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VVVIP 차원 쇼퍼-201화 (201/212)

7. VVVIP 차원 쇼퍼

재밌다.

이런 녀석이랑 놀 때가 재밌다.

센스가 좋은 녀석. 사실은 사치스러운 물건들을 좋아하면서 자기가 그걸 좋아한다는 사실도 모르고 있는 웃기는 녀석.

경험은 쥐뿔도 없어서 겁만 많지만 막상 좋은 걸 줘 보면 솔직하게 반응이 터져 나온다.

그러니까 지금 이 순간이, 너무 재밌다.

“서, 선배, 그냥 아무거나 줘요……. 저는 평범한 가난뱅이라서 이런 거 봐도 몰라요…….”

평범하지도 않고 가난뱅이도 아닌 녀석인데, 이럴 때 보면 여전히 고등학생 때의 서민서 같다. 그게 웃기고 귀엽다.

“조, 조심! 그거 막 만져도 돼요?”

사실 서민서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그간 나를 따라다니며 이제는 명품관에 나름 단련이 되었으니까.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곳 ‘라니케아 시장’의 명품관에서만큼은 처음 지구의 명품관을 갔을 때처럼 바짝 긴장이 되는 모양이었다.

하긴. ‘라니케아 시장’이 아닌가? 타키넷에 존재하는 모든 시장의 정점에 있는 최상위 시장.

거기에 지금 우리가 들어와 있는 ‘용의 둥지 명품관’은 그 분위기만으로도 사람을 압도하는 면이 있었다. 알라딘이 지니의 램프를 가지고 나온 그 동굴 속처럼 온갖 반짝이는 보물들이 아무렇게나 막 쌓여 있는데, 그게 전부 인테리어나 공짜로 주는 사은품에 지나지 않았다. 진짜 물건들은 천장에서 내려오는 성스러운 휘광에 둘러싸인 채 허공에 둥실둥실 떠 있다. 가격은 싼 게 수백만 타키온이고, 심지어 억대가 넘어가는 상품도 있다.

감히 만지기는커녕 숨결도 닿게 해서는 안 될 것 같은 그런 보물들 사이를 돌아다니며 이거 입어 봐라, 저거 만져 보라 얘기를 하니까 서민서가 겁을 먹었다.

하지만.

“바보야, 그래도 네가 쓸 건데 네가 직접 만지고 느껴 봐야지. 자, 이거 한번 해 봐.”

나는 휘광에 휩싸인 채 허공에 둥실 떠 있는 어린 용 모양의 머리 장식을 휙 낚아채서 서민서에게 내밀었다. 가격이 어디 보자… 2,000만 타키온이다.

움찔.

서민서가 받아 들기는커녕 뒷걸음질을 쳤다.

나는 씩 웃었다.

“걱정 마. 돈 많아.”

아닌 게 아니라 타키온은 진짜 엄청나게 많았다. 지금 이 순간에도 실시간으로 팍팍 늘어나는 중이고.

아갈타와 다투고 센타울과 동맹을 맺고 하는 그 과정이 엄청난 홍보 효과를 일으킨 덕에 침묵의 해적단이라는 상표로 어마어마한 밀수 물자를 팔아넘긴 덕이었다. 이게 한 번 입소문을 타자 상상도 못 한 거액이 타키넷 계좌에 찍히는 경험을 했다.

하지만 진짜는 그게 아니다.

‘이번 전쟁은 사활을 걸고 돈을 쏟아부어야 하니까.’

때문에 우리는 지구가 가진 가장 값비싼 자원들, 그러니까 유물들도 처분하는 중이었다.

내가 직접 하나하나 감정을 해서 그중 활용도가 떨어지는 유물들을 팔아넘기고 있다. 릭과 아몬이 달라붙어서 총력을 다해 가격을 만들고 판촉을 한다.

세상에서 가장 값비싼 자원, 유물.

제일 허접한 유물도 잘 팔아넘기면 1억 타키온은 가뿐하게 남길 수 있었다. 보통 수준만 돼도 3억 타키온은 우습다.

아틀라스 클럽이 그간 모아 온 수 천 개의 유물. 그리고 침묵의 해적단으로 활동하며 만들어 놓은 밀수로. 이 두 가지가 합쳐져 끝도 없는 현금 흐름을 만들어 낼 수 있었다.

물론 변형된 대계에 써야 하는 유물은 남겨 놓아야 하지만, 그걸 제하고서도 돈이 마를 걱정 따위는 없었다. 행여나 역추적을 당할까 조금씩 신중하게 물량을 풀고 있는데도 그랬다.

그러니 서민서 장비에 아낌없이 돈을 투자할 수 있었다.

“서민서, 알지? 넌 이번 전쟁의 핵심이야.”

지난번에 녀석이 결계에 부딪혔을 때 속으로 얼마나 놀라고 후회했던가? 이번에는 절대 그런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지구를 위해서도, 나를 위해서도.

“네가 해내느냐 못 해내느냐에 따라 승패가 갈릴 거야. 그래서 내가 널 직접 데리고 나온 거야. 오늘은 네 머리부터 발끝까지 안팍으로 전부 다 구석구석 샅샅이 내가 케어할 테니까, 너는 그냥 이건 어떤지 저건 어떤 느낌인지 하나하나 맛보고 즐기기나 해.”

두고 보라고.

걸어 다니는 전함 수준으로 템발을 먹여 줄 테니까.

그런데… 서민서가 대답이 없었다. 갑자기 심장이 빠르게 뛰고 얼굴에 열이 오르는 게… 뭐지?

이상해서 녀석의 얼굴을 봤더니 자기 혼자 얼굴에 부채질을 하면서 민망해하고 있다.

뭐야? 왜 그래?

“아니, 선배가 말을 이상하게 하잖아! 구석구석, 안팍, 즐겨라… 아, 진짜!”

야이, 미친……!

* * *

현재 타키넷에서 내 구매 등급은 VVVIP 등급이다.

똥을 먹는 벌레 등급에서 시작해서 우주에 사는 신비한 동물 등급을 지나 VVVIP 등급. 뭔가 작명 방식이 확 달라진 것 같았지만… 결국 이차원들에서도 VVVIP의 의미는 동일하다는 것 정도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Very Very Very Important person.

그게 나다. 타키넷 최고 등급.

그동안은 지구가 발각될까 봐 타키넷에서 전략물자는 구매하지 않았지만, 지금은 전력 질주의 시기. 지구 전체와 동맹들까지 무장시킬 장비들과 그 소재들을 미친 듯이 사들였더니 순식간에 구매 등급이 천장을 걷어차 버렸다.

VVVIP 등급의 구매자.

그런 존재는 최상위 시장이라는 라니케아 시장에서도 드물었다. 한 번 나타나면 사방에 행복과 돈을 뿌리는 재신財神과도 같은 존재랄까?

오늘도 그랬다.

나는 서민서에게 장비를 골라 주고 있지만 동시에 내 장비도 챙기고 있었다.

나에겐 아주, 정말 아주 많은 장비가 필요했다.

‘적어도 지속성 신살 병기를 막아 낼 정도는 되어야지.’

폭발형 또는 1회성 신살 병기와 지속성 신살 병기는 전혀 달랐다. 이계에서 온 거대 로봇 같은 것이 지구에 상륙한다고 상상을 하면 간단하다.

그때는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머리가 깨지면서 주먹 대 주먹으로 드잡이질을 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괴물을 상대할 가능성을 가진 건 유물을 다루는 나밖에 없다.

‘유물을 제대로 다루기 위해서라도 수많은 장비가 필요해.’

100퍼센트 길들인 장비들과 동화하면 동화할수록 장비들의 힘을 내 것처럼 쓸 수 있게 된다. 그걸 이용해서 유물이 주는 부담을 줄일 수 있다는 걸 최근에 깨달았다. 그래서 목표를 세웠다.

‘전쟁 때까지 1,080개의 장비를 다룬다.’

현재 다룰 수 있는 장비의 개수가 500개가 좀 안 되니까… 짧은 시간 내에 두 배가 넘는 성취를 이루어 내야 했다.

나는 각오를 다졌다. 그리고 각오를 다질 때면 모두가 하는 의식, ‘장비 지르기’를 시작했다.

우리를 따라오던 직원을 불렀다.

“여기서 저기까지 다 주세요.”

[네?]

침착한 표정이던 직원이 화들짝 놀란다. 나는 다시 말했다.

“여기서 저기까지, 다 달라고요.”

[아, 네! 알겠습니다!]

“그리고 어디 보자… 물건을 한 번에 보고 싶은데 좀 불편하네…….”

내가 그렇게 중얼거리자 따라오던 직원이 조심스레 물었다.

[죄송합니다. 혹시 구매자 등급 VVVIP가 맞으신지요?]

“네. 맞습니다.”

등급을 확인시켜 주자 한결 더 정중해진 직원이 고개를 숙였다.

[실례했습니다. VVVIP 전용 공간이 따로 있으니 그곳으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VVVIP를 위한 공간으로 안내되었다.

자르륵.

자락.

한 걸음 걸을 때마다 바닥에 깔린 동전들이 소리를 낸다. 세상에는 무한한 차원이 있고, 그 무한한 차원은 저마다 황금처럼 귀중한 금속들을 가지고 있었다. 산호색, 에메랄드 바다색, 가을 하늘색, 노을 지는 밀밭색 등등… 각양각색으로 빛나는 금속들이 예쁜 동전으로 깎여 산을 이루고 있었다. 각 나라의 기념주화를 모으는 사람이 있듯이, 누군가가 세상 모든 차원을 여행하고 그 기념주화를 한 장소에 모아두었다면 그곳이 바로 이곳일 터이다.

용의 둥지 명품관 한가운데에 가장 높이 쌓여 있는 동전의 산. 그 꼭대기가 바로 VVVIP를 위한 공간이었다.

나랑 서민서가 안락의자에 편하게 앉아 명품관 전체를 내려다보며 카탈로그에 있는 물건들을 주문하기만 하면 알아서 물건들이 우리 앞으로 재깍재깍 대령되었다. 극상의 호사랄까.

덕분에 서민서 물건 골라 주기도 훨씬 수월해졌다.

“민서야, 이 셔츠 입어 봐.”

VVVIP에게는 옷을 벗고 입고 하는 그런 귀찮은 일 따위는 생기지 않는다. 단추를 여닫을 필요도 없다. 담당 직원이 손을 한 번 흔들면 상품이 유령처럼 저절로 몸을 투과하여 저절로 입혀지고 벗겨지고 한다.

연노란색의 셔츠는 민서의 하얀 얼굴과 무척 잘 어울렸다. VVVIP 공간으로 오면서 계속 좌불안석 어쩔 줄을 몰라서 두리번거리던 서민서는 셔츠가 입혀지는 순간 분주한 움직임을 딱 멈추고 입을 벌렸다.

“우와……!”

역시. 반응이 솔직하다.

“좋지?”

“너, 너무 편해서 안 입은 것 같은데요? 그리고 이 영력……! 영력이 훨씬 수월하게 흘러요!”

몸을 스륵 흔들어 보고는 말했다.

“그리고 셔츠가 몸에서 미끄러지는 이 느낌… 이거 설마 방어도 되는 건가요? 어지간한 공격에 맞아도 그냥 타고 흐를 것 같은 느낌인데?”

너무 정확해서 놀랐다.

‘역시. 타고난 센스가 좋아.’

명문가에서 태어났다면 데미안 도련님 뺨을 치는 훌륭한 취향을 보여 줬을 거다.

나는 만족스럽게 웃으며 다음 상품을 추천했다.

“좋지? 자… 거기에는 이 허리띠 한번 해 봐.”

“헉……!”

허리띠를 하는 순간 두 손으로 입을 틀어막는 서민서. 손 사이로 깊게 파인 웃음이 보였다.

거봐, 좋지? 좋다니까?

“허리띠… 허리띠가 이럴 수가 있는 건가요? 이건… 정말 말 그대로 차원이 다른……!”

하여튼, 쿵! 하면 짝! 하고 알아들으니 이 얼마나 재미있냐.

“자, 이 양말도 신어 봐.”

“으악! 선배! 선배! 제가 신을게요! 제가! 신겨 주지 마요!”

그렇게 나는 종일 서민서를 데리고 쇼핑을 다녔다.

그중에서도 기억에 남는 장소는 창조신의 꿈결 속에서 가끔씩 발견되는 ‘태고의 뱀’을 요리하는 집이었다. 창조신의 꿈결 속에서 태동하는 세계의 씨앗을 먹고 산다는 이 뱀은, 존재 자체가 신화의 영역에 걸쳐 있기 때문에 가격이 기본 억대를 넘어갔다.

태고의 뱀은 장비를 만들 때나 요리해서 먹을 때나 신선도가 가장 중요했다. 손님이 뱀을 고르면 그 자리에서 바로 회 쳐서 그 껍질과 뼈는 곧장 원하는 장비로 제작해 주고 남은 살은 영력을 듬뿍 품은 각종 재료와 함께 쥐어서 한 입 크기로 초밥처럼 내주었다.

차원 문명들 사이에서도 가장 값비싼 장비, 가장 값비싼 음식이 바로 이 태고의 뱀 요릿집. 나는 그곳을 서민서와 함께 찾았다.

뱀 한 마리를 골랐다. 나에게도 서민서에게도 최고의 궁합을 보이는 녀석으로. 나는 그 뱀의 척추와 머리뼈를 고스란히 살려서 전투 꼭두각시를 만들어 달라고 주문했다. 영력을 불어넣으면 차르르 소리를 내며 뼈로 된 뱀이 내 몸을 휘어감아 공격을 방어하기도 하고 날쌔게 달려들어 상대를 물거나 꽉 조여서 묶어 버리기도 하는 활용도가 높은 무기였다.

서민서에게는 뱀의 가죽으로 만든 조끼와 신발을 만들어 주었다. 적의 공격이나 결계에 부딪혔을 때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고 나서 태고의 뱀 살로 쥐여 주는 요리를 한 점 한 점 먹었다.

입에서 살살 녹고 배 속과 영혼까지 살살 녹는다. 농밀한 영력이 영혼 깊숙한 곳에서부터 퐁퐁 솟아오른다.

[영력을 소화하는 데 한 반년은 걸릴 겁니다. 대부분은 소화하지 못하고 빠져나갈 테지만, 빠져나가는 건 빠져나가는 대로 막대한 힘을 선사해 주지요.]

간단하게 말해서 반년짜리 영력 버프였다. 단순 계산해 봐도 내 영력이 3배는 늘어난 느낌이었다. 그것도 아주 질 좋은 영력으로.

이 효과 보라. 괜히 한 마리당 1억 타키온을 넘는 게 아니다.

그뿐이랴? 맛도 좋다.

서민서가 눈을 감고 으음- 소리를 낸다. 맛있지, 이것아?

“푸하- 맛있어…….”

만족스럽게 숨을 내쉰 서민서가 나를 힐끗 바라보며 말했다.

“역시 재밌다. 선배 따라 다니는 게 제일 재밌어.”

당연하지. 특별히 맛있는 것, 좋은 것만 주는데 재미있어야지.

“근데 그래서 난 조금 걱정돼요.”

“뭐가?”

“선배, 선배는 이 일들이 다 끝나고 나면 뭘 할 거예요?”

나? 글쎄……? 그냥 맛있는 것 먹고 좋은 물건 쓰면서 행복하게 살지 않을까? 근데 뭐가 걱정된다는 거야?

그렇게 말했더니 서민서가 배시시 웃으면서 말했다.

“그럼 나도 꼭 껴 줘요.”

어딘가 먼 곳을 응시하는 눈빛이었다.

“난 뭐 대단한 전사도 아니고 영웅도 아니잖아요. 그냥 평범한 애였는데, 선배를 따라다니다 보니 어느새 여기까지 왔죠. 그래서… 이 일이 다 끝나고 나면 어떻게 되는 거지? 하는 걱정이 들어요. 어느새 난 내가 알던 서민서랑은 200광년은 멀리 떨어져 버린 것 같은데… 이런 내 모습은 생각해 본 적도 없으니까 어떻게 살아야 하나 싶었죠.”

하지만 선배가 있으니까라고 서민서는 말했다.

“이게 다 끝나고도 선배 따라다니면 재밌겠죠. 그러니까, 꼭 나도 껴 줘요.”

하얗고 하얀 얼굴이 맑게 웃는다.

그리고 [만상공감]이… 참 묘하다. 녀석이 나를 보고 집중하는 감각이 내게도 고스란히 전달된다. 녀석의 웃는 얼굴. 녀석이 나를 보는 시선. 우리 사이에 빛이 드리운 것만 같다.

나는 나도 모르게 녀석의 뺨을 살짝 건드렸다. 서민서가 놀란 표정을 짓는다. 녀석의 눈동자가 짧게 파르르 흔들렸다.

나도 놀랐다.

얼마나 놀랐는지, 나도 모르게 상체를 기울여서 서민서와 입술을 맞추었다.

말랑하게 눌렸다가 느리게 떨어지는 입술.

가깝다. 녀석과 내 눈동자가 서로의 눈을 비춘다.

느리게 떨어지며 나는 말했다. 그리고 확 달아오른 얼굴의 열기.

“아. 역시 이겨야겠네, 이번 전쟁…….”

서민서가 눈을 깜빡깜빡거리다가 쭈뼛쭈뼛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꼬, 꼭 이겨야겠어요. 다, 다 뿌셔 버려야지…….”

우리는 그렇게 살벌하고 확고한 필승의 각오를 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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