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VVVIP 차원 쇼퍼-194화 (194/212)

19. 지구로 간다

센타울 차원과 아갈타 차원이 모두 알지 못한 것.

그건 소시민이 신살 병기 시설을 확보했다는 사실이었다.

센타울 차원은 아갈타가 자신들의 신살 병기 시설까지 입수하면서 이번 전쟁이 극도로 불리해졌다고 생각했다.

반면 아갈타 차원은 센타울 차원이 신살 병기 시설을 되찾을 정도의 저력이 남아 있는 거라고 생각했다.

두 집단은 끝까지 서로를 오해한 채 협정을 맺었다.

[내미슈는 오만했고 자기 분수를 알지 못했기에 패사敗死했다. 이게 우리의 공식 입장이오. 첫째, 그것을 받아들이시오. 둘째, 아갈타 개척 지역을 영토인 것을 인정하고 지지하시오. 셋째, 침묵의 해적단과의 동맹을 즉각 파기하고 모든 연락망을 차단하시오. 이 세 가지 조건을 받아들인다면 제시한 보상금에 포로들을 모두 석방하고 종전 협상에 서명하겠소.]

때문에 아갈타의 외무대신이 이렇게 말했을 때 센타울의 외무 장관은 ‘나쁘지 않은 조건이다.’라고 생각했다.

아갈타는 내미슈를 죽이기 위해 많은 무리를 했다. 다른 차원 문명들에게 국경 지역의 일부를 떼어 주기까지 하며 다급히 친선 관계를 맺었고, 국내의 치안을 일부 희생했다.

때문에 센타울은 아갈타가 이대로 진격해서 자신들의 피해를 센타울을 통해 복구할 작정이라고 보았다.

‘일이 그렇게 흘렀으면 최악이었는데…….’

센타울 외무 장관은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미 집결한 병력의 차이도 압도적이었고 신살 병기 시설마저 탈취당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신살 병기의 정보가 아갈타로 속속들이 넘어갔다면 최악의 경우엔 아갈타 측에서 센타울의 신살 병기를 요격해 무력화할 수도 있는 상황. 한 개, 두 개의 지역이 통째로 센타울에게 넘어갈 수도 있었다.

‘내미슈 장군에게는 미안하고… 자존심도 상하고… 시민들의 반발도 크겠지만…….’

그래도 외무 장관으로서 그는 차원 전체의 이익을 먼저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저울추가 완전히 한쪽으로 기운다.

여기서 종전이라니.

센타울의 미래라고 할 수 있는 포로들도 석방해 준다니.

솔직히 말하면 왜 이렇게 좋은 조건으로 조약을 맺냐고 되묻고 싶을 정도였다.

다만 속으로 짐작만 했다.

‘아갈타도 적을 만들고 싶지는 않은 거야.’

신생 문명인 아갈타가 나름 강호로 꼽히는 센타울과는 끝장을 보고 싶지 않다는 화해의 제스처가 아닐까? 하긴, 센타울의 영토는 드넓다. 머나먼 국경을 지키고 있어서 그렇지, 센타울의 주력 군단들은 그 규모에 있어서 개척 군단과는 비교도 되지 않았다.

비록 멀리 떨어져 있는 게 문제지만, 아갈타가 계속 진격을 해 오면 언젠가는 주력 군단을 소환하게 될 것이고 아갈타는 그런 전면전에서는 승리할 자신이 없었을 것이다.

그는 이렇게 이해하기로 했다.

하지만 사실, 아갈타는 그저 몰랐을 뿐이었다. 원래 아갈타의 목표는 기왕 출진한 김에 한 개 지역 정도는 더 가져오는 것. 하지만 아갈타는 신살 병기가 탈취당한 것을 보고 센타울에 훨씬 더 많은 여력이 남아 있다고 착각을 했고, 현재의 정세에서 그 정도의 부담은 지기 어렵다고 생각했기에 이런 제안을 했다.

오해가 만들어 낸 기적의 접점.

서로 손해 본 게 없다 여긴 두 문명은 전격적으로 종전 협상에 서명을 했다.

아갈타와 센타울의 서명이 들어간 협정문은 얼굴에 눈이 여덟 개, 두 손에 각기 눈이 한 개씩 총 열 개의 눈을 가진 종족이 건네받았다.

허수바루블 차원은 타키넷 평의회의 상임 이사 차원 중 하나이며, 이 무수한 차원계에서 벌어지는 온갖 협정과 조약을 중개하는 사업을 크게 하고 있었다.

[협정이 맺어졌습니다.]

위이이이잉-

아갈타와 센타울의 국경 지대에 허수바루블 차원에서 파견한 차원 요새가 자리를 잡는다.

[협정을 어기는 쪽은 허수바루블의 차원 요새가 가지고 있는 광역 디버프가 얼마나 무서운지, 또 허수바루블 차원 요새의 버프를 받은 적이 얼마나 두렵게 변하는지 깨닫게 되실 겁니다.]

아갈타의 외무대신과 센타울의 외무 장관은 그 악명 높은 허수바루블 차원 요새의 위용을 바라보며 한결 편해진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 * *

‘그래. 어떻게 된 일인지는 센타울 차원에 가면 알게 되겠지.’

벌써부터 조급해하지 않기로 했다.

한 이틀 항해하면 다시 센타울 차원에 도착할 테니 그사이 센타울의 신살 병기 시설을 둘러보면 되는 거니까.

[하하! 정말 엄청나지 않습니까?]

센타울의 기술 책임자 로롤랑가가 옆에서 호탕하게 웃었다. 처음 구출했을 때만 해도 덜덜덜 떨고 있는 살찐 쥐새끼 같던 사람이 지금은 살찐 배를 내밀고 기세등등하게 말한다. 그 갭이 조금 우스웠지만, 그의 말은 틀린 게 하나 없었다. 그래, 정말 엄청났다.

총 27개의 수송선 중 17개의 수송선만을 구출했을 뿐인데도 그 규모와 정교함에 압도당하고 말았다. 27개 전부가 있었으면 어쩌면 눈물을 흘렸을지도 몰랐다.

[신살 병기가 무엇입니까?]

“예?”

[신살 병기란 신을 죽일 수 있는 무기 아니겠습니까. 그럼 신은 무엇입니까?]

“…절대적인 존재?”

[에이에이, 그게 아니죠! 이때 말하는 신은 창세, 그러니까 하나의 차원이 태어나는 순간 같이 태어나는 존재를 의미합니다. 차원이 탄생하는 순간의 무한에 가까운 그 가능성을 물려받은 세계의 동생 또는 직계 자식이라고도 할 수 있죠. 원시 문명들 눈에는 절대적으로 보이지만 우리 차원 문명은 그게 그렇지 않다는 걸 알지 않습니까?]

뭐랄까… 이 로롤랑가는 말이 좀 많고 잘난 척도 좀 있는 사람이었다.

한국에서는 딱 극혐당하기 좋은 성격이지만 나는 나쁘지 않았다. 한 줄이라도 더 많은 정보를 듣는 게 이득이었으니까. 그래서 예의 바르게 웃으며 계속 호응해 주었다.

“오, 재밌군요? 그래서, 그런 신을 죽일 수 있는 게 신살 병기입니까?”

[그렇죠. 말이 통하시네. 어? 그런데 이제 보니 침묵 단장님 소문과 달리 꽤 부드러운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인 줄 알았으면 처음에 괜히 긴장을 했네요. 하하!]

그러면서 크고 두툼한 손으로 내 등을 팡팡 두드린다.

플러스. 로롤랑가는 보기보다 좀 예의가 없는 사람이다.

‘하지만 좋은 이야기를 들려주면 좋은 사람이지.’

나는 신살 병기를 만들기 위해 필요한 게 뭔지 그 목록을 외우긴 했지만 그 안에 담긴 정확한 의미는 알지 못했다.

그런 의미에서 로롤랑가의 한 마디 한 마디가 내게는 단비와도 같았다.

“하하! 제가 좀 그렇습니다. 그래서요? 어떻게 신을 죽입니까?”

[세계의 직계인 신을 죽이려면 역시나 하나의 세계가 필요한 겁니다. 이건 신살 병기나 멸세 병기나 원리는 같습니다. ‘가짜 창세’ 그게 핵심이죠.]

“가짜 창세.”

[네. 저길 보십시오.]

그가 가리킨 곳은 이상한 구 하나가 둥실 떠 있는 곳이었다. 마치 창조신의 꿈결을 지켜보는 것처럼 그 생김새를 눈으로는 파악하기가 어려웠다. 그저 투명하고 빛이 없으나 어둡지 않고, 텅 비어 있으면서도 무언가로 가득 차 있는 모순된 공간.

평범한 이가 저 공간을 본다면 인지 자체를 하지 못하고 고개를 돌리고 말 것이 분명했다.

로롤랑가가 말했다.

[저게 바로 창세로입니다.]

그의 말에 나는 등 뒤로 소름이 쭉 끼치는 걸 느꼈다.

아, 저게 창세로구나.

17개의 수송선이 다 그런 식이었다.

‘너무너무 굉장해.’

그동안 내가 머릿속으로 외우고 되새기기만 했던 목록들 중의 상당부분이 이곳에 있었다. 심지어 폭발형의 신살 병기도 다섯 개나 있었다.

[하지만 지금 이건 다 먹통입니다. 본성과의 연결이 끊기면 사용 자체가 불가능해요. 아갈타 놈들이 다가오는 순간 다 불발로 만들어 놨습니다.]

“그래도… 해체해서 자원을 재활용할 수는 있겠네요?”

[아, 좀 볼 줄 아시는군요? 네. 효율이야 10퍼센트도 안 나오겠지만, 신살 병기에 들어가는 재료들이 워낙 값비싸니까 그렇게라도 분해해서 건지는 게 있으면 큰 이득이긴 합니다.]

침이 꿀꺽 넘어갔다. 솔직히 말해서… 욕심이 났다.

여기 있는 시설이면 내 머릿속에 있는 만 개의 직소 퍼즐을 80퍼센트는 맞출 수 있다. 그러면 사실 끝난 거나 다름없다. 운 좋게 창세로도 있고 강기 토카막도 있고… 중요한 부분이 다 맞춰져 있었기에 나머지는 조금만 무리하면 금세 맞출 수 있다.

하지만…….

‘아쉽네. 센타울과의 동맹이 무겁냐 이 신살 병기 시설이 무겁냐 하면 당연히 센타울이지.’

입맛을 쩝쩝 다셨다.

이 좋은 것들을 고스란히 다시 돌려줘야 한다니…….

기술 책임자 로롤랑가는 이런 내 속도 모르고 옆에서 까불어 댔다.

[으하하하! 정말 엄청나죠. 제가 봐도 후덜덜하네요. 침묵의 해적단도 신살 병기 제작을 목표로 한다면서요? 힘내 보십시오! 우리 센타울이 도와주면 그래도 10년, 20년 안으로는 어떻게 될지도 모르지 않습니까? 으하하!]

얘기할수록 참 재수 없는 친구다.

하지만 오늘 대화하면서 보니 능력은 확실했다. 신살 병기의 유지 보수는 물론이고 제조에도 해박한 전문가.

지구로 모셔 갈 수만 있다면 아무리 재수가 없어도 매일 업고 다녀 줄 용의도 있었다.

“하하하! 그렇지요. 선생님이 도와주시면 그 시일이 좀 더 앞당겨질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네? 제가요? 우하하! 농담도. 저 고급 인재입니다. 바빠요. 하하하!]

망할 새끼.

그렇게 우리 둘이 하하거리면서 화기애애하게 웃고 있을 때.

갑자기 저편에서 연출가와 데미안이 후다닥 달려왔다.

달려오며 외쳤다.

“사령관님! 진로 틀어요!”

연출가도 말했다.

“센타울에 갈 필요 없어!”

응? 이게 갑자기 무슨 소리야?

데미안이 빨개진 얼굴로 이를 악물고 말했다.

“센타울 이 개… 자식들이! 동맹을 일방적으로 파기했어요!”

연출가도 이어 말했다.

“내미슈가 죽었다! 개척 군단이 항복했고… 종전과 포로 석방을 조건으로 개척 지역에서 완전 손떼기로 협정을 맺었어!”

데미안은 화가 나서 울 것 같은 표정이었다.

“우릴 헌신짝처럼 버렸다고요! 연락이 안 되는 건 그쪽이 연락망을 완전히 끊어 버린 탓이었어요!”

이게 무슨 소리야?

죽… 어? 내미슈가?

동맹이 깨져?

나는 멍한 눈을 깜빡이며 방금 전까지 옆에서 함께 웃고 있던 센타울 기술 책임자를 바라봤다. 그도 멍청한 눈으로 나를 돌아본다.

나는 그와 눈을 마주치며 데미안에게 물었다.

“그럼, 지금 상황에서 우리가 그대로 센타울로 향하면?”

데미안이 온몸을 바르르 떨며 말했다. 목소리에서도 분노가 뚝뚝 떨어졌다.

“센타울이 천명했어요. 침묵의 해적단은 그저 해적일 뿐, 보이는 즉시 소탕한다.”

아.

그렇게까지나?

그 순간 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는 것은 얄궂게도 내미슈가 출정 전에 한 그 말이었다.

[차원 문명이라는 게 참 냉혹합니다. 모든 걸 게임처럼 생각하죠. 저희에게 중요한 것은 이득이냐 아니냐 하는 계산뿐입니다. 이 전쟁도 그렇죠. 이득이 되는 선까지만 이어질 겁니다.]

결국 그가 옳았다.

센타울은 이득을 좇아 그 자리에서 딱 멈추었다.

그러고 보면 그 평의회 의장이라는 놈도 그런 말을 했지.

[그, 우리 분위기가 항상 이렇지는 않았어요. 오히려 반대에 가까웠지. 내미슈 장군이 등장하고 나서 많은 게 달라졌습니다. 다들 뭐랄까… 열정적이 되었죠.]

달리 말하면 아갈타의 본질은 본래 더 차갑고 계산적이라는 것.

지금 와서 생각하니 그렇게 보인다.

당시에는 생각도 못 했고.

하…….

그래.

마음을 정했다.

나는 계속 기술 책임자의 눈을 들여다보는 중이었다. 그의 눈동자가 이리저리 힐끔거리는 것이 보인다.

난 그대로 아공간에 손을 뻗어 일출을 잡았다. 이 아름답고 강력한 창은 나 같은 영력 고자조차 별빛 강기를 뿜어낼 수 있게 해 주는 보물 중의 보물.

팡팡 터지는 불꽃과도 같은 별빛 강기를 뽑아내며, 창을 휘둘러 센타울 기술 책임자의 목 앞에 겨누었다.

[힉!]

기술 책임자가 엉거주춤 물러서다가 털썩 주저앉는다. 내 창은 끝까지 그를 따라가 계속 창끝을 목 앞에 겨눈다. 기술 책임자가 턱을 덜덜 떨며 나를 올려다본다.

[제, 제발…….]

그가 뭐라고 하거나 말거나 나는 무감정하게 명령을 내렸다.

“현 시간부로 모든 센타울인을 구속한다. 그리고 우린…….”

나는 이를 한 번 악물었다가 말했다.

“지구로 간다.”

-11권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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