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아갈타의 속셈
공장장은 부들부들 떨며 화를 냈다.
[미친놈들. 남의 사업장 앞에서……!]
남의 사업장 앞에서 피를 뿌리며 싸우는 십여 명의 군인. 번쩍하면 노랗고 파란 피가 튀고, 또 노랗고 파란 피가 튀고, 가끔씩 아갈타의 붉은 피가 튀었다.
하지만 공장장에게는 안타깝게도 난장판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자고로 군인이라는 족속은 늘 가까이에 아군을 데리고 다니는 존재들이었으므로.
부우우웅-!
게이트가 열리고 긴급한 구조 신호를 들은 센타울 차원의 차원강습 소대가 아군을 구하기 위해 달려 나왔다. 그들은 다 죽어 가는 병사들을 보고는 곧장 돌격을 감행했다.
[이, 이 미친놈들! 돌격! 아군을 구해 내!]
전세가 뒤집혔다. 무려 소대 규모의 병력이 투입되자 이번엔 아갈타의 병사들이 역으로 우수수 죽어 나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허공에 뿌려지는 피의 태반이 붉어질 때쯤.
부우웅-
또 다른 게이트가 열렸다.
이번엔 아갈타의 지원부대였다.
똑같이 소대 규모의 병력이었지만 준비 태세가 전혀 달랐다.
보는 순간 느낄 수 있었다.
‘…조금도 당황한 구석이 없어. 그리고 준비한 장비가 모두 센타울 차원과 상성이야. 이거… 기획된 전투다!’
아갈타 놈들은 대체 뭘 꾸미고 있는 걸까?
치밀한 계획이었다.
우선 우발적인 시비를 가장해서 분대 규모의 병력을 싸우게 만들었다.
그러다 보면 상대편에서 소대 규모의 지원군을 보내 올 것까지도 미리 파악을 해 두고 있었던 게 분명하다.
그렇지 않고서는 저렇게 딱 맞게 장비와 훈련도 면에서 압도할 수 있는 소대 병력을 보낼 수는 없을 것이다.
심지어 놈들은 가당치 않은 명분마저 챙기기 시작했다.
아갈타의 소대장이 게이트를 넘어오자마자 소리쳤다.
[대체 무슨 일이냐!]
처음 시비를 주도했던 아갈타의 병사가 답했다.
[이놈들이 돌아가신 에르하무스 준장님의 명예를 더럽혔습니다! 그래서 정당한 결투를 벌이는 중이었습니다!]
그러면 아갈타의 소대장은 얼씨구나 분노를 터뜨리는 것이었다.
[고인의 명예가 걸린 정당한 결투에 끼어들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아갈타의 군인을 함부로 죽여? 상황 파악도 하지 않고 분대 간의 분쟁에 소대가 끼어들어 공격하다니… 분명히 말하건대 확전의 책임은 센타울에게 있다! 전원 돌격!]
벌 떼처럼 일어나는 기세.
꿍! 쿵! 하고 맞부딪치는 영력들. 대기가 증발하고 땅이 지글지글 끓는다. 차원강습병이란 지구에선 마족이라 불리던 괴물들. 고작 차원 문명의 병사들일 뿐이지만, 차원강습 시스템으로 강화된 전력은 어지간한 중세 판타지 소설에서라면 악마라고 불리고도 남을 위력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그러니 공장장으로서는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었다.
[아니, 이것들이 남의 사업장에서 진짜 뭐 하는 거냐고!]
그러곤 신경질적으로 외쳤다.
[가드들! 최고 경계 태세로! 손님들이랑 우리 시설을 똑바로 지켜!]
[옛!]
스무 명쯤 되는 가드가 차원강습 시스템을 장착했다.
그 생김새는 아갈타의 것과는 또 전혀 달랐는데, 내부 구성품은 둘째 치더라도 그 외피를 이루는 슈트에서부터 확 차이가 났다.
가령 아갈타는 몇몇 장교들을 제외하고는 하나같이 생체 슈트를 사용했다. 생체 슈트는 강력한 영력을 지닌 생명체를 산 채로 가공해서 만든 슈트이기 때문에 그걸 뒤집어쓰면 이형의 악마처럼 보인다.
반면 최종 조립 공장의 가드들은 ‘단조 슈트’를 입었다. 여러 재료를 합성해 강력한 영력으로 땅땅 때려서 형태를 만든 슈트였다. 사용한 재료와 단조 방식에 따라서 특유의 단조 무늬가 아롱아롱 새겨져 예술 작품처럼 아름다운 슈트가 된다.
나는 가드들의 차원강습 시스템을 꼼꼼히 살펴보며 속으로 다시 한번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역시… 단조 슈트가 최고야.’
기능도 기능이지만 비교적 단순한 재료들로 만들 수 있으며, 일단 아름답다. 우리의 경우엔 회로 집적 단조 공장이 생기는 바람에 비용 절감 차원에서 무조건 단조 슈트로 방향을 잡은 것이긴 하지만… 이렇게 실물을 앞에 놓고 보니 역시 운이 좋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드들은 아름답게 번쩍이는 슈트를 자랑하며 우리 앞을 막아섰다.
[위험하니까 뒤로 물러서라고.]
공장장도 한마디 거들었다.
[안심하셔도 괜찮습니다. 수는 적지만 우리 가드들은 솜씨가 아주 뛰어나니까.]
고마운 배려.
하지만 나는 살짝 고개를 갸웃거리지 않을 수 없었다.
아니 우리 연구진들이야 그렇다 쳐도, 내가 침묵의 해적단 단장인데 지금 나더러 조심하라고 하는 건가?
하지만 놀랍게도 이곳의 가드들은 침묵의 해적단을 잘 알지 못했다.
[해적? 해적은 구닥다리 성검을 들고 싸우지 않나? 차원강습 시스템으로 맞붙는 데에 기웃거리다가는 스치는 영력에 죽어 버리는 수가 있다고.]
그 자부심 가득한 얼굴이 열받는다.
하지만 말 자체는 맞는 말이긴 했다. 최신식 전차 하나가 구식 전차 수십 대를 혼자 박살 낼 수 있다. 그런데 성검과 차원강습 시스템의 차이는 그 이상이었다. 괜히 해적들이 정규군을 무서워하는 게 아니었다. 차원 문명들이 기를 쓰고 차원강습 시스템의 공급을 독점하고 단속하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하지만 우린 그런 성검만 가지고도 아갈타 정규군을 다 박살 냈는데… 진짜 모르나?
공장장이 쓰게 웃으며 사과했다.
[아, 미안합니다. 이해해 주세요. 여기에 있다 보면 워낙 대단한 차원 문명의 인사들이 다 찾아오다 보니 어지간한 소식은 다 묻힙니다.]
그러니까 여기 찾아오는 거물들에 비하면 침묵의 해적단은 송사리라는 소리인가?
차원 문명의 꽃이라는 차원강습 시스템을 최종 조립하는 공장이라 그런지 아주 자부심이 하늘을 찔렀다.
[뭐, 그리고 우리 가드들이 워낙 솜씨가 좋아서요. 전원이 1급 오퍼레이터 자격증이 있거든요. 저기 싸우고 있는 군인들이 갑자기 힘을 합쳐서 덤벼들어도 다 이길 수 있을 정도입니다.]
그렇게 말할 때 공장장의 얼굴은 물론이고 가드들의 자세에도 거드름이 가득 묻어났다.
‘…나는 너네랑 저기 군인들이 다 힘을 합치고 덤벼도 이길 수 있는데…….’
너무 재수 없어서 나도 모르게 그런 유치한 호승심이 불쑥 튀어나올 정도.
하지만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내가 그 문제로 말싸움을 벌이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부우웅-
또다시 게이트가 열린 것이다.
[에이! 기어 다니는, 밟아 죽일 하등 생물 같은 놈들! 남의 공장 앞에서……!]
공장장이 걸쭉하게 욕을 뱉어 내다 말고 입을 다물었다. 그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열린 게이트로 센타울 차원의 중대병력이 쏟아져 나왔기 때문이다. 중대의 병력 규모란 소대와는 느낌이 전혀 달라서, 정말 끝도 없이 병사가 튀어나오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그것도 끝이 아니었다.
부우웅-!
아갈타 측의 게이트도 열렸다. 마찬가지로 비슷한 규모의 중대 병력이 튀어나왔다.
[잠깐! 멈춰라! 우리는 센타울 차원의……!]
[닥쳐라! 확전 책임은 너희 센타울에게 있다!]
[이, 이 무슨……!]
싸울 준비를 다 갖춘 아갈타의 중대가 아직 상황 파악을 다 못 한 센타울의 중대를 덮쳤다. 싸움의 결과는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공장의 앞마당 가득 노랗고 파란 피가 끝도 없이 떨어져 내렸다.
그렇게 마당을 점거한 병력의 수가 백 단위를 넘어가자 기세 좋게 욕을 씨불이던 공장장은 뭐라 말도 못 하고 눈알만 이리저리 데룩데룩 굴렸다.
[…젠장.]
겁을 먹은 것이다.
그리고 곤란하긴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휘오! 휘오!’
휘오와 연결이 되지 않았다. 아갈타 놈들이 차원 이동을 제한하는 간섭을 걸어 둔 게 분명했다.
‘…설마 싸워야 되나?’
그건 정말 곤란했다.
현재 아갈타는 우리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
그런데 지금 싸움에 끼어들면 우리의 행적을 알리는 꼴이 된다.
심지어 이 공장을 통해 차원강습 시스템을 생산하려 한다는 정보까지도 까발리는 꼴.
지금 우리가 잘나갈 수 있는 건 어디까지나 아갈타가 우리의 위치를 특정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지금은 은밀하게, 최대한 은밀하게 움직여야 할 때.
내가 그렇게 곤란해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동안 전투는 종료되었다.
마당은 센타울 차원인들이 흘린 피로 완전히 노랗고 파랗게 물들었다.
도망친 센타울의 병사 스무 명 정도가 공장으로 몰려들었다.
공장장은 난감해하면서도 거래처 손님인 센타울의 병사들을 쫓아내지 못하고 눈만 데굴데굴 굴렸다.
꿀꺽.
1급 오퍼레이터 자격증에 빛나던 가드들도 중간에서 눈치만 보며 긴장으로 마른침을 삼켰다.
저벅. 저벅.
하지만 우리 모두의 예상과 달리 아갈타는 공장을 압박하지 않았다. 병사들을 뒤로 물려 놓고 지휘관 혼자 공장으로 걸어왔을 뿐이다.
대위 계급장을 단 중대장은 휙휙 주변을 둘러보다가 공장장을 보고는 착! 하고 경례까지 붙였다. 도망쳐서 공장 한구석에 올망졸망 모여 있는 센타울의 병사들은 쳐다보지도 않았다. 공장을 존중하는 의미로 공장으로 도망친 적들을 눈감아 준 것이다.
그리곤 아주 정중하게 말했다.
[소란을 피워 죄송합니다. 저희 아갈타인들에게 가장 중요한 가치인 ‘명예’가 훼손되는 일이 있었기에 부득이하게 싸움이 벌어졌습니다. 그 와중에 센타울 차원이 자세한 경위 파악도 없이 다짜고짜 확전을 시도하는 바람에 일이 이 지경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사업장에 불편을 드린 건 모두 우리의 불찰이고 잘못입니다.]
아갈타의 중대장이 깊숙이 머리를 숙였다.
사람의 마음이라는 게 그렇다. 겁먹고 있다가도 상대가 저자세로 나오는 순간 불만이 피어나고 고압적인 자세가 되는 법이었다. 이계의 존재들도 그 점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공장장은 줄곧 겁먹고 있었던 주제에 이제 와서 발끈! 화를 냈다.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남의 사업장에서……!]
하지만 그는 다시 입을 다물었다. 아갈타가 제시한 보상금을 보았기 때문이다.
[오, 오천만 타키온이요?]
요새 억대의 타키온을 다루어서 그렇지 사실 오천만 타키온만 되어도… 최상위의 차원 문명에서도 평생 떵떵거리며 놀고먹을 수 있는 액수였다. 계속 화내기에는 너무나 큰 돈.
공장장은 허허 그럴 수도 있지요. 하면서 그 돈을 받았다.
[네. 그러면 다시 한번 심심한 사죄의 뜻을 표합니다. 저희는 현장을 깨끗하게 정리해 놓고 떠나겠습니다.]
아무렇지도 않게 큰돈을 뿌린 아갈타의 중대장은 깍듯이 인사하고 자리를 떠났다.
[네, 살펴 가세요.]
공장장은 살갑게 그가 가는 길을 배웅했다.
여러모로…….
예상 밖 상황의 연속이었다.
대체 아갈타는 왜 이런 짓을 벌인 거지? 공장에 막대한 보상금을 줄 정도라면 더 이상 적을 늘리고 싶지 않다는 분명한 제스처다. 그런 아갈타가 정작 센타울 차원에 대해서는 수백 명을 죽여 버리는 만행을 저지른다?
“…전쟁이라도 벌이려는 건가?”
하지만 공장장은 내 말을 부정했다.
[에이. 차원 간 전쟁이 그렇게 쉽게 일어나나? 그냥 국지적인 신경전 정도겠죠.]
“…수백 명이나 죽었는데요?”
[차원 전체의 인구에 비하면 적은 것 아닙니까? 그냥 소규모로 몇 번 더 치고받다가 합의하고 끝내지 않겠습니까? 아무래도 준장이 죽었으니 쟤네도 그냥 넘어가긴 어려웠겠죠.]
글쎄… 내 생각은 조금 달랐다.
나는 죽어 간 수백 명의 센타울 군인들을 떠올렸다. [만상공감]의 단점 중 하나. 나는 그들이 죽어 가며 느낀 감각을 모두 알고 있다. 그러니… 저절로 생각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센타울 차원은 어떤 곳일까? 이 억울한 죽음들에 어떻게 반응할까?
‘내미슈는… 이 소식을 들으면 어떤 생각을 할까?’
내 머리는 이렇게 복잡했는데, 공장장은 오히려 기분이 좋아 보였다.
[그나저나 아갈타 사람들이 생각보다는 경우가 있군요. 아주 예의 바른 친구들이었습니다. 하핫!]
저딴 소리를 하는 걸 보면 오천만 타키온이 좋긴 좋은 모양이다.
씁쓸한 기분이 들어 공장의 앞마당을 한 번 돌아봤다. 수백 명이 죽어 노랗고 파랗게 물이 들어 버린 장소. 이 처참한 풍경도 막대한 보상금 앞에서는 아무 일도 아닌 게 되어 버리는 걸까?
‘차원 문명들의 세계는 역시나 냉혹하다.’
힘이 없는 자, 패배한 자는 잊히고, 내게 도움이 되는 자들만 대접을 받는다. 억울한 죽음을 굳이 기억해 주는 사람은 없었다.
그러니까, 이 차원 문명의 먹이사슬에서 저 아래 플랑크톤보다도 못한 우리 지구인들은 더 냉철하고 더 빡빡하게 살아야 하는 거다.
공장장이 흘깃 나를 돌아보며 말했다.
그래서였다.
[음, 아무래도 오늘은 이렇게 되어 버렸으니까 일단 오늘 스케줄은 보류…….]
공장장의 어설픈 태도를 나는 단번에 잘라 버렸다.
“바로 진행하죠.”
[예?]
“미룰 거 있습니까. 오늘 예정한 대로 차원강습 시스템 뽑아내죠. 견학도 진행하고요.”
[…진짜요? 이 상황에서?]
“이 상황이 왜요?”
공장장이 당황한 얼굴로 앞마당을 바라보았다. 피로 물들고 시체가 산처럼 쌓인 그곳을 바라보다가 다시 나를 귀신 보듯 바라보고는 진땀을 흘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 알겠습니다. 그냥 좀 노, 놀란 것뿐입니다. 과연 침묵의 해적단. 학살 정도는 익숙한 모양입니다. 저는 속이 울렁거려서… 아, 아무튼 말씀한 대로 바로 진행하지요.]
뭐지… 이상한 오해를 산 것 같지만 굳이 정정해 주지는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