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화
CX 사장단 회의.
CX 그룹의 회장은 회의 시작부터 CX 기획 사장을 문책하고 있었다.
“이거 안 보여? 못 봤어? 그럼 보라고, 똑바로 보라고!”
회장이 가져온 보고서에는 인터넷에서 CX가 멍청하다는 반응이 대부분이었다. 웨스트 릴링 FC라는 6부 리그부터 챔피언십(2부 리그)까지 승격 직행한! 급성장하는 팀의 메인 스폰서를 포기하는 행동이 멍청하다는 인터넷의 반응!
CX 그룹 회장은 그런 보고서의 내용에 대해서 물었다.
“왜 이렇게 화제성이 높은 팀! 최초의 한국인 감독, 최초의 BJ 출신 감독이 있는, 그리고 영국 최고의 유망주가 있는 팀의 스폰서를 잘하다가 멈췄냐고? 응? 왜 그렇게 했는지? 이유라도 말해보라고!”
회장의 질책에 CX 기획의 사장은 ‘죄송합니다.’라는 말만 계속하였다. 솔직히 자신이 직접 처리한 일이 아니라서 억울한 부분이 있었지만, 지금처럼 꼬인 상황을 보면 입이 열 개라도 이 자리에서 다른 말을 할 자신이 없었다.
“당장 똑바로 대응해!”
“네!”
CX 기획의 사장은 크게 대답했다.
CX 기획 사장은 복귀하기 무섭게 비서에게 소리쳤다.
“웨스트 릴링 FC… 메인 스폰서 계약! 담당 팀… 팀장… 부장… 이사… 전무까지 모조리 불러와! 당장!!”
사장의 악에 받친 외침에 관련 회의가 바로 소집되었다.
화가 난 사장… 그 앞에 전무부터 시작해서 담당 팀장까지 모든 사람이 고개 숙인 상태로 앉아있었다. 그리고 사장은 박 전무를 보고서 명령하였다.
“박 전무! 문제 만든 사람 알아서 처벌하고! 어떻게 해서라도 웨스트 릴링 FC와 계약을 해와!”
사장의 말에 박 전무는 ‘네!’라고 크게 대답했다.
* * *
영국에 복귀한 데이비드는 자신의 사무실에서 기획 팀에서 정리한 메인 스폰 협의 서류를 열심히 살펴보고 있었다.
“1년 단기 계약에 25억(187.5만 유로)? 그런데 CF 촬영에 대형 간판… 여기까지는 이해하는데 서브 스폰 금지라니, 이건 아니지.”
다음 서류를 또 살펴보았다.
“1년 단기인데 15억(112.5만 유로)? 그 외 기타 조건은 좋긴 한데… 15억(112.5만 유로)은 너무 적다. 이것도 탈락.”
또 다른 스폰 계약 서류는…….
“2년 계약에 45억(337.5만 유로)! 다른 조건도 무난하고 아주 좋아! 그런데 배팅사이트… 이미지가 많이 하락할 건데…….”
쉽게 결정이 되지 않았지만, 그래도 다행히 여러 기업에서 메인 스폰서 제안이 들어왔다.
데이비드는 대칸이 말한 대로 골라서 스폰 계약을 진행할 수 있는 것이 다행이라 생각하여 서류들을 살펴보았다.
데이비드가 한참 서류를 살펴보는 동안에 사무실 전화가 울렸다.
삐~ 삐~
오래된 전화기의 전형적인 수화음에 데이비드는 반사적으로 수화기를 들었다.
“웨스트 릴링 FC의 단장실입니다.”
- 단장님 안녕하십니까! 저 CX의 강 팀장입니다.
CX의 강 팀장… 한국에서 기분이 더러웠지만, 그래도 오랜 기간 인연이 있었던 사람이라 데이비드는 잠시 고민하다가 말했다.
“무슨 일이시죠? 간단하게 용건만 말하세요. 저 바쁩니다.”
싸늘한 데이비드의 반응에 강 팀장은 애원하는 목소리로 말했다.
- 저희가 저번에는 정말 죄송했습니다. 제발 한 번만! 한 번만 저희와 대화를 나누시죠.
“…….”
- 저번에 구단주님과 감독님에게 무례하게 굴었던, 차 부장은 그 일의 책임을 지고 퇴직하였습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잘렸습니다!
잘렸다는 말에 데이비드는 살짝 기분이 좋아졌다. 그리고 강 팀장의 부탁은 계속되었다.
- 저희가 직접 방문해서 계약을 한번 제안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십시오. 부탁드립니다.
데이비드는 잠시 뜸을 들이다가 말했다.
“잠깐이면 되죠?”
- 네! 잠깐이면 됩니다. 저희가 직접 구단 사무실에 방문하겠습니다.
데이비드는 선심 쓰듯이 CX의 방문을 허락을 해주었다.
2일 뒤, 리즈 공항의 출국장에는 강 팀장이 나타났다. 그리고 그의 옆에는 한 사람이 더 있었는데… 그는 CX 기획의 최연소 전무인 박대호 전무였다.
두 사람은 렌트한 차를 타고 웨스트 릴링으로 이동하였고 박 전무와 강 팀장이 정해진 시간에 웨스트 릴링 FC에 도착하자, 회의실에서 대칸과 데이비드와 함께 미팅이 바로 시작되었다.
그리고 박 전무는 시작부터 일단 사과를 하였다.
“저번에 한국에서 무례했던 점에 대해서는 정중하게 사과를 드리겠습니다.”
박 전무는 거의 90도로 사과 인사를 하였고, 대칸과 데이비드가 괜찮다고 말하자, 고개를 다시 들었다.
“강 팀장이 말했지만, 차 부장은 그 무례한 건에 대한 책임을 지고 퇴사 처리를 했습니다.”
차 부장이 퇴사했다는 소리에 대칸과 데이비드는 속이 시원해졌고, 기분이 좋아진 상태로 본격적인 계약과 관련된 대화가 시작되었다.
박 전무는 깔끔하게 바로 계약을 제안하였다.
“3년 총액 60억(450만 유로)의 장기 계약을 제안드리겠습니다.”
계약금은 계약금 15억(112.5만 유로)에 연간 15억(112.5만 유로)이었으며, 대형 전광판 광고, 유니폼 메인 광고, 그리고 경기장 서브 광고판 1개에서 광고하는 조건이었다.
“추가로 승격하시면 축하금으로 10억(75만 유로)을 지급하는 옵션도 추가하겠습니다. 그리고 서브 스폰서는 얼마든지 받으셔도 됩니다.”
추가 옵션에 서브 스폰을 받아도 된다는 후한 조건까지!
“게다가 만약 웨스트 릴링 FC 측에서 원하신다면 주요 선수들을 대상으로 모기업 CF를 촬영했으면 합니다. CF 촬영의 대가로 선수당 1억(7.5만 유로)의 광고료와 구단 지원금 3억(22.5만 유로)을 지급하겠습니다.”
광고 조항까지! 아주 환상적인 조건을 가지고 방문한 CX의 박 전무였다.
박 전무의 조건에 대칸과 데이비드는 조심스럽게 귓속말을 나누었다.
“괜찮죠, 형님?”
다른 기업과 협의했던 조건보다 훨씬 좋았던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3년 계약은 조금 길지 않나?”
“그래도 지금 우리 구단에 자금이 부족하니, 계약금을 올리면 괜찮지 않을까요?”
데이비드의 말이 맞았다. 지금 당장의 돈이 중요한 웨스트 릴링 FC의 현실이었다.
대화를 마친 데이비드가 협상에 들어갔다.
“총액과 전체적인 계약 조건은 만족합니다.”
데이비드의 말에 박 전무는 살짝 안심이 된다는 표정을 지었다.
“저희가 심도 있게 고민하고 준비한 스폰서 계약입니다.”
“하지만 저희 팀의 사정상… 지금 당장 돈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연간 지원금을 줄이고 그 돈만큼 계약금을 올려주실 수 없을까요?”
데이비드는 연간 10억(75만 유로) 스폰에 계약금을 30억(225만 유로)을 역제안하였다. 총액은 동일했으나, 계약금의 비율을 높인 것이다. 그 계약 조건에 박 전무가 살짝 고민하자…….
“3년 계약이니, 저희 팀이 승격을 해서 챔피언십(2부 리그)으로 가는 순간! CX가 훨씬 이득입니다. 저희 팀은 그런 전력을 가지고 있고요.”
박 전무가 판단하기에도 그건 사실이었다.
“그래서 저희는 1년 계약을 선호하지만… 당장 자금이 급하기 때문에 계약금의 비중을 높여준다면 3년 계약을 체결하겠습니다.”
당장 자금이 급한 웨스트 릴링 FC의 자금난을 해결하기 위한 데이비드의 제안이었다.
웨스트 릴링 FC의 제안에 박 전무는 잠시 고민하였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조건을 허용할 수는 있었지만, 다른 CX 측의 조건을 역제안하기 위한 고민이 잠깐 필요했던 것이다.
“좋습니다. 웨스트 릴링 FC의 조건을 받아들이죠. 대신에 저희도 다른 조건… 아니 옵션을 하나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러고는 박 전무가 자신이 원하는 옵션을 말하였다.
“올해… 아니면 내년이라도, 한국인 선수 한 명을 영입해 주시지요.”
“한국인 선수의 영입?”
대칸이 되묻자, 박 전무는 간단하게 다시 정리해서 말했다.
“웨스트 릴링 FC가 한국 선수를 영입한다면, 더욱 한국 친화적인 팀이 될 것입니다. 그러면 저희 브랜드의 홍보 가치가 높아지겠죠.”
CX 측의 의사는 충분히 이해가 되었다. 아무리 국제적인 시장 개척을 하고 있는 기업이라지만, 내수의 비중이 높았기 때문에 한국에서 홍보 효과가 높았으면 하는 의도에서 제안한 것이다. 하지만 팀의 운영을 간섭하는 옵션에 가까웠다.
대칸이 기분 나쁜 표정을 감추지 않았고, 데이비드도 역시 난감한 표정을 드러냈다. 그러자 박 전무는 또 다른 당근을 제시하였다.
“대신에 한국 선수 영입 시에 저희가 추가 스폰 비용을 지급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정말 영입하실 한국 선수가 없다고 하시면, 저희도 포기하도록 하지요. 다만… 최대한 노력이라도 부탁드리는 겁니다.”
박 전무가 추가 스폰 비용을 언급하고 노력해 달라는 의사로 한 수 무르자, 데이비드는 괜찮다는 의미로 대칸을 바라보며 그 결정을 넘겼다.
대칸도 잠시 고민하고서는 간단하게 대답했다.
“노력해 보겠습니다만, 추가로 주신다는 스폰 비용보다 값싼 선수가 있으면 당연히 영입하겠지만… 그런 선수가 있을지 모르겠네요.”
대칸의 대답… 박 전무의 입장에서는 웨스트 릴링 FC가 한국 선수와 접촉한다는 언론 기사만 자주 나와도 괜찮다는 생각에 동의한다는 의사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시죠.”
그리고 변경된 스폰 계약서에 박 전무와 데이비드가 사인하면서 웨스트 릴링 FC의 메인 스폰서 계약이 체결되었다.
* * *
구단주실.
데이비드는 밝은 표정으로 서류를 살펴보고 있었다.
“CX 메인 스폰서 계약에 서브 스폰 계약까지 모두 완료!”
메인 스폰 계약과 서브 스폰 계약 네 건을 무사히 완료했던 것이다.
데이비드가 만족스럽게 서류를 정리하던 도중에 아담 단장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아버지!”
“그래, 스폰 계약 잘 마무리했다면서?”
아담의 칭찬에 데이비드는 머리를 긁적거리면서 대답했다.
“다른 분들의 도움을 받아서… 방송 출연했던 인맥도 잘 써먹었고요.”
겸손하게 말했지만, 이번에는 데이비드가 적극적으로 협상을 해서 좋은 조건으로 계약을 체결하였다. 그 과정에서 경기장의 모든 전광판을 빡빡하게 사용하고 유니폼에 많은 로고가 덕지덕지 붙었지만… 무려 50억(375만 유로)이 넘는 스폰비를 챙겼으니, 3부 리그 팀치고는 많은 스폰서 계약을 체결한 것이다.
그럼에도 데이비드는 여전히 미안한 기색이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
“저 때문에 아버지랑 대칸 형님이 고생하고 계신데… 스폰서 계약이라도 잘해야죠. 그리고 저! 최대한 돈 많이 벌어올게요! 방송 스케줄도 잔뜩 잡아놨어요.”
열심히… 조금의 수익이라도 더 거두기 위해 노력하는 데이비드였고, 그런 아들의 어깨를 아담은 두드려 주며 격려하였다.
스폰서 계약이 모두 체결되고, 웨스트 릴링 FC의 유니폼이 결정되었다.
“와우… 하하하…….”
유니폼을 살펴본 대칸의 입에서 헛웃음이 절로 나왔다.
“어깨에… 무슨 견장인가?”
어깨 부분에 기업 로고… 아주 촌스러운 강렬한 빨간색 로고가 붙어있었다.
“가슴에는… 무슨 훈장도 아니고…….”
가슴 부분에도 여러 개의 기업 로고가… 덕지덕지 붙어있었다. 무려 네 개의 로고가… 붙어있다 보니, 무슨 광고판 같아 보였다.
“복부에는… 하… 저 재수 없는 CX.”
역시나 가장 큰 기업 로고는 메인 스폰서인 CX였다.
“바지에는 777…….”
바지에 크게 적힌 777은 영국에서 손꼽히는 합법적인 배팅 사이트의 상징적인 숫자였는데, 정말 재수 없어 보이는 숫자였다.
“허벅지 부근에도 로고가 세 개나 있네…….”
바지의 허벅지 부분까지… 기업 로고라니! 유니폼 전체가 광고판이나 다름없었다.
“스폰받으려고 아주 유니폼에 덕지덕지…….”
대칸은 데이비드의 노력에 그저 감탄하였다. 그럼에도 대칸은 자신이 할 일을 잊지 않았다.
10분 후…….
대칸은 자신의 휴대폰으로 방송을 켜고서는 말했다.
“오래간만입니다! 여러분 대칸! 방송 시작하겠습니다.”
- 대하~ 대하~
- 정말… 얼마 만에 방송이냐?
- 지금 프리 시즌이라서 방송을 할 이유가 없을 건데…….
하지만 대칸의 카메라가… 유니폼을 노골적으로 보여주면서… 시청자들은 모두 바로 눈치를 챘다.
- 하… 이거 광고 아니냐?
- 뒷광고는 안 된다고!!
- 저렇게 노골적으로 광고하는데… 앞광고 아니냐?
대칸은 시청자들의 반응에 웃으면서 말했다.
“팀의 감독이 팀 유니폼을 입고 방송하는 것이 무슨 광고입니까? 네?”
그러고는 시청자들과 농담 따먹기를 하면서 노골적으로 유니폼에 있는 기업들에 대한 홍보를 열심히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