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VVVIP 차원 쇼퍼-190화 (190/212)

15. 항로 수정

별빛의 목소리가 흥분으로 높아졌다.

- 저도 놀랐습니다. 이런 발견을 해낼 줄은… 트라팔가스 차원인들은 아갈타에 대한 분노가 골수에 사무쳐 있습니다. 안 그렇겠습니까? 동족을 사냥해서 산 채로 슈트를 만드는 놈들이 바로 아갈타 놈들인데?

아갈타의 차원강습 시스템은 악마 형태의 생체 슈트로 마감되어 있다. 강대한 영력을 품은 그 생체 슈트는 살아 있는 생명체를 가공해서 만든다.

별빛이 찾아낸 건 바로 생체 슈트의 재료로 전락한 종족이었다.

“아니, 어떻게 접촉에 성공하신 겁니까? 중요 자원… 음, 자원이라고 말하면 안 되겠지만, 하여튼 아갈타 입장에서는 경계를 삼엄하게 해서 지킬 텐데요?”

- 네. 실은 그래서 그냥 지나치려고 했었는데… 전쟁에 패배한 여파가 여기까지 미쳤나 봅니다. 최근 들어 이상하게 아갈타군들이 잘 보이질 않습니다. 그 틈을 노려 접근했는데… 정말 운이 좋았습니다!

별빛은 자신이 생각해도 정말 대단한 발견이다 싶었는지 목소리에 흥분이 가득했다.

- 그 생체 슈트를 보면 짐작하시겠지만, 트라팔가스 차원의 주민들은 선천적으로 막대한 영력과 전투 센스를 타고 태어나거든요.

그래, 바로 그 특징 때문에 생체 슈트의 재료로 수난을 당했던 것일 테다. 하나 이제… 우리가 그 타고난 힘을 마음껏 사용하도록 기반을 마련해 줄 수 있었다.

- 제가 그래서 이들은 특히 무장을 더 신경 썼습니다. 혹시 재가해 주신다면 지구에서 생산되는 성검도 전해 주고 싶은데… 괜찮을까요?

“그럼요! 가져가세요!”

그만한 종족이 성검으로까지 무장한다면 진짜 차원강습 시스템을 착용한 정규군과도 한번 크게 싸워 볼 만할 것이다.

- 네. 아, 그리고 C등급 이상의 던전 코어가 필요하다고 하셨죠? 탐사를 다니면서 한 80여 개 정도 확보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계속 모아 두었다가 그것도 다음에 만날 때 전달드리도록 하죠.

원래 있었던 170개에 80개를 더하면 250개!

이제 필요한 양의 절반이나 되게 모은 셈이 되었다. 단번에!

“와! 감사합니다, 별빛 님!”

별빛의 탐험이 거둔 성과는 내가 기대한 것을 한참이나 넘어서는 것이었다.

어떻게 트라팔가스 같은 종족을 발견할 수가 있지?

C등급 이상의 던전 코어의 숫자도 예상보다 훨씬 많았고.

이것 역시 ‘찬연의 시기’가 준 선물과 같은 것일까?

- 네! 그러면 준비 마쳐 둘 테니 언제든 신호만 주십시오. 즉시 들고 일어나서 아갈타 놈들의 엉덩이를 걷어찰 테니까요.

별빛이 든든하게 웃으며 통신을 종료했다.

좋다. 정말로 좋다.

실컷 기분 좋은 여운을 즐기고 있었는데 또 얼마 지나지 않아 또 반가운 소식이 들어왔다.

- 충서엉! 침묵 단장님! 저 흐메초입니다!

“어, 그래. 흐메초.”

아갈타의 차원 요새에서 만났던 아갈타의 민간인 흐메초였다. 1만 타키온과 휘오의 가지를 주고 온 이후로 종종 안부를 주고받았다. 휘오의 가지를 타고 타키넷 쓰레기 거리로 진출했다길래, 초보 플레이어 쩔을 해 주는 심정으로 사들이면 좋은 상품, 되팔기 좋은 상품, 쓰레기 거리에서 잘 먹히는 가공 기술 몇 가지를 찍어 줬더니 그다음부터 나를 대할 때면 이렇게 껌뻑 죽었다.

내 덕분에 벌써 갯펄시장에 진출했다고, 영원한 대장님으로 모시겠다고 충성충성거린 게 지난번 통신 때였다.

- 덕분에 요즘에 저희 되게 살 만합니다! 타키넷의 물건들을 구매하면서 군부 놈들의 시선을 피하기도 더 쉬워졌고, 아기 돌보기도 완전 좋습니다. 요즘은 다른 지역의 민간인들과도 활발하게 교류하고 있습니다. 모두 단장님 덕분입니다. 충성충성!

정말 좋은지 예전에 만났을 때랑은 목소리부터가 달랐다. 원독만 뚝뚝 떨어지던 목소리였는데, 지금은 여유가 철철 흘렀다.

듣기 좋다.

하지만 지금은 이런 안부에 앞서 먼저 듣고 싶은 소식이 있었다.

- 아, 저번에 군인 놈들 배치 상황 좀 알려 달라고 하셨죠? 아주 정확하진 않지만… 최근 민간인 지역에서의 군대 이동 상황은 파악했습니다. 그거 자료 휘오 님에게 텔레파시로 알려 드리겠습니다.

부르르르-

[받았어. 텔레파시로 보내 줄게.]

휘오의 목소리와 함께 머릿속에 정보가 떠올랐다. 아주 정확하진 않지만 아갈타군의 대략적인 움직임을 파악할 수 있었다. 이게 있다면 내미슈가 전략을 짜기 아주 수월할 거다.

미소가 저절로 그려졌다.

‘어쩜 이렇게 타이밍도 딱딱 맞는지.’

모든 게 너무나 잘 풀리고 있었다. 이 기세라면, 어쩌면 정말… 일주일 만에 이 전쟁을 끝내고 지구의 자주적인 문명화를 이뤄 낼 수 있는 게 아닐까?

그렇게 기분 좋게 휘오가 보내 주는 텔레파시를 한번 분석해 보았다. 아갈타군이 어떻게 포진해 있고 무엇을 노리고 있는지.

흐메초도 내 이해를 도울 생각인지 입을 열었다.

- 보시면 요즘 들어 대규모 병력 이동이 많습니다. 어딜 그렇게 가는지. 뭐 덕분에 저희는 재수 없는 군인 놈들 덜 봐서 좋습니다. 흐흐.

흐메초의 말이 맞았다. 후방과 차원 요새에서 병력들이 빠져나가고 있었다. 특이한 점이라면…….

‘너무 많이 빠져나갔는데?’

그리고 그 방향이…….

…어?

오싹!

소름이 돋았다.

“잠깐. 잠깐, 흐메초. 이런 이동이 언제부터 시작됐다고?”

- 예? 한 일주일 됐나? 그래서 지난 일주일간 저희 완전 축제 분위기…….

나는 통신을 그냥 끊어 버리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주변을 둘러보며 외쳤다.

“지, 지금 1차 요충지까지 거리가 얼마나 남았다고?”

“선배가 사흘 거리라고 하지 않았어? 왜… 요?”

서민서가 되묻다가 말고 내 표정을 보고 딱딱하게 긴장한다. 나는 이를 악물고 물었다.

“지금, 내미슈 장군하고 연락돼?”

“예? 아까 전투에 들어간다고… 거기가 차원 격류가 강해서 당분간 통신이 안 될 거라고…….”

나는 목이 터져라 외쳤다.

“빌어먹을! 전함대! 전속 전진! 그리고 센타울 본성에 바로 통신 넣어! 내미슈와도 계속 교신을 시도하고!”

아갈타! 이 미친놈들아! 미친 줄은 알았지만 이렇게까지 미쳐 있었어?

어쩐지.

일이 너무 술술 풀린다 싶었다.

* * *

내미슈는 쓰게 웃었다.

[미친 새끼들… 미친놈들인 줄은 알았지만.]

막 1차 요충지를 점령한 직후였다. 침묵의 해적단과도 동맹을 맺었겠다, 이제 이곳을 요새화하면 2차, 3차 요충지까지 점령하고 개척 지역을 통째로 장악하는 건 식은 죽 먹기가 될 것이었다.

그래서 신살 병기 시설도 한창 이곳을 향해 운송 중이던 상황이 아니던가?

그런데 지금 그의 눈앞에 펼쳐지는 건 장밋빛 전망이 아니었다. 그저 새카맣게 몰려든 아갈타의 군세.

두 배? 세 배? 그렇게 설명하기 어렵다. 수십 배다. 수백만의 군세가 드글거렸다. 최상위 보병 병력인 차원강습병만으로 이루어져 있는데도 그랬다. 국경을 지키는 정예 병력까지 싹 긁어 온 것이 아니라면 설명하기 어려운 수준.

진짜 미친 건가?

내미슈는 주변을 둘러보고 쓰게 웃었다.

[이거 도망도 못 치는데…….]

이곳의 강력한 차원 격류는 방어를 유리하게 만드는 면도 있지만, 동시에 탈출을 어렵게 하는 장애물로도 기능했다. 섣불리 도주를 선택했다가는 차원 격류 속에서 집중포화를 얻어맞고 허무하게 전멸해 버리고 말겠지.

이 모든 게 의미하는 바는 단 한 가지였다.

[이 새끼들… 처음부터 나를 노렸어……!]

내미슈와 센타울이 전쟁을 생각하고 있을 때, 아갈타는 혼자 ‘보복’을 생각했다. 그들이 세운 전략은 아갈타가 합리적 이득을 취하는 방향이 아닌 아갈타의 준장 에르하무스에게 수모를 주고 그를 죽게 만든 내미슈를 잡아 죽이는 것. 오로지 그것 하나만을 위해 짜여 있었다.

내미슈는 정말 입맛이 썼다.

[대승을 거두고도 후회하게 될 줄은 몰랐는데…….]

만약 얼마 전의 대전투에서 내미슈가 대패했다면, 아갈타는 그것으로 자신들의 명예가 회복된 것으로 계산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역으로 내미슈가 대승을 했기에 이제 아갈타는 모든 것을 걸고 내미슈를 죽이는 계획을 짰다. 지역의 지배력이 약해지고 국경의 방비가 허술해지는 것을 감안하고, 심할 경우 몇 개 지역을 빼앗기게 될 것까지도 감안하고 내미슈를 이곳으로 끌어들였다.

천혜의 요새이자 결코 도망칠 수 없는 묘지로.

인생사 새옹지마라고 했던가?

내미슈가 거둔 승리가 그를 죽음의 길목으로 인도한 것이다.

하지만.

내미슈는 이를 악물었다.

[너희는 나를 잘못 봤어.]

내미슈는 이런 상황이라고 해서 포기하지 않았다.

[버틴다. 어떻게든 버텨서 너희를 다시 엿 먹여 주마.]

이곳은 천혜의 요새. 소수의 병력으로 대군을 막아설 수 있는 길목. 내미슈는 자신의 지휘 능력과 무력을 믿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걱정되는 건.

[신살 병기 시설이 걱정이네… 그건 아갈타의 손에 들어가면 안 돼.]

승리를 확신하고 이곳으로 이동을 시킨 신살 병기 시설. 그게 유일한 후회였다.

[우리의 신살 무기 체계가 아갈타의 손에 해부되는 꼴만은 볼 수가 없지.]

그것이야말로 문명의 주춧돌이 되는 극비 사항 중의 극비. 자신을 포함해서 이곳에 있는 모든 이가 죽더라도 지켜야만 하는 것이었다.

[침묵의 해적단이 여기로 오고 있다고 했지? 통신 연결해.]

[그… 차원 격류가 지나치게 강해서 통신 연결이 쉽지 않습니다!]

[닥치고 무슨 수를 써서라도 연결해! 우리가 다 죽어도 어떻게든 연결해야 돼!]

[네, 넷!]

내미슈는 이를 드러내고 으르렁거리며 탐적 시스템에 잡힌 아갈타의 병력들을 노려봤다.

[인정하지. 이건 내 ‘최악의 상상’에서도 등장한 적 없는 상황이야. 아갈타 너네는 정말 미쳤어. 하지만… 결국 아무것도 가져가지 못할 거다.]

결사 항전.

죽음과 삶은 종이 하나 차이. 죽을 각오로 싸웠을 때 오히려 기적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내미슈는 잘 알고 있었다.

* * *

전속 항진을 이어 갔다.

1차 요충지까지의 거리를 이틀 거리로 좁혔을 때, 계속 교신을 시도하던 내미슈와 마침내 연결이 되었다. 기적에 가까운 일이었다.

나는 애타게 외쳤다.

“내미슈 장군님! 지금 구원하러 가고 있습니다. 센타울 본성의 구조대는 병력을 집결하는 데 시간이 걸려서 열흘은 걸린다고 합니다. 저희가 가서 최대한 시간을 벌어 볼 테니 조금만 견뎌 주십시오!”

마음이 조급했다.

내미슈와 개척 군단이 여기서 당하면 안 된다는 생각만이 머리를 가득 채웠다.

현재 지구의 자주 문명화 계획에서 센타울이 차지하는 비중은 과반을 넘어간다고 보아도 좋다. 결국 우리가 신살 병기를 갖출 때까지 우리를 비호해 줄 무력이 필요했으니까. 내미슈와 그가 이끄는 개척 군단이 바로 그 무력의 핵심이었다. 센타울 내의 친지구파의 기둥이기도 했고 말이다.

상상도 못 할 큰 피해를 감수하더라도 내미슈와 개척 군단을 살릴 수만 있다면 가서 들이받아야 하는 게 우리의 운명.

아니, 그런 걸 다 떠나서 내미슈 같은 친구가 아갈타에게 죽는 꼴은 보고 싶지 않다. 그런 꼴 보려고 여태 달려온 게 아니잖아?

구한다. 어떻게든 구한다!

하지만 내미슈는 전혀 다른 이야기를 했다.

[아뇨, 단장님. 이쪽으로 오지 마십시오. 여기는 숫자가 너무 많습니다.]

“숫자가 아무리 많더라도……!”

[수백만의 정예병입니다. 우리는 고작 10만이고요. 침묵의 해적단이 강한 건 알지만… 숫자로 보면 결국 해적 수준 아닙니까.]

숨이 턱 막혔다.

수백만?

우리는 다 합해서 5,000명도 안 되는데… 수백만?

많을 거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내 예상을 아득하게 뛰어넘어 버리는 숫자였다.

하지만. 그래도 도리가 없다.

“그래도 포위를 뚫고 들어가 보겠습니다. 천혜의 요새라고 하셨으니 저희의 정예 병력이 함께 길목을 막으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겁니다. 어차피 딱 열흘만 버티면 되지 않습니까?”

[만상공감]까지 최대로 활용해서 약한 부분을 치고 들어가면 어떻게든 되지 않을까? 최악의 경우에는 내미슈만이라도 데리고 도망을 치는 것도 방법이었다.

하지만 내미슈는 이미 마음을 정한 듯 단호하게 말했다.

[아뇨. 저는 정말 괜찮습니다. 열흘이라고 하셨죠? 충분히 버틸 수 있습니다. 그보다는 저희 측 신살 병기 시설이 더 급합니다.]

“신살 병기 시설이요?”

[네. 신살 병기의 제조와 수리, 보충과 발사를 위한 시설물들입니다. 그게 아갈타의 손에 들어가는 순간 끝장나는 겁니다. 개척 지역을 영영 빼앗기는 것은 물론이고, 극비 정보 유출로 인해 센타울의 안보가 크게 흔들리게 됩니다. 동맹으로서 오히려 부탁드리고 싶은 건 그 시설을 센타울까지 호송해 달라는 겁니다. 현재 시설을 호송하는 부대가 연락이 닿지 않습니다. 아갈타군의 통신 방해가 있는 것 같은데… 좋은 소식은 아닙니다.]

파지직!

“큭!”

그때 귀를 찢는 듯한 날카로운 소음이 내미슈와 나의 통신을 갈랐다.

[치직……! 큭! 거기에도 통신 방해가……! 칙……! 아무튼! 절대 오지 마십쇼! 대신, 치지신지… 살 병기 시설을……! 치이이이이……!]

소음이 내미슈의 목소리를 잡아먹더니 이내 뚝! 끊겼다.

“아…….”

고요해졌다. 이제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리고 내 머릿속에 떠오르는 건 내미슈가 텔레파시로 보내 준 신살 병기 시설의 예상 위치.

나는 한동안 말을 못 했다.

말이 날카로운 가시처럼 목구멍에 걸려 흘러나오질 않았다.

한참 후에야 겨우, 갈라진 목소리로 지시할 수 있었다.

“센타울 본성에 연락 넣어 봐. 연락되는지.”

잠시 분주한 움직임이 이어지고, 서민서가 대답했다.

“…연락되지 않아요. 우리도 아갈타의 통신 방해 영역에 들어선 것 같습니다.”

나는 눈을 꾹 감았다.

내미슈에게는 그간 신세 진 게 많았다. 이런저런 계산 이전에 순수한 호의를 가지고 다가와 준 이계인.

그의 부탁.

현재의 상황.

우리의 전력…….

이 모든 걸 고려해 나는 결국 결론을 내렸다.

“…항로를 변경한다. 센타울의 신살 병기 시설을 먼저 확보한다.”

그저, 내미슈가 잘 싸워 주기를 바랄 뿐이다.

늘 그랬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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