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화
* * *
“제발… 똑바로 하라고!”
필드에 지쳐 쓰러진 대니얼이 울부짖듯이 외친다.
감독인 대칸은 한숨을 쉬면서도 별다른 말을 하지 못하였다. 벌써 4골… 상대편이 엄청 잘하는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오늘은 수비 선수들은 무난하게 플레이를 했다면 여태까지 골대를 잘 지키고 있었던 골키퍼 카펜터가 삽을 펐다.
결국 대니얼의 멘탈이 나갔다. 그나마 자신의 자리에서 충실하게 수비하는 대니얼이었기 때문에 주변 선수들은 아무런 대답을 하지 못하였다.
삑삐삐~
그럼에도 다행히 시즌 네 번째 경기도 6:4로 웨스트 릴링 FC는 승리하였다.
경기를 마치고, 웨스트 릴링 FC의 선수들은 빠르게 흩어졌다. 아무래도 화가 난 대니얼과 그의 눈치를 보는 다른 수비 선수들로 인하여 팀 분위기가 불편해서 선수들은 재빠르게 사라진 것이다.
그러다 보니, 구단으로 돌아오는 작은 버스에는 프로 계약 선수 다섯 명만 타고 있었다.
대니얼은 멍한 표정으로 창밖을 보고 있었고, 대칸이 그의 옆자리에 앉았다.
“헤이 브로, 오늘도 최고였어.”
대칸의 말에 대니얼은 어처구니없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뭐? 최고? 이 감독 새끼가, 아오!”
대니얼은 미치겠지만 차마 감독이라 뭘 어떻게 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대칸은 여전히 능글거리게 웃으며 말했다.
“하하하, 왜 그래? 우리 브로 덕분에 우리 팀 리그 4연승으로 1위를 달리고 있잖아. 하하하.”
4연승, 거참 4연승을 하는 팀의 분위기가 별로라니! 대니얼도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다.
“아무리 공격력이 좋아도 수비진, 너무해… 너무하다고. 미치겠다고.”
전형적인 동네 축구 유형이었다. 반대편의 수비를 가차 없이 찢어버리지만 우리 편의 수비도 뻥뻥 뚫려버리는 전형적인 동네 축구.
물론 리그 최고의 공격수들이 오랜 시간 공을 점유하며 팀을 받쳐주고 있었지만, 반대편의 짧은 공격 시간에도 많은 실점을 하는 수비진의 허술함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어떻게 조금이라도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라면 대처를 못하냐고? 그리고 반대편 선수한테 겁은 왜 그렇게 먹는데? 이해를 할 수가 없다.”
특히, 반대편 에이스급 공격수에 대한 대응을 전혀 하지 못하는 수비진이었다. 상대적으로 공격이 약한 팀을 상대로는 좋은 플레이를 보여주었지만, 크렉급 선수가 한 명이라도 있다면 무너져 버리는 수비 선수들이었다.
“대칸, 네가 아무리 사이비 감독이라도 취약한 수비가 팀에 전반적으로 부정적인 영향을 준다는 것은 알고 있지?”
대니얼의 말에 대칸도 고개를 끄덕였다. 아니 당연히 고민하고 있던 부분이다. 계속해서 팀의 수비진이 무너지자 다른 포지션에도 영향을 주었다.
먼저, 미드필더들이 자신의 역할을 헷갈려 하기 시작했다.
공격적인 능력이 뛰어난 사이드 미드필더들은 계속되는 실점에 자신이 공격을 해야 하는 건지 수비를 해야 하는 건지 헷갈려서 우왕좌왕했다.
그리고 수비형 미드필더인 게리도 경기 조율을 전혀 할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공격에 나섰다가 역습을 허용하는 사례가 자주 발생하였다. 그래서 적극적으로 공격하지 못하여서 공수 균형을 잡을 수가 없었다.
수비수들은 더욱 위축되었다. 아무리 6부 리그라고는 해도 상위권 팀에는 에이스급 공격수가 존재하였다. 그 선수를 감당하지 못하고 수비가 무너지는 현실, 연습했던 조직력과 전술적인 부분은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아무리 대칸이 자신감을 가지라고 연습한 대로만 하자고 해도 극복이 되지 않는 상태였다.
게다가 오늘은 골키퍼까지 실수하는 장면을 연발했으니… 총체적인 난국이었다.
“대칸, 수비진에 근본적인 해결책이 필요해. 이 상태로는 절대 안 된다. 여태까지는 어떻게든 승리하였지만… 한 번이라도 강팀을 만나서 패하는 순간! 팀 분위기는 걷잡을 수 없이 떨어질 거야.”
대니얼의 말에 대칸도 알고 있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수비 선수들을 알아보고 있고 대책도 고민하는 중이야. 조금만 더 부탁한다.”
조금만 더 버텨달라는 대칸의 말에 대니얼은 한숨을 푹 쉬면서 눈을 감았다. 그러고는 자겠다는 의미에 수신호로 자리를 비켜달라고 하였고, 대칸은 ‘쉬어.’라고 말하고서는 자리를 비켰다.
대칸도 대니얼과 같은 생각이었다.
잉글랜드 컨퍼런스 북부 리그(6부 리그)는 분명히 준프로 리그였다. 하지만 이 리그에는 무려 일곱 개의 프로 팀이 존재하였다. 물론 프로 팀이라는 타이틀이 있다고는 하여도 세미프로 팀과 별 차이가 없는 팀도 있었지만, 요크 시티 FC와 키더민스터 해리어스는 웨스트 릴링 FC가 우승을 하기 위해서는 주의해야 할 전력을 가지고 있는 팀이었다.
가장 주의해야 할 팀은 요크 시티 FC, 요크 시티는 프로 팀으로 원래는 리그 1~리그 2에서 뛰던 팀이었다. 그런데 구단 재정난으로 인하여 세미프로의 영역인 5부 리그로 떨어지고 바로 6부 리그까지 떨어지는 비극을 겪었다.
그런데 올해… 하필 올해! 새로운 투자자를 유치하여 대대적인 선수단 개편이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모든 선수와 프로 계약을 맺어서 5부 리그를 넘어서 4부 리그까지 다시 올라가겠다고 출사표를 던진 상태였다.
“시즌 일곱 번째 경기가 요크 시티전이지.”
그리고 2주 후에 요크 시티와 리그 경기가 예정되어 있었다. 게다가 요크 시티는 웨스트 릴링에서 매우 가까운 지역 연고 팀으로 요크 시티의 입장에서 위성 지역을 연고로 하고 있는 웨스트 릴링에게 진다는 것은 치욕스러운 일이었다. 그래서 이를 악물고 웨스트 릴링 FC를 상대할 것이 예상되었다.
“게다가 여덟 번째 경기가 키더민스터 해리어스…….”
설상가상으로 우승 경쟁을 해야 하는 핵심 2팀과 경기가 연달아서 예정되어 있었다.
* * *
한국 인터넷에서는 아주 재미난 소재가 떠돌고 있었다. 특히 축구 관련 커뮤니티인 에X코리아나 사X라인에서는 이 주제를 가지고 준프로급 전문가들의 논쟁이 일어나고 있었다.
- 축구 콘텐츠 BJ 대칸이 축구 감독이 되었다면서?
- 아~ 그거 콘텐츠야 콘텐츠! 꿀잼 콘텐츠임!
- 어그로 아님?
- 신종 어그로인 듯. 크크크
그런데 커뮤니티에서 활동하는 네임드가 확인하고 말했다.
- 이거… 알아보니 진짜인 것 같음. 영국 축협 홈페이지에도 게재되어 있고, 혹시나 해서! 영국 축협에 이메일로 문의해 봤는데… 맞다는 답장이 왔음.
나름 신뢰도 있는 네임드의 말에… 분위기가 순식간에 변하였다.
- 대박…….
- 에이 형! 농담하지 말고?
- 저분이 하신 말이면 보통 레알인데…….
- 대칸 정말? 영국 축구팀 감독 된 거임?
- 그래. 나도 홈페이지에 웨스트 릴링 FC와 관련해서 ‘감독 대칸’이라고 적힌 것 봤다니깐. 링크 건다 직접 봐라.
- 헐…….
대칸이 진짜 영국 6부 리그에 있는 웨스트 릴링 FC의 감독이 되어서 현실 축구 매니저를 한다는 소식은 화제였다. 그러면서도 사람들은 모두 게임과 현실은 다르다며 대칸이 어떻게 운이 좋아서 감독이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1년 뒤에 처절한 실패를 경험하고 한국으로 복귀할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래도 축구 관련 종사자들과 축구 커뮤니티 사람들의 관심도가 높아졌으며, 웨스트 릴링 FC에 대한 정보를 찾아보고 이야기하는 빈도수가 늘어났다.
* * *
요크 시티전이 다가왔다.
아침부터 대칸은 요크 지역 신문을 보고 있었다. 신문에서는 지역 구단인 웨스트 릴링 FC와 요크 시티에 대한 분석과 예상을 하고 있었다.
시즌 초반에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웨스트 릴링 FC! 하지만 진정한 시험은 리그 최강 팀인 요크 시티와의 경기를 통해 증명을 해야 할 것이다.
같은 지역의 더비전에 대해 기대감을 높이는 신문 기사였다. 그리고 여태까지의 경기보다 이 경기가 진정한 웨스트 릴링 FC의 평가전이라고 보도하였다.
“쩝.”
아무래도 대칸이 예상했던 것보다 많은 관심을 받게 된 경기였다. 그는 여태까지 준비한 것을 다시 상기하면서 경기를 준비하였다.
“대칸 감독님, 오늘이 이번 시즌 최대 입장 관중 기록입니다.”
구단 직원의 보고에 대칸도 관람석을 보고서는 고개를 끄덕였다.
뉴레인 스타디움에 오래간만에 2,000명이 넘는 관중들이 들어와 있었다. 웨스트 릴링 FC의 관중들도 많았지만 같은 지역의 라이벌인 요크 시티의 팬들이 많이 입장한 것이다.
“다들 긴장 풀어.”
대칸을 비롯한 아담 수석 코치는 선수들에게 계속해서 긴장하지 말라고 하였지만… 대부분의 선수들이 많은 관중들 때문에 긴장한 채로 경기가 시작되었다.
“…이게 우리 팀의 현실인가?”
후반 40분, 경기 종료 5분을 앞두고 요크 시티가 3:5로 웨스트 릴링 FC를 2점 앞서고 있었다.
전반전에는 매우 치열했다.
9분에 에드워드의 돌파를 시작으로 좋은 위치에서 패스를 받은 마크가 수비수들을 이끌어서, 노마크의 라이언에게 어시스트를 하고, 라이언은 호쾌한 슛으로 마무리하였다. 1:0.
20분, 요크 시티도 질 수 없다는 듯이 선수들의 거센 공격을 지속하였다. 게다가 이미 모든 팀이 알고 있듯이, 웨스트 릴링 FC의 약점은 수비! 수비 그 자체였기 때문에 사이드를 통해 돌파한 선수의 센터링에 헤딩슛으로 가볍게 한 점 허용하였다. 1:1.
27분, 마치 드라마처럼 완벽한 플레이가 나왔다. 수비하던 마크가 반대편 공격수의 공을 빼앗고 마크에게 다이렉트로 롱패스를 하였으며, 수비수들이 에드워드와 라이언을 철저히 봉쇄하자, 마크가 직접 돌파하여 마무리! 2:1.
41분, 요크 시티의 공격수들이 2:1 패스로 시원하게 수비수를 농락하고 돌파하였다. 대니얼이 어떻게든 막아보려고 태클까지 하였지만… 공은 무심하게 골대를 갈랐다. 2:2!
문제는 후반전이었다.
후반전이 시작하고, 초반에는 비슷하게 경기가 흘러갔다.
55분! 대니얼이 한 태클이 발이 높았다. 그래서 퇴장당해 버렸다. 대니얼의 퇴장… 수비진이 무너졌다는 말과 동일했다.
그 이후 경기는 완벽하게 요크 시티 쪽으로 흘러갔다.
요크 시티의 공격수와 윙, 윙백까지 집요하게 양쪽 사이드를 파고들기 시작했다. 그래서 60분, 66분, 69분 10분 만에 3골을 연속으로 실점하였다.
참지 못한 대칸은 다급하게 윙들을 수비수로 교체하고 공격수들까지 수비를 백업하면서 분위기를 진정시켰지만, 전방에 유일하게 남아있던 에드워드는 제대로 지원받지 못하여 80분에 간신히 1골을 만회하는 것으로 경기가 마무리되었다.
“수고하셨습니다.”
요크 시티의 감독이 웃으면서 대칸에게 악수를 청해왔고, 대칸은 최대한 여유롭게 웃으면서 악수를 받아주었다. 그렇지만 대칸의 속은 부글부글 끓고 있었다.
경기를 마치고 대기실에 남아있는 선수단의 분위기는 장례식장보다 더욱 암울했다. 특히, 퇴장당한 대니얼은 누가 봐도 분노한 상태였다. 자기 자신에게 실망한 모습이 역력했다.
대칸은 자신이 여기서 좋은 이야기를 할 것 같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서, 아담에게 경기 피드백을 부탁하고 먼저 자리를 떠난다.
경기장에서 나온 대칸은 집으로 곧장 향하였다. 그리고 집에 도착하여 냉장고에 있는 차가운 맥주를 한 캔 까서 원샷을 하였다.
“하아…….”
차가운 맥주가 몸에 들어오면서 조금 진정이 되긴 했지만 여전히 분노에 타오르는 대칸이었다.
다른 맥주 캔을 들고서 거실의 소파에 앉았다. 그러고는 맥주를 마시면서 휴대폰을 들어 전화를 한 통 걸었다.
뚜… 뚜…….
수화음이 잠시 가더니 곧 상대편이 익숙한 한국어로 전화를 받았다.
- 대칸 님, 영국에서 잘 지내고 계신가요?
대칸은 최대한 공손한 목소리로 말을 하였다.
“네. 저희 팀이 오늘 패배하였지만 잘~ 지내고 있습니다.”
- 허허허… 지셨습니까? 시즌 첫 패배인가요?
“네! 제발 코치님 부탁드립니다. 저희 팀에는 코치님이 필요합니다.”
-아 네…….
잠시 전화에는 정적만 흘렀다.
- 조금만, 조금만 시간을 더 주십시오. 부탁드리겠습니다.
“네! 언제든지 좋으니 결정하시고 연락 주시길 부탁드리겠습니다.”
전화를 끊은 대칸은 아쉬운 표정으로 남은 맥주를 마셨다. 그러고도 냉장고에 있는 맥주로 부족하여… 독한 위스키를 몇 잔 마시고서야 패배의 쓰라림을 잊고 잠에 들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