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2화
【 25/26 시즌 정산 】
삐비비비~ 삐비비비~
아침에 울려 퍼지는 알람 소리에 레이첼이 일어난다. 그녀는 피곤한 기색이 있었지만, 정신을 빠르게 차렸고 그런 그녀의 옆에는 대칸이 아무것도 모르고 계속 자고 있었다.
레이첼은 대칸의 얼굴을 살짝 쓰다듬고서는 한번 웃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먼저, 욕실로 이동했다. 그녀는 밤에 흘렸던 땀으로 끈적끈적한 몸을 깨끗하게 씻어냈다.
그러고는 간단하게 아침을 준비하는데, 그녀의 휴대폰으로 문자가 하나 날아왔다.
- 레이첼 양, 대칸 감독님은 잘 지내고 계시죠?
아담의 안부 문자에 그녀가.
- 재활 잘 진행되고 있습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라고 답장을 보내자, 아담은 그녀에게 대칸을 부탁한다고 대답하였다.
플레이오프에서 패배하여 승격에 실패하고, 한동안 대칸은 술을 마시면서 슬픔을 달래었다. 그런데, 그가 마시는 술의 양이… 너무 많다 보니… 과음이 너무 심했다.
그런 대칸의 모습을 지켜보던 레이첼은 다른 방법으로 그의 슬픔을 달래야겠다고 결심했고! 그 다른 방법은 그녀가 할 수 있는 보살핌을 대칸에게 베풀고 있었다.
간신히 침대에서 일어난 대칸이 샤워를 하고 식탁에 앉자, 레이첼은 아침이라고 하기에는 늦은 점심에 가까운 식사를 그에게 제공하였다.
“자, 드세요.”
“또 캐서롤…….”
레이첼은 캐서롤을 준비하였다. 사슴 고기로 만든 이 찜 요리는, 그녀가 몇 번이나 대칸에게 대접해 준 영국의 보양식이었다.
“후후… 잘 드셔야죠.”
레이첼은 여전히 야릇한 미소로 대칸에게 말했고, 대칸은 살짝 힘이 풀린 표정으로 살기 위해서 캐서롤을 먹기 시작했다.
대칸과 레이첼이 같이 아침을 먹다가, 대칸이 잠시 휴대폰을 만져본다. 그리고 그 시간이 조금 길어지자…….
“감독님, 휴대폰 보지 마시죠? 저랑 같이 식사하시는 도중에 다른 일을 하세요?”
“아니… 잠시…….”
대칸이 변명하려 했지만, 레이첼은 그 변명을 들어주지 않았다. 그러고는 대칸의 식사가 거의 끝났다는 것을 확인하고서는 그가 다른 생각을 할 여유를 주지 않았다.
“여유가 있으시면… 저랑 좋은 시간 다시 가지셔야죠.”
그리고 레이첼이 대칸을 끌고 다시 침실로 가려고 하였다.
“아니… 아직 아침도 다 안 먹었는데…….”
하지만 레이첼은 대칸을 침실로 강제로 끌고 갔고, 그는 끌려가면서 외쳤다.
“이제~ 그만! 레이첼, 괜찮다니까요! 이제 그만!!”
그렇게 대칸은 레이첼의 특별한 보살핌에 플레이오프의 패배에서 오는 슬픔을 극복하고 있었다.
오후.
대칸은 일주일 만에 웨스트 릴링 구단에 출근하였다. 그가 감독실에 들어가자, 밀려있던 보고서가 책상에 가득 쌓여있었다.
“후… 살기 위해 일하자.”
대칸은 더 이상 레이첼의 집에 있다가는 말라 죽겠다는 생각에 회사로 출근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런 그의 얼굴에는 피곤함이 있었지만, 다행히 후련함도 있었다. 레이첼의 치료는 성공적이었다.
“대부분의 선수들은 휴가에 들어갔고… 부상 선수들은 재활 훈련 진행 중이고…….”
챔피언십 플레이오프가 끝나고, 모든 선수들에게 휴가가 주어졌다. 그리고 부상 선수들은 휴가 기간임에도 팀 닥터들과 함께 짧은 시간의 재활 훈련을 병행하고 있었다.
“흠… 이적해 달라는 요청이 벌써 들어와 있네.”
저번 시즌에 FA 계약을 했었던 선수들… 안 오블락, 루크 오니엔, 크리스 알비알은 승격하지 못할 경우에 선수의 의사에 따라 이적이 가능한 옵션을 가지고 있는 선수들이었다. 그래서 그 선수들의 에이전트들은 미리 웨스트 릴링 FC의 조건을 맞춰줄 팀과 컨택을 완료했었던 상태였다.
“서운하네…….”
한 시즌 동안 잘 보냈던 선수들이… 승격에 실패했다고 가겠다는 모습이… 대칸에게는 서운하고 치사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자신이 제안했던 계약 내용이니 어쩔 수가 없었다. 그리고 부상자 군단이니… 갈 테면 가라는 생각도 들었다.
“하… 딜런은 어쩔 수가 없지.”
딜런, 웨스트 릴링 FC의 핵심 선수인 딜런에 대한 선수 정보 조회와 이적 요청은 대칸도 예상했던 상황이다. 시즌 도중에도 그에 대한 잦은 문의가 있었기 때문이다.
“빌어먹을 바이아웃…….”
대칸이 처음 그를 설득하기 위해서 제안했던 바이아웃 200억(1,500만 유로)! 이 비용을 지불하고 데려가겠다는 팀이 세 개가 넘었다. 그래서 선택권은 이제 딜런에게 넘어갔다. 그의 에이전트가 바쁘게 팀들의 계약 조건을 보면서 이적 협상을 진행하고 있는 중이었다.
대칸이 급한 업무만 확인하였는데, 벌써 퇴근 시간이었다.
똑똑똑.
“네, 들어오세요.”
데이비드가 능글거리는… 웃음을 지으며 감독실로 들어왔다.
“형님, 퇴근 안 하시나요? 오늘 괜찮으시면, 축구 매니저 시즌 정산하시면서… 가볍게 맥주 한잔하시죠?”
그러고 보니, 축구 매니저의 시즌 종료 메시지와 정산도 확인하지 않았다.
“그래, 그러자. 너희 집에서 할 거지? 아담 단장님도 계시고?”
“네. 저희 집으로 가시죠.”
대칸은 자리에서 일어나서, 데이비드와 함께 퇴근했다.
퇴근해서, 아담의 집으로 이동하는 동안에 대칸은 레이첼과 간단하게 통화를 하였다.
“네… 네… 네… 네… 잔소리 그만하세요. 아니 그게 아니라… 네… 네… 알겠어요. 내일 데이트 까먹지 않을게요. 네… 네…….”
대칸은 한참 동안 ‘네’만 하다가 전화를 끊었고, 데이비드는 그게 궁금해서 물었다.
“형님은 회사에서는 그렇게 레이첼 씨를 괴롭히면서 나와서는 매일 질질 끌려다니시는 것 같아요.”
“그러게…….”
대칸도 속으로는… ‘그녀는 야수야! 그런데 내가 빠져나갈 수가 없어!’라고 외치고 있었지만, 그것을 데이비드에게 말할 수가 없었다.
대칸은 데이비드와 함께 아담의 집으로 들어갔고, 그 집은 여전했다.
“어머니는 여행 가서 집에 안 계세요.”
아담 부인은 연례행사로 시즌이 끝나면 친구들과 여행을 가서 부재중이었고.
“에드워드! 훈련 잘 갔다 왔냐?”
“어… 형…….”
거실에는 에드워드가 게임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의 눈빛이 멍했다.
“에드워드? 잘 지냈냐?”
“어? 감독님?”
멍때리면서 게임하던 에드워드는 대칸의 목소리에 반가워하다가…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
“…….”
그의 얼굴을 보자, 갑자기 에드워드도 플레이오프에서 패배했던 것이 생각난 것이다.
“…….”
대칸도 그런 에드워드의 심정을 이해했기 때문에… 그의 어깨를 한 번 두드리고는 2층 서재로 올라갔다.
2층 서재에는 아담이 먼저 자리 잡고 기다리고 있었다.
“감독님, 이제 괜찮아지셨나요?”
대칸은 속으로 레이첼의 특별한 치료에 대해서 말하고 싶었지만, 참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네, 이제는 괜찮습니다.”
아담도 그가 약간 말라 보이기는 했지만, 표정이 돌아와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대칸의 걱정은 다른 부분이었다.
“에드워드… 괜찮은가요? 아직 상태가 별로던데?”
“저도 처음에는 걱정이었지만, 괜찮을 겁니다. 점점 회복하고 있습니다.”
에드워드도 승격에 실패한 후유증이 심했었다. 재활 훈련을 하는 시간 외에는 멍한 상태였다. 아무래도 자신이 부족해서 승격을 못 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무리, 저희가 괜찮다고… 너의 책임이 아니라고 말해도… 에드워드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더라고요.”
데이비드의 말처럼, 강한 책임감을 느끼는 에드워드! 그것이 에이스의 숙명이었다.
“뭐, 에드워드는 잘 극복할 겁니다. 제 아들이지만, 저보다 대단한 녀석입니다. 믿어야죠.”
아담의 말처럼, 그를 믿고 기다려 줄 시간이 조금 필요할 뿐이었다.
세 사람은 이제 축구 매니저를 실행하여 정산을 시작하였다.
[25/26시즌에서 웨스트 릴링 FC가 챔피언십(2부 리그)에서 4위를 기록하였습니다.]
그리고…….
[프리미어 리그(1부 리그) 승격에 실패하셨습니다. 챔피언십(2부 리그)에 잔류합니다.]
‘아주… 그냥 아프네…….’
단순한 메시지에도 명치를 맞는 느낌이 드는 대칸이었다. 그리고…….
“…….”
“…….”
“…….”
대칸, 아담, 데이비드… 세 사람이 서로를 바라보았다.
“승격에 실패했다는 메시지 말고는 다른 게 없네요.”
“페널티도 없고… 업데이트도 없고…….”
“레벨이 안 올라서 스킬 포인트도 없네요.”
승격하지 못해서 레벨이 안 오를 것이라는 예상은 했었다. 그리고 축구 매니저 업데이트도 2년마다 있는 일이라 없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정말 모든 일이 없었다.
그래서 단 5분도 안 걸린 축구 매니저 시즌 정산이었다.
이렇게, 축구 매니저 정산이 끝나자, 세 사람은 무엇을 해야 할지 살짝 당황했다. 그러고 아담이 먼저 말을 꺼냈다.
“그럼, 모인 김에 우리 술이나 마시죠.”
“술이요?”
“네, 이번에는 시즌 뒤풀이도 안 했잖아요. 그러니, 우리가 웨스트 릴링 FC의 구단주주 단합회 느낌으로 한잔하죠.”
항상, 우승이나 승격 파티로 시즌을 마무리했는데, 이번에는 그것을 못 했으니, 가볍게 술자리나 가지자는 아담의 의도였다.
그리고 30분 후…….
“단장님!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대칸 감독님! 제가 지원을 잘하지 못해서 그런 겁니다. 더 죄송하죠!”
“형님! 아버지 그러지 마세요! 두 분 다 잘하셨어요! 한 시즌은 쉬어갈 수도 있다고요!”
세 사람은 순식간에 술에 취해서 서로 사과하고… 다독이고… 칭찬하고… 반복했다.
“아쉽지만!! 괜찮습니다! 다시 하죠!”
“제가, 다음 시즌에는 확실하게 지원하죠! 대칸 감독님에게 모든 것을 맡기지 않겠습니다!! 내가!! 하겠습니다!!”
“형님! 항상 성공만 할 수 없죠!! 우리 다시 도전합시다!”
“이제는 우리 구단 재정 문제도 없어요. 다 해결되었습니다!”
“그래도… 내가 감독인 내가… 잘했어야 했는데!”
“축구 매니저가 있다고는 해도… 4위도 정말 잘한 겁니다. 승격 팀이 바로 승격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에요!!”
“잔류만 해도 성공인 겁니다! 챔피언십이라고요!”
그렇게 세 사람은 다음 시즌을 기약하면서 의기투합하여 술을 미친 듯이 마셨다.
다음 날 아침, 약속한 데이트 시간이 다가오는데, 대칸이 전화를 받지 않자, 레이첼이 그의 집으로 찾아왔다.
삐삐삐삐삐삑.
그녀는 대칸 집 대문의 번호 키를 자연스럽게 누르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그녀는 거실에서 술 냄새를 풍기며 형편없는 모습으로 자고 있는 대칸을 바로 발견할 수 있었다.
“하…….”
레이첼의 입에서 절로 한숨이 나왔다. 그럼에도 그녀는 담요를 가져와서 대칸의 몸에 덮어주었다. 문득 이상하게 그의 모습이 안쓰러워 보였다. 아직은 승격에 실패한 후유증이 남아있어 보였다.
‘내가 더 잘해줘야지.’
라는 생각이 들었다.
대칸은 정오가 지나서야 정신을 차리고 일어났다.
“하… 레이첼…….”
대칸이 레이첼을 보고서도 아직 술기운에 정신을 못 차리자, 그녀는 준비해 두었던 꿀물을 주었다.
“자, 감독님이 좋아하시는 꿀물입니다.”
대칸이 숙취 해소용으로 좋아했기 때문에… 그녀가 준비했고, 대칸은 그 물을 받아 마셨다.
“음~ 하!”
따듯한 물로 샤워를 하고, 뜨거운 수프를 입에 넣자, 과음했던 대칸은 어느 정도 정신을 차릴 수가 있었다. 그리고 그런 그가 식사하는 모습을 레이첼은 고민하면서 지켜보았다.
‘화를 내야 하나… 아니면 달래줘야 하나…….’
자신과의 데이트 약속은 완전 까먹고서 숙취에 시달리는 모습은… 살짝 화가 나긴 했지만, 오죽하면 술을 그렇게 또 먹었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 이제 살 것 같네.”
대칸이 레이첼이 준비한 음식을 다 먹고서, 이제 조금 살 만해졌을 때… 레이첼은 공격에 들어갔다.
“어제 술을 아주 많이 드셨던데, 아직 간호가 필요하신가 봐요?”
“아니… 그게… 일부러 그런 게 아니라.”
대칸이 이유를 설명하려고 했지만, 레이첼은 듣지 않았다.
“오늘 데이트하기로 했던 약속도 잊으시고…….”
“그게 아니라. 아담 단장님이 가볍게 한잔을 하자고, 직장… 업무였어.”
레이첼이 가장 꺼려 하는 아담의 이름을 팔려고 했지만, 전혀! 소용이 없었다.
“감독님이 마음대로 데이트 취소하셨으니, 지금부터는 제 마음대로 하겠습니다.”
레이첼이 공격적인 분위기로 대칸에게 다가왔다. 그러고는 그를 강제로 바닥에 눕힌다.
“레이첼, 그게 아니라…….”
그리고 그가 입고 있던 샤워 가운을 벗기고 그녀는 자신이 입고 있던 옷을 벗었다. 그리고 그의 위에 올라탔다.
“어차피, 데이트도 망쳤으니, 치료나, 더 해드리죠. 아주 확실하게!”
“아니! 정말! 잠시! 잠깐! 지금 나 쓰러지기 직전이라고요!”
하지만, 레이첼은 남자의 본능을 이용했고, 두 사람은 뜨거운 시간을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