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VVVIP 차원 쇼퍼-189화 (189/212)

14. 과열

* 신살 병기의 핵심 재료: 귀령용액 10톤, C등급 이상의 던전 코어 500개. 그리고 꺼지지 않는 태양 강기 등등.

* 핵심 시설: 영자 가속기, 강기 토카막, 창세로 등등.

지금까지 모은 귀령용액이 한 3톤 정도 되려나?

C등급 이상의 던전 코어는 아틀라스 클럽이 죽어라고 던전을 공략하고 있지만 여전히 170개 정도를 겨우 모았을 뿐이라고 한다.

영자 가속기는 차원강습 시스템을 만드느라 부분적으로 만들어서 쓰고 있지만 강기 토카막은 아직 그 기초 개념조차 잡지 못했고, 창세로와 꺼지지 않는 태양 강기의 경우엔 그 정체조차 파악 못 했다.

그래.

내 머릿속에는 1만 개의 조각으로 나뉜 직소 퍼즐이 있다.

처음 시작할 때는 이걸 언제 다 맞추나 싶었지만, 하나하나 맞추다보니 어느새 테두리를 메우고 그 전체적인 윤곽이 드러나고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중앙 한가운데에 있는 가장 중요한 조각들은 손에 잡힐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랬다.

여태까지는.

* * *

도시 전체를 메우는 열기와 환호, 숨이 막혀 버릴 듯한 달큰한 향기들. 그 절정에 이르렀을 때 내미슈는 아갈타의 방어선에 잡혀 있던 노역자들을 발견했다.

- 아, 어떻게 저럴 수가!

- 전쟁 포로에게도 저런 짓은 하지 않는다!

- 명예를 모르는 자들이야!

출신도 다양했다. 원시 차원의 원주민부터 당당한 차원 문명의 주민이었다가 납치, 빚, 정치적 견해 차이 등을 이유로 잡혀 와 노예와 같은 삶을 강요받았던 이들까지.

한눈에 보기에도 삐쩍 마르고 학대당하던 그들의 모습이 방송에 잡히자 모두 분노했다.

방송에는 잡혀 있었던 센타울 출신의 소녀 하나가 울먹이며 말하는 장명이 흘러 나왔다. 아버지와 함께 여행 중에 체포되어 강제 노역에 시달렸다고 한다.

- 저는… 해적이 될 거예요.

- 해적? 어째서?

- 침묵의 해적단 같은 해적이 돼서 아갈타 놈들 다 죽여 버릴 거예요!

이곳에 잡혀 오면서 침묵의 해적단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며 우는 소녀.

기자는 가만히 그 아이를 안아 주었다.

우르르르 쾅!

그 절정의 순간, 천둥이 치고 노란 번개가 치고 파란 물감과도 같은 빗물이 온 세상을 먹어 치울 듯이 쏟아졌다.

센타울의 주민들은 비를 좋아하지 않았다.

숨 막힐 정도로 과열되었던 열기는 빠르게 식고 광장의 시민들은 흩어졌다.

그쯤 해서.

방송에서는 오늘 전사자들의 명단을 내보내며 진혼곡과 함께 슬슬 하루를 정리했다.

비가 내려 하루의 열기를 쓸어 가는 센타울 차원. 하지만 그 아래로는 마치 숯불과도 같은 질기고 뜨거운 열기가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다음 날이 되자 분위기는 더더욱 거세게 타올랐다.

- 히날톤 차원, 아갈타 차원을 원색적으로 비난!

- 메필로스 차원, 아갈타 차원에 깊은 유감을 표시.

- 탄달팡 차원, 아갈타 차원에 강력한 항의.

안 그래도 차원 병원을 공격한 일을 두고 차원 문명들 사이에서 평이 안 좋던 아갈타였다. 센타울 차원에게 대패하고 몰래 운용하던 강제 노역단의 실체마저 드러나자 다들 일제히 아갈타를 향해 비난의 포문을 열었다.

아갈타를 향한 전방위적인 압박!

전쟁 해설자들은 오늘도 신이 나서 외쳐 댔다.

- 어제 내미슈 군단장님이 중요한 말씀을 하셨죠?

- 침묵의 해적단과 함께라면 전쟁을 금방 끝낼 수 있다고 하셨죠.

- 그런 말이 나온 배경이 무엇입니까?

- 아갈타의 가용 가능한 병력을 계산해서 나온 발언 같습니다.

그러니까.

아갈타도 동원할 수 있는 병력에는 한계가 있었다.

광대한 영역에 걸쳐 차원 식민지와 차원 광산을 소유하고 있는 만큼 수비와 질서 유지를 위해 묶여 있는 전력이 상당할 수밖에 없었다.

더군다나 아갈타는 최근 들어 여러 세력의 원한을 사지 않았던가? 국경 방비에 더더욱 신경을 써야 하는 시점이었다. 개척 지역에 지나치게 전력을 투입하다가는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을 태우는 우를 범하는 수가 있었으므로.

결국 아갈타가 지구를 포함한 개척 지역에 추가로 투입할 수 있는 병력은 그런 필수 병력들을 다 제외하고 남은 나머지.

내미슈가 ‘할 만하다.’라고 말했던 건 바로 그런 의미에서였다.

개척 지역은 본디 아갈타가 먼저 진출하고 공을 들이고 있던 지역이었지만, 얼마 전의 대전투에서 센타울이 대승을 거두며 아갈타로 기울어 있던 균형을 어느 정도 끌어온 상태. 이제 거기에 침묵의 해적단과 침묵의 해적단을 중심으로 결집한 반아갈타 세력이 더해진다면 아갈타의 남은 병력 정도는 가뿐하게 정리할 수 있다는 판단이었다.

- 사실 다른 문명 같으면 항복을 해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죠.

- 네. 침묵의 해적단의 전력이 예상 이상이라는 게 밝혀졌으니까요. 이거 동맹만 형성되면 틀림없습니다. 하지만 아갈타는 항복을 불명예로 여기니 그렇게 되어도 절대 항복하지 않겠지요.

- 그럼 힘으로 박살 내 주는 수밖에 없겠군요!

그리고 이어지는 이야기는 개척 지역을 장악했을 때의 이득.

방송에서는 온갖 계산 방식을 동원해서 수천억 타키온, 수조 타키온의 기대 가치를 떠들어 댔다.

그리고 그 막대한 이득은 단순한 숫자가 아닌 현실이었다. 우리와 동맹만 성사된다면 변수 없이, 케이크를 떠먹듯이 쉽게 성취할 수 있는 눈앞의 성취.

반대로 동맹 성사가 늦춰질수록 전쟁이 얼마나 길어질 건지, 예상되는 피해액이 얼마나 될지 센타울의 언론은 끝도 없이 떠들어 댔다.

이런 분위기를 지켜보는 동안.

차르르륵.

나는 머릿속에서는 만 개의 직소퍼즐을 이리저리 헤아리고 있었다.

그리고.

우호적인 분위기를 타고 센타울과 우리 사이의 동맹이 전격적으로 체결되었을 때, 나는 마침내 텅 비어 있던 중앙 부위에 퍼즐 몇 개를 놓을 수 있었다.

센타울과 침묵의 해적단의 동맹 협약서.

하나. 센타울은 침묵의 해적단의 신살 병기 보유를 적극 지지, 지원한다.

둘. 센타울은 침묵의 해적단에게 꺼지지 않는 태양 강기 두 도막을 즉시 지원하고, 강기 토카막과 창세로의 견학을 허용한다.

셋. 침묵의 해적단은 즉시 모든 역량을 다하여 개척 지역 내에서 아갈타의 영향력을 완전히 몰아내기 위한 필사의 노력을 다한다.

넷. 아갈타의 축출 이후로도 센타울과 침묵의 해적단은 개척 지역의 질서 유지와 방위를 위해 적극 협조한다.

‘온도’라는 게 그런 거였다.

차가운 상태에서는 단단하게 버티는 강철이, 새빨갛게 달아오른 온도에서는 이리저리 구부러지다 못해 녹아서 뚝뚝 흐르듯이.

딱딱하던 얼음이 녹아 물이 되고 또 기화되어 수증기가 되듯이.

‘절대 안 돼!’라는 딱딱하고 차가운 규칙도, 뜨거운 온도 앞에서는 흐물흐물 물러져 버리고 마는 것이다.

내미슈의 사랑 고백, 아갈타의 악행, 센타울 시민들의 거리 응원, 타른 차원 문명들의 아갈타 비난, 기대되는 예상 이득. 이 모든 게 우리와 센타울 사이의 온도를 높였다.

신살 병기와 멸세 병기라는 절대로 허용할 수 없을 것 같아 보이던 그 경계가 흐물흐물하게 녹아 버릴 정도로 단기간에 뜨겁게 달구어졌다.

평의회 의장의 적극적인 지지와 군부의 지지가 더해져서, 그렇게 센타울 차원과 우리 침묵의 해적단은 동맹이 되었다.

* * *

- 세상에 일이 이렇게 잘 풀리나? 창세로랑 강기 토카막을 견학했다고? 너랑 권승리가?

무르물랑의 목소리는 잔뜩 들떠 있었다.

거기에 대답하는 내 목소리도 마찬가지다.

“그래. 내가 이 두 눈으로 똑똑히 모조리 봤고, 권승리는 그 시간을 왜곡해서 몇 번이든 다시 체험해 볼 수 있게 만들었어!”

나랑 권승리가 본 이상 그건 그냥 견학이 아니다. 상세 설계도가 우리 손에 쥐인 것과 다름없었다.

물론 직접 만들기 위해 자원을 모으고 기술을 쌓으려면 또 한세월이 걸릴 것이다. 하지만 캄캄한 동굴에 들어온 한 줄기 빛처럼, 개념조차 못 잡고 헤매던 우리 앞에 이제는 나아가야 할 길이 환하게 밝혀져 있다.

- 거기에 꺼지지 않는 강기를 두 도막 얻었어? 그 정도 양이면 내가 알기로 신살 병기를 열 개는 만들 수 있는 양이야! 정말 단계적으로 신살 병기 제조를 도와줄 생각인 모양인데? 엄청 화끈하잖아, 센타울?

그래. 센타울 화끈하다. 일단 방향이 정해지자 두 번 돌아보지 않고, 질척대지 않고 바로 결단을 내려 버리는 스타일. 덕분에 당초 기대한 것보다 훨씬 큰 이권을 얻었다. 원래는 지지만 얻어도 성공이라고 생각했는데…….

차르륵 차르륵.

머릿속을 굴러다니는 퍼즐들을 또 헤아려 보았다. 벌써 25퍼센트 정도는 맞춰져 있다. 아직 한참 남았지만 윤곽을 그리기에는 부족함이 없다. 그리고 퍼즐의 특성상 맞추면 맞출수록 점점 더 빨리 맞출 수 있다. 25퍼센트를 넘긴 지금부터는 여태까지와는 또 양상이 달라지겠지.

가슴이 두근거린다.

그런데 좋은 소식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 동맹 소식을 들었습니다. 축하드려요.

휘오의 가지를 통해 오랜만에 반가운 목소리가 전달되었다. 지구와 힘을 합칠 만한 약소 차원들을 찾아 탐사를 떠났던 르누아 차원의 별빛이었다.

- 바로 전장으로 이동하시나요?

“네. 그렇게 됐습니다. 아무래도 동맹 자체가 전쟁을 빨리 끝내려는 게 목적이었던 상황인 만큼 지체하고 있을 수는 없죠. 센타울에서 초고속 수송선들을 빌려주었습니다. 이 속도로 가면 사흘 내로 목적지에 닿을 듯합니다.”

- 아, 그 목적지가 혹시 전에 말씀하셨던 1차 요충지인가요?

“네. 맞아요. 내미슈 장군이 오늘 내로 1차 요충지는 꼭 점령해 놓겠다고 전언을 보냈습니다. 들어 보니 예전에 우리가 아갈타를 혼내 줬던 장소보다 더 차원 격류가 강한 지역입니다. 차원 격류가 천혜의 요새처럼 작용해서 일단 한 번 장악하면 어지간한 전력으로는 탈환이 불가능하다고 하더군요. 그곳에서 바로 합류하기로 했죠.”

- 알겠습니다. 그러면 작전은 일단 1차 요충지에 도착하신 이후에 결정되겠군요.

“네. 그럴 것 같습니다.”

- 개시 시간만 알려 주십시오. 그간 제가 구워삶은 56개의 차원이 일제히 들고 일어날 겁니다. 비록 차원 문명이 되지 못해 약소한 차원들이지만, 릭 님과 나타르 님의 도움을 받아 무기를 팔아넘기며 나름 무장도 갖추었습니다.

그리고 별빛은 은근한 목소리로 덧붙였다.

- 그리고 그중에서도 아주 우수한 종족이 하나 있습니다.

사실, 속으로는 우수해 봐야 뭐 얼마나 우수할까 싶었다. 56개의 차원이 들고 일어서면 도움이 되긴 할 테지만, 그건 아갈타의 후방을 불안하게 만들고 빠른 항복을 받아 내기 위한 수일 뿐이지 결정적인 한 방이 될 수 있는 건 아니었으니까. 그만큼 차원 문명과 그렇지 않은 문명 사이의 수준 차이는 컸다.

하지만 이어진 별빛의 말에 나는 입을 쩍 벌릴 수밖에 없었다.

“네? 진짜요?”

- 네. 엄청나지 않습니까? 이론대로라면 차원강습 시스템으로 무장한 군인 수준의 전력이 나올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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