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소장품과 갤러리
내가 나가자 권승리는 대뜸 물었다.
“하나 묻지. 마족과 결탁했어?”
“아니. 알 텐데, 그런 기술을 쓰는 게 마족만은 아니라는 걸?”
내 말 어디가 거슬리는지 권승리는 눈썹을 꿈틀했다. 하지만 더 캐묻진 않았다.
“뭐… 어차피 결투가 끝나면 알게 될 사항이니까.”
권승리는 나에게 결투 규칙을 제안했다.
그녀가 말했다.
“첫째, 유물은 쓰지 말 것.”
누가 봐도 이성계의 활을 겨냥하고 한 말인다.
“왜? 유물을 쓸 수 있는 것도 내 능력인데?”
그러자 권승리가 어깨를 으쓱였다.
“좋아. 그럼 나도 유물을 쓸게. 네가 쓰는 방식과는 다를 테지만.”
권승리가 아공간에서 유물을 꺼내 봉인을 뜯어 낸다. 동그란 방패 형태의 유물에 손을 대자…….
끼기기긱.
온 세상이 뒤틀리는 듯한 느낌이 든다. 그 순간 나는 직감했다.
‘이건… 폭발한다.’
서민서가 터뜨린 재앙 병기보다 몇 배는 더 강력한 힘으로.
‘유물을 구성하는 법칙을 비틀어 폭발시킨다고?’
이 무슨 무식한 능력이란 말인가? [법칙왜곡]이 전능에 가까운 능력이라는 걸 잠깐 잊었다.
이런 식의 싸움은 피차 손해.
다 같이 죽을 수는 없지.
“그만. 유물은 쓰지 말자.”
권승리가 눈에 이채를 띤다.
“역시 알아볼 줄 알았어. 실은 나도 이런 데서 유물을 소비하고 싶진 않았거든.”
그러곤 두말하지 않고 유물을 다시 봉인해서 아공간에 던져 넣었다.
이어서 권승리는 두 번째이자 마지막 규칙을 읊었다.
“다음 규칙. 패자는 승자에게 모든 권리를 내준다.”
쉽게 말해 노예 계약이었다. 구체적인 요구는 그랬다. 모든 정보의 제공. 모든 시설물의 접근 권한과 폐쇄 권한 양도 등등.
아주 무리한 요구다. 우리가 받아들일 거라 생각한 건가?
“글쎄… 우리 사령부라면 몰라도 우리 연합에 속한 다른 조직들까지 그 조건을 받아들인다고는 장담 못 하겠는데?”
그러자 권승리는 주변을 슥 둘러보았다. 나랑 권승리가 싸운다는 소식을 듣고 전 세계에서 가주와 길드장, 협회장들이 모여들었다. 문자 그대로 전 세계가 대한민국의 용산구에 집결한 상황.
당연히 우리와 동맹 관계에 있는 조직의 장들도 바쁜 스켈줄을 다 미뤄 두고 전원이 모여 있었다.
권승리는 그들 하나하나와 눈을 마주치며 말했다.
“아니, 반발 없을 거야. 나랑 적대하기 싫어질 거거든.”
자신이 싸우는 모습을 보면 저항 의지 따위는 남아나지 않을 거라는 광오한 발언.
그러니까, 그녀의 머릿속엔 내게 발목 잡히는 시나리오 따위는 들어 있지 않은 것이다. 그녀의 생각은 그저 압도적인 승리뿐.
이건 좀 자존심이 상하네.
“…좋아. 그렇게 하자. 나는 솔직히 그쪽에 바라는 게 많지가 않아서 내가 손해 보는 느낌이지만… 한번 붙어 보자. 바로 시작하지, 결투.”
권승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갑자기 싸움이 시작되었다.
“그래. 너에겐 먼저 미안하다고 말해 둘게.”
오싹!
‘말해 둘게.’라는 그 말이 끝남과 동시에 [만상공감]에 걸려드는 터무니없는 감각.
권승리는 짧은 시간 만에 자신의 장갑 프로스트 듀에서 얼음 결정을 만들어 내고 그대로 주먹을 쥐어 아스러뜨렸다.
영혼을 통해 직접 타격을 가하는 수법.
미처 피할 틈이 없었다. 때문에 나와 영혼이 연결된 방어구, ‘절규를 삼킨 밤’이 권승리의 공격을 대신 받아들였다.
파르르르-!
찌이익!
절규를 삼킨 밤이 미친 듯이 팔락이다가 한 뼘쯤 쭉 찢어졌다. 가슴으로 서늘한 바람이 훅 들어온다.
권승리가 하얗게 탈색된 눈동자를 치켜들었다.
“비껴 나갔다고……? 분명 네 신체의 인과를 바로 노렸는데?”
그녀가 나를 찬찬히 훑는다. 그녀의 머리칼이 하얗게 물들기 시작한다.
“숨겨 둔 수가 있었나? 좋아. 제대로 간다.”
아니. 오지 마.
한 번의 부딪침으로 깨달았다, 이번 싸움은 타이밍이 중요하다는 걸. 권승리가 법칙을 마음대로 왜곡할 타이밍을 주면 안 돼.
이번에는 내가 먼저다!
우우우웅-!
108개의 무기가 일제히 하얀 아우라를 피워 올리며 권승리를 향해 쏘아졌다.
“여태 네가 어떤 적과 싸워 왔는지는 모르겠지만… 내 눈엔 다 보인다!”
[만상공감]에는 똑똑히 느껴진다. 권승리가 법칙을 비틀려고 하는 감각이, 어떤 법칙을 어떻게 비트는 건지 내가 내 팔의 근육을 비트는 것처럼 선명하게 느껴진다.
그러니까, 반응해 낼 수 있다.
키이이이잉-!
권승리가 손을 뻗는 순간 권승리를 향해 쏘아 보낸 무기들이 잠시 휘청했지만, 구우우웅! 공회전하는 차량처럼 매캐한 굉음을 울리며 금세 제 궤도를 되찾았다. 권승리의 얼굴에 당혹감이 어린다.
“무슨……? 방향의 법칙 자체를 비틀었는데?”
별것 아닌 소리 같지만 무서운 뜻을 담은 말이었다.
타키넷을 뒤져 보면 공간을 왜곡하는 기술은 심심치 않게 찾을 수 있다.
동시에 공간 왜곡률을 계산해서 공간 왜곡을 무효화하는 기술도 거의 비슷하게 쉽게 찾을 수 있다.
즉, 공간 왜곡은 사실 계산 능력만 받쳐 주면 얼마든지 극복이 가능한 것이다. 하지만 ‘방향’이라는 법칙 자체를 비튼다면?
그때는 계산이 불가능했다. 계산은 법칙을 근거로 해서 일어나는데, 그 법칙 자체가 흔들리면 여태 참이었던 모든 계산법 역시 거짓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만상공감]은 그 왜곡마저 읽어 내고 대응할 수 있는 ‘감각’을 준다
권승리는 이런 [만상공감]을 몰랐고.
그 대가는 제법 매웠다.
캉! 깡! 카깡!
100개가 넘는 무기가 권승리를 향해 쏟아진다. 강기마저 상대할 수 있는 강력한 힘을 담고.
힘과 힘이 충돌하는 순간마다 충격파가 퍼져 나간다. 일대의 공기가 싹 날아가 버리고 코가 먹먹해진다. 나는 속도를 높였다.
까가가가강!
호흡이 벅차서 새빨갛게 달아오른 얼굴로 권승리는 연신 뒷걸음질을 쳤다. 그 뒤에 모여 있던 잘난 헌터들은 당혹스러운 얼굴로 우르르 뒤로 도망친다.
‘자… 이대로 조금만 더!’
분명 승기를 잡은 듯했다.
하지만.
구슬땀을 흘리던 권승리가 갑자기 미소를 지었다.
“파악했어.”
탁!
처음으로 깡! 하는 충돌음이 아닌, 탁! 하는 물먹은 가죽 치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터터터터턱!
솜방망이로 때리는 듯한 맥없는 소리와 함께 권승리에게 달려들었던 무기들이 힘없이 튕겨 나갔다.
하……!
기가 막히네.
‘힘이라는 법칙 자체를 뒤틀어 버렸어?’
만약 화약을 폭발하게 만드는 화학 법칙을 비틀면 어떻게 될까? 그러면 화약은 그저 검은 가루에 지나지 않게 될 것이다.
지금 일어난 일이 바로 그것이다. 권승리가 내 자랑스러운 무기들을 한낱 이계 고철들로 만들어 버렸다.
그러곤.
권승리와 나 사이의 거리가 갑자기 사라졌다. 시간이 잘렸다 편집된 것처럼 불쑥 내 앞으로 다가온 권승리.
빌어먹을. 알고 있었는데 당황하는 바람에 미처 반응하지 못했다.
쩌어엉-!
대기를 뭉개는 마누스와 함께 권승리의 정권이 내 가슴에 틀어박힌다. 주먹에 곁들여진 [차원왜곡]은 분자 결속의 약화. 내 가슴을 뚫어 버릴 작정인 건가?
시야가 휙! 뒤집혔다.
콰아아아앙-!
“크윽!”
벽을 부수고 처박혔다.
추가 공격이 염려돼서 벌떡 일어났는데, 눈앞으로 별 무리가 보였다. 입에서는 쇠맛이 나고, 죽겠네 아주.
그런데도 권승리는 내 상태가 의외였던 모양이다.
“일어섰다고?”
그래. 일어섰다.
후드드득.
가슴팍에서 부스러져 떨어지는 건 내 애정 하는 회칼 파도의 파편. 법칙이 변해도 변하지 않는 것, 그것은 영혼. 내게 완전히 길들어 순백의 아우라를 갖게 된 물건들에는 영혼이 있다. 그렇기에 절규를 삼킨 밤이 권승리의 최초 공격을 막고 파도가 두 번째 공격을 막을 수 있었던 것.
‘다행히… 수리는 가능해.’
그렇다고는 해도 오래된 친구 같은 내 장비들이 하나씩 박살 나는 기분이 좋을 리 없다. 다시 공격의 고삐를 죄어야 한다. 권승리의 정신을 분산해서 [법칙왜곡]을 어렵게 만들어야 한다.
더욱더 집중한다. 권승리가 [법칙왜곡]을 하기 위해 사용하는 ‘감각’에 더욱더 깊이 집중한다.
키이이이잉-!
다시 107개의 무기가 권승리를 향해 쏘아졌다.
“또 이거야? 안 통한다니까?”
권승리가 차게 비웃는다. 하지만.
캉!
“어?”
카캉!
“어, 잠깐.”
이번에 권승리는 아까처럼 받아 내지 못한다.
“이익……! 대체 어떻게……!”
그럴 수밖에.
‘내가 지금 네 타이밍을 탁탁 쳐 내는 중이거든.’
고도의 집중 속에서 권승리가 [법칙왜곡]을 시행하기 위해 신 같은 힘으로 법칙을 쥐려고 하는 순간, 그 손을 쳐 내 버리는 것이다. 순간순간의 맥을 정확하게 짚어서 무기를 적중했다. 바늘 끄트머리 같은 오차 하나만 있어도, 권승리가 법칙을 비틀려고 시도하는 속도를 조금만 따라가지 못해도 순식간에 파훼될 전략.
하지만 통한다.
수천 개의 타깃을 하나도 남김없이 명중할 수 있다는 이지스 함선처럼. 나는 모든 요격에 성공했다.
통한다.
까가가가강!”
“이익. 이게 무슨!”
외줄을 걷는 기분이지만 그 외줄 위를 뛰어도 순조롭다면?
한 줄기 식은땀이 목 뒤로 흘러내린다. 짜릿하고 서늘한 미소가 입가에 드리워진다. 나는 일출을 꺼내 들고 별빛 강기를 피워 올렸다. 헌터들 사이에서 헛! 하고 숨을 먹는 소리가 들린다. 왜? 강기까지 쓰니까 아주 진짜 악마 같아 보여? 머저리 새끼들.
강기는 영혼의 힘이 법칙에까지 닿았을 때 만들어지는 것. 권승리의 힘으로도 강기 자체를 어쩔 수는 없다. 107개의 무기가 돌아가는 그 사이사이로 일출을 찔러 넣는다. 권승리의 흔들림이 더 커진다.
이번에야말로 승기를 잡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카가가가가가각!
수세의 수세까지 몰렸던 권승리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쫌! 그만! 그만해!”
어? 안 돼! 막… 아… 야……!
타이밍을 완전히 뒤집으며 벼락이 치듯 시작된 [법칙왜곡].
꾸우우웅-!
시간이 가라앉는 듯한 느낌. 권승리는 여전히 저 높은 곳에 머물러 있는데 나만 혼자 깊디깊은 구렁텅이로 굴러떨어지는 기분이다. 몸이 움직이질 않는다. 떠오른 머리카락이 가라앉지 않는다, 시간이 얼어붙은 것처럼.
미친… 시간까지 가지고 논다고?
‘…그래도 감각은 살아 있어.’
[만상공감] 덕에 감각까지 둔해지진 않았다. 생각의 속도도 그대로다. 하지만 몸이 움직이질 않았다.
내가 움직이지 못하는 세상 속에서 권승리는 혼자 자유롭게 움직였다. 법칙을 비틀어 만들어 낸 현상이라서 법칙 적용을 제멋대로 해 버린다.
“후우…….”
권승리가 숨을 한 번 몰아쉬고 나를 쏘아보았다.
“한… 이 정도면 더 이상 막아 내질 못하려나?”
꾹 쥔 주먹 위로 막대한 마누스가 깃들어 대기를 뭉갠다. 어찌나 강대한 마누스인지, 권승리의 모습이 물에 녹은 수채화같이 뭉개져 보였다. 꿍! 꾸꿍-! 그리고 저 작은 주먹 위로 대체 몇 개의 법칙이 왜곡되는 거냐… 그냥 내 영혼을 이 세상에서 소멸해 버릴 생각인 게 아닐까?
권승리가 말했다.
“후… 이 정도면 되겠지? 뭐, 그래도 정말 강하시네요. 제법 배운 점이 많았어요, 소시민 사령관님.”
벌써 싸움이 끝났다고 생각하는지 갑자기 다시 존댓말을 쓰는 권승리.
그래.
권승리는 정말 강했다. 자칫하면 질 뻔했지 뭐야.
나는 권승리에게 대답했다.
“천만에요. 저야말로… 제가 훨씬 더 많이 배웠습니다.”
빈말이 아니다. 진짜 값진 것들을 배웠다.
글쎄.
안 그래도 잠재력이 폭발하던 요즘.
그런 나의 앞에 권승리가 나타난 것이다.
무려 법칙을 주무르는, 세상의 가장 심오한 질서에 대한 감각을 지닌 이가 나타났다.
그리고 나는 그걸 [만상공감]으로 세세하게 보았고, 심지어 맞아 보기까지 했다.
아마.
별빛의 찬연도 이 정도는 아니지 않을까?
세상을 보는 눈이 또 한 번 뒤집어졌다. 확실히 감을 잡았다. 아, 이게 법칙의 느낌이구나. 영혼과 법칙이 부대끼면 이런 감각이구나.
그러다가 깨달았다. 내게 길든 장비들 중에서 지금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는 녀석이 누구인지.
내 소중한 장비를 두 개나 파손하고 피까지 한 움큼 토해 가며 겨우 배운 값비싼 깨달음.
권승리는 눈을 크게 치떴다.
“어, 어떻게 말을?”
어떻게긴. 네가 왜곡한 법칙을 벗어났으니까 가능하지.
“그럼 마무리를 지어 볼까요?”
화르르르!
거인창이 내 눈앞으로 떠오른다. 평소와 전혀 다른 빨간색 아우라가 활활 타오르고 있다.
타키넷에는 전설처럼 전해지는 이야기가 있다. 수집물을 넘어서 소장품이 된 물건들에 관한 전설. 주인의 영혼과 연결되는 것을 넘어 주인의 영혼과 함께 묶여 더 강하게 응집되는… 그 영혼의 힘만으로도 강기를 뛰어넘을 수 있다는 전설적인 물건들.
법칙에 묶여 있는 것처럼 보이나 그래도 유일하게 법칙을 초월할 가능성을 지닌 것이 바로 영혼.
소장품이 된 거인창이 나의 영혼을 집결시켰고, 그렇게 높아진 영혼의 격은 승리가 왜곡한 법칙을 벗어난다.
후드득!
등 뒤로 빛나는 아루카의 날개를 펼치고 7미터의 거인창을 연기처럼 휘둘러 권승리를 겨눈다.
그러자 거인창의 명령을 따르듯 100개가 넘는 무기들이 다시 허공에 떠올랐다. 지금까지와 다르다. 하얀 아우라가 거인창의 빨간 아우라에 물들어 분홍빛 아우라가 된다. 이것들이 떠 있는 공간 안에서, 나는 마치 전능한 것만 같다.
‘이게… 갤러리 효과.’
소장품의 전설에 따라붙는 이야기였다. 단지 하나의 장비만 강해지는 게 아니라 주변의 길이 든 모든 물건을 함께 강화시키는 효과.
“자, 다시 시작해 보자.”
100개가 넘는 무기가 권승리를 향해 쏘아진다.
아까보다도 더 교묘하고 더 절묘한 타이밍으로. 팡! 파아앙! 터지는 영력의 충격파는 권승리의 초능력 발현을 턱턱 가로막는다.
카가가가가강!
“그만! 하라고!”
권승리가 재채기라도 하듯 벼락같은 [법칙왜곡]을 시도하지만.
까아앙-!
“큭!”
이번에 내 무기들은 그 속도마저 따라잡았다. 아니, 오히려 권승리의 [법칙왜곡] 속도가 내 무기들의 대응 속도를 따라잡지 못한다. 왜곡을 시도하기도 전에 먼저 쏟아지는 무기들의 공격에 머리가 하얘지는 기분일 것이다.
“욱…….”
이젠 멀미가 나나? 하기야. 어마어마한 영력이 주변을 가득 채우고 터지고 난리를 치는데, 그 안에서 온전한 감각을 가지고 있는 건… 아마 나 정도뿐일 거다.
깡깡! 카까각! 까가가가강!
욱… 크훅…….
권승리의 멀미는 점점 심해졌다. 계속 비틀거리며 헛구역질을 했다. 그러던 어느 한순간 빈틈이 드러났다. 나는 거인창을 들고 직접 달려들었다.
파아아앙-!
아루카의 날개를 한 번 내리치는 순간 정지 상태에서 바로 최고 속도에 오른다.
내 앞에서 흩어지는 바람들 사이에선 시간이 흘리고 간 차가운 냄새가 맴돌고.
압축된 공간을 꿰뚫으며.
내 창끝이 권승리의 심장을 노린다.
카아아아앙!
손목을 지나고 팔꿈치, 어깨마저 지나 온몸에 전달되는 충격. 이가 드드득 부딪혀서 코가 맵다. 제대로 들어갔다!
“커헉!”
권승리는 용케도 거인창을 막았다. 하지만 자세가 제대로 흔들렸다. 결정적인 빈틈, 킬 각이었다!
거인창으로 찌르자니 각이 서질 않아서 거인창을 던졌다. 그리고 마침 옆을 떠다니던 무기를 쥐었다.
‘영자 사출형 울티밋 치셀!’
끝이 오므라들어 날카로운 이 녀석, 역시 내 손에 착 달라붙는다. 충동구매로 샀지만 내 손과 상성이 딱인 이 녀석! 이 녀석과 함께라면 머리카락 같은 찰나의 킬 각도 잡아낼 수 있다.
몸이 저절로 움직이고, 빈틈을 드러낸 권승리의 방어 위로 치셀이 콱! 박혀 버린다. 권승리는 자신의 옆구리 부분에 딱 달라붙은 치셀을 보고 당황했다. 얼른 그걸 떼어 내려고 하는 순간, 나는 이미 전투 망치 어스퀘이커를 손에 들고 그녀의 옆구리에 붙은 치셀 머리를 있는 힘껏 내려친다.
쩌어엉!
볼 것도 없지. 정중앙에 맞혔다. 극한으로 응집된 치셀의 영력이 일자로 쭉 뻗어서 권승리의 방어를 꿰뚫고 옆구리에 틀어박힌다.
우드드득!
갈비뼈가 부러지는 소리.
웨에에엑!
피를 토하는 소리. 그리고…….
털썩.
권승리가 쓰러졌다.
잠깐의 고요. 그리고.
“스, 승리야!”
무혼권가의 가주 권도식이 급히 달려들어 치료를 시작한다. 뭐… 병원 신세는 오래 지겠지만 죽지는 않을 거다.
쿵!
어스퀘이커를 땅에 내려놓고 숨을 골랐다. 권승리가 이길 거라 철석같이 믿고 있던 헌터들은 지금 어떤 표정일까?
오…….
예상과 달리 다들 이글이글 타오르는 눈빛으로 전의를 드러내고 있었다. 그래. 자기 대장이 졌으면 저 정도 오기는 부릴 수 있지.
근데 계속 그렇게 볼 거야? 왜? 결과에 불복해 보려고?
지그시 노려보자 한 명이 시선을 옆으로 힐끗 돌렸다가 다시 나를 본다. 그 옆도, 그 옆옆도 마찬가지다. 애써 내 눈을 마주하지만, 중간중간 눈동자가 갈피를 못 잡고 방황한다.
그래.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아무리 자존심이 세도.
내가 권승리를 깼으니까.
그들에게는 신앙과도 같았던 권승리가.
내게 깨졌다.
누가 우위에 있는지 전 세계의 유력자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확실하게 결판이 난 것이다.
우리가 위고 너희가 아래.
그만, 눈들 좀 깔아 줄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