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8화
【 프리 시즌 - 3 】
웨스트 릴링 FC가 챔피언십까지 승격하자, 메인 스폰서인 CX는 기쁨과 동시에 고민에 빠졌다.
CX 기획의 간부 회의.
CX 기획 사장이 주재하는 주요 안건 회의로 기업의 방향을 결정하는 중요한 회의였다. 그리고 이날, 회의의 주요 안건은 웨스트 릴링 FC의 메인 스폰서 건이었다.
이윽고 전년도 계약을 책임졌던 박대호 이사가 아주 당당한 표정으로 회의를 시작하였다.
“전년도 우리가 메인 스폰서로 투자한 웨스트 릴링 FC는 챔피언십으로 승격했습니다.”
박대호 전무는 웨스트 릴링 FC의 승격 기사와 함께, 그로 인한 모기업 홍보 효과를 분석한 보고 자료를 보여주었다.
“자, 아주 멋진 그래프입니다. 가시적인 홍보 효과만 10% 상승했습니다. 여기에… 인터넷 밈으로 탄생한 CX 식품의 비X고는 외국 시장 개척에 추가적으로 긍정적인 효과가 더해졌을 거라 예상됩니다.”
박대호 전무는 아주 야심 찬 표정으로 말했다.
“작년에 했던 3년 60억(450만 유로) 계약! 모기업의 체면을 챙겨주는 것만이 아니었습니다. CX 식품의 홍보까지! 아주 좋은 계약이었던 거죠.”
그의 말에 회의에 참석한 모든 사람들이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박대호 전무의 계획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그래서, 저는 여기서 웨스트 릴링 FC와의 5년 총액 150억(1,125만 유로)이 넘는 새로운 스폰서 계약을 제안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가 회의실에 폭탄을 던졌다.
사실, 작년 CX와 웨스트 릴링 FC와의 계약도 무리수가 있었던 계약이다. 3년 동안 총액 60억(450만 유로)에 계약금 30억에 매년 10억씩 지급! 아무리 그 당시 여론이 CX에게 안 좋았고, 웨스트 릴링 FC에 한국인 감독이 있으며, 에드워드라는 차세대 영국 국가 대표 선수가 있다고는 해도!
리그 1(3부 리그) 팀에게 3년 60억(450만 유로)은 경제적인 논리로 따지면 과한 투자 금액이었다.
그래서 박대호 전무가 계약을 체결하고 오자, 간부진들에게 비판을 받으면서도 최연소 전무였던 그가 망하게 되는 첫 포석이라고 다들 속으로 좋아했던 것이 사실이었다.
그런데, 웨스트 릴링 FC가 승격을 하자, 박대호 전무의 가치는 더욱 높아졌고, CX 그룹의 두뇌라고 불리는 그룹 전략 기획 팀에서도 주시할 정도로 재평가를 받을 수 있었던 기회였다.
그런, 그가! 이제는 150억(1,125만 유로)이라는… CX 기획의 1년 예산 절반이 넘는 금액을 웨스트 릴링 FC에 투자하자고 제안하는 것이다.
박대호 전무는 간부들… 아니, CX 기획 사장을 설득하기 위해 입을 열심히 움직였다.
“웨스트 릴링 FC는 상업적인 가치가 아주 높은 구단입니다. 한국인 감독, 한국인 수석 코치, 비록 임대가 있긴 하지만 희망 FC 출신의 한국인 노인찬 선수, 에드워드라는 영국 차세대 국가 대표!”
그는 목이 마른지 물을 한 모금 마시고 말을 이었다.
“대표적인 예만 들었지만, 그 외에도 6부 리그에서 챔피언십(2부 리그)까지 연속 승격 등! 화제성이 너무나 높은 팀입니다.”
그러고는 사장의 눈치를 살피면서도 최대한 당당하게 주장했다.
“웨스트 릴링 FC가 챔피언십 팀이라는 이유만으로도 투자할 가치가 있습니다. 만약, 프리미어 리그 승격만 한다면 5년 150억(1,125만 유로) 스폰서 비용은 헐값입니다.”
프리미어 리그 팀의 메인 스폰서 1년 비용이 보통 100억(750만 유로)이 넘었다. 거기에 상위권 팀들은 200억(1,500만 유로)이 넘는 것이 현실이었다. 그러다 보니, 챔피언십 팀들의 스폰서들은 다년 장기 계약을 통해 혹시나… 모를 승격 대박을 노리는 것도 사실이었다.
“그래서! 저는 지금 남은 2년의 계약 기간을 접고 새로운 5년 재계약을 제안해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합니다. 지금의 장기 재계약은 상상하기 힘든 이득을 가져올 것입니다.”
박대호 전무의 제안에 회의실은 여러 가지 의견으로 시끄러워졌다.
“하긴, 웨스트 릴링 FC의 특수성과 홍보성을 생각하면, 프리미어 리그에 못 올라가도 챔피언십에 잔류만 확실하다면 큰 손해는 아니겠군요.”
“과연 웨스트 릴링 FC가 프리미어 리그로 승격을 할 수 있을까요?”
“하지만 리그 1과 챔피언십은 완전 다른 레벨로 알고 있습니다. 승격 팀이 다음 해에 강등하는 경우도 자주 있고요.”
“웨스트 릴링 FC가 만약 강등이라도 된다면 엄청난 손해 아닌가요?”
“경제적으로 생각하면 2년 계약 기간을 보내고 재계약을 하는 것이 효율적입니다.”
“이미 리그 1에서 챔피언십으로 승격해서, 작년에 했던 3년 계약만으로도 충분히 이득인 상황인데… 도박을 할 필요가 있나요?”
이런저런 의견들이 난무하는 가운데, 조용히 있던 CX 기획 사장이 드디어 입을 열었다.
“박 전무, 책임질 수 있어? 확실하냐고?”
사장의 말에 박대호 전무는 과감하게 말했다.
“네, 저는 웨스트 릴링 FC가 3년 이내 프리미어 리그로 승격할 것이라 예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번 계약이 우리 CX 그룹의 위상을 올려줄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그러자, 사장이 손으로 책상을 탁 치며 말했다.
“좋아! 그럼 해봐. 그룹 내 최연소 전무라는 자네의 도박이 어떻게 될지 보자고.”
그렇게 웨스트 릴링 FC의 대규모 스폰서 계약 안건이 통과했다.
* * *
대칸의 집.
대칸이 아침에 일어나자, 이제는 당연한 듯이 그의 옆에는…….
“음냐… 음… 음…….”
레이첼이 누워있었다.
대칸과 레이첼은 사귀기 시작하자, 무서울 정도로 타올랐다. 그들은 퇴근 후에 거의 같이 딱 달라붙어 있었고, 눈이 제대로 마주치면 침대로 직행하여 뜨겁게 불타올랐다.
그러다 보니, 아침에 일어나면 대칸의 옆에 항상 레이첼이 있었다.
대칸은 두 사람이 같이 먹을 아침을 준비하기 위해 자신의 집 부엌으로 나갔다. 그리고 이제는 어느 정도 항상 채워진 냉장고에서 샐러드 야채를 꺼내서 샐러드를 만들었고, 소시지를 약한 불에 구웠다. 마지막으로 찬장에서 호밀빵까지 꺼내었다.
“완성!”
대칸이 만족스럽게 완성된 아침 식사를 접시에 담았고, 레이첼이 좋아하는 저지방 우유까지 준비하였다.
그때 타이밍 좋게 레이첼이 욕실에서 나왔다. 아침 샤워를 마친 그녀는 샤워 가운을 입고 식탁에 앉았다.
“오~ 감독님, 이제는 사람답게 아침을 준비하네요?”
레이첼의 칭찬에 대칸이 당당하게 대답했다.
“예전에는 재료가 없어서 그렇지… 내가 재료만 있으면 제대로 아침도 한다고.”
그러고서는 두 사람은 같이 아침을 먹기 시작했다.
아침 식사의 대화 주제는… 역시나 한국 출장 일정이었다.
“오늘 오후에 출국하시는 거죠?”
“응, 오후 세 시에 요크 시티에서 출발해서 런던 환승, 서울까지 열다섯 시간 일정입니다.”
대칸의 한숨에 레이첼은 격려를 하였다.
“그래도, 간만에 방문하는 고향이니, 잘 쉬다 오세요.”
“쉬기는… 단 2일 만에 스폰서 미팅에 업무 미팅만 네 건이 넘는데, 어떻게 쉬어요?”
대칸은 호밀빵을 한 입 베어 물고서는 말을 이었다.
“올해도 한국 친선경기가 있을 것 같은데… 그때 한국도 돌아봐야죠.”
“그럼, 그때 저한테도 한국 소개해 주실 거죠?”
올해는 레이첼도 한국 친선경기 일정에 참여할 예정이었다.
“네, 대신에!”
“대신에?”
대칸은 약간 사악한 표정으로 말했다.
“제가 이번에 한국에 갔다가 돌아올 때까지, 협상 가능한 FA 선수 리스트 재정리해 놔야 합니다. 유럽 선수들까지는 무조건! 그리고 챔피언십 구단들 이적 상황이나 소문도 체크해야 하구요. 특히, 셰필드 웬즈데이 동향 좀 알아보시고요.”
“하…….”
과중한 업무… 레이첼은 불만이 가득한 얼굴로 반박했지만.
“솔직히… 감독님, 항상 말도 안 되는 업무 주는 거 알죠? 그것도 너무나 당당하고 뻔뻔하게? 그 시간에 그 일들을 어떻게 다 해요!”
그래도, 대칸의 태도는 변하지 않았다.
“공은 공이고 사는 사죠. 이제, 레이첼 씨와 제가 사귀는 사이지만… 일은 예전처럼 시킬 겁니다.”
대칸의 사악한 표정에… 레이첼의 표정에 약간 분노가 어렸다.
“그래요? 정말요?”
“네.”
그러자, 레이첼의 표정도 사악… 아니 야릇해졌다.
“그럼, 제가 공적으로 받은 고통만큼 사적으로는 괴롭혀 드려야겠네요?”
“에?”
레이첼의 말에 당황한 대칸, 그리고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서… 입고 있던 샤워 가운을 바로 벗었다.
털썩.
“어… 어…….”
당황한 대칸의 표정에 레이첼이 만족하였다.
“그럼 어디 한번 제가 원할 때까지 해볼까요? 감독님 괴롭히기!”
“잠시… 잠시!! 어제 그렇게 했는데!!”
대칸의 절규에도 레이첼은 그에게 한 마리 야수처럼 달려들었다.
* * *
다음 날.
인천공항에는 웨스트 릴링 운영의 핵심인 대칸과 데이비드 그리고 윌리엄 운영 팀장이 도착하였다. 그들이 입국장에 모습을 나타내자,
“여기입니다! 여기!”
웨스트 릴링 FC의 접촉 라인이자, 실무자인 CX 기획의 강 팀장이 그들을 맞이하기 위해서 기다리고 있었다.
강 팀장은 그들을 재빠르게 인솔해서 움직였다.
“자, 여러분들을 모시기 위해 저희가 아주 특별한 리무진을 준비했습니다.”
“오, 감사합니다.”
그러고는 이제는 당연한 웨스트 릴링 FC의 승격을 축하하였다.
“역시! 저는 믿었습니다. 웨스트 릴링 FC의 승격을! 6부 리그부터 챔피언십까지 신화의 웨스트 릴링!! 최고입니다! 정말 대단합니다!”
떠들썩하게 강 팀장은 계속해서 축하했고, 대칸을 비롯한 일행은 웃으면서 그 축하를 즐겼다.
공항 출구에는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아주 화려하고 길이가 긴 검정색 리무진이 있었다.
“자, 타시죠. 안에 박대호 전무님도 있으십니다.”
일행이 리무진에 타자, 웨스트 릴링 FC와 스폰서 계약을 책임졌던 박대호 전무가 그들을 맞이하였다.
“다들 한국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그렇게 모든 사람이 탑승하자, 호화로운 리무진이 부드럽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리무진을 타고 그들은 CX 기획으로 이동하였다. 그동안에 박 전무는 리무진에 준비되어 있는 샴페인을 건네고, 가벼운 안주를 먹으며 이런저런 말을 걸었다.
“모두! 반갑습니다. 작년에 엄청난 일을 해주셨더군요. 과감하게 투자를 결정한 저에게도 엄청난 선물이었습니다. 정말 감사드립니다.”
데이비드가 웃으면서 덕담을 돌려주었다.
“아닙니다. 저희가 스폰해 드린 것에 감사드리죠.”
그리고 박 전무가 입에 발린 말로 웨스트 릴링 FC 사람들의 마음을 녹이고 있을 때, 대칸은 엄청나게 지친 표정으로 그저… 시체처럼… 의자에 기대있을 뿐이었다.
“아니, 대칸 감독님? 왜 그렇게 힘이 없으세요? 긴 시간 동안 비행기를 타시느라 힘드셨어요?”
박 전무가 질문하자, 대칸은 그저 웃었고… 데이비드가 혼잣말처럼 살짝 대답했다.
“요즘 한창 좋을 때라서…….”
“네?”
박 전무가 말을 제대로 못 들어서 다시 묻자,
“대칸 감독님 비행 때문에 힘드신가 보네요.”
그렇게 안부 인사를 덮었다.
리무진은 CX 기획에 도착했고, 그들은 회의실로 이동했다. 그곳에는 CX 기획의 사장이 먼저 대기하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CX 기획 사장인 이우정입니다.”
생각지도 못한 거물의 등장에도 데이비드는 천연덕스럽게 그와 악수를 하였다.
“웨스트 릴링 FC의 구단주인 데이비드입니다.”
이우정 사장은 간단하게 자신의 말만 하였다.
“저희는 웨스트 릴링 FC와의 스폰서 계약을 아주 긍정적으로 생각합니다. 그래서 박 전무에게 전권을 위임한 상태이고요. 좋은 계약 하시길 바랍니다.”
“네, 저희도 좋은 관계 계속 이어가기를 바랍니다.”
가볍게 차를 한잔 마시면서 이야기를 마친 이우정 사장이 떠나고, 본격적인 협상이 시작되었다.
박대호 전무는 시간을 끌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었다.
“바로 본론을 이야기하시죠. 강 부장님, 계약서 가져오세요.”
웨스트 릴링 FC 스폰 건이 성공하여 팀장에서 부장으로 승진한 강 부장이 준비한 계약서를 바로 꺼내었다.
“저희의 제안입니다.”
계약서에는 큼지막하게 150억(1,125만 유로)이라는 금액이 써져있었다.
“기존의 남은 계약 기간 2년을 포기하고, 150억(1,125만 유로)에 5년 계약을 새로 맺었으면 합니다.”
어느 정도 상향은 예상했지만, 생각지도 못한 150억(1,125만 유로)이라는 금액에 데이비드는 표정을 감춰야 한다는 것도 까먹고 입을 쩍 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