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6화
제아무리 축구 매니저라는 사기적인 능력이 있다고는 해도… 선수들의 예상하지 못한 부상은 항상 대칸의 머리를 복잡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한 시즌을 운영하면서… 대칸이 제발 일어나지 말았으면 하는 부상은 꼭 일어났다.
이번 피터의 부상이 바로 그런 부상이었다.
하프타임 라커룸.
“팀 닥터, 수습 코치들은 모두 선발 선수들 몸 상태 확인해.”
“김종일 수석 코치님과 매튜 코치님은 잠시 대화를 하시죠.”
대칸은 김종일 코치와 매튜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후반전에 피터 자리에는 루이를 투입시킬까 합니다.”
“뭐… 다른 방법은 없겠네요.”
“저도 동의합니다.”
이미 대칸을 비롯한 코치들의 머릿속에 루이는 안정적인 후보 선수는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루이를 투입해야 했다.
“루이! 후반전에 피터의 자리를 채운다.”
“네.”
대칸의 지시를 받은 루이는 신발 끈을 다시 묶고 장비를 확인하면서 후반전을 준비했다.
삐삑~
[후반전 경기 시작됩니다.]
[양 팀 선수 교체가 있습니다. 전반전이 끝나기 전에 부딪친 두 선수가 모두 교체되었습니다.]
[웨스트 릴링 FC에서는 역시, 피터 선수를 대신해서 루이 선수가 투입되었네요.]
간만에 출장에 루이는 긴장되는 마음으로 경기에 들어섰다.
“어이 노인네, 간만에 호흡 잘 맞추자고!”
대니얼의 말에 루이는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경기의 소강상태가 계속 지속됩니다.]
[칼라일 FC의 선수들이 수비에 치중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웨스트 릴링 FC의 선수들도 무리한 공격은 하지 않네요.]
[아무래도 스코어가 3:1로 벌어지고 양 팀에서 부상자가 나온 상태다 보니 다들 몸조심하는 것이 느껴집니다.]
“다들 완벽한 상황에서만 들어가자. 무리하지 말라고!”
딜런을 대신해서 교체 투입된 찰리가 경기의 박자를 잘 조절하였다. 그리고 선수들도 무난하게 공을 돌리면서 칼라일 FC의 허점이 나오기만을 기다렸다.
경기는 무난하게 끝나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후반 41분에 웨스트 릴리 FC는 역습을 당한다.
[어~ 이게 뭔가요? 공이 흘러갑니다.]
[미드필더 지역에서 공을 경합하다가… 튕겨 나온 공이 정확하게 칼라일 FC 10번 아널드 선수의 발에 들어갔습니다.]
칼라일 FC의 에이스인 아널드는 자신의 앞에 단 두 명의 수비수만이 있는 것을 확인하였다. 그리고 이번이 기회라는 생각에 공을 치고 달렸다.
“루이! 달라붙어.”
대니얼의 말에 루이는 아널드에게 달라붙었다. 그러자 아널드가 살짝 스피드를 줄였고, 루이도 섣불리 달라붙지 않고 눈치를 보려 했다. 하지만 순간 타이밍을 한번 비틀어 다시 공을 치고 들어왔다.
“아…….”
순간 균형을 잃은 루이는 아널드에게 돌파를 허용하였고, 마지막 최종 수비수인 대니얼이 막으려 했지만…….
뻥!
공간이 나온 아널드가 페널티 에어라인 안에서 슛을 때렸고, 공은 웨스트 릴링 FC의 골망을 흔들었다.
“굿!! 와우~ 예!!”
아널드가 환호성을 지르며 골 세리머니를 하였고, 루이와 대니얼은 허망하게 그들의 모습을 지켜보았다.
삐삑~
다행히 이 실점은 경기의 승패에는 영향이 없었다. 웨스트 릴링 FC는 3:2로 칼라일 FC를 상대로 1승을 챙겼다.
다음 날.
대칸과 코치들은 피터가 4주 부상이라는 것을 확인하였다.
“하… 골치가 아프네요.”
“그러게요. 시즌 시작할 때만 해도… 우리 팀에 가장 선수가 넘치는 포지션이 센터백이었는데.”
매튜가 은퇴하고, 제이콥이 이적했다. 그리고 피터까지 부상을 당하자 센터백 선수는 대니얼과 루이밖에 남지 않았다.
“일단 두 선수가 잘 버텨주기를 기대하면서… 만약을 위해 게리 선수가 센터백 자리를 채워주는 것도 고려해야겠네요.”
게리가 센터백 전문 자원은 아니었지만… 살짝 억지를 쓰면 센터백이 가능한 수준이었다.
“그럼, 다음 경기 센터백 선발은 대니얼과 루이, 그리고 대비하는 차원에서 게리 선수는 교체 선수로 투입하도록 하겠습니다.”
대칸의 말에 모든 코치들이 동의하였다.
* * *
38차전 올덤 FC와의 경기.
전반전.
대니얼과 루이가 버티는 웨스트 릴링 FC의 수비는 솔직히… 피터가 있을 때보다 부족한 부분이 보였다.
루이가 죽도록 뛰기는 했지만 리그 8위로 승격 경쟁이 한창인 올덤 FC의 공격을 완벽하게 막아낼 수는 없었다.
전반전이 끝나고, 스코어는 2:1 웨스트 릴링 FC가 앞서고는 있었지만 언제 뒤집힐지 모르는 점수 차였다.
하프타임 라커룸.
대니얼이 구석에서 수건을 뒤집어쓰고 쉬고 있는 루이에게 다가갔다.
“노인네, 힘들어?”
“하아… 하아…….”
체력적으로… 아니 심리적으로 너무 위축된 탓에 루이는 호흡을 가쁘게 내쉬었다.
대니얼은 루이의 옆에 털썩 앉아서는 말을 걸었다.
“노인네, 내가 팀에 처음 들어왔을 때 기억하지?”
“하… 그래, 기억나지.”
“처음 6부 리그에 있었을 때에… 내가 노인네한테 엄청 욕을 많이 했지. 똑바로 하라고. 그리고 그 두 녀석…….”
“주드랑 해리.”
“그래! 그 더럽게 축구 못하던 윙백들에게도 노인네랑 같이 욕 많이 했지.”
루이는 자신의 얼굴을 덮고 있던 수건을 내리며 말했다.
“하… 그래. 그때, 너한테 욕먹을 때는 정말 더럽고 치사하던데. 축구를 못하니 다른 말을 할 수가 없더라. 그저 경기 마치고 우리 세 명이서 술집에 가서 네 욕을 얼마나 했는지 모른다.”
대니얼은 씩 웃으며 말했다.
“그래도 내가 몇 번 말했지? 노인네는… 그 녀석들보다는 나은 편이라고?”
“흐흐… 그랬나?”
대니얼은 루이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서 말했다.
“노인네, 우리 그때처럼 해보자고. 팀이 위기일 때 언제나 우리는 함께 팀을 위해 버텼잖아.”
“…….”
“축구에 있어서 실력은 항상 두 번째야. 진짜는… 의지라고. 의지만 있다면 내가 다른 부분은 채워줄게.”
대니얼의 말에 루이는 다시 수건을 덮어썼다.
“후반전에 잘해보자.”
루이는 고개만 끄덕였다.
삐삑~
심판의 휘슬 소리와 함께 후반전이 시작되었다. 후반전… 올덤 FC의 선수들의 공격은 더욱 거칠어졌다.
[아… 간신히 걷어내는 대니얼 선수!]
[이번에도 불안한 루이 선수입니다.]
[후반전에만 세 번이나 돌파를 허용했죠.]
벤치에서도 대칸과 코치들의 고민은 깊어졌다.
“루이 선수를 어떻게 하죠?”
“대니얼의 커버로 어떻게든 막고 있기는 한데…….”
“하필… 찰리 선수가 근육통을 호소해서… 게리가 투입된 상태라…….”
“게리 선수를 내리고, 미드필더 선수를 충원할까요?”
“문제는 미드필더와 수비진이 아니라 공격진에서도 방전된 선수가 많다는 것입니다.”
연속 경기에 로테이션을 돌려도 체력적인 문제가 있는 웨스트 릴링 FC라서 남은 교체 카드의 사용에 고민은 더욱 깊어졌다.
“하아… 하아… 하아…….”
루이가 그라운드에 살짝 앉아서 거친 호흡을 쉼 없이 내쉬었다. 미친 듯이 상대편 선수들을 따라다니면서 마크했지만… 빠르고 기술이 좋은 반대편 공격수들을 감당하기가 힘들었다. 몸은 힘들고 머릿속은 복잡할 뿐이었다.
이런 힘들어하는 루이의 모습에 대니얼이 보고서는 외쳤다.
“노인네! 보여주라고. 여기서 끝낼 수는 없잖아! 우리가 어떻게 팀을 지켰는지 기억하라고!”
“하아… 하아…….”
“이렇게 망가진 모습으로 쓰러질 거야? 마지막 불꽃이라도 피우라고, 이 노인네야!”
피식… 대니얼의 말이 맞았다. 비록 자신의 나이가 서른한 살이지만! 아직은 망가진 모습을 보여줄 때가 아니었다. 자신보다 나이 많은 선수들도 많이 현역으로 뛰고 있었으며… 요즘 시대에는 전성기라는 나이가 서른한 살이었다.
‘난 죽지 않았다. 아니 나는 지금이 나의 전성기다. 나는 내 몸을 불태워서라도 자랑스러운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팀을 위해? 아니! 자신을 위해!! 자신을 위해서라도 여기서 무너질 수는 없었다.’
루이가 그렇게 결심을 하고 일어서는 순간, 축구 매니저에서 메시지가 나타났다.
[루이 선수가 새로운 스킬을 각성하였습니다.]
‘뭐? 새로운 스킬?’
대칸은 놀란 모습을 최대한 감추고서는 축구 매니저를 열어서 루이를 조회하였다.
루이 베리(31살, 수비수, 306/311)
기술 101/103, 정신 121/123, 신체 84/85
스킬 : 마지막 불꽃(U), 설명 : 이번 시즌(23/24) 모든 경기에서 정신 능력치가 2 상승합니다.
세부 설명 : 선수가 본인의 은퇴와 함께 이번 시즌에 모든 것을 불태울 것을 결심하였습니다. 이번 시즌에 한정하여 경기에서 모든 정신 능력치가 2 상승합니다.
대칸이 놀란 마음으로 루이의 상태 창을 보고 있는 동안에… 그라운드에서 루이는 자리에서 온 힘을 다해 일어났다.
“그래, 한번 해보자, 대니얼!”
“그래! 같이해 보자고!”
새로운 스킬로 인하여 능력치가 상승한 루이는 대니얼과 같이 안정적인 수비를 구축하여 경기를 마무리하였다.
* * *
3주 후.
“자, 오늘 피터가 부상에서 복귀했다. 모두 환영해 주자.”
매튜 코치와 함께 부상에서 완전 회복한 피터가 훈련에 참가하였다. 그리고 선수들은 모두 피터의 복귀를 반겨주었다.
“하… 결국 돌아왔네.”
하지만 유일하게 씁쓸하게 웃는 사람이 있었으니, 그는 바로 루이였다.
피터의 복귀와 함께 자신은 다시 벤치로 갈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
오후 훈련이 종료되고…….
“다음 경기인 시즌 42차전 베리 FC와의 경기, 주전 명단을 공개한다.”
대칸은 선수들을 보면서 한 명씩 불렀다.
“진형은 기본 4-4-2 포메이션으로 투 톱은 에드워드와 라이언이다.”
뭐… 당연한 선발에 모두 당연하다는 생각을 하였다.
“미드필더는 좌우측 사이드는 사무엘과 딜런이, 두 명의 중앙 미드필더 자리는 찰리와 게리가 채운다.”
역시, 이것도 누구나 예상되는 선발 라인업이었다.
“수비 지역의 양측 윙백은 가론과 아치. 그리고 센터백은…….”
‘센터백은…….’이라고 말하는 대칸의 모습에 루이는 최대한 마음을 비우고 있었다.
“대니얼과 루이가 선발이다.”
“네?”
자신도 모르게 ‘네?’라고 루이가 외쳤다. 그러자, 주변의 선수들이 웃으면서 말해주었다.
“왜? 네가 선발인 게 뭐가 어때서?”
“루이 씨, 왜 그렇게 놀라세요?”
“어이 늙은이 이제는 쉬고 싶은 거야? 아직은 쉴 때가 아니라니까! 크크크.”
선수들의 짓궂은 말에도 루이는 거듭 피터와 대칸을 번갈아 가며 보면서 말했다.
“피터가 복귀했는데요?”
대칸은 역시 웃으면서 대답했다.
“복귀한 선수를 바로 선발 출장 시키라고? 날 염치없는 감독으로 생각하나?”
“아니… 그래도…….”
“그리고 피터는 이번 시즌 종료 시까지는 수비형 미드필더와 센터백 포지션의 멀티 백업으로 돌릴 생각이다. 게리와 찰리의 체력이 많이 부족하고, 피터의 경기 감각 회복도 필요하고.”
“…….”
대칸은 루이에게 다가와서 등을 토닥이며 말했다.
“루이 선수… 잘하고 있어! 너 지금 잘하고 있다고.”
그러고는 대칸과 코치들은 먼저 선수실에서 나왔다.
멍한 표정의 루이에게 대니얼은 다가가서 격한 포옹을 하면서 말했다.
“노인네! 노인네는 항상 최고라고 할 수 있다고! 이번 시즌 우승을 위해 나랑 같이 후방에서 팀을 지키자!”
루이는 살짝 울먹이는 목소리로 ‘응.’이라고 대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