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최선
어떤 기분이었냐면.
폭풍우 사이로 항해를 하는 기분이었다.
비가 쏟아지고, 바람이 소용돌이 치고, 높은 건물조차 집어삼킬 만한 거대한 파도들이 저 멀리 수평선까지 끝도 없이 일렁이는 바다를 조각배 하나에 의지해서 넘어가는 느낌.
그 조각배의 선장인 나는 어금니가 다 갈리도록 이를 악물어야만 했다.
‘절대 부딪치면 안 돼.’
대체 아갈타 놈들은 병력을 얼마나 동원한 걸까?
내미슈에게도 수백만 명이 몰려갔다는데 이곳에도 병력이 바글바글했다.
수가 너무 많다. 거센 파도처럼 끝없이 밀려오는 적의 정찰대, 순찰대, 별동대… 별별 놈들을 다 비껴서 피해 가며 착실히 넘어가야만 했다.
폭풍우 한복판에서 파도를 사선으로 타고 또 타며 미끄러진다.
주르르-
[만상공감]을 너무 많이 써서 머리가 뜨겁다 싶더니 코피가 흘렀다. 말이 좋아 파도타기지, 그 실체는 끝도 없이 밀려드는 적의 탐적 시스템을 비껴 내며 은밀한 기동을 이어 가는 것. 스텔스 기능이 변변치 않은 센타울의 고속 수송선을 이용해 이만큼이나 들키지 않고 들어온 건, 순전히 코피가 터질 지경으로 [만상공감]을 운용하고 그에 반응해 함선을 조종한 내 솜씨 덕분이었다.
하지만 그 분투에도 한계는 있었다.
‘미친…….’
거의 다 도착해서야 알게 되었다.
‘이미 잡혔잖아?’
센타울의 신살 병기 시설은 이미 포획이 되었다. 그리고 그 주위로 아갈타의 함대들이 철통같은 호위를 하고 있었다.
만만하게 풀리는 일이 하나도 없다.
‘싸우지 않으면 못 가져간다…….’
지금처럼 몰래 넘어가는 것은 불가능. 방법이 없었다. 이미 빼앗긴 시설을 탈취하려면 전투가 필수. 하지만 적의 호위 함선이 너무나 많다. 문제는 그뿐만이 아니다.
‘여기서 전투가 벌어지면… 여태 지나쳐 온 온갖 순찰대와 별동대가 모조리 몰려온다.’
리스크가 너무 컸다.
‘…성공하더라도 아군 피해가 너무 커.’
그 희생을 치른다 하더라도 임무를 완수하리라는 보장이 또 없다.
냉정하게 생각하면 포기하고 물러서는 게 옳았다. 하지만…….
‘여기서 물러서면 그건 그것대로 잃는 게 너무 많아…….’
센타울과 공동전선을 펼쳐서 아갈타를 몰아내려면 센타울의 신살 병기 시설이 아갈타의 손에 들어가서는 안 된다. 내미슈가 자기 목숨을 걸며 부탁했을 정도로 중요한 일. 시도도 해 보지 않고 물러서도 되는가?
지금 우리의 싸움이 그렇게 물렁한 싸움인가?
비록 이 시도 한 번으로 죽게 될 수도 있지만… 때론 그런 싸움도 치러서 이겨야 하는 게 전쟁 아닌가?
걸린 게 너무 크다 보니 고민도 깊어진다.
그러던 어느 순간.
“어?”
[만상공감]의 범위 안에 있던 적 함대에 변화가 생겼다.
‘이탈한다고? 어째서?’
신살 병기 시설을 철통처럼 호위하던 적 함대 중 과반 이상이 급히 자리를 뜨고 있었다. 과도하다 싶을 정도였던 방비에 구멍이 생겨난다. 심지어 켜켜이 운용 중이던 순찰대와 별동대 중 일부도 급히 어딘가로 방향을 돌리고 있었다.
나는 그들이 향하는 방향이 어딘지를 가늠해 보고 탄식처럼 중얼거렸다.
“내미슈……!”
이게 좋은 조짐인지 나쁜 조짐인지는 모르겠다.
그저 분명한 건 내미슈가 무언가를 했고, 그로 인해 물샐틈없던 적 진형에 틈이 생겼다는 것뿐.
그렇다면 나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아야 한다.
‘곧장 함선을 움직이는 건 너무 눈에 띈다…….’
나는 아까부터 생각했던 수를 던졌다.
“작전조, 나를 따라 창조신의 꿈결에 입수한다.”
“예!”
차원강습 시스템만을 착용한 채 맨몸으로 접근하면 놈들도 알아차리지 못할 거다.
“우리의 목표인 신살 병기 시설은 총 27개의 수송선에 나뉘어 있다. 잠수로 접근한 후에 가장 은밀하고 빠르게 잠입해 아갈타군을 모두 죽이고 수송선의 제어권을 확보한다. 여의치 않으면 폭발시켜서 아무것도 남지 않게 한다. 특히나 여기, 여기 그리고 여기 세 곳의 수송선은 탈취하자마자 적 전투함으로 곧장 부딪쳐 자폭시켜서 적의 진형을 교란한다.”
“예! 알겠습니다.”
“서민서.”
“네, 선배!”
“알지? 네 역할이 중요해. 네가 재앙 병기를 각 포인트에 멋지게 투하해 줘야 그 틈을 타고 우리가 시설 수송선을 장악해 탈출할 수 있다.”
“넵! 맡겨 주세요!”
“그리고 데미안 도련님?”
“네. 알고 있습니다. 사령관님이 자리를 비운 사이에 본함대를 지휘하겠습니다. 빠져나오실 때까지 지원사격을 확실히 할 테니까 걱정 마십시오.”
그 시원한 대답에 나는 고개를 한 번 끄덕여 대답하고, 나 역시 이성계의 활을 꺼내 두 손에 쥐었다.
그 상태로 정면을 바라보며 돌입하기에 최적의 타이밍을 기다렸다.
상당수가 빠져나갔다고 하나 적은 여전히 많았다. 그러니.
일단 시작되면 멈출 수 없을 거다. 파도를 타는 서퍼의 앞에 놓인 미래는 파도를 타거나 뒤집혀 파도에 먹히거나 두 가지밖에 없듯이, 우리도 그럴 것이다. 안전하게 돌아오거나 조각조각 부서져 전멸하거나.
“아… 엄청 긴장되네. 시민 형, 얼마나 잘 싸워야 시원하게 이기고 도망칠 수 있는 거예요?”
까막이가 초조하게 묻길래 나는 이렇게 답했다.
“최고 기록을 경신하면 돼.”
“…네?”
“머리털 나고 네가 싸운 모든 날 중에서 오늘이 제일 잘 싸운 날이면 된다고.”
그래야 너무 많이 죽기 전에 승리를 거머쥘 수 있다.
“아…….”
최선.
오늘은 과정의 최선이 아닌 결과의 최선이 필요한 날이었다.
* * *
키이이이우우웅!
극한의 극한, 최선의 최선까지 짜낸 차원강습 시스템은 울부짖는 듯한 기묘한 구동음을 내질렀다.
지나친 출력으로 인해 드르륵 하는 진동이 슈트를 휩쓸고 나면 온몸이 몸살에 걸린 것처럼 후들거렸다.
하지만 내미슈는 웃었다. 1파는 꺾었다. 하지만 두 번째 세 번째 파도가 끝도 없이 밀어닥친다. 그래도 내미슈는 웃었다.
[와라!]
부우우웅-!
게이트 옆에 게이트, 그 옆에 또 게이트. 수백, 수천 개의 게이트가 서로 겹쳐서 열리니 게이트가 아니라 거대한 해일이 일어나는 것처럼 보인다.
그 속에서 아갈타의 병사들이 파도처럼 쏟아져 나와 센타울군을 덮쳤다. 내미슈는 가장 앞에서 그 파도에 맞섰다.
내미슈의 태양 강기가 무덥게 빛나면, 아갈타 병사들의 피가 철썩 철썩 쏟아지고 비산하는 땀방울이 얼굴 위로 촉촉하게 떨어진다.
뒤를 볼 시간도 옆을 볼 시간도 없다. 오직 앞. 쏟아지는 아갈타의 군세를 보며 검을 휘둘렀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머릿속에는 적들의 진형과 아군의 형세가 다 들어 있었다. 어디가 위험한지, 어디서 버티고 어디를 내주어야 할지 본능적으로 깨닫고 있었다.
[1036연대! 버텨! 자리 고수하라고!]
[337여단! 장난해? 너넨 빠져! 크게 우회해서 빠지라고!]
외치면서 휘두르는 검에 또다시 아갈타의 군세가 갈라진다. 내미슈와 그의 친위대가 파도 하나를 또 넘었다.
그런 와중이라 내미슈는 스스로도 알지 못했다.
지금 자신이 주변을 전혀 둘러보지 않고도 지휘를 하고 있음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어느 때보다도 완벽하게 군단을 지휘해 내고 있다는 사실도, 본인은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입꼬리가 귀에 닿도록 웃으며 악착같이 검을 휘두르고, 피와 땀을 뒤집어쓰고 또 한 걸음 나아가 군단을 향해 목청을 높일 뿐이었다.
* * *
사실, 어린 시절의 내미슈는 웃을 줄을 모르는 아이였다.
4살의 내미슈가 다른 센타울 친구들을 보며 떠올린 생각은 늘 이런 식이었다.
‘쟤네는 어떻게 웃을 수 있지? 불안하지도 않나?’
길을 걸으면 건물이 무너질까 봐, 교통수단을 타면 교통사고가 날까 봐, 옆의 친구가 갑자기 나를 공격할까 봐 항상 날이 서 있고 초조해했고 불안해했다. 당연히 유년 시절의 교우 관계도 원활하지 않았다.
부모님은 내미슈를 걱정해 약물 치료, 상담 치료, 심지어 영혼 치료까지 해 보지 않은 것이 없었지만, 그 무엇도 효험을 보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10살의 내미슈는 이 모든 불안을 해결할 방법을 깨달았다.
대비對備.
갑자기 누군가가 날 공격하는 상황에도, 교통사고가 나는 상황에도, 옆의 건물이 무너지는 상황에도 모두 대비하는 것.
그리고 그에 앞서 누군가가 나를 공격할 조짐을 파악하고, 교통사고가 날 확률을 계산하고, 건물의 위험 정도를 측정하는 것.
그렇게 하나하나 불안 요소를 평가하고 제거했던 내미슈가 마침내 일상에서의 모든 불안을 통제하에 둘 수 있게 된 건 15살 때의 일이었다. 하지만 그때 그에겐 새로운 불안이 생겼다. ‘내가 혼자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적이 한꺼번에 공격해 오면 어떻게 하지?’. 그렇게 내미슈는 군 입대를 결심했고, 다시 4년이 지나 19살이 되었을 때는 태양 강기를 익히게 되었다. 내미슈는 그제서야 환하게 웃을 수 있었다.
* * *
상상 가능한 모든 위협에 대비해 수련을 하는 것도.
전후좌우 위아래, 적들의 사소한 낌새까지도 모두 파악해 전술을 짜는 그의 집착도.
모두 그가 평생을 일구어 온 업業.
차곡차곡 꾸준하게 누적된 그 업이, 평생 성실하게 닦아 온 그 길이 내미슈가 선천적으로 타고난 기적 하나를 키우고 마침내 싹트게 만들었다.
내미슈는 몰랐지만 내미슈를 보위하는 친위대들은 깨달았다.
그들의 눈빛에 경외가 어렸다.
‘권능 발현……!’
‘권능자셨어!’
‘하……! 그래. 내미슈 장군님이 권능자가 아니라면 누가 권능자겠어?’
[위협파악].
현재 상황에서 닥칠 수 있는 모든 위협을 느낄 수 있는 능력.
내미슈가 각성한 능력은 어떻게 보면 소시민의 [만상공감]의 하위 능력이었다. 소시민이 범위 내의 모든 것을 감각할 때 내미슈는 범위 내에 존재하는 위협만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내미슈에게는 그것으로 충분했다.
여태 발아하지 않은 초능력의 편린만으로도 ‘완벽’이라고 말할 만큼 철저하게 군단을 지휘해 온 내미슈였다.
그런 그에게 온전한 초능력이 주어지는 순간 그의 모든 잠재력은 몇 배로 폭증했다.
촤자자자작!
[큭!]
[커흑!]
그의 검 앞에서는 아갈타의 대위든 대좌든 공평하게 한 합을 넘기지 못했다. 극도로 집중되다 못해 활활 타오르는 그의 집중과 몰입은 [위협파악]의 능력을 예지 수준으로 정교하게 만들었다. 내미슈가 검을 휘두르면 그 앞에 적의 목이 다가와 걸린다.
촤아아악!
또 핏방울과 땀방울을 넘어 한 파도를 넘는다. 그렇게 파도를 넘고 또 넘다가 문득 고개를 드니 적이 없었다.
하아. 하아. 하아…….
들리는 것은 그저 탈진한 듯 몰아 쉬는 숨소리.
보이는 것은 죽어 자빠진 아갈타군의 시체와 겁에 질린 적의 눈동자. 그리고 경의에 물든 아군의 눈동자.
하아… 하아.
내미슈는 숨을 고르며 하늘을 봤다. 그때쯤엔 그도 깨달았다, 자신이 권능을 각성했음을. 눈을 감아도 느껴지는 각종 위협들. 그리고 그 위협이 노리는 아군의 위치까지도.
그리고 그 덕분에 내미슈는 깨달았다.
‘여기에 있으면 다 죽는다.’
처음에는 이 자리를 끝까지 사수할 생각이었다. 딱 열흘만 버티면 지원군이 온다고 했으니까. 하지만… [위협파악]이 말하고 있었다.
현재 형국에서 열흘을 견딘다는 건 불가능.
대신…….
‘적의 진형이 흔들렸어.’
단단한 벽을 맨주먹으로 때리면 때린 사람이 아파서 땅을 구르듯이.
너무나 훌륭한 방어는 때론 오히려 공격자를 흔들기도 한다.
내미슈와 개척 군단의 방어는 아갈타가 예상하지 못한 것이었고, 그 덕분에 그들의 진형이 꼬여 버렸다.
내미슈의 [위협파악]은 그 실낱 같은 틈을 놓치지 않았다.
‘저게 최선이야.’
판단이 서는 순간 내미슈는 움직였다.
[전군! 지금부터 현 차원을 탈출해 적의 포위망을 뚫는다. 뒤처지지 말고! 내 꽁무니에 딱 따라붙어!]
방어의 이점을 버리고 갑자기 적진으로 뛰어들겠다는 그 선언에도.
[예!]
개척 군단은 일말의 의심이나 불안도 없이 그 명을 받들었다.
개척 군단의 갑작스러운 탈출에 아갈타군은 깜짝 놀랐다.
경로는 마침 그들의 방비가 약해진 곳.
포위망을 쭉쭉 찢고 나아가는 그 모습에 아갈타의 지휘관들은 발악하듯 병력을 끌어모았다. 주변에 흩어져 있던 정찰 부대와 보급 부대, 별동대까지 다 달려들어 내미슈의 앞을 가로막았다.
뚫으려는 자의 최선과 막으려는 자의 최선이 맞부딪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