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5화
* * *
바버 에이전시.
바버 에이전시는 영국 축구 선수들을 주로 관리하는 회사이다. 그리고 무려 100년이 넘는 전통을 가지고 있고 영국 선수들을 관리하다 보니, 대부분의 직원들도 영국 사람이었다. 그래서 약간 고지식하고 고집스러운 에이전트들이 많은 회사였다.
후터스는 바버 에이전시에 속해있는 에이전트였다. 그는 에이전시의 명성을 이용하여 지독하게 수익만 추구하는 에이전트였는데… 그러다 보니 선수들과 구단을 좀먹는 암적인 존재였다.
문제는… 그런 그에게 웨스트 릴링 FC가 좋은 먹잇감으로 눈에 들어왔다는 거였다.
“안녕하세요. 버로스 킴입니다.”
버로스 킴(27살, 미드필더, 350/354)
기술 122/123, 정신 129/131, 신체 99/100
‘오, 좋아!’
버로스 킴은 카데나의 리포트보다 아주 약간은 더 좋은 선수였다. 스킬은 없지만 350이라는 무난한 능력치는 리그 1에서 미드필더 로테이션 멤버이자 게리의 백업으로는 충분했다.
특히 버로스는 협상 테이블에서 웨스트 릴링 FC로 오는 것에 적극적이었다.
“제가 리그 2에서 오랫동안 뛰었지만, 리그 1에서 경쟁력이 없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웨스트 릴링 FC에서만 불러주신다면 열심히 뛰도록 하겠습니다.”
뭐… 살짝 입에 발린 소리긴 했지만, 마음가짐도 좋았다. 그래서 대칸은 결론적으로 FA 영입 선수로 괜찮다는 판단을 내렸다.
그렇게 대칸이 조심스럽게 레이첼에게 자신의 의견을 전달하자 그녀는 그 자리에서 바로 계약서를 꺼내서 만들기 시작했다.
“주급은 이 정도… 수당도 이 정도?”
레이첼의 제안에 버로스는 적극적으로 의견을 주고받았고, 30분 만에 절충안이 나왔다.
“계약금 5천만 원에 주급 350만 원! 그리고 출전 수당, 득점 수당, 교체 수당 등… 웬만한 수당은 다 챙겨드리죠.”
아주 좋은 분위기에 적당한 수준의 계약안이 만들어졌다.
“좋습니다.”
버로스도 만족스럽게 계약안을 살펴보았다. 하지만 그는 영세한 축구 선수라 고정 에이전트가 없는 상태, 계약서에 사인하기에는 두려웠다.
“제가 변호사님과 이 계약서를 상담하고 계약을 해도 될까요?”
많은 아마추어급 선수나 영세한 프로 선수에게는 이런 경우가 자주 발생했기 때문에 레이첼은 이해하며 설명했다.
“네, 당연히 괜찮습니다. 3일 안에만 답을 주세요.”
레이첼의 말에 버로스는 직접 계약서를 챙겨서 일어나며 말했다.
“알겠습니다. 제가 검토하고 다시 구단에 방문하도록 하겠습니다.”
버로스가 웨스트 릴링 FC와의 협의를 끝내고, 곧 있으면 계약한다는 기쁨에 가득 차서 건물을 나섰다.
그런 그에게 멀리서 눈치를 보고 있었던 한 사람이 조심스럽게 다가왔다.
“안녕하세요. 버로스 킴 선수시죠? 저는 후터스입니다. 바버 에이전시의 에이전트죠.”
후터스, 그는 에이전트가 없는 FA 선수가 웨스트 릴링 FC의 사무실을 방문하기를 며칠 잠복하면서 기다렸던 것이다.
“주급 얼마나 받으셨나요?”
“네?”
당황해하는 버로스에게 후터스는 자신이 에이전트라는 것을 증명하듯이 명함을 건네면서 말했다.
“주급… 기껏해야 300? 400? 제대로 받고 싶으시죠? 제가 협상을 도와드리겠습니다. 저랑 계약하시죠.”
후터스의 달콤한 말에 버로스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3일 뒤.
다시 웨스트 릴링 FC로 방문한 버로스는 후터스를 새로운 에이전트라고 대동하고 들어왔다.
“안녕하세요! 버로스 선수의 새로운 에이전트인 후터스입니다.”
거의 계약이 확정되었다고 판단되어… 혼자 있었던 레이첼은 살짝 당황하였다. 그런데 그런 레이첼을 격하게 뒤흔드는 후터스였다.
“제가 생각하기에 저희 고객님께서는 형편없는 계약금과 주급을 제안받으셨습니다.”
“그럼 얼마나 원하시나요?”
“계약금 9천만 원에 주급 700만 원, 그리고 기존 옵션을 원합니다.”
급격하게 상승한 계약금과 주급, 레이첼은 바로 고개를 저었다.
“그 금액은 절대로 드릴 수가 없습니다.”
“그럼 이 금액은 어떠십니까?”
후터스는 계속해서 흥정에 들어갔고, 레이첼이 금액을 내린다고 내렸지만…….
“그럼 최종안으로 계약금 7천만 원에 주급 500만 원은 어떻습니까?”
“…….”
기존 계약에서 1.4배 정도 상승한 계약이 되어버렸다.
레이첼은 고민하다가 대칸에게 전화하려 했지만, 그때 후터스가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말했다.
“지금 저희 고객님을 앞에 두고 기다리게 하시는 겁니까? 저희 버로스 선수를 원하는 팀이 얼마나 많은지 아십니까?”
후터스가 버로스 선수를 데리고 나가려고 하자, 당황한 레이첼이 말했다.
“그 조건으로 계약하시죠.”
그렇게 버로스 킴은 계약금 7천만 원에 주급 500만 원에 계약을 체결했다.
대칸이 복귀하고, 레이첼에게 버로스 킴을 1.4배나 되는 주급과 계약금을 주고 계약했다고 보고했다.
“흠…….”
대칸은 안타까운 목소리를 냈다. 물론 그 정도 금액을 못 줄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비싼 값을 줄 필요가 없는 선수였다.
대칸이 아쉬운 표정을 짓자, 레이첼은 변명을 내뱉었다.
“이번 시즌에 FA 선수 영입을 못 해서 아쉬웠던 느낌에… 보낼 수가 없었습니다.”
대칸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뭐, 벌써 계약을 체결했으니, 어쩔 수 없죠. 하지만… 앞으로는 그냥 계약을 하지 않아도 되니, 이런 경우에는 사인하지 마세요.”
대칸이 평소에 레이첼로부터 가지고 있던 신뢰가 있었기 때문에 이번 사태는 간단하게 종료하였다.
문제는 이후에도 후터스의 빈대 짓은 계속되었다는 것이다.
“아이쿠! 반갑습니다. 이번에도 에이전트로 온 후터스입니다.”
재수 없는 후터스의 말… 웨스트 릴링 FC가 접촉했던 리그 2의 FA 선수 다섯 명 중에서 무려 네 명의 선수에게 달라붙었던 것이다.
대칸과 레이첼이 접선하는 장소를 바꿔가면서 선수들과 FA 계약을 추진하였지만, 후터스는 사설탐정까지 고용해서는 그들을 따라다니면서 에이전트가 없는 선수들에게 달라붙었다.
아주 지독한 기생충처럼…….
아담과 대칸, 레이첼은 결국 비상 회의에 들어갔다.
“최초에 계약금 4천만 원에 주급 300만 원으로 협의했던 도밍고 그라우 선수입니다.”
도밍고 그라우(31살, 수비수, 341/356).
341의 능력치를 가진 서른한 살의 무난한 백업 수비수이다. 그런데?
“새롭게 요구하는 금액은 계약금 8천에 주급 600만 원입니다.”
일단 두 배부터 지르고 보는 후터스였다.
“두 번째로 계약금 5천만 원에 주급 400만 원으로 협의했던 지오반니 크론 선수입니다.”
지오반니 크론(29살, 미드필더, 348/351).
역시나, 348의 무난한 능력치를 가진 미드필더 선수였다.
“새롭게 요구하는 금액은 역시 두 배인가요?”
아담의 질문에 레이첼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일단은 제대로 된 협상을 하지 않았지만, 요구 금액은 두 배입니다.”
아담은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세 번째로 카일 스미스 선수는 계약금 2,000만 원에 주급 550만 원이 첫 제안이었습니다.”
카일 스미스(33살, 윙-공격수-공미, 341/351).
“근데? 이 선수… 리그 1에 승격하는 우리 팀에서 꼭 뛰고 싶다고 하지 않았던가요?”
“네, 맞습니다. 그런데… 아무래도 후터스 에이전트가 무슨 바람을 넣었는지…….”
돈을 많이 받게 해주겠다는 감언이설에 넘어간 카일 스미스 선수였다.
“무난한 선수네요. 윙과 공격수, 공미까지 소화 가능한 무난한 선수… 그런데 요구액이?”
“계약금 7천만 원에 주급 800만 원입니다.”
말도 안 되는 요구 사항이 계속되자, 대칸의 머리에는 화가 끓어오르는 느낌이었다.
“마지막 크리스토퍼 모스 선수입니다.”
크리스토퍼 모스(26살, 미드필더, 338/349).
“이 선수의 계약안은 계약금 3천만 원에 주급 300만 원이었습니다.”
능력치 330대인 선수에게 딱 맞는 계약 수준이었다.
이번에는 아담이 물었다.
“그래서? 얼마나 달라고 하던가요?”
“계약금 5천만 원에 주급 500만 원입니다.”
역시나 말도 안 되는 제안… 웨스트 릴링 FC를 상대로 제대로 호구를 잡으려는 후터스였다.
네 명의 선수를 보면서 대칸과 아담의 얼굴이 찌그러지자… 레이첼은 걱정스러운 말을 하였다.
“우리 팀 현재 선수층이 너무 얇은 상태입니다. FA 영입을 통해서 선수단을 강화시키는 것이…….”
“그래서? 그래서? 저 계약을 받아들이자고요?”
아담의 짜증스러운 질문에 레이첼이 살짝 당황했지만 준비한 대답을 이어갔다.
“협상을 아직 하지 않은 상황입니다. 협상을 하면 가격을 20프로에서 30프로는 내릴 수…….”
하지만 대칸의 고개는 단호하게 돌아갔다.
“그냥 다 때려치우죠.”
“네?”
당황한 목소리의 레이첼에게 대칸은 단호하게 선언했다.
“현재 계약 고려 중인 FA 네 명의 선수들! 모두 포기합니다.”
“……!!”
대칸의 선언에 레이첼의 입이 다물어졌다. 힘들게… 최대한 팀에 맞는 FA 선수들을 찾아냈는데… 이렇게 포기하다니?
“저런 기생충 같은 에이전트에게 돈 때문에 유혹당한 선수? 필요 없습니다! 그렇다고 능력치가 정말 좋거나, 어리거나, 잠재력이 좋지도 않은 선수를… 마음 같아서는 버로스 선수도 방출하고 싶은 심정이네요.”
대칸은 자신의 신체 능력을 증가시켜 주는 스킬과 시너지가 맞아서 선택한 싼값에 쓰는 선수들이었지… 절대로 아쉽다고 생각이 되는 선수들이 아니었다.
“하지만…….”
레이첼이 걱정스럽게 말을 더하려 했지만, 아담도 말이 붙었다.
“네, 그냥 이번 FA 시장은 철수하죠! 저런 쓰레기 같은 에이전트 새끼가 붙은 선수라면 운영진의 입장에서도 골치만 아플 겁니다.”
“…….”
그렇게 웨스트 릴링 FC는 FA 시장에서 손을 털고 나왔다.
그렇게 웨스트 릴링 FC가 손을 털고 나오자, FA 선수들의 불만은 후터스에게 쏟아졌다.
“돈을 더 받게 해준다면서요! 웨스트 릴링 FC에서 연락하지 말라던데요!!”
“젠장 망했어! 리그 1팀에서 뛰고 싶었는데!!”
“어떻게 할 겁니까? 네!!”
“망한 거죠……? 해결책은 있으신가요?”
선수들의 항의에 후터스는 당황하다가… 오히려 적반하장으로 대응하였다.
“어라… 웨스트 릴링 FC가 이럴 리가 없는데… 근데! 계약하다가 엎어질 수도 있는 노릇이지! 왜 그렇게 따지세요! 돈 더 받아주려다가 실패할 수도 있지! 다른 팀에게 영입 요청을 못 받는 거는 당신의 능력이! 부족한 거요!”
후터스의 이런 무책임한 행동에… 선수들은 다 같이 그를 고소하였고, 후터스와 FA 선수들 간의 진흙탕 공방전이 계속되었다.
그리고 아담은…….
“안녕하세요?”
- 네, 안녕하세요. 바버 에이전시 대표 바버 론입니다.
아담은 지인의 도움을 받아서 바버 에이전시의 대표와 통화를 하였다. 그리고 바로 화를 풀었다.
“저는 웨스트 릴링 FC의 단장 아담입니다.”
- 네, 이번에 리그 1으로 승격하신 팀이죠? 축하드립니다.
“뭐… 댁한테 축하를 받을 필요는 없구요. 앞으로 당신 회사와 계약한 선수가 저희 팀과 계약할 일은 없을 겁니다.”
아담의 막무가내 선언에… 바버 론 대표는 당황했지만, 차분하게 상황을 물어보았다.
- 무슨 문제가 있으십니까?
그러자 아담은 바버 에이전시 소속인 후터스가 한 행동에 대해서 말하였다.
- 허…….
후터스의 행동… 양아치 짓이긴 하지만 불법은 아닌 행동이다. 그래도 아담이라는 거물급 지역 유지와 틀어지는 것은 좋지 못한 판단이었다.
- 제가 아담 단장님이 걱정하시는 부분을 해결해 드리겠습니다.
“아니요, 해결할 필요 없습니다.”
- 해결이라는 단어를 잘못 썼네요. 그 양아치 같은 에이전트를 잘라내겠습니다. 바로 조치하죠.
그리고 설명을 덧붙였다.
- 저희가 아무리 돈을 중시하는 에이전시라고는 하지만, 그런 쓰레기 짓거리를 하는 에이전트는 쳐내야죠. 저희 회사의 이미지를 위해서라도 처리하겠습니다.
그때서야 아담이 약간 화가 풀린 어조로 말했다.
“그러셔야죠. 그리고 지금 그 쓰레기 에이전트가 선수들과도 소송 중인 것으로 아는데… 회사 법무진은 철수시키셔야죠?”
- 네! 바로 그러겠습니다.
그렇게 후터스는 자신을 보호해 주던 에이전시에서 버림받았고, 선수들과의 소송에서도 패배하여… 에이전트 자격증이 말소되고 재산 한 푼 없는 말 그대로 거지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