요?”

대칸의 패기 가득한 목소리에 레이첼의 아버지는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트레블을 달성하면 인정해 주지.”

“알겠습니다. 그럼, 다음 시즌을 마치면 다시 인사드리겠습니다.”

레이첼의 부모님께 인사드리기 위해 방문한 대칸은 엄청난 미션을 받아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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