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VVVIP 차원 쇼퍼-182화 (182/212)

7. 상승

연출가는 침통하게 인정했다.

[…좋습니다. 제가 졌습니다.]

[네. 지셨습니다. 후후. 10만 타키온. 꿀맛이군요.]

연출가는 이를 악물었다.

[하지만 효율이 좋다고 다가 아니지요. 결국 착용자의 역량이 받쳐 줘야 제대로 기능을 하는 겁니다. 아시다시피 지구는 영능학의 역사가 극도로 짧습니다. 일반 대중에게까지 영능학이 공개된 건 아직 1년도 되지 않았죠. 소시민조차 영능학을 익힌 게 겨우 2년 남짓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 이들이 차원강습 시스템을 제대로 다룰 수 있을까요? 이건 성검하고는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하긴 그랬다.

석기시대인에게 자동차를 준다면? 처음에는 시행착오를 거치겠지만 결국엔 자동차 운전법을 터득할 가능성이 컸다.

하지만 만약 그게 자동차가 아니라 최신예 스텔스기라면? 석기시대인은커녕 현대인조차 제대로 훈련을 받지 않으면 절대로 그 기체의 잠재력을 끌어낼 수 없다.

지구도 2차 대전 당시에 파일럿의 훈련 정도가 기체의 발전과 생산 속도를 못 따라가는 문제가 발생했지 않던가?

제대로 만들어진 차원강습 시스템을 운용하려면 제대로 훈련된 인원이 필요한 것이 당연.

그런 면에서 지구의 전망은 사실 그렇게 밝지 못했다.

연출가가 말했다.

[소시민이야 뭐 잘하겠죠. 처음 다뤄 봐도 2급 오퍼레이터 수준으로는 다룰 것 같습니다. 하지만 권승리나 화랑단원들은 어떨까요? 아시겠지만 차원 문명들 사이에선 실전배치 가능한 수준을 3급 오퍼레이터부터로 봅니다. 하지만 지금 권승리와 화랑단이라면… 높이 봐 줘야 훈련병 수준인 5급 오퍼레이터 수준 아니겠습니까?]

아몬이 입가에 미소를 띠었다.

[호, 그러니까… 차원강습 시스템을 잘 만들기는 했지만 실전에서 운용하려면 더 시간이 걸릴 거라고 보시는 겁니까?]

[네. 못해도 석 달은 더 수련을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저랑은 생각이 다르시군요.]

[하? 아몬 님 예상은 어떠길래 그러십니까?]

[아직도 소시민을 얕보신다는 걸 알았을 뿐입니다. 일단 소시민이면 가볍게 1급 오퍼레이터 수준을 넘어설 겁니다.]

[…뭐, 그 괴물이라면 그럴 수도 있지요.]

[네. 그리고 권승리라면 3급, 잘하면 2급 오퍼레이터 수준도 될 거라고 봅니다. 화랑단은… 한 4급? 빡세게 훈련하면 한 달 내로 실전 배치가 가능할 겁니다.]

[에이… 너무 가셨네. 물건을 만드는 거랑 한 존재가 기량을 끌어올리는 건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그렇게 뚝딱 되는 게 아니라고요.]

[큭. 아직도 지구가 어떤 곳인지 모르면서 방송을 하고 앉으셨던 겁니까?]

[뭐라고요?]

아몬의 도발에 연출가가 짧은 팔다리를 휘두르며 흥분했다. 그런 연출가에게 아몬은 한 마디 미끼를 던졌다.

[내기하실?]

[하! 합시다! 이번엔 20만 타키온 어떻습니까?]

[콜.]

연출가가 못생긴 얼굴을 더 못생기게 구기며 소시민과 권승리를 바라보았다.

[차원강습 시스템과 1급 오퍼레이터 수준으로 동조하면 코어가 2중창의 화음을 내지른다고 하죠. 2급이면 바이올린 솔리스트 같은 소리가 날 것이고, 4급은 지구의 스포츠카 배기음 같은 게 날 겁니다.]

아몬이 끼어들었다.

[그리고 달인의 반열에 오른 오퍼레이터들은 그 이상의 화음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고 하죠.]

연출가가 아몬을 노려보며 말했다.

[그래요. 과연 어떤 소리가 날지 궁금하군요!]

* * *

나는 뒤를 돌아보며 외쳤다.

“화랑단!”

수백 명의 화랑단이 부동자세를 취하며 답한다.

“예!”

“전군… 시스템 기동!”

“예!”

촤르르륵!

수백 명이 일제히 차원강습 시스템을 기동하는 장면은 장관이었다. 비늘이 돋듯 살갗 위로 차르륵 돋아나는 차원강습 시스템. 그리고 치솟는 영력.

차원강습 시스템은 그 자체로 강력한 영력을 지니고 있다. 그 영력 하나하나가 화랑단원들이 지닌 영력과 만나 하모니를 이루며 그들을 완전히 다른 격의 존재로 변모시켰다.

‘한 명 한 명이 아갈타의 대위급 이상의 전력이다.’

예전의 퀴니세인을 홀로 상대할 만한, 소좌급의 전력들도 심심치 않게 보였다. 비록 강기를 사용할 수 있는 건 아직 민서 한 명뿐이지만, 지구인 특유의 막대한 영력량과 타고난 초능력의 결합은 강기에 뒤지지 않는 전투력을 보여 주었다.

숫자가 동일하다면 일반적인 보병 싸움에서 화랑단을 상대할 만한 전력은 차원 전체를 뒤져 봐도 드물 것이다.

입가에 진하게 피어나는 미소를 거두고 나는 다시 한번 명령을 내렸다.

“전원! 상승上昇!”

구르르르릉!

우두두두두!

슈퍼카가 우는 듯한 소리가 장내로 퍼져 나가고.

쾅! 콰아아앙!

포탄이 터지는 듯한 굉음과 함께 화랑단원들이 하늘로 날아올랐다. 10초 만에 저 멀리 구름을 꿰뚫어 버리는 압도적인 비행.

‘사실 이렇게 굉음이 터진다는 건 실력이 미숙하다는 뜻인데… 대충 4급 오퍼레이터, 아직은 훈련병 수준인가?’

그래도 처음부터 이 정도 수준이라면 조금만 더 훈련하면 금방 실전배치가 가능할 것으로 보였다.

나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 권승리를 돌아보았다.

“그럼 우리도 갈까?”

“좋지.”

키이이이잉-!

콰콰콰콰!

권승리의 차원강습 시스템은 전투기의 제트엔진과 같은 요란한 굉음을 냈다. 그러곤 하늘로 날아오른다. 구름을 뚫을 때까지 4초.

‘권승리는… 3급 오퍼레이터 수준. 흠, 지구 최고의 재능 정도면 차원강습 시스템을 처음 써 봐도 저런 수준이 나오는구나.’

더 경악스러운 건 권승리는 화랑단과 달리 성검을 써 본 적도 없다는 것이었다. 이제 막 영력을 배우기 시작한 이가 정말 생전 처음 써 보는 차원강습 시스템을 저 정도 수준으로 다룬다는 건 미친 듯한 재능이라고밖에는 할 말이 없었다.

5급 오퍼레이터 수준만 되어도 놀랐을 텐데, 성검을 늘상 써 오던 화랑단보다도 오히려 능숙하다니…….

- 시민! 빨리 올라와! 얼마나 잘 날아오르나 보자!

권승리가 저 위에서 뻐기는 목소리로 나를 불렀다.

자신이 꽤나 잘하고 있다는 걸 아는 모양이다.

하지만…….

‘나랑 비교하면 안 되지.’

[만상공감]이 있는 한 나는 그 어떤 물건도 처음부터 명인 수준으로 다룰 수 있다.

구우우우-!

기이이이-!

와아아아앙-!

샤아아아-!

차원강습 시스템을 본격적으로 운용하기 시작하자 4중창의 화음이 나를 감싸 안았다.

휙!

날아오를 때 소음 같은 것은 전혀 없었다. 단 1초. 가볍게 뛰었음에도 불구하고 바닥에서 시작해서 구름을 꿰뚫을 때까지 내게 필요한 건 고작 그 정도의 시간.

훅!

저 높은 곳에 있던 권승리가 순식간에 내 앞에 다가왔다.

권승리가 움찔 놀라더니 내게 물었다.

“야, 넌 왜 날아오를 때 소리가 안 나냐? 코어에서도 너 혼자 소리가 되게 멋있네?”

목소리가 어딘지 불퉁했다.

나는 어깨를 으쓱해 보이며 답했다.

“그거야 내가 너보다 차원강습 시스템을 훨씬 더 잘 다루니까 그렇지.”

“…너도 이거 써 보는 건 처음이라며.”

“난 원래 처음이어도 잘해.”

“하……! 그럼 나도 할 수 있어!”

기이이이이잉-!

콰콰콰콰콰!

하지만 권승리의 차원강습 시스템에서 나는 소리는 여전히 전투기 소리. 2급 오퍼레이터가 되면 난다는 바이올린 솔리스트 소리는 들을 수 없었다.

“거참, 아무리 너라고 해도 안 되는 게…….”

하지만 권승리의 집념과 능력은 내 상상을 초월했다.

끼기기기기기이기기이긱!

콰카카카카카카카카칵!

뭐, 뭐냐, 이건?

권승리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어떤 물건이든 잘 쓰는 거, 그거 사실 네 능력의 일종이지? 그러니까 나도 능력을 써 봤어.”

아, 아니, 그러니까 대체 무슨 능력을 어떻게 썼길래 네 차원강습 시스템이…….

“그냥 차원강습 시스템에 적용된 법칙을 비틀어서 출력을 높였을 뿐이야. 합법적 오버클럭이지!”

그게 어딜 봐서 합법적인 거냐라고 따져 묻고 싶었지만, 그보다는 내 호기심 해결이 먼저였다.

와… 권승리, 진짜 보통 녀석이 아니네. 어떻게 이 정밀한 제품의 법칙을 왜곡해서 간섭을 할 생각을 다 했지?

다만 녀석은 나처럼 정밀하게 느끼는 감각이 없다 보니 아무래도 왜곡 방식이 너무 투박했다.

“잠깐, 잠깐만. 지금 여기, 여기 그리고 이쪽 법칙을 왜곡했지?”

“으, 응? 어.”

“너 이렇게 쓰면 이거 금방 고장 난다. 느낌을 좀 달리해서 좀 이런! 이런 느낌으로 법칙을 왜곡해 봐.”

“이렇게?”

“아니아니아니. 그 반대… 어! 어! 그렇게!”

화랑단이 위력 시범을 계속하는 사이 나는 권승리의 [법칙왜곡]을 지도해 줬다.

그리고 마침내.

쿠쿠쿠쿠쿠쿠-

나이아가라폭포가 쏟아지듯 묵직한 소리를 내며 한껏 오버클럭된 권승리의 차원강습 시스템이 완성되었다.

권승리가 상기된 얼굴로 물었다.

“경주 한번 할래?”

“하자.”

나는 아루카의 날개를 꺼내고 동화 능력까지 최대로 발휘하며 속도를 끌어 올렸다.

오버클럭된 권승리의 차원강습 시스템은 그 정도의 잠재력이 있었으므로.

“간다!”

꽈아아앙!

벼락이 치듯 강렬한 소닉붐이 일고 권승리의 몸이 시야에서 사라졌다. 음속보다는 광속 쪽에서 세는 게 더 가까운 압도적인 속력.

파아아앙-!

나도 아루카의 날개를 떨치고 권승리를 추월해 그녀의 앞길을 인도했다. 오버클럭으로 인해 빨라졌다곤 해도 아직은 내가 더 빠르다.

날다 보면 눈앞으로 축축한 밤이 다가오고, 다시 서늘한 새벽을 지나 따가운 정오의 햇볕이 쏟아진다.

우리는 그렇게 날아서 지구를 몇 바퀴나 돌았다. 하늘에 그어지는 색색깔의 벼락 같은 우리의 모습을 보며 환호하는 사람들의 목소리와 박수갈채가 내 [만상공감]에 고스란히 걸려들었다. 안 그래도 최근 미친 듯이 넓어진 [만상공감]의 범위가 다시 한번 몇 배는 늘어난 상태였기에 이 높은 하늘에서도 지상의 일들을 알 수 있었다.

그렇게 전력으로 몇 번이나 지구를 돌고 완전 탈진해서 숨을 몰아쉬는데…….

툭.

갑자기.

나도 모르게 눈물이 한 방울 떨어졌다.

아… 씨… 부끄럽게.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이제야 실감이 났으니까.

‘진짜 차원강습 시스템을 완성했구나…….’

성검과는 전혀 다르다. 성검이 토르의 망치 같은 것이라면 차원강습 시스템은 아이언맨의 슈트 같은 것. 하나는 강한 이가 사용해야 가치가 있는 무기이고 다른 하나는 한 존재의 격 자체를 끌어올려 주는, 모든 부분을 강화해 주는 또 하나의 신체.

단적으로 말해, 성검을 쓰면 강력한 오러를 쓸 수 있을 뿐이지만 차원강습 시스템을 쓰면 내 초능력인 [만상공감]이나 권승리의 초능력인 [법칙왜곡]까지도 같이 강화가 되었다. 초능력자가 많은 지구인에게 그 효율의 차이란 이루 말할 수 없는 것.

좋다.

항상 좋을 거라 생각해 왔지만 직접 착용해 본 차원강습 시스템은 상상한 것보다도 더 좋았다.

그래서인가…….

지난 생에 아갈타의 차원강습병들에게 당한 그 서러운 기억이 떠올라서일까?

정말 당황스럽게도 울음이 그치질 않았다.

“흐으으…….”

아, 이러지 말자. 이건 아니지. 인류를 대표하는 내가 여기서 울면 얼마나 채신머리가 없냐.

“끅.”

어떻게든 흘러넘치는 울음을 참고 참으려는데, 문득 권승리의 목소리가 들렸다. 나처럼 물기가 꽉 차서 흐느끼는 목소리였다.

“시민, 울어… 괜찮어. 내가 [법칙왜곡]으로 우리 우는 거 안 보이게 다 처리해 놨어. 흐으으… 히끅!”

아.

너도 아는구나, 이 기분.

권승리가 말했다.

“이게 없어서… 그간 얼마나… 씨…….”

X발. 그래. 이 차원강습 시스템 없다고 얼마나 모진 고통을 당했냐, 우리가…….

지난 생의 고통과 슬픔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회귀하고 겪어 온 영웅들과의 갈등들마저 주르르 떠오른다.

두 번의 생을 살면서 정말 고생 많았다.

결국 여기까지 왔구나. 정말 먼 길을 돌아서 이제 제대로 된 출발점에 섰구나.

끅끄윽.

흑, 흑, 훌쩍.

그렇게 나랑 권승리는 하늘에 떠서 서로를 마주 보며 질질 짰다.

마음속에 꽉 차 있던 응어리가 좀 풀릴 때까지.

* * *

[저거 지금 뭡니까……?]

연출가의 입이 떡 벌어졌다. 소시민의 차원강습 시스템에서 4중창이 나올 때까지만 해도 눈이 땡그랗게 커진 수준이었는데, 권승리가 법칙을 비틀어 오버클럭을 시전하자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 버리고 말았다.

아몬이 그 모습을 보며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아직도 모르시겠습니까? 지구는 우리가 생각한 것보다 대단한 곳일지도 몰라요.]

연출가가 아몬을 돌아보며 물었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왜 여기에는 이토록 많은 권능이 존재하는가. 왜 이곳에는 이렇게 많은 유물과 유적이 존재하는가. 내 나름대로 연구를 해 봤거든.]

[그랬더니요?]

아몬이 연출가를 돌아보곤 히죽 웃었다.

[나머지는 비밀입니다.]

연출가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그러거나 말거나 아몬은 히죽거리며 일어나서 멋대로 방송을 떠날 뿐이었다. 한마디 얄밉게 남기는 것도 잊지 않았다.

[이번 내기도 내가 이긴 거 맞죠? 크큭. 20만 타키온. 달다, 달아.]

그렇게 소시민과 권승리가 서로를 신뢰 어린 눈길로 마주 보는 장면을 마지막으로 지구의 차원강습 시스템 위력 시범은 끝이 났다.

그날, 수많은 어린아이가 차원강습 시스템의 오퍼레이터가 되는 것을 꿈으로 품었고, 어른들은 더 열심히 일을 해야겠다며 이를 악물었다.

그리고 다음 날.

2019년 6월 2일.

센타울 차원과 아갈타 차원 사이의 전쟁이 발발했다.

지구를 둘러싼 정세는 또 한 번의 거대한 격변을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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