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VVVIP 차원 쇼퍼-161화 (161/212)

4. 전지와 전능

며칠 전.

[손님, 이건 어떻습니까?]

타키넷 천일 쇼핑몰의 명품관 직원이 내게 그렇게 물었을 때.

나는 찌릿! 한 감각을 느꼈다.

가끔 그런 물건이 있다. 특별히 좋은 물건도 아니고 남들이 인정해 주는 물건도 아닌데, 그저 나하고 궁합이 딱 맞는 그런 물건.

“와… 이건?”

특별한 브랜드가 없는 물건이다. ‘영자 사출형 울티밋 치셀’. 이름도 개성 없다.

한 손에 쏙 들어오는 뭉툭한 물건인데 끝이 뾰족하게 오므라들어 있다. 이 치셀(정)을 원하는 곳에 박아 넣고 영력을 쏟아부으면 단단하기 짝이 없다는 지옥철地獄鐵 덩어리도 단숨에 쪼갤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말하면 거창한 무기 같지만 실은 주로 채굴 현장이나 건축자재 가공 산업에서 쓰이는 흔한 도구였다.

‘그런데 명품이야.’

단단하고 힘의 전도율이 좋은 폭풍철을 몸체로 삼았고, 영력을 손실 없이 집중시키는 데 탁월하다는 통령부通靈符를 심지로 썼다. 마지막으로 손에 쥐는 부분은 하늘의 영혼에서 채취하는 하늘견을 짜서 질기고 튼튼하면서도 시원하고 부드럽게 마감했다.

보자마자 알 수 있었다.

‘이건 내 손에 딱 맞는다.’

손에 쥐면 원래 붙어 있었던 것처럼 착 붙을 것이다. 감촉도 마치 손이 녹아 버린 것처럼 착 달라붙으면서도 시원할 것이다.

‘무기로 쓰기에도 너무 좋겠어.’

어느 정도의 힘으로 이 치셀을 박아야 할지, 어떤 타이밍에 영력을 쏟아부어야 할지. 생각들이 저절로 머릿속에 떠오르는 게 멎지 않는다.

품질도 뛰어나지만, 그보다도 나와의 상성이 너무나 잘 맞는 아이.

결국 결심했다.

‘이건 사야 돼!’

예정에 없던 추가 소비.

타키넷 천일 쇼핑몰 명품 코너의 직원은 싱글벙글하며 또 다른 물건을 권했다.

[손님, 손님. 이것도 좀 보세요. ‘동시적 텔레파시 끈목’이라는 겁니다. 신체 어떤 부위든 가져다 대기만 하면 알아서 붙습니다. 그 어떤 텔레파시보다도 빠르게 행동과 관련된 의식을 공유할 수 있습니다. 팀을 짜서 할 일이 있을 땐 이것만 한 게 없죠.]

아, 이게 팔이 여덟 개 달린 이계인이 ‘호구를 잡았구나.’ 하고 생각할 때 느끼는 감각인가? 대체 어떻게 돼먹은 정신머리이길래 단단한 자원을 가공할 때 쓰는 치셀을 권한 다음에 뜬금없이 행동 텔레파시 장비를 권한단 말인가? 그것도 명품관에 있어서 쓸데없이 비싼 물건을!

내가 무슨 아무 물건이나 되는대로 사들이는 센스 없는 졸부 같아 보이나? 나는 엄연히 진짜 좋고 필요한 물건만 골라서 사는 중이다. 그래서.

산다.

“주십쇼. 여기서 저기까지. 한 500개 주쇼.”

그래. 이 끈목, 머리 장식으로 하면 딱이겠다. 머리털에 가져다 대면 착! 하고 예쁘게 달라붙을 거다. 색깔도 튀지 않게 까만색이다. 행동 텔레파시라니. 이것만 있으면 오합지졸을 모아도 한 몸처럼 움직이게 하는 게 가능한데… 화랑단 같은 정예에게 준다면 어떻게 되겠어? 심지어 품질이 끝장난다. 안에 들어간 재료들만 봐도 가격값을 하는데, 마감도 좋다. 아마 충성 고객 확보 차원에서 마진을 거의 안 남기고 제작한 물건이 아닐까?

직원의 웃음은 점점 커진다.

[손님! 저쪽에 있는 물건은 길들이기에 따라서 어쩌면 수집물을 넘어 소장품까지 될 수도 있는 물건이에요. 저어어엉말 귀한 물건이죠. 평생의 동반자를 넘어 영구히 기억 될 행적으로 남는 그 소장품이요.]

[네? 정말요? 그런 건 박물관에나 모셔지는 줄 알았는데.]

여태 내가 길들인 물건들은 다 수집물이 한계였다. 차원 문명의 고명한 박물관엔 소장품 단계까지 길든 물건들이 보관되어 있다는 걸 알지만 내 눈으로 직접 본 적은 없었다. 하나의 물건이 소장품 단계에 오르는 조건이 무엇인지는 여전히 정론이 없이 가설만 무성한 상황이라 들었다.

그런데 소장품이라고? 여기서?

이 새끼가 또 사기를 친다.

하지만.

뭐 물건만 좋으면 상관은 없나……?

어쩐지 나도 덩달아 웃음이 점점 커졌다.

* * *

주인공들이 무대에 오르기 전에 관객들이 먼저 경기장을 채우는 법.

권승리가 등장하기 전에 그녀가 소집한 최정예 헌터들이 먼저 사령관저 앞에 집합을 마쳤다.

하룻저녁 만에 나라 하나라도 지워 버릴 수 있는 전력이 집결하는데 용산구 제2지역 사령부 측에서도 대응이 없을 수 없었다.

척! 처척!

사령부 입구를 틀어막듯이 화랑단 전원이 도열했다. 서민서, 박민희, 강전구, 김민수 등의 소대장들이 앞에 서서 헌터들을 차갑게 노려본다.

그 모습에 처음 헌터들은 위화감을 느꼈다.

‘뭐지? 거리가 잘 느껴지지 않는데?’

그 정도쯤 되는 고수들이면 그냥 서 있기만 해도 본능적으로 서로의 간격을 잰다. 내가 먼저 뻗어서 상대가 막거나 피하기 전에 칠 수 있는 거리인가? 그런 자세인가?

그런데 그런 신경전이 통하질 않았다. 화랑단 전원은 그냥 서 있는데… 어딘지 석상처럼 무방비해 보기도 했고, 어딘가 익숙한, 그런데 석연치 않은, 위압감 같은 것이 느껴지기도 했다.

하나 헌터들은 이내 마음을 풀고 화랑단을 비웃었다.

‘그냥 허세겠지.’

그건 과신이 아니었다. 이 자리에 모인 화랑단원들이 한때 이름 높았던 엘리트들이라는 건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간 쌓아 온 경험이 다르달까? 매일같이 괴물들과 악전고투를 벌여 온 자신들과 후방에서 편하게 호의호식해 온 화랑단의 전투력은 자릿수부터가 다를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이제 서로 눈빛만 봐도 통하는 사이지.’

‘너희는 여러 조직에서 차출되어서 만들어진 조직이지? 아직 제대로 섞이지도 못했을걸? 너희와 우리는 질적으로 다르다. 그냥 싹수 좋은 것들 한자리에 모아 놨다고 좋은 부대가 되는 게 아니지. 부대는 함께 실전을 치뤄야 강해진다.’

그렇게 생각하고 보면 묵묵히 서 있는 화랑단의 모습이 온실 속에서 자란 화초의 고요함처럼 그냥 귀엽고 예쁘게만 보일 뿐이었다.

그런데 그때.

아무런 신호도 없이.

처척!

도열해 있던 화랑단이 일제히 움직였다. 어떤 이는 앞으로 두 걸음, 누구는 한 걸음, 누구는 옆이나 뒤로.

그렇게 움직여서 만들어진 빈 공간에 서른 명 남짓한 화랑단원이 떨어져 내렸다. 딱 맞는 직소 퍼즐의 한 조각처럼 빈 공간에 정확하게 떨어져 도열한다. 그들의 머리칼에는 까만 매듭 끈 하나가 흔들리고 있었다. ‘동시적 텔레파시 끈목’. 안 그래도 잦은 실전으로 호흡이 좋던 화랑단은 이제 정말 한 몸같이 움직일 수 있었다. 눈빛만 봐도 아는 사이 정도가 아닌 그냥 어느 때고 노룩패스가 가능한 사이.

“늦어서 죄송함다!”

늦게 온 사람은 까막이였다. 자신이 이끄는 화랑단 소대 하나를 데리고 뒤늦게 도착한 것이다.

박민희가 눈살을 찌푸리며 그들을 힐난했다.

“소대장이 늦으면 소대원들이라도 먼저 왔어야지. 이게 뭐 하는 짓이야?”

그러자 까막이가 아닌 까막이의 소대원들이 대답했다.

“죄송합니다! 그래도 저희는 저희 소대장님 없이는 움직일 수 없었습니다. 나중에 벌하신다면 기꺼이 받겠습니다!”

쯧. 쟤들이 뭔 죄야. 까막, 이따 보자.

박민희는 손사래를 쳤고, 까막이는 뭘 잘했다고 싱글벙글 웃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헌터들은 얼굴이 살짝 굳었다. 지금의 상황이 예상과 너무 달라 보였기 때문이다.

‘저 군기는 뭐야? 소속도 다 달라서 완전 당나라 군대일 거라 생각했는데?’

‘실전 경험 없지 않아? 어째서 산전수전 다 경험한 노련한 부대의 느낌이 나지?’

‘아까 움직임은… 대체 어떻게 그런 게 가능하지? 맨날 제식훈련만 했나? 저 콧대 높기로 유명한 엘리트들을 데리고?’

헌터들 사이에서 동요가 퍼지자 그걸 예민하게 느낀 이들이 분위기를 반전하기 위해 앞으로 나섰다. 다들 거대한 조직을 하나씩 거느리고 있는 이들이자 권승리 이전에는 세계 최강자로 한 번씩 거론되었던 거물들.

세력에서는 루드비히는 물론이고 칼츠가에도 밀리지만, 본신의 무력만큼은 유럽 최강이라 불리는 라이언하트 가문의 가주 크리스 라이언하트.

미국 헌터 명가 드제니 가문의 왈티 드제니.

대한민국의 수호가 무혼권가의 권도식.

그러자 사령부에서도 새로운 사람들이 마주하고 나섰다.

세계제일가. 루드비히 가문의 가주 로버트 루드비히.

루드비히를 논외로 치고 나면 유럽제일가로 꼽히는 칼츠가의 가주 루이나 칼츠.

대한민국 최강의 세력이었던 대한민국 헌터협회 협회장 하준광.

서로 마주 보는 구도가 완성되자 크리스 라이언하트가 말했다. 시정잡배처럼 자신의 대검을 껄렁껄렁 흔들면서.

“실전을 안 겪어서 그런가? 너희 쪽 능력자들은 똥군기만 가득하네?”

하준광이 답했다.

“뭣도 모르는 양키 놈이 헛소리를 하는군.”

크리스가 눈살을 찌푸린다.

“어이, 내가 왜 양키야? 난 잉글랜든데.”

“아, 그게 서로 다른 거였나?”

도발. 크리스 라이언하트가 얼굴을 확 굳혔다.

“하준광, 안 맞은 지가 오래 됐지?”

“하, 이십 대 때 한 번 이긴 걸 아직까지 우려먹게?”

“그냥 이긴 게 아니라 처발랐지. 내가, 너를.”

“그래? 내 기억은 다른데… 한번 증명해 볼래?”

대한민국에서 가장 호전적인 남자와 세계에서 가장 호전적인 남자가 유치한 말다툼을 벌이며 기세를 피워 올렸다. 뭉클뭉클 치솟는 마누스. 대기가 일그러지고 소용돌이가 몰아친다. 그런데 하준광이 픽 웃었다. 그 순간 크리스 라이언하트의 마누스가 찌그러지기 시작했다. 영력을 운용해 크리스의 마누스를 흩어 내기 시작한 것이다.

그 순간 모두가 놀랐다.

“너! 그 기술!”

“마족의 기술!”

반사적으로 놀라서 훌쩍 물러서는 크리스 라이언하트. 또한 당장 칼을 뽑을 것처럼 크게 경계하며 자세를 낮추는 그 뒤의 헌터들.

하지만 화랑단과 하준광은 태연하기만 했다. 그들이 어떻게 나오든 대처할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어쩐지… 아까부터 뭔가 이상하면서도 낯이 익은 기운이다 싶었지. 이제 보니 저기 화랑단인가? 쟤네들 기운도 마족 특유의 기운을 닮았어.”

드제니 가문의 왈티 드제니는 나른한 표정으로 눈빛을 빛냈다. ‘마녀’라고도 불리는 이명에 걸맞게 눈빛이 요사스럽다.

“어떻게 마족의 기술을 익혔지? 그들과 결탁했니?”

“지랄. 영능학을 배우라고 할 때는 배우지도 않고 있다가 이제 와서 딴소리를 하는군.”

“그게… 영능학? 내가 본 거랑 좀… 아니 많이 다른데?”

“독학한 놈들 수준이야 뻔하지.”

날 선 말이 오가는 사이에도 양측의 긴장은 점점 더 높아진다. 아니, 엄밀히 말하면 헌터 측만 계속 긴장을 높이고 있었다. 마족. 그 이름은 그들에게는 트라우마나 다름없었으니까.

그 모습을 지켜보던 루이나 칼츠가 비웃음을 던졌다.

“마족이 무섭니? 잔뜩 쫀 것 좀 봐라.”

화랑단이 픽 웃음을 터뜨렸다. 그들은 마족을 상대로 늘 대승을 거뒀으니 마족 따위는 두렵지 않다. 아니, 자신들의 영력 활용이 ‘마족의 기술’로 치부당하는 게 수치스럽기까지 했다.

하지만 이런 사정을 모르는 헌터들 입장에서는 화랑단의 비웃음이 영문도 모르게 그냥 기분이 나쁠 뿐이었다.

“이 새끼들이…….”

그렇게 장내의 분위기가 폭발 직전에 이르렀을 때.

부르릉! 끼이익!

차 한 대가 그 사이를 가르며 멈춰 서더니 문이 쾅! 열리고 작은 체구의 거인이 내려섰다.

처처척.

그건 반사적인 움직임이었다. ‘동시적 텔레파시 끈목’으로 연결이 되어 있는 탓에 모두가 동시에 반응했다.

화랑단과 하준광, 루이나, 로버트 가주가 동시에 세 발짝을 물러서며 자세를 낮춘 것이다.

그 정도였다, 권승리가 내뿜는 투기는.

장내를 압도한다.

그제서야 잔뜩 긴장하고 있던 헌터들은 여유를 되찾을 수 있었다.

하지만 권승리는 그들에게는 시선 하나 주지 않았다. 그저 사령부 건물을 쏘아보았을 뿐.

“그만 나와, 소시민.”

여태까지 서로 지켜 온 예의는 다 내팽개치고.

그렇게 한마디 말을 던졌을 뿐.

* * *

권승리가 왔다.

나는 방에서 그걸 느꼈다. 예전에는 진면목을 알아볼 수 없었던 권승리의 감각이 지금은 손에 닿을 만큼 세세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숨이 턱 막혔다.

‘이 정도… 였나?’

상상을 뛰어넘는… 아니 상상조차 해 본 적 없는 거대한 감각이 나를 휘어감는다. 이게 이제 15살 된 소녀의 힘이라고? 아니, 그게 문제가 아니라.

‘사람 맞아?’

휘오가 내게 속삭였다.

- 시민, 보니까 알겠어. 저 사람이었어. 최근 차원 격류가 원래보다 더 강하게 흘렀거든. 두 배 좀 안 될 정도로. 근데 저 사람이 한 거야. 바로 얼마 전까지, 저 사람 혼자서 지구의 차원 격류를 강하게 만들었다고.

그런 게 가능해? 일개 인간이?

아니… 가능할 것도 같다.

이런 심오하고 방대한 감각을 지닌 이가 못 하는 게 있다면 그게 오히려 놀랍지 않을까?

그러고 보면 나는 이미 지금 권승리가 전해 주는 감각과 유사한 것을 느껴 본 적이 있었다. 이성계의 활, 신의 유물이라 불리는 그것.

그제야 나는 세간에 알려진 권승리의 초능력을 다시 한번 떠올리게 되었다.

‘이게… [법칙왜곡]의 감각이구나.’

이 세상의 가장 깊은 곳에 닿아 있는 감각.

온 세상이, 권승리, 그녀의 눈과 살갗에서 모이고 흩어지고 있다.

살아 움직이는 유물… 아니, 신의 감각이라고 불러야 옳을 것 같다.

만약 내 능력을 전지全知의 일부라고 표현할 수 있다면…….

권승리의 능력은 전능全能의 일부.

왜 이전에 그녀가 고작 지역 사령관에 불과한 내게 그토록 큰 호의를 보였는지 이제야 알 것 같았다. 어떤 면에서 우리의 능력은 서로 닿아 있었다.

그렇기에 나는 알아차렸다.

‘능력만 놓고 보면… 그녀가 나보다 강해. 훨씬 더.’

지난 생 내내 능력을 제대로 발전시키지 못했던 나와 달리, 지난 생에 이미 어떤 극한을 보고 이번 생에는 처음부터 최적의 길을 달려 능력을 발전시켜 온 권승리였다. 심지어 그 종류는 전능이었고.

- 조심해야 돼, 시민.

휘오가 나를 걱정해 주었다.

그래. 나도 알겠다.

왜 모두가 그녀를 저렇게 경외하는지.

왜 그녀가 이 세상의 구원자로 꼽혔는지, 이제는 알겠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긴다.”

나는 아직도 그렇게 믿었다. 권승리는 맨손 격투 하는 야만인이고, 나는 무기를 쓰는 문명인이니까.

비유적인 의미로도 문자 그대로의 의미로도, 그게 사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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