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위력 시범
실은 아까 아갈타 놈들의 학살을 보고, 성검을 무시하던 가드들을 보며 나도 모르게 지난 생이 떠올랐다.
당시에 인류는 이미 멸망할 날짜를 받아 놓고 그저 조금이라도 더 연명하기 위한 싸움을 계속하던 중이었다. 그마저도 흑색 전선의 권승리와 아틀라스 클럽의 영웅적인 투쟁이 없었더라면 진작에 무너져 버렸을, 마지막 발악과도 같은 싸움.
문제는 명확했다.
선천적인 능력과 후천적으로 습득한 기술의 차이.
처음엔 인류도 그렇게 일방적으로 밀리지는 않았다. 대륙별로 무시할 수 없는 강자들이 있었고, 차원 문명인들이 ‘권능’이라고 부르며 경외해 마지않는 능력자들이 걸어가다 차일 정도로 많았으니까.
하지만 우리의 능력은 선천적인 것이었다. 즉, 의식적으로 더 발전하거나 변형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 반면에 차원 문명의 기술은 후천적인 것. 후천적으로 얼마든지 더 발전하거나 변형할 수 있었다.
그리 오래 지나지 않아 놈들은 인류의 초능력을 상대하는 방법을 개발해 냈다. 그 순간을 기점으로 전선은 빠르게 기울었다. 특히 차원강습 시스템을 입은 아갈타의 정규군은 우리 인류에게 공포 그 자체와도 같았다.
지금도 기억이 난다. 아갈타 놈들이 퍼뜨린 괴수 병기, 이른바 ‘마수’라고 불리던 괴물들과 싸울 때였다.
‘어? 크아아악!’
‘뭐, 뭐야! 갑자기 초능력이 발동을 안… 으허억!’
최전방에서 시작된 비명이 파도처럼 내게 몰려들던 그 순간을 기억한다. 육체 강화와 방어 계통의 초능력을 지녔던 이들의 몸이 분쇄기에 넣은 고기처럼 갈려 나가고 있었다. 원래라면 마수들이 씹고 뜯어도 꿈쩍도 안 해야 할 강인한 피부가 쭉쭉 찢어지고 다져졌다.
피, 피 솟아오르며 다가오는 피와 살점의 파도.
여기저기서 절규가 들려온다.
‘밀리잖아! 폭발 초능력 가진 사람 없어?!’
‘안 돼! 초능력이 사라졌어!’
그때 나는 하늘을 보았다. 아… 역시나. 하늘에서는 머리에 뿔을 단 악마들이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만상공감]에 걸려드는 흉악하고 폭력적인 영력의 흐름.
초능력을 무효화하는 장치를 가동한 채 아갈타의 차원강습병들은 낄낄거리며 우리를 내려다보았다.
사실, 내 초능력 [만상공감]이 어쩌면 특별할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그때 처음 알게 되었다. 아갈타의 초능력 무효 장치 앞에서도 초능력을 잃지 않고 버티는 이들은 모두 강력한 초능력으로 명성을 날리던 헌터들뿐이었다. 등급으로 따지면 최소 1류 이상 되는 이들 중에서만 그런 특별한 이들이 나타났다. 그런데 고작 2류 턱걸이인 내가 초능력을 잃지 않았으니까 뭔가 이상하다 싶었지.
하지만 그때는 그걸 자세히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아니, 오히려 초능력을 잃어버리지 않아서 불행하다고 생각했다.
‘으악!’
‘크아아악!’
‘사, 살려……!’
너무 많은 사람이 죽어 가고 있었으니까. 다들 싸우면서 한 번쯤은 어깨를 나란히 해 봤던 전우. 그런 그들이 죽어 가면서 느끼는 그 싸늘한 공포와 치떨리는 좌절이 고스란히 내 살갗에도 날아와 박혔으니까.
[만상공감]이 끝도 없이 퍼다 나르던 좌절과 공포를 견디며 그때 나는 싸웠던가 도망쳤던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그리고 눈을 떴을 때는 죽지 않고 살아서 어떤 병원에 누워 있었던 기억이 날 뿐이다.
그저 생각나는 건 뿔이 달린 아갈타의 악마들, 그들이 흩뿌리던 좌절과 공포뿐.
싸움에 이골이 날 대로 난 헌터 소대 하나를 손발짓 몇 번으로 박살 내 버리는 그 압도적인 파괴력 앞에 내 손은 벌벌 떨렸고, 지구인들의 유일한 장기인 초능력을 봉쇄해 버리는 그 잔인한 기술력에는 오금이 저릿저릿했다.
그래서였나 보다.
나는 줄곧 차원강습 시스템을 갖고 싶었던 것이다.
[만상공감]에 새겨진 그 공포의 상징을 내 몸에 휘감고 나도 당당하고 오연하게 적들을 내려다보고 싶었다.
어쩌면 회귀한 이후로 줄곧 내가 마음속에 품고 있던 목표가 그것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우리의 손으로 차원강습 시스템을 만들어 내는 것. 그걸 몸소 착용하고 그 막대한 힘을 내 감각으로 한 올 한 올 다 느껴 보는 것.
그리고 지금.
드디어 ‘침묵의 해적’이라는 나의 상표를 단 첫 번째 차원강습 시스템이 완성되었다.
* * *
2019년 6월 1일.
전 세계의 모든 이가 화면 앞으로 모였다. 시꺼먼 기름때가 낀 소매로 얼굴을 닦다가 얼굴까지 까맣게 된 10살짜리 어린이들도 커다란 모니터 앞으로 모였고, 고층 빌딩 상당수가 무너진 세상에서도 수백 층짜리 높은 건물 꼭대기에 사는 하준광 같은 이도 넓은 거실에서 티브이를 켰다.
그리고 갑자기 온 세상이 고요해졌음을 느끼고 속으로 감탄했다.
‘그러고 보니, 그간 공장이 멈춘 적이 없었지?’
‘어린이 노동법이 통과되고 전국민 24시간 2교대제로 산 게 얼마나 됐지……? 하… 꽤 길었구나. 빌어먹을 세월 끝에 겨우 결실 하나가 나오는 건가?’
계절이 바뀌는 줄도 모르고, 세상이 바뀌는 줄도 모르고 묵묵히 이 악물고 일해 왔던 날들.
쉴 새 없이 돌아가던 공장과 소리치던 목소리, 일하는 아이들의 울음소리… 그런 모든 것이 뚝 그쳐 버린 이 순간, 사람들은 정신없고 가슴 미어지던 지난 시간들을 떠올렸다.
그랬기에 오늘 발표될 ‘차원강습 시스템 위력 시범’에 더욱더 큰 기대를 품게 되었다.
‘악마들이 쓰던 그 힘의 비밀이 오늘 밝혀지는 건가?’
‘일반인도 훈련만 하면 그 악마들과 같은 가공할 전투력을 갖게 해 준다던 그 말이 진짜일까?’
‘만약 진짜 그렇게 강력하다면 그걸 능력자들이 사용하면 어떻게 되는 걸까?’
막연한 기대와 막연한 불안. 그리고 참을 수 없는 호기심이 사람들의 마음속을 뛰어다녔다.
쿵! 쿵! 쿵쿵!
거세게 뛰는 심장 소리가 북소리처럼 거세질 무렵, 드디어 화면에 두 사람이 잡혔다.
소시민과 권승리.
오늘 위력 시범에 있어서 가장 먼저 차원강습 시스템을 착용할 그 두 사람이 서로를 마주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촤르르르륵!
몸에서 비늘이라도 돋아나듯 차원강습 시스템이 두 사람의 몸을 감싸 안았다.
“와… 예뻐요! 악마 아닌데요? 천사인데요?”
까만 손으로 볼트 하나를 만지작만지작하며 초조하게 화면을 바라보던 꼬마 아이 하나가 말했다.
그 말대로였다.
푸르른 하늘을 배경으로 수백 가지의 재료를 섞고 초능력과 영력으로 두드려 만든 ‘단조 슈트’는 하얗고 푸르고 붉게, 때로는 가을 하늘처럼, 때로는 노을지는 바다색으로 아름답게 반짝였다.
* * *
<그 찐따 같던 지구 맞냐? 벌써 차원강습 시스템이라니… 진짜 레전드다.>
자극적인 제목으로 인해 연출가의 방송은 오늘 또다시 최고 신기록을 경신했다. 연출가는 전문가 게스트까지 불러 오늘의 위력 시범을 제대로 중계했다.
그동안 항상 후드를 눌러쓰고 얼굴을 가리던 케사리니 아몬이 오늘은 후드를 벗고 나타났다. 케사리니 아몬은 노란 머리칼이 어깨까지 내려오고 귀 뒤로 난 한 쌍의 뿔이 번개처럼 구부러져 있는 미남이었다.
[네. 오늘의 게스트 케사리니 아몬 님이 나오셨습니다.]
[반갑습니다. 케사리니 아몬입니다.]
[이야… 놀랐습니다. 아몬 님 인챈트 솜씨가 놀라운 줄은 알았지만, 평의회 이사 차원 중 하나인 드래고니안 출신 광룡족이실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뭐, 그간 빚을 못 갚아서 숨어 다니는 신세였으니 정체는 철저히 숨겼지요.]
[이제 방송에 나오신 이유는 그럼…….]
[네. 소시민이랑 놀다 보니 어느새 빚을 얼추 갚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아직 한참 남았습니다. 어쨌든 밀린 이자는 다 갚았으니 얼굴을 드러내도 면목이 서게 생겼죠. 아, 오늘 약속하신 출연료도 인상적이었습니다.]
[하하. 네, 그럼 오늘 본론으로 넘어가지요. 오늘은 관전 포인트가 어떻게 될까요?]
[관전 포인트는 두 가지입니다. 이번에 지구가 생산한 차원강습 시스템의 품질이 어떻게 될 것인가. 그리고 그걸 지구인들이 얼마나 잘 다룰 수 있을 것인가.]
[맞습니다. 아몬 님도 개발에 참여하셨죠? 이번에 생산된 차원강습 시스템 스펙이 어떻게 되죠?]
[800소울 영력 증폭기에 1,600넘버링 제어 코어를 달고 6개의 메모라이즈 슬롯 그리고 라-온 350넘버링 영력 구현 장치. 여기까지가 주요 스펙입니다.]
[오, 괜찮은 수준의 미들급 스펙이네요. 하지만 품질이 문제죠?]
[네. 아무리 높은 스펙의 재료들을 때려 넣었다고 해도, 호환이 잘되지 않거나 전체적인 설계가 어긋나 있거나 조립 공정의 기술력이 떨어지거나 하면 효율이 극악으로 떨어지게 되니까요. 스펙 대비 효율이 50퍼센트밖에 나지 않는 경우도 본 적 있습니다.]
[그럼 반대로 효율이 잘 날 때도 있나요?]
[물론입니다. 거의 전설이긴 하지만 150퍼센트 효율을 보인 경우도 있다고 하죠.]
[이번엔 어떨 것 같습니까?]
[저는 140퍼센트 봅니다.]
[네?]
아몬의 태연한 대답에 연출가가 놀랐다. 지금까지의 스무스 한 진행이 깨질 정도로 깜짝 놀랐다.
[진짜요? 150퍼센트가 전설이라면서요? 그럼 140퍼센트도 말도 안 되게 높은 것 아닙니까?]
[높은 거죠. 하지만 소시민이니까요. 150퍼센트를 누군가 해냈다면 소시민은 적어도 140퍼센트는 할 겁니다.]
[아니… 애초에 150퍼센트는 진짜 있었는지도 모르는 것 아닙니까? 사실 최상위 모델들이라는 것들도 135퍼센트만 나와도 걸작이라면서 대서특필되는 것 아시지 않습니까?!]
[지구에 그런 말이 있죠. ‘아니 땐 굴뚝에 연기가 나랴’. 참 원시 사회다운 속담입니다만, 아무튼 그 말이 맞습니다. 분명 언젠가 누군가는 150퍼센트 효율을 달성했을 것이고, 그렇다면 소시민도 그에 근접하게 해냈을 거라고 봅니다.]
[허! 참! 내기하실래요?]
[좋죠. 한 10만 타키온쯤 걸고 내기합시다. 빚을 좀 더 갚을 수 있겠군요.]
[좋아요. 내기 성사됐습니다. 형님들, 이거 내기 성사된 겁니다? 형님들이 증인이에요.]
그렇게 못을 박고 나서 연출가는 음흉하게 말했다.
[죄송하지만, 사실 저는 소시민이 불평하는 거를 들었거든요. ‘아… 효율이 아쉽네.’라고 말하는 걸 제가 똑똑히 들었습니다. 어쩔 수 없죠. 이번 차원강습 시스템은 그냥 구할 수 있는 재료들에 맞춰서 만들어진 것 아시죠? 아무리 뛰어난 요리사라도 냉장고에 있는 재료만 가지고 요리를 하면 그 맛에 한계가 생기는 겁니다. 미안하지만 제가 이겼어요. 못 물러 줍니다.]
하지만 아몬의 표정은 태연했다.
[무슨 말씀이신지? 그래서 140퍼센트입니다. 소시민이 아쉽지 않았다면 당연히 150퍼센트 넘겼겠죠. 그자는 어떤 재료를 주어도 그 안에서 최적의 효율점을 찾아내는 인간입니다. 심지어 그냥 구할 수 있는 재료라 해도 결국엔 소시민이 그걸 고른 거잖아요? 걔가 아쉽다고 해 봐야 우리 기준에서는 넘사벽입니다. 미안하지만 나는 소시민을 그쪽보다 오래 봐 와서 압니다. 제가 이겼습니다. 못 물러 줘요.]
[하! 두고 보시죠! 그, 뭐였죠? 효율이 120퍼센트만 넘어도 영혼이 하늘로 둥실 들려 올려지는 듯한 황홀감을 느낀다고 하죠? 아주 궁금합니다, 지금 소시민과 권승리가 어떤 감각을 느끼고 있을지!]
[네. 나중에 꼭 물어봅시다, 140퍼센트 효율의 차원강습 시스템은 대체 어떤 감각이었는지.]
[하!]
* * *
이 감각을 뭐라고 해야 할까?
슈트를 장착하는 순간부터 내 귀에는 카운트다운이 들리는 것 같았다.
텐.
나인…….
그리고 온몸을 감싼 차원강습 시스템을 처음으로 구동하는 순간.
…투, 원.
제로.
발사!
와락! 온몸이 뒤로 밀리는 듯한 관성과 함께 내 영혼이 무거운 육체를 두고 하늘로 쏘아져 올라갔다. 아니, 진짜 그랬다는 게 아니라 느낌이 그랬다.
콰콰콰! 하면서 내 영혼이 높이높이 저 달까지 솟아오르는 듯한 느낌. 전혀 다른 종의 생명체가 된 듯한 이 아득한 고양감.
권승리를 돌아보았다. 헬멧에 가려져 있었지만 잔뜩 달아오른 그녀의 얼굴을 느낄 수 있었다. 그녀도 나와 똑같은 감각을 느끼고 있었다.
‘아, 짜릿하다!’
등 뒤의 전광판에 우리가 달성한 효율이 계산되어 떠오른다.
<효율: 143퍼센트>
성공! 성공이다.
아주 만족스럽진 않지만… 기대한 것만큼의 성과는 충분히 거두었다.
우리는, 진짜 제대로 된 차원강습 시스템을 만들어 냈다.
우와아아아!
거대한 함성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전 지구에서 모든 인간이 일제히 내지른 함성이 지구를 한 바퀴 돌아 우리의 몸을 때리는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