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VVVIP 차원 쇼퍼-156화 (156/212)

18. 별빛 함대

밀수꾼 네트워크의 큰손들은 사실 같은 먹거리를 놓고 다투는 경쟁자들에 지나지 않는다.

그들의 모임은 처음부터 화기애애할 수가 없었다.

- 누구 그 침묵의 해적 정체 아는 사람 없어? 정체도 모르는데 어떻게 임무를 맡겨?

- 람시르가 연결 고리를 가지고 있대. 중개를 맡겨야지.

- 아니. 그래도 정체는 파악하는 편이 다들…….

- 왜? 정체 알게 되면 아갈타에 팔아넘기게? 쓰레기 새끼.

- 근데 이번에 현상금이 얼마? 1억 타키온? 그 정도면 인정. 팔아먹을 만하지.

- 개수작 그만 부리고 빨리 임무나 정해. 계속 여기 있다간 너희 다 죽일 것 같아.

- 오, 죽일 수 있을 것처럼 말하네?

- 왜지? 못 죽인다고 생각해?

그들의 속내는 저마다 달랐다.

소시민을 이용하려는 자, 협력하려는 자.

소시민을 경계하는 자, 아갈타에 팔아먹으려는 자.

하지만 그렇게 제각각인 이들 모두가 동의할 수 있는 한 가지가 있었다.

- 닥치고! 침묵의 해적단한테 줄 임무나 빨리 정하자고!

바로 소시민에게 아주 크고 먹음직스러운 임무를 맡기자는 것.

소시민이 성공한다면? 이용하고 협력하려는 자에겐 그 자체로도 좋고 소시민과 협력 방식을 가늠할 척도가 될 거다. 경계하는 자에겐 소시민의 기량을 정확히 파악할 기회가 될 것이고, 팔아먹으려는 자는 임무 정보를 유출해 아갈타가 함정을 파도록 안배할 수도 있다.

다들 어찌 되든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실패한다면 그냥 거기까지. 만약 살아남는다면 진지하게 다시 생각해 보는 것으로.

- 근데 이런 사실을 그 침묵의 해적단이 모를 리 없지. 임무도 보상도 화끈해야 돼. 그래야 임무를 수락할 거다. 다들 알아서 밀수 루트랑 시설 털어 봐.

그렇게 정해 보니 의외로 답은 금방 나왔다.

- 뭐, 그런 식이면 답은 하나지. 우리 정도 사이즈 되는 밀수꾼들에게 궁극의 임무는 그거잖아?

- 그렇지. 그거 하나면 인생 펴는 거지.

- 아주 위험하기도 하고. 딱이네.

그건 바로 차원강습 시스템의 불법 제조와 밀수였다.

차원강습 시스템을 만드는 자원과 시설은 온갖 차원 문명들에 의해 철저히 감시되고 통제되는 것. 그런데 그 감시망을 뚫고 자원과 시설을 연결해 자체적으로 차원강습 시스템을 만들고 유통한다면?

단 한 번만 성공해서 차원강습 시스템을 분배 받을 수 있어도, 그때는 일개 밀수꾼이 아니라 하나의 지방 군벌처럼 대우받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 좋네. 그 정도 임무를 성공한다면 난 내 생식기 가리개까지 보상으로 줄 수 있어.

- 미친 촉수 새끼. 보상으로 선전포고를 하겠다는 소리냐?

- …왜? 너도 하나 줘?

각자 꽁꽁 숨겨 놨던 시설과 자원들이 보상 목록으로 쏟아졌다. 돈이 있어도 구할 수 없는 물건도 여럿 있었지만, 단순하게 타키온으로 추산해도 무려 20억 타키온의 가치가 있는 물건들이었다.

그야말로 천문학적인 보상.

- 설마 거절하진 않겠지?

- 거절할 리가 있나. 자기가 어떤 존재인지 네트워크 전체에 대놓고 방송한 치인데.

- 배짱이 아주 미쳤지. 어쩌면 우리를 다 잡아먹을 작정일지도 몰라.

- 크큭. 조심하라고. 너처럼 아갈타에 붙어먹은 개새끼들이 먼저 작살이 날 테니까.

- 응. 네 뒤통수나 조심해.

정할 것을 다 정하고 시끄럽던 모임을 파할 즈음, 누군가 말했다.

- 그래도 궁금하긴 하다. 얼마나 거물인지, 어디까지 갈 수 있는 거물인지.

그러자 또 누군가 말했다.

- 그러다가 정규군에게 찢겨 죽은 거물이 어디 한둘이었나?

* * *

밀수 루트도 뚫었고, 타키넷에서 쇼핑도 마쳤다.

그리고 지구로 돌아와 사령관 관저로 가는 길 내내 나는 가슴이 벅차올랐다.

한 번 나갔다가 돌아올 때마다 달라져 있다.

서부 드래곤힐동과 동부 드래곤힐동이 합쳐진 건 벌써 예전이고, 이제는 용산 제2지역구 전체가 거대한 공장처럼 가동하고 있었다.

‘저게 궤도식 빌드라는 거야?’

공중에 떠 있는 건물들이다.

중앙에 떠 있는 영혼 용광로를 중심으로 재료를 가공하는 시설, 용광로에서 나온 자원을 2차 가공 하는 시설, 그걸 연마하는 시설, 조립하는 시설 등등이 체계적으로 늘어서 궤도를 그렸다.

모두의 시선이 권승리와 아틀라스 클럽에 쏠려 있을 때 이곳의 혁신은 이미 수면을 뚫고 그 위로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위대한 문명의 대장정이 이 짧은 시간에 이루어지다니.

무르물랑이 마중 나왔다.

“굉장하지? 여기서 한 달에 성검 시스템을 몇 자루나 만들 수 있을 것 같아?”

매끈하고 투명한 그녀의 얼굴에는 자신감이 충만했다.

“몇 갠데?”

놀라지 말라고, 그렇게 다짐시키며 그녀가 말했다.

“3,000자루. 그것도 그냥 3,000자루가 아닌 지구의 특기를 살려서 초능력과 정성을 부어 만드는 고품질 성검으로 3,000자루! 미쳤지?”

그래. 내가 떠나던 때의 정확히 12배 수준이니 미친 발전이 맞기는 했다. 그런데 찰랑찰랑 물방울을 튀기며 기분 좋아하던 무르물랑은 갑자기 주눅 든 듯 온몸에 일렁일렁 느린 물결을 만들었다.

“물론… 그렇게 만들어 봤자 다 팔지도 못할 테니까 당분간은 품질에 더 치중하고 500자루만 유지하라고 했어.”

엥?

그런데 그건 정말이지 쓸데없는 걱정이었다.

내 기색을 느낀 무르물랑이 다시 찰랑! 하고 물방울을 튕겨 냈다.

“어? 설마 좀 성과가 있었던 거야? 밀수 루트로 큰손들 좀 잡았나? 한 달에 물량을 얼마나 소화할 수 있을까?”

“잠깐만, 지금 확인 좀 해 볼게.”

나는 밀수꾼들의 네트워크를 열었다. 파란 별들이 엄청나게 떠오른다. 다 내게 개인적으로 보낸 요청들이었다.

그러니까, 아갈타의 차원 요새에서 본의 아니게 방송을 타는 바람에 엄청난 광고효과를 누렸기 때문이다. 너무 눈에 띄게 된 반대급부로 엄청나게 많은 이가 내가 판매하는 성검을 원하게 되었다.

“그래? 그렇게 많아? 어때, 한 달에 1,000개? 설마 2,000개나?”

눈살을 찌푸리며 나에게 성검을 팔 수 있냐고, 제발 팔아 달라고 보내온 메시지들을 세고 있는데, 무르물랑이 귀여운 예측을 했다.

2,000개는 무슨. 이 메시지들 하나하나가 다 사이즈가 크다. 개인적인 요청이 아니라 내 성검을 상품화해서 팔고 싶다는 장사꾼들의 거래처 제안인 것이다.

무르물랑이 입을 헤 벌렸다.

“서, 설마 3,000개 전부다?”

내가 대답을 않자 무르물랑의 전신이 소용돌이처럼 회전하며 대류를 일으키기 시작했다. 극도로 흥분한 것이다.

“3,000개 넘어도 받자! 받아! 기초를 탄탄히 만든 궤도식 빌드라서 금세 확장할 수 있어! 6,000자루까지는 즉시 증설 가능하니까! 걱정 말고 다 받아! 받고 따블로 가!”

호탕하게 소리치는 그녀에게 나는 살포시 대답해 주었다.

“음… 일단 지난 3일간 온 요청이 12,000자루네.”

“따, 따따블?”

풀썩.

무르물랑이 양동이 밖으로 쏟아진 물처럼 땅 위에 흠뻑 주저앉았다. 그녀가 이러는 모습은 처음 보았다. 그녀는 그 상태로 땅에 낮게 깔린 채 중얼거렸다. 당황했는지 한국어가 아닌 모국어로 중얼거린다.

[밀수니까 좀 더 비싸게 팔아도 되지. 자루당 10만 골드에 팔자. 그러면 한 자루당 남는 게 재료비랑 시설 유지비 빼면 7만 골드쯤 남는다 이거야. 근데 밀수는 밀수 리스크가 있으니까 그 비용을 제외하면 한 자루 팔 때 5만 골드를 남긴다 이거지? 근데 12,000자루면… 6억! 순수익이 6억 타키온!]

물론 12,000자루를 다 팔려면 두 달은 넘게 혀 빠지게 돌아다니면서 자원을 수급해 오고 밀수를 다니고 해야 가능할 일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따져도 한 달 수익이 3억 타키온. 수요가 다 떨어질 때까지 한 여섯 달만 반짝 팔아도 18억 타키온의 수익이다.

단순히 계산해도 무르물랑이 투자한 금액의 18배 수익!

무르물랑이 한숨을 토하듯이 말했다.

“와… 이게 진짜 그 찐따 같던 지구 맞냐.”

그새 대체 뭘 배웠길래, 말투가 무척 경박했다.

뭐, 그래도 좋다.

실은 나도 가슴이 두근거렸으니까.

* * *

그래. 가슴이 벅차올랐다. 지구를 보면 그랬다.

하지만 지구 밖을 보면?

가슴이 뻑뻑해졌다. 숨도 못 쉬게 답답하다.

“요즘 아갈타 놈들 완전히 돌아 버렸습니다.”

뭐랄까, 예전보다 10배쯤은 더 협조적이고 예의가 발라진 연출가가 짧은 팔다리를 놀리며 보고했다. 이제는 완전 우리 측의 정보 요원으로 자리를 잡은 모양새였다.

“사방팔방에 시비를 걸고 무차별적으로 점령을 하고 난리가 났는데… 그 전력이 모두의 예상을 훌쩍 뛰어넘었다고 합니다. 얼마 전에 평의회 소속의 유서 깊은 그리즐 차원이 아갈타와의 국지전에서 패배했습니다. 어지간하면 그리즐 차원에서도 설욕을 했을 텐데… 아갈타의 무력이 생각보다 부담스러웠는지 적당히 합의하고 물러섰습니다. 저도 동료 연출가의 방송으로 직관했는데… 워어, 진짜 세던데요? 평의회 이사회 수준의 차원들이 아니면 승리를 장담할 만한 곳이 거의 없을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그 보고 내용 하나하나가 가슴에 턱턱 얹히는 것들이었다.

“저기… 우리 너무 먼 이야기는 하지 말고, 당장 당면한, 지구 근처에 있는 사단 병력에 대한 이야기부터 하면 안 될까? 하, 한 번에 한 가지씩 그, 그렇게 처리하자고요.”

오죽하면 멘탈이 강한 서민서가 체할 것 같다는 표정으로 그렇게 말할 정도였다.

하지만 지구 근처의 상황도 답답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두 개 사단을 이끌고 있던 군단장 에르하무스가 아갈타의 최고 원수인 아케르에게 탈탈 털렸다고 합니다. 그 후에 분위기가 장난 아닙니다. 포병대랑 보병대가 항상 섬멸 태세로 대기하고 있는데… 이거, 접근하면 무조건 박살 납니다. 틈이 안 보여요. 각개격파가 불가능합니다. 나가는 순간 일단 무조건 1만 명하고 싸우고, 걔네랑 싸우다 보면 3만 명이 더 오는 구도라고 보시면 됩니다.”

한 번에 하나씩 처리하고 싶은데 그 하나가 1만 명의 차원강습병과 그 규모에 걸맞은 포병대라면 이야기가 달랐다.

결국 연출가가 하고자 하는 말은 단순했다.

“그러니까… 나가지 말라는 거네.”

“네. 당분간은 사려야 합니다. 지금 아갈타 놈들 너무 흉흉해요. 지구에는 그런 말이 있죠? 소나기는 피하고 보는 거라고. 평의회의 유서깊은 명문들도 피하는데 우리가 어설프게 해적질한다고 나선다? 다 죽는 겁니다.”

보통 연출가가 이렇게 나한테 결정을 강요하듯 건방지게 말하면 데미안이 제지를 하곤 했다. 하지만 오늘은 아니었다. 데미안도 그저 걱정 가득한 시선으로 나를 바라볼 뿐이었다. 그러면서 한숨을 푹 쉬었다.

“갑갑한 상황이군요. 뭔가 상황의 변수를 만들어 낼… 가령 적들의 진형을 잠시 무너뜨릴 뭔가 그런 게 있으면 좋을 텐데.”

그래. 그런 편리한 게 있으면 좋겠지. 하지만 지금은 그런 마법 같은 것을 기대할 때가 아니었다. 이 타이밍에 때맞춰 나타나 줄 편리한 동맹군 같은 건 없다는 거다. 우리는 냉철하게 판단하고 굳건하게 결의를 다져야 했다.

나는 연출가에게 따져 물었다.

“우리가 해적질을 안 하면? 그럼 어쩔 건데? 후방 교란이 안 된 이놈들이 그대로 힘을 뭉쳐서 지구랑 주변 차원을 박살 내려 할 텐데? 그게 오히려 최악의 상황 아니야?”

연출가가 입을 다물었다. 내 말도 옳은 말이었기 때문이다. 지구가 전쟁터가 되는 순간 우리가 차원 문명과 교류하고 있다는 사실을 아갈타에게 들킬 수밖에 없다. 그렇게 되면 아갈타는 두 개 사단이 아닌 열 개, 스무 개의 사단으로 우리를 짓밟으려고 할 것이다. 더욱더 최악으로 몰리게 되는 것.

그러니.

이건 우리의 선택지가 아니었다.

나는 단호하게 말했다.

“해적 활동을 해야 돼.”

그리고 이어서 나오려던 뒷말이 내 목구멍을 간지른다.

‘어떠한 희생을 치르더라도.’

망설였다. 이 말을 할까 말까. ‘어떤 희생이든 치르겠다.’라고 말을 하는 순간, 정말 그런 희생을 치르게 될까 두려운 탓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그런 각오를 보이지도 않고 대체 무슨 일을 이룰 수 있을까? 하는 호기도 들었다.

그렇게 혼자 잠시 말문이 막혔던 그때.

전쟁 이야기는 알아서 하라며 생산 현장에 나가 있던 무르물랑이 회의실로 뛰어 들어왔다. 잔뜩 파문이 이는 얼굴로, 웬 귀가 크고 맑은 피부 위 별처럼 반짝이는 아름다운 문신을 가진 아이와 함께였다.

‘…누구?’

무르물랑이 물방울을 튀기며 그 아이를 소개했다.

“이, 인사해! 이분은 지구에서 가장 가까운 대형 차원인 르누아 차원의 대표 사절로 온 ‘별빛’ 님이야. 그, 탐적 시스템에도 안 잡힐 만큼 원시적인… 이 아니라, 조금 옛날 기술이지만 규모만은 꽤 큰 차원 선단을 이끌고 지구를 찾아오셨어. 얘길 들어 보니… 너랑 화랑단을 찾으시는 것 같더라. 그… 동맹이 되고 싶으시대.”

…어?

…동맹?! 진짜?!

* * *

3개월 전.

아직 다 자라지 않아 작은 체구를 한 아이, ‘별빛’이 수천 명의 르누아 전사와 신관들 앞에서 연설을 했다.

“하늘 위 첫 번째 빛의 탄생부터 암흑 시대의 커다란 신들과 최초로 검을 든 빛의 선조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이미 머나먼 여정을 거쳐 왔다고 생각했습니다.”

“황혼산맥을 넘어 도시를 세우고 수많은 별의 흥망을 지켜보던 그때, 이 거대하고 신비롭던 세상이 이제 온전히 우리의 빛 안으로 들어왔다는 착각마저 횡행했습니다.”

“하지만 파국은 갑자기 찾아왔습니다. 세상 밖에서 온 악마들로 인해 산맥은 무너지고 땅은 바닷속으로 가라앉습니다. 희망일 줄 알았던 새 시대는 오히려 신음과 피로 가득 합니다.”

“잔혹한 진실이 그렇게 우리를 또 다른 여정으로 인도합니다.”

“여태 우리를 길러 준 요람으로부터 벗어나 별보다도 멀고 어둠보다도 깊은 곳으로 향하는 탐험. 이제부터 우리의 가장 위대한 임무가 시작됩니다.”

그렇게 마지막 연설을 마친 별빛은, 고향의 마지막 남은 모든 지식과 보물을 쏟아부어 만든 르누아 최초의 차원 선박에 올라탔다.

목적지는 르누아 차원 밖에서 관측된 가장 가까운 대형 차원.

어쩌면 지난번 악마들을 물리친 그 위대한 존재들이 기거하고 있을지도 모를 신성한 땅으로 향하며, 별빛은 생각했다.

‘그곳에서 우리는 새로운 운명을 만날 수 있을까? 이 깜깜한 말세를 이겨 내고 새로운 빛을 불러올… 그런 운명의 변곡점을?’

아이는 그저 소망할 뿐이었다. 르누아의 문명이 여기서 끝이 아니길, 다시 더 큰 불길로 피어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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