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화
* * *
시즌 20차전 경기, 중위권 팀인 토키 FC와의 대결이다.
라커룸에서 경기 전 선수 미팅에서부터 대칸의 주문은 간단했다.
“우리는 이길 수 있다. 이길 수 있어. 모두 다른 선수들을 믿고 플레이해라.”
압도적인 선수 구성으로 전력상 문제는 전혀 없었다. 다만 유일한 불안 요소인 데이비드를 보면서 대칸은 다시 말했다.
“주변 선수들을 믿어라. 우리는 강하다!”
대칸의 말을 이어서 주장인 게리가 마무리하였다.
“파이팅 구호 한번 외치고 나가자.”
“고! 고! 웨스트! 웨스트! 릴링!! 고! 고! 고!!”
주장인 게리의 구호에 따라 모두 파이팅을 외치면서 경기에 임하였다. 그리고 골키퍼 데이비드는 더욱 굳은 결의로 경기에 임하였다.
다행히 경기는 무난하게 흘러갔다.
전반 20분, 수비 지역에서 공을 빼앗은 윙백 헨리가 직접 오버래핑하여 공격 지역까지 올라왔다. 그러고는 수비수를 달고 있는 라이언을 믿고서는 패스를 하였다.
라이언이 공을 잡고서는 마크에게 패스를 하는 척하는 적절한 페이크로 수비수를 속이고서는 돌파를 하였다. 그리고 조금 나와있는 골키퍼를 칩 슛으로 농락하면서 첫 골을 넣었다. 스코어는 1:0.
전반전 동안 웨스트 릴링 FC가 높은 점유율을 기반으로 경기를 지배했지만 토키 FC도 그냥 당하고만 있지 않았다.
전반 35분.
탁.
간만에 나온 토키의 날카로운 스루패스.
“어?”
매튜와 헨리 사이로 토키 미드필더가 기가 막히게 찔러준 패스가 사이드에 위치하고 있었던 토키 윙어의 발에 정확하게 착륙했다.
급한 마음에 헨리가 토키 윙어에게 달라붙었지만, 강력한 신체를 자랑하는 윙어는 어깨로 헨리를 강하게 밀어버리고 돌파한다.
퍽.
헨리가 튕겨 나오고, 토키의 윙어는 중앙으로 접근하여 슈팅 각이 나오기 무섭게 공을 차버렸다.
뻥.
강슛!
공이 골대로 날아왔다! 데이비드는 잔뜩 굳어있던 육체를 간신히 움직였다. 그리고 오른손을 움직여서 간신히 어떻게든 공을 손으로 쳐내었다. 하지만.
“10번!”
데이비드가 쳐낸 루즈 볼에 쇄도하는 토키의 중앙 스트라이커의 움직임은 매서웠다.
탁.
철렁…….
가볍게 발로 찬 공이 무심하게 웨스트 릴링 FC의 골망을 흔들었다.
“주심!”
토키 FC 선수들이 골 세리머니를 하는 동안에, 넘어진 헨리를 가리키면서 대니얼이 붉어진 얼굴로 소리를 지르며 주심을 보았다. 토키 윙어의 어깨 태클이 몸싸움이 아닌 고의로 선수를 밀어버린 반칙이라는 것을 어필하였던 것이다. 하지만 주심은 대니얼의 항의를 무시하였다.
“미친, 이건 반칙이지!”
아무리 영국 축구가 몸싸움에 관대하다지만, 이건 분명히 공을 쥐고 있는 공격수가 작정하고 수비수를 어깨로 밀어버린 반칙이었다.
공과 상관없이 일어난 플레이였으며, 골이 들어가기 전 상황이기 때문에 최소 반칙으로 골을 취소하거나 잘하면 카드까지 줄 수 있는 상황임에도 주심은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괜찮아?”
대니얼이 심판에게 항의하는 동안에, 매튜는 직접 헨리를 일으켜 주었다. 헨리는 아픈 표정을 감추지 않고서는 자신의 몸을 확인하며 말했다.
“와… 저 새끼들 완전 거칠게 나오네.”
항의를 마친 대니얼은 심판과 골 세리머니를 하는 토키 선수들을 한번 째려본 다음에 헨리와 매튜에게 다가와서 말했다.
“좋아. 그럼 질 수 없지, 심판도 관대한데 우리도 거칠게 한번 놀아보자고!”
대니얼은 각오하듯이 말을 내뱉었다. 그러자 매튜가 ‘침착해, 다음 경기 쉬고 싶어?’라고 하면서 대니얼을 다독였다. 진흙탕 싸움, 그렇다고 반대편이 원하는 대로 같이 수렁에 빠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하…….”
골을 먹은 데이비드의 입에서는 한숨만 나왔다. 물론, 강슛이긴 했지만 본인이 생각해도 충분히 막을 수 있는 골이었다. 그런 데이비드를 보고서는 주장인 게리가 다가와서 데이비드의 멘탈을 관리해 주었다.
“괜찮아. 괜찮아. 잘했어! 그 정도 슛을 막은 것만 해도 잘한 거야. 바운드 볼을 처리하지 못한 건 수비수들의 책임으로 돌려도 괜찮아.”
대니얼도 어느새 다가와서는 데이비드를 다독였다.
“어이~ 삼류 구단주. 어차피 두세 골 정도는 세금이라 생각하고 있으니 걱정 말라고. 그리고 이번 플레이는 예상보다 잘했어. 그 정도면 잘한 거 맞아. 그 정도만 하라고? 알겠지?”
다행히 전반 20분에 미리 넣어둔 마크의 골 덕분에 1:1로 동점인 상황, 데이비드는 더 집중하겠다고 다짐하고서는 경기에 다시 임하였다.
하프타임 라커룸.
“나이스, 나이스 좋아. 전반전 잘했어.”
전반전 동안 정말 든든하게 잘 버텨준 웨스트 릴링 FC의 선수들이었다. 초반부터 공을 쥐고서는 일방적인 공격만 하였다. 토키 FC의 선수들이 웨스트 릴링 FC의 진영에 최대한 접근하지 못하도록 깔끔하게 플레이하였다.
물론 일격을 한 대 맞기는 했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정말 잘하고 있었다.
전반전의 웨스트 릴링 FC의 의도는 단 하나였다. 점유율, 최대한 공을 오래 점유하면서 수비진과 골키퍼의 부담감을 최소화해 주겠다는 의도였다.
그리고 그 의도는 어느 정도 성공하였다고 감독인 대칸과 코치들은 판단하였다. 그리고 후반전에는 히든카드가 하나 남아있었다.
“에드워드를 후반전에 투입한다.”
대칸은 ‘성장통’ 때문에 전반전을 쉬게 했었던 에드워드를 후반전에 투입하기로 결정하였다.
“맡겨만 주십시오.”
에드워드의 말에 결의가 느껴졌다. 전반전에는 벤치에서만 경기를 보고 있으면서 부글거리는 마음을 다스리고 있었다. 하지만 후반전에는 자신이 활약할 차례였다. 선수들 중에서도 에드워드의 마음가짐은 더욱 달랐다.
‘오늘 형을 위해 내가 보여주겠어.’
에드워드의 눈빛부터 평소와는 달랐다.
삑삐~
심판은 후반전 시작을 알리는 휘슬을 불었다.
후반전 시작부터 에드워드의 목적은 다득점이었다. 그냥 골을 마구 넣어서 수비의 부담을 확 줄여버리겠다는 각오였던 것이다.
그래서 에드워드는 호시탐탐 득점을 위한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첫 번째 기회는 다행히 후반 8분 만에 자신에게 다가왔다.
“에드워드!”
기다리던 공이 마크의 패스로 에드워드를 향해 왔다. 에드워드는 수비수를 등지고서는 공을 잡았다. 그러자 수비수가 돌지 못하게 딱 달라붙었다.
“꺼져!”
에드워드는 토키 수비수의 강한 몸싸움… 반칙에 가까운 몸싸움에도 버티면서 뒤꿈치로 수비수의 발 사이로 공을 살짝 빼고서는 빠르게 돌았다.
“헛.”
순식간에 뚫려버린 수비수는 에드워드의 스피드를 따라갈 수가 없었다. 에드워드는 오른쪽 사이드로 파고들었다.
“달라붙어!”
반대편 키퍼가 소리 질렀고, 다른 수비수까지 더해서 두 명의 수비수가 에드워드를 다시 막았다. 에드워드는 코너에서 공을 잡고서는 계속해서 기회를 엿보았다.
“후… 후…….”
약간 숨을 몰아쉬면서 기회를 살피던 에드워드의 주변으로 라이언이 공을 받아주기 위해 접근하였다.
“……!”
라이언이 고립된 에드워드의 공을 받아주기 위해 다가오자, 순간 수비 선수들이 누구를 마크해야 하는지, 당황하는 것이 눈에 보였다. 그리고 그 순간이 기회였다.
타탁!
에드워드가 평소에 잘 쓰지 않았던 환상적인 기술을 선보였다. 사포… 레인보우 플릭이 아름다운 궤적을 그리면서 공중으로 수비수들을 넘어서 지나갔고, 에드워드도 공의 속도에 맞춰서 재빠르게 돌파하여 골문으로 쇄도하였다. 그리고.
뻥! 퍽! 철렁~
골키퍼와 1:1 상황에서 에드워드가 오른발로 강하게 슛을 때렸고, 골키퍼가 손으로 살짝 막았지만… 그래도 골이 골대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막지는 못하였다.
“호우!”
“와!”
“골!”
후반 10분에 터진 1:1 균형을 깨는 골에 에드워드는 소리를 지르며 기쁨의 세리머니를 하였고, 관중들은 환호성을 하였다. 그리고 웨스트 릴링 FC의 코치와 감독인 대칸도 같이 즐거워했다.
“좋아. 잘했어!”
에드워드는 세리머니의 마지막에 웨스트 릴링 FC의 골대를 향해서… 데이비드를 향해서 엄지를 들고서는 외쳤다.
“형, 오늘 나만 믿고 따라오라고!”
에드워드의 각오가 느껴지는 외침이었다.
에드워드의 골이 있었지만, 웨스트 릴링 FC의 분위기는 여전히 침착했다. 데이비드가 골대를 지키고 있는 한… 방심은 있을 수가 없는 일이었다.
“한 번 더 만들어 보자고, 침착하게!”
주장인 게리의 말에 마크가 고개를 끄덕였다. 마크는 평상시와는 다르게 무리한 공격은 전혀 하지 않고 있었다. 그리고 라이언도 평상시와는 다르게 미드필더 라인까지 내려와서 공을 키핑하는 것을 중점적으로 플레이하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에드워드가 미쳐있었다. 그래서 후반전에는 에드워드의 환상적인 플레이 퍼레이드가 일어났다.
후반 18분, 에드워드가 공을 잡고서는 적 수비진을 농락하면서 돌파를 하였다. 한 명… 두 명… 세 명… 그리고 마지막에는 골키퍼까지 자신에게 달려들게 만들고서는 빈 골대 앞의 라이언에게 마지막 킬 패스를 하여 라이언이 골을 완성하였다. 스코어는 3:1.
후반 29분, 정말 아쉬웠다. 에드워드와 마크의 환상적인 1:2 패스가 나왔다. 그것도 연속으로 두 번이나 나오면서 토키 수비수들을 마치 꿔다 놓은 보릿자루로 만들었다. 하지만 마지막 에드워드의 슛이 토키 골키퍼의 슈퍼세이브에 막히면서 골은 들어가지 않았다.
그리고 후반 40분, 공격적으로 플레이를 하고 있던 토키의 틈을 노린 환상적인 역습이 경기에 쐐기를 박았다.
토키 공격수의 공을 가로챈 대니얼이 찬 공이 하프라인에 있었던 라이언에게 향했다. 그리고 라이언은 공을 받고서는 전방으로 달리면서 주변을 살폈다.
“패스!”
“막아!”
에드워드가 중앙으로 빠른 속도로 뛰어서 침투하고 있었지만, 토키 수비수가 무려 두 명이나 붙어있었다. 그리고 토키 윙백 선수가 자신에게 달려오는 것도 보였다.
라이언은 윙백 선수와 대치를 하게 되었다. 하지만 윙백 선수의 얼굴에는 긴장이 가득했고, 라이언의 얼굴에는 자신감이 가득했다.
타… 탁!
단 두 번의 발놀림! 오른발과 왼발의 기가 막힌 리듬의 드리블에 가속도가 더해져서 토키 윙백 선수를 간단하게 제쳤다.
“오!”
관중석에서도 라이언의 개인기에 환호성이 터졌고, 라이언은 계속해서 사이드라인을 타고 드리블을 하였다.
결국, 반대편 중앙 수비수 중 한 명이 커버하기 위해 라이언에게 달려들었지만, 라이언은 더 접근하기 전에 좋은 타이밍에 공을 크로스하였다.
“좋아!”
에드워드는 패스를 받자마자 자신의 앞에 있는 수비수를 비웃으면서 바로 옆으로 살짝 공을 내주었다. 그러자, 침투하고 있던 마크가 노마크 상태로 공을 받았다.
“안 돼!”
반대편 수비수가 예상하지 못한 마크를 막으려 하였지만, 이미 늦었다. 마크는 강한 슛을 때렸다.
뻥! 철렁~
“골!”
토키 골키퍼가 급하게 몸을 날려봤지만, 공은 골대 구석을 향했고, 멋진 골이 터졌다.
“와!”
관중들의 환호 속에서 마크와 에드워드, 라이언이 골 세리머니를 같이하였다. 세 선수의 완벽한 호흡으로 탄생한 쐐기 골이었다.
경기의 최종 스코어는 4:1.
웨스트 릴링 FC는 폭주한 에드워드와 선수들의 활약 덕분에 토키 FC를 상대로 무난하게 승리를 가져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