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화
* * *
“대칸 감독님이시죠? 반갑습니다.”
“음? 조쉬 유소년 팀 감독님이시죠?”
“네. 오늘 갑작스럽게 휴가이신 감독님을 대신해서 팀을 지시하게 되었습니다.”
“아, 네……. 오늘 잘 부탁드립니다.”
대칸은 리즈유나이티드 유소년 팀 감독인 조쉬와 악수를 나누었다.
웨스트 릴링 FC의 프리 시즌 첫 번째 친선경기는 리즈유나이티드와의 경기였다. 그래서 대칸이 직접 선수들과 함께 리즈의 홈구장으로 이동하였는데, 유소년 팀 감독인 조쉬가 나온 것이다.
대칸은 처음에는 기분이 안 좋았지만 금방 회복하였다. 하긴, 리즈 입장에서는 유소년 팀 레벨인 5부 리그 팀과의 경기라고 생각했을 확률이 높았다. 어차피 그도 이번 경기는 선수들의 경기 감각을 올려주기 위한 친선경기라 생각하였기 때문에 최대한 쿨하게 생각하기로 하였다.
하지만 이 생각도 리즈 구단의 선발 명단을 보는 순간 깨질 수밖에 없었다.
“자자, 오늘 변경된 선발 명단을 알려주겠다.”
결국 대칸은 경기 직전에 선발 명단을 바꾸었다.
FW : 에드워드 바커(355/478)―라이언 힐(353/398)
AM : 마크 보셀(349/437)
MF : 레오 바니스터(301/312)―엘리엇 브루어(294/310)
DM : 게리 워커(334/350)
LWB : 칼슨 고트(306/341), RWB : 헨리 블랙(313/329)
DF : 대니얼 보얀(356/400)―매튜 로렌조(338/420)
GK : 다니엘 카펜터(296/333)
현재 웨스트 릴링 FC의 베스트 11을 선발 명단으로 결정한 것이다. 원래 예정하였던 후보 선수가 포함된 명단이 아닌 주전 명단이었다.
“반대편 선발 선수들이 대부분 유소년 선수들인 것 알지?”
대칸의 말에 미리 리즈 선발 선수 명단을 확인했던 선수들이 고개만 끄덕였다.
“어차피 친선경기라 선수 교체 제한도 없으니… 빨리 주전 선수들이 안 나오곤 못 배기게 해주자. 다들 봐주지 말고 밀어붙여. 유소년 애송이들에게 성인의 매운맛을 보여주자고!”
“네.”
이글이글 불타는 눈빛으로 그들이 경기장에 입성했다.
유소년 팀 감독인 조쉬는 난감한 표정으로 웨스트 릴링 FC의 선발 명단을 보았다. 그리고 경기를 준비하는 선수들의 분위기가… 살벌한 것을 느꼈다.
“하긴, 아무리 그래도 성인 팀을 상대로 유소년 팀을 세웠으니…….”
리즈 팀의 감독은 처음부터 웨스트 릴링 FC와의 친선경기를 싫어했다. 5부 리그 팀과 붙어봐야 아무것도 얻을 게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래서 구단 운영진에게 취소해 달라고 몇 번을 요청했지만 소용없었다. 지역 유지인 아담의 신청으로 구단주가 직접 지시한 친선경기라서 운영진 권한으론 취소가 불가능했다.
이에 화가 난 감독은 일방적으로 웨스트 릴링 FC와 친선경기 날에 휴가를 신청하고 나오지 않았고, 1군 코치들도 감독 대행을 꺼려 결국 유소년 팀 감독인 자신이 커버하고 있는 것이었다.
게다가 선발 명단까지 유소년들로 하자는 1군 코치들의 의견에 밀려서 유소년 팀 주전 선수들이 선발이 되었고 그 결과가 분노로 불타오르는 웨스트 릴링 FC 선수들이었다.
삐삑!
웨스트 릴링 FC의 선공으로 경기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시작부터 웨스트 릴링 FC의 선수들은 살기를 띠고 공격을 하였다.
“자, 침착하게 가자. 평소 하던 대로 하라고.”
조쉬가 외쳤지만, 유소년 선수들은 강하게 몸으로 밀고 들어오다가 웨스트 릴링 FC 선수들을 보면서 당황하는 모습을 감추지 못하였다.
“헤이 브로? 오래간만이야.”
에드워드에게 유소년 팀의 주전 센터백 알렌이 말을 걸었다. 리즈 유소년 팀에서 열 살 때부터 5년 동안 같이 축구를 했기 때문에 에드워드와 충분히 친하다고 할 수 있는 사이였다.
“그래, 알렌. 오래간만이지? 오늘은 몇 골이나 줄래?”
“미친… 크크크, 6부 리그에서는 잘나가고 있다면서? 동네 아저씨들 상대로 축구하면 재미있냐?”
알렌은 트래시 토크의 달인! 반대편 선수를 제대로 약 올릴 줄 아는 선수였다. 하지만 오늘의 에드워드는 충분히 대비하고 온 상황이었다.
“크크크, 애들 장난 같은 유소년 축구보다는 낫지.”
“…한번 해볼까?”
마주 보는 두 선수의 눈에서는 불꽃이 튀었다.
“에드워드!”
마침, 마크의 패스가 에드워드를 향했다. 에드워드와 알렌은 공중 볼이 떨어지는 자리를 잡기 위한 몸싸움을 벌였다. 그리고 순간, 에드워드의 무릎이 알렌의 허벅지를 강타했다. 심판이 볼 수가 없는 아주 교묘한 반칙이었다.
“윽!”
“바이바이~ 프렌드~”
에드워드는 고통스러워하는 알렌을 두고서 공을 잡고 돌파를 하였다. 그리고 골키퍼와의 1:1 상황에서 강한 슛! 웨스트 릴링 FC의 첫 골을 기록하였다.
“치사한 새끼… 6부 리그에서 배운 게 반칙이냐?”
골을 넣은 뒤, 다시 알렌이 에드워드를 마크하는 상황이 되었다. 그리고 알렌은 어처구니가 없는 표정으로 비꼬았다. 그러자, 에드워드는 풋내기를 보는 시선으로 되받아 주었다.
“알렌, 친구로서 말해주는데… 이건 장난에 불과해. 이건 반칙 축에도 못 끼는 거라고. 프로의 세계는 더 독하고 잔인하고 냉혹해. 올라가기 위해서라면 어떤 짓이든 할 수 있다고!”
“에드워드… 예전에는 이렇지 않았는데…….”
“아니, 너도 1군에 올라가서 챔피언십 경기를 뛰려면 변해야 돼. 지금 유소년 축구처럼 얌전하면 안 된다고, 보이!”
말하는 순간 주심의 눈에 보이지 않는 사각에서 에드워드의 팔꿈치가 알렌의 명치를 가격했다.
“윽!”
알렌이 주춤하는 사이에 에드워드가 오른쪽 사이드로 달려나갔다. 그리고 그 장면을 본 라이언이 침투 패스를 하였다.
에드워드는 오른쪽 사이드 끝에서 팀원들의 위치를 확인하였다. 그러고는 골대 방향으로 다 같이 돌파를 시도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돌파하는 마크에게 패스! 마무리를 장식한 것은 마크의 슬라이딩이었다. 그의 발이 미끄러지며 공을 건드렸다.
“골!”
“좋아, 잘하고 있어!”
전반 30분 만에 두 골을 기록하는 웨스트 릴링 FC이었다.
“하아…….”
심판들이 보지 못했다고, 아무것도 모른다면 코치로서 자격이 없었다. 조쉬는 알렌이 에드워드의 교묘한 반칙에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조쉬는 유소년 팀에게 다양한 반칙 기술을 비롯한 영국 축구의 거친 부분들을 알려주기는 했지만, 아직 직접 가르치거나 활용하지는 않았다. 그것은 다른 유소년 팀들도 비슷했다. 아무래도 지금은 성장이 더 중요해 보호받아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에드워드가 성인 레벨의 반칙에 익숙해져서 나타난 것이다. 그가 구사하는 기술들은 예전의 에드워드만 생각하던 알렌 수준으론 도저히 당해낼 수가 없었다.
조쉬는 벤치에 있는 1군 선수들에게 지시하였다.
“1군 선수들 이제 한 분씩 교체하도록 하겠습니다. 몸 풀도록 하세요.”
리즈 구단의 1군 선수들이 귀찮은 기색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래도 임시 감독이지만 감독의 지시를 어길 수는 없었기 때문에 천천히 주변에서 스트레칭을 하면서 몸을 풀기 시작했다.
“선수 교체!”
전반 40분 만에 알렌이 1군 수비수와 교체를 하게 되었다. 에드워드는 알렌에게 한마디를 해주었다.
“헤이! X밥 브로! 빨리 진정한 프로 무대로 올라오라고. 다음에 제대로 붙어보자!”
에드워드의 말에 알렌은 웃으면서 가운뎃손가락을 훅 올렸고, 에드워드는 그저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그래도 친한 친구이기에 가능한 행동이었다.
전반전이 웨스트 릴링 FC의 3:0 압승으로 종료되자, 후반전에는 리즈유나이티드의 선수진이 대규모로 변경되었다. 1군 선수들이 대부분 자리를 채운 것이다.
그래서 후반전에는 리즈가 무난하게 경기를 주도하였다. 당연히 5부 리그 팀인 웨스트 릴링 FC와 챔피언십에서 뛰는 리즈의 경기력은 후보 선수들이 많이 있다고는 해도, 차이가 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수비적으로 경기를 운영하였지만 야금야금 골을 먹혀서, 결국 3:3이라는 스코어까지 따라왔다. 그렇게 경기가 끝나겠다고 생각할 즈음 웨스트 릴링 FC의 마지막 일격이 날아갔다.
후반전 종료 직전에 공격 일변도인 리즈에게 웨스트 릴링 FC 공격진 세 명의 선수가 멋진 역습을 날렸다.
“올라가!”
시작은 역시 마크부터였다. 리즈의 세트피스 상황에서 걷어낸 볼이 마크의 발에 들어왔다. 그리고 마크가 직접 하프라인까지 드리블을 하면서 공격수들이 침투할 시간을 벌어주었다.
“에드워드.”
그동안에 에드워드가 사이드로 돌파를 하며 마크의 패스가 그에게 향했다.
타… 탁.
에드워드는 다이렉트로 중앙으로 침투하는 라이언에게 공을 돌렸다.
‘골키퍼가 나와있네.’
라이언은 페널티 라인에서 나와있는 골키퍼를 농락하는 칩 슛을 날렸고, 공은 기분 좋게 골망을 흔들었다.
4:3! 생각지도 못한 웨스트 릴링 FC의 승리로 친선경기가 마무리되었다.
비록 리즈 선수들은 경기에서 패배했지만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분위기였다. 전반전은 거의 유소년 팀으로 경기를 치렀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친선경기를 관람하는 관중들도 박수로 선수들을 격려해 주었다.
경기를 마치고, 유소년 감독인 조쉬가 대칸에게 마무리 인사를 건네었다.
“오늘 경기 즐거웠습니다. 저희 팀 선수들에게도 좋은 경험이 되었을 겁니다.”
“네! 저희도 재미있었습니다.”
그러고는 조쉬가 에드워드와 마크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었다.
“에드워드와 마크가 잘 성장했네요. 이제는 프로 레벨의 선수라는 것이 티가 날 정도로 성장했습니다.”
“네, 한 시즌 동안에 6부 리그를 경험하면서 충분히 성장했습니다. 비록 이번 시즌도 프로 리그가 아닌 5부 리그지만, 내년에는 꼭 승격해서 프로 리그에서도 통한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합니다.”
“역시… 실전 경기 경험이 성장에 많은 도움이 되는군요.”
조쉬의 말에 대칸이 살짝 찔러보는 말을 하였다.
“혹시 프로 경험이 필요한 선수가 있으시면 저희에게 임대를 보내시죠. 확실하게 키워드리겠습니다.”
그런 대칸의 말에 조쉬는 웃으면서 답했다.
“그럴까요? 그런데… 5부 리그는 조금 아쉽긴 합니다. 제대로 경험하려면 4부 리그… 리그 2 정도는 경험해야 하지 않을까요?”
약간이라도… 긍정적인 부분이 있는 답변이었다.
“5부 리그라고는 하지만, 계속되는 승리를 통해 4부 리그로 승격한다면 어려서부터 승리의 DNA를 선수에게 새길 수가 있을 것입니다. 게다가 유소년 팀 레벨에서 임대를 고려하신다면… 리그 2에서 주전이 가능한지 여부도 고려해서 보내셔야 하구요. 하지만 저희 팀은 공격수만 아니라면 주전행입니다.”
대칸의 말에 조쉬가 고개를 끄덕였다. 임대를 보내더라도, 성장할 수 있는 곳으로 보내는 것이 중요했다.
“게다가 저는 완벽하게 선수들의 상태를 파악해서 코치들과 함께 선수의 성장을 돕고 있습니다. 저희 팀에는 코치만 무려 네 명이 있습니다. 그리고 저는 선수의 성장을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판단할 수 있는 정확한 눈을 가지고 있고요.”
“정확한 눈이요? 선수의 성장에 필요한 것을 아는?”
말도 안 되는 능력이라는 생각에 조쉬가 되물었다.
“아니면? 저랑 내기하실까요? 저는 1경기만 보고도 선수가 어떤 성장이 필요한지 파악이 가능합니다.”
“허…….”
약간 허풍 같은 대칸의 말… 그리고 대칸은 이때가 배팅할 때라는 것을 알았다.
“저랑 내기 한번 해보실래요?”
“내기요?”
“네, 제가 만약 오늘 경기에 뛰었던 리즈 유소년 선수 다섯 명에 대해 정확하게 분석한다면 제 부탁을 하나 들어주십시오. 만약 틀리면 제가 감독님의 부탁을 하나 들어드리겠습니다.”
“…만약 제가 거짓말을 한다면요?”
대칸은 씩 웃으며 답했다.
“그럼 제가 사람을 잘못 본 거죠. 그리고 감독님도 저와 친해질 일생일대의 기회를 놓치시는 거구요.”
“…….”
어처구니없는 제안에 어처구니없는 말이지만 조쉬의 입장에서는 손해 볼 것이 없었다. 게다가 이 대칸이라는 인간에 대한 궁금증도 생겼다.
“좋습니다. 하시죠.”
조쉬가 대칸이 던진 떡밥을 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