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VVVIP 차원 쇼퍼-198화 (198/212)

4. 휘오의 꿈

침묵의 해적단의 선전포고는 비장했지만 아갈타는 그걸 허풍이라고 깎아내렸다.

- 근거지조차 숨기고 벌레처럼 은밀히 다니는 테러 조직이 선전포고? 우습다. 언제고 너희가 모습을 드러내는 날이 너희가 항해하는 마지막 날이 될 것이다.

아갈타는 그렇게 대범한 척 응수를 하며 내부 다지기에 들어갔다. 내미슈의 개척 군단에게 생각보다 많은 병력을 잃는 바람에 부대도 재편성해야 했고, 각지에서 무리하게 빼 온 병력들도 조속히 돌려보내야 했으니 추스릴 시간이 필요했던 것이다. 겸사겸사 우리가 보여 준 신살 병기에 대한 대비 태세도 갖추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군사행동을 하지 않았다 뿐이지 개척 지역에 대한 그들의 욕심마저 멈춘 것은 아니었다. 그들은 개척 지역 내 차원 도시와 공장 등의 모든 세력에게 통보했다.

[여러분은 현재 아갈타의 영토를 점유하고 있습니다. 세 달의 유예기간 동안 모든 인적자원과 물적 자원, 보유 기술과 자산, 점유한 차원의 크기와 상세 지도를 제출하도록 하십시오. 제출을 거부할 경우 추방 조치가 이루어질 수 있음을 알려 드립니다.]

문구는 예의 바르지만 그 내용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아무것도 없는 오지로 진출한 개척민들이 피땀을 흘려 손수 일궈 낸 모든 것을 껍질도 안 벗기고 홀랑 빼앗아 삼키겠다는 속내가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요구였다.

[이걸 따라야 하나? 이제라도 도망쳐야 하나?]

[맞서 싸우는 건… 아니다. 역시 불가능하다.]

뒤척뒤척, 개척민들의 고심은 날로 깊어져만 갔다.

* * *

나는 별의 탄생을 생각했다.

태초의 빅뱅이 있고 얼마 뒤, 우주먼지만이 떠돌아다니던 혼돈의 때에 분명 어딘가에선 최초의 구심점이 생겨났을 것이다. 평범한 수소 분자나 헬륨 분자처럼 전혀 다를 게 없는 작은 우주먼지 하나가 구심점이 되는 순간을 생각했다. 그리고 그 주변으로 자꾸만 우주먼지들이 붙어 덩치를 키우고, 또 키우다가 어느 순간 그 중심점에서 핵융합이 일어나며, 최초의 빛이 터져 나오고 마침내 태양과도 같은 별로 거듭나는 그 장대한 역사를 생각했다.

지금 개척 지역이 어쩌면 그렇지 않을까?

아갈타와 내미슈의 전쟁이라는 거대한 폭발이 휩쓸고 간 이곳. 개척민들은 혼돈 속의 우주먼지들처럼 다들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고 이리저리 수런거리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그들을 한 점으로 끌어모으는 힘은 무엇일까?

나는 그걸 자신감이라고 생각했다.

갈 길을 잃은 자들은 자신감을 갖고 앞장서는 자의 뒤를 좇기 마련이었다. 마치 중력에 이끌리듯이.

“방법은 있습니다. 아갈타와 싸워서 이 땅을 쟁취하는 겁니다.”

물론 자신감만으로 일이 다 잘 풀리는 것은 아니었다. 언제나 처음엔 강력한 반발이 되돌아왔다.

[하… 가능성이 있겠습니까? 저쪽엔 수백, 수천 개의 신살 병기가 있고 멸세 병기까지 있습니다. 체급이 너무 달라요. 그리고 이번 전쟁을 보면 아시겠지만, 미친놈들입니다. 위협을 해 봐야 오히려 역효과예요.]

그러나 자신감이라는 건 반발에도 눌리지 않아야 하는 것. 나는 오히려 더욱 기세를 일으켜 바싹 다가서서 물었다.

“당신 생각은 어느 쪽입니까? 가능성이 낮아서 이 아이디어 자체가 싫다는 겁니까, 아니면 아이디어 자체는 너무나 좋지만 가능성이 희박해서 아쉽다는 겁니까?”

[당연히 아쉽지요! 마음 같아서는 아갈타 놈들 뺨을 백 번이라도 치고 싶어요……! 시민들의 재산과 목숨이 걸렸다고요! 얼마나 절박하고 중요한지 몰라서 물으십니까?]

하소연하는 차원 도시 시장에게 나는 단호하게 말했다.

“그러면 투자하시지요. 어떤 싸움이 충분히 중요하다면… 승산이 마음에 들지 않아도 일단 싸워야 하는 겁니다. 우리 침묵의 해적단은 승산이 어떻든 싸울 겁니다. 당신까지 싸우라는 소리는 안 합니다. 최소한 투자라도 하세요.”

[…위대한 개척자, 일란 님의 말을 인용하셨군요.]

맞다. 무르물랑이 골라 준 말이었다. ‘그 탐험이 충분히 중요하다면 가능성이 마음에 들지 않아도 일단 출항하라’. 개척자들에게는 무조건 먹힐 거라고 했었다. 일란은 그들에게는 부모이자 스승과도 같다고.

아니나 다를까, 질색을 하던 차원 도시의 시장이 눈을 질끈 감고 물었다.

[일이 틀어지면 어떻게 합니까? 우리 시민들은요?]

나는 답했다.

“일단은 밀수로 처리할 거라 몰랐다고 잡아떼도 되는데… 그게 안 통할 것 같거든 침묵의 해적단이 협박했다고 하십시오.”

시장이 놀라서 눈을 번쩍 떴다.

[네?]

“조만간 우리 근거지를 공개할 겁니다. 첫 번째 전장은 여러분의 도시가 아닌 바로 우리 해적단의 근거지가 되겠지요. 만약 그 공방전에서 우리가 패배한다면… 그땐 잡아떼십시오. 살 사람은 살아야죠.”

시장이 눈을 끔뻑였다. 그는 부끄러운 기색이었지만, 결국 내 제안을 거부하지 않고 받아들였다.

* * *

한 명, 또 한 명.

나는 개척 지역의 세력들을 하나씩 설득해 나갔다.

신살 병기의 제조를 위해 필수적인 자원이나 기술을 가진 세력은 반드시 회유했고, 그렇게 회유된 차원 도시와 공장들에 세계수들을 옮겨 심었다.

휘오는 말했었다. 퇴화한 형제자매들을 되돌리려면 수십, 수백 개의 차원을 아우르는 세계수의 숲이 필요하다고.

나는 그 계획을 따를 생각이었다.

케사리니 아몬은 말했다.

[세계수는 본래 3,000년 전에 되게 잘나가던 차원에서 신으로 추앙받던 종족이었어. 세계수의 사기적인 능력 탓에 평의회 이사 차원까지는 안 돼도 그 아래 단계로는 간혹 꼽힐 만큼 잘나가는 차원이었지. 그런데 태생이 너무나 강력했기에 발전이 없었고… 결국 자꾸 뒤처지다가 뒤통수를 맞고 멸망했어. 가끔 있는 일이야. 1,000년에 한 번 정도. 잘나가던 차원 문명이 완전히 멸망하는 거.]

그리고 덧붙였다.

[그러니… 소시민, 네가 지금 하는 일은 3,000년 전의 위대한 종족을 되살리는 거야. 엄청난 고고학이지. 내 가슴이 다 뛴다.]

하지만 아몬의 생각과 달리 내 목표는 고고학 같은 게 아니었다. 내겐 지금 그런 여유가 없었으니까.

나는 철저히 실리적인 입장에서 세계수의 숲을 조성하는 계획을 추진했다.

그건 바로 지구에 유통 혁명을 일으키기 위해서였다.

텐! 나인!

휘오의 말 못 하는 형제자매들이 개척 지역 곳곳으로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세븐! 식스!

일곱 그루의 세계수를 인도하는 건 서민서.

- 아아. 선배, 들려요? 서민서 세계수와 함께 차원을 넘습니다!

포! 스리!

- 와아……! 이게 휘오가 보는 세상이구나? 미쳤다!

세계수의 힘을 끌어내서 원하는 곳으로 차원을 뛰어넘으며 서민서는 환호성을 질렀다. 아직 의식을 가지지 못한 세계수였기에 서민서의 간섭을 고스란히 받아들였고, 서민서는 마치 내가 유물을 다룰 때 느끼는 것과 비슷한 아득한 고양감을 느꼈다.

- 아, 이제 알겠어……!

안 그래도 공간 도약에서 차원 도약으로 초능력이 진화를 했는데, 서민서는 이 임무를 거치며 다시 한번 더 능력의 향상을 이끌어 낸다.

투! 원! 도약!

파아아앙-!

서민서가 세계수를 끌어안고 차원을 도약할 때마다 지구상의 모든 이가 느낄 만한 차원의 파동이 몰아쳤다. 시공간이 늘었났다가 다시 줄어드는 게 육안으로 확인이 될 정도였으니 모를 수가 없었다.

서민서가 떠날 때마다 전 세계적인 카운트다운이 있었고, 대부분의 지구인은 이게 무엇인지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했지만 아무튼 우리 지구가 차원 너머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증거라는 것을 알고 그때마다 크게 환호성을 보냈다.

우와아아아!

가라!

나는 떠들썩한 환호성을 들으며 계산을 마쳤다.

다 성장한 세계수가 휘오까지 합치면 총 여덟 그루. 거기에서 각각 떼어낸 가지가 3주株씩 총 24주.

결국 개척 지역 각지로 흩어진 세계수는 묘목까지 다 합치면 총 서른두 그루였다.

‘타키온을 비 오듯이 쏟아붓는다면 묘목들도 보름이면 게이트를 만들 수 있을 만큼 성장한다.’

그렇게 되면 숲의 토대가 완성되는 것이다. 차원과 차원 사이로 줄기를 내고 가지를 내는 세계수가 서로 거미줄처럼 얽혀서 거대한 숲을 이루고 나면, 그 영역 내에서는 차원 간에도 하나의 세계처럼 빠른 물자 이동이 가능해졌다.

특히나 세계수의 종주宗主라고 할 수 있는 휘오가 있는 지구는 특별했다. 모든 길이 로마를 통하듯 개척 지역의 모든 차원이 지구를 향하게 될 것이다.

데미안 도련님은 내 설명을 듣고 감탄했다.

“이래서 물자의 운송 시간과 비용이 제로가 된다고 말씀하셨던 거군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휘오의 염원을 듣고 떠올렸어요. 휘오의 염원이 오히려 지구를 구하는 길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죠. 세계수의 숲은 빠른 신살 병기의 제조를 위한 고속도로가 되어 줄 거예요.”

다만, 이젠 아갈타에게 지구를 들킬 확률이 높아졌다. 그 전에 어떻게든 신살 병기를 완성해야겠지.

그리고 보름이 지났다.

지구 곳곳에서 수백 개의 게이트가 열렸다.

우와아아아-!

또다시 환호성이 터졌다.

이번에는 주로 기술자들에게서 나온 환호성이었다.

게이트에서 값비싼 전략물자들과 뛰어난 이계 기술자들이 끝도 없이 쏟아져 나왔기 때문이다.

이 모든 게 우리를 신살 병기라는 목표까지 날려 줄 연료였다.

그 풍족한 풍경을 바라보다가 나는 눈을 감고 [만상공감]을 확장했다.

휘오가 느껴졌다. 창조신의 꿈결 속을 뻗어 나간 휘오의 가지가 차원 곳곳으로 흩어진 다른 세계수들의 가지와 맞닿는 게 느껴졌다. 휘오의 감각이 시냅스처럼 서로 맞닿은 가지와 가지를 타고 아주 멀리까지 뻗어 나간다. 한 곳에서 날린 이파리가 수십 개의 차원을 건너 다른 세계수의 둥치에 떨어진다.

숲.

세계수의 숲.

수백 개의 차원을 품은, 하나의 차원단을 아우르는 거대한 숲.

아직은 어리디어린 숲이었지만 벌써 그 장대함에 가슴이 벅차올랐다.

나는 물었다.

“휘오, 우냐?”

하지만 휘오는 대답하지 않았다. 돌아보니 연두색 머리의 꼬마가 가지에 앉아서 펑펑 울고 있다. 그 주변으로는 이제 막 태어난 세계수들의 어린 정신체들이 참새처럼 자그마한 몸집을 하고 휘오 앞에 올망졸망 모여 있었다.

- 혀어엉?

- 옵빠?

말도 제대로 못하면서 휘오를 올려다보며 갸웃갸웃거리는 녀석들. 휘오는 드디어 말문을 튼 일곱 세계수의 정령들을 보며 눈물을 주체하지 못했다.

“어휴.”

나는 손수건을 펴서 녀석의 눈물을 꼼꼼히 닦아 주었다. 휘오가 울먹이며 말했다.

“시민… 나 왜 자꾸 눈물이… 나 분명… 이거 처음 보거든? 그런데 원래 알고 있었던 것처럼 이렇게 그립고 반가운 건… 시민, 고마워. 날 싹틔워 준 것도, 키워 준 것도 다, 다 시민 덕분이야. 얘네 너무 귀엽고… 이 풍경은 정말…….”

나는 녀석의 등을 토닥여 주었다.

“그래, 그래. 나도 너한테 항상 고마워. 우리 끝까지 잘해 보자. 지구도 세계수의 숲도, 다 잘 지켜 보자.”

“응! 응……!”

나는 방울방울 떨어지는 휘오의 눈물을 꼼꼼히 받아 내며 생각에 잠겼다.

‘와… 세계수의 눈물. 이거 신살 병기 재료로 쓸 수 있겠는데?’

머릿속으로 계산을 해 본다. 아무리 계산을 해도 틀림없이 호환된다. 그것도 상위 호환이다.

나는 더 힘껏 휘오의 등을 팡팡 두드려 주었다.

“울어. 괜찮아. 울어, 휘오.”

“흐엉… 시민… 헝…….”

역시 휘오.

아낌없이 주는구나!

세계수의 숲은 아름답게 흔들리고 휘오는 금싸라기 같은 눈물을 방울방울 떨구고.

전쟁을 앞둔 것치곤 참 좋은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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