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VVVIP 차원 쇼퍼-155화 (155/212)

17. 글러 먹었다

아갈타 차원 방위성은 무거운 침묵으로 내려앉아 있었다.

오성장군 아케르가 감정이 하나도 느껴지지 않는 목소리로 말했다.

“차원 요새 하나가 반파. 대좌 계급의… 그것도 로랑이 전사… 불명예? 아니다. 우리 아갈타가 차원 외부로 진출한 이후 이런 수모를 당한 적은 없었다. 참혹해. 그래, 이건 불명예가 아니라 대패다. 우리가 패배한 거다. 이 아갈타가! 패배한 거다!”

쾅!

아케르의 손바닥이 책상을 때렸다. 구름 강기도 한두 번은 버틸 수 있다고 알려진 소울스톤 책상에 쩌저적 금이 간다.

늘 북적북적 자기들끼리 친하던 다른 장군들도 오늘만큼은 얼어붙어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하필이면 로랑이 죽었어, 로랑이! 이걸 제대로 수습하지 못하면 군 전체의 사기가 떨어지고 동요가 커지겠지.”

아갈타 사회는 피라미드 형태의 중앙집권 조직이었다. 모든 구성원이 위로 올라간 이들의 성공 신화를 배우며, 그들처럼 되고자 노력하고 경쟁하고 서로를 쥐어짜는 구조.

그런데 그런 구조를 지탱하기 위해선 꼭 필요한 존재가 있었다.

정상에서 다이아몬드처럼 빛나는 롤 모델.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이미 정상에 오른 존재. 가장 화려한, 모두가 부러워하는 존재.

아이돌.

아갈타 사회에서 로랑이 바로 그런 역할이었다.

“왜 우리가 로랑에게 대좌라는 계급을 주었던가. 그의 성격적 결함, 실력의 미숙함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에게 최고의 장비와 계급을 주었다. 다른 모든 이가 그를 보고 꿈을 갖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가 죽었어. 비참하게. 아갈타의 희망이자 자랑이라 여겨지던 우상의 머리가 세로로 쪼개지고 가슴이 뻥 뚫렸지.”

차가운 살기가 제멋대로 살아서 저벅저벅 걸어다니는 것 같았다.

소좌 퀴니세인이 죽었을 때도 심각하긴 했지만 지금 상황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대좌. 그것도 소년 영웅의 죽음.

그것은 아갈타의 패배를 의미했으니까.

아케르는 생각하면 할수록 분노가 치미는지 몸을 떨었다.

그의 경험상 이런 큰 실패에는 한 두 가지 뚜렷한 이유를 찾을 필요가 없었다. 그냥 모든 게 잘못된 것이다. 다 새로 점검하고 모조리 뚜드려 까고 뒤집어엎어야 바로잡힐 일.

최고 원수인 그가 모든 지휘관을 문책하고 줄줄이 욕을 박아 준 이유였다.

그중에서도 가장 크게 망신을 준 건 머나먼 차원, 지구와 르누아 근처에 파견되어 있던 에르하무스 준장이었다.

“…어이가 없어. 에르하무스 준장! 퀴니세인을 죽인 흉수는 잡았나!”

아케르의 일갈에 에르하무스 준장이 통신으로 호출되었다.

- 추, 충! 죄송합니다! 현재 흉수의 움직임을 발견하고 추적 중입니다!

“추적 중? 새끼야, 장난해? 그게 언제적 일인데 아직도 미적거려!”

‘새끼야.’ 할 때 나직하던 목소리는 ‘장난해?’ 할 때 살짝 올라가고, ‘언제적’ 할 때만 해도 억누르던 분노는 ‘미적거려!’에서 쩌렁! 울리는 분노로 폭발했다.

비록 별 하나짜리라곤 하지만 무려 장군이었다. 아갈타 사회의 최상위 계급에 오른 존재에게 아케르는 폭언을 쏟아부었다. 심지어 직속 수하 및 참모들이 배석하거나 통신을 청취하고 있는 중이었다. 하지만 아케르는 평소와 달리 그런 걸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에르하무스를 갈궜다.

하지만 그 끔찍한 불명예에도 에르하무스 준장은 진땀만 뻘뻘 흘릴 뿐 감히 불만을 표시하지 못했다. 그게 지금의 분위기였다.

그렇게 쌍욕으로 통신을 마무리 지은 아케르는 이글거리는 눈으로 주변을 노려보았다.

“장군이라는 것들이… 똑바로 못 하지? 퀴니세인의 흉수도 못 찾았는데 다들 태평했지? 로랑의 흉수도 이렇게 못 찾겠다? 그치? 아주 우리만 등신이 되겠어.”

이 회의 석상에 모인 건 하나같이 장군들뿐이었지만, 다들 오성장군 아케르 최고 원수의 서슬 앞에선 덜덜 떨었다. 그나마 태연한 건 사성장군들뿐.

하지만 그들도 내심으론 긴장하고 있었다.

알고 있는 탓이었다. 장군들까지도 갈궈서 단속하는 이 다음에 무엇이 올지.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할까?

답은 하나였다.

설욕전. 피비린내 나는 전쟁.

그것도 아갈타 역사상 유례가 없는 규모로.

분위기를 다잡은 아케르는 마침내 선언했다.

“전군에 동원령을 내려라. 전면전이다.”

아직 적을 찾지도 못했는데 전군 동원령이 먼저 떨어졌다.

그게 아갈타였다.

적을 찾지 못한다면 가상의 적을 만들어 빈 허공에 대고라도 포를 쏘아야 하는 사회.

당했다면 무조건 전쟁을 벌이고 아무튼 승리를 선언해야 하는 사회.

전쟁 시작이 먼저고, 원흉를 찾는 건 그다음, 정 안되면 원흉을 만들어 내서라도 소멸한다.

그게 아갈타가 유지되는 방식이었다.

최고 원수 아케르의 명령은 순식간에 모든 아갈타 군대로 전파되었다.

- 진격! 명령을 받듭니다. 현 시간부로 모든 차원강습군은 범위 내에 존재하는 타키넷 평의회의 보호를 받지 않는 모든 약소 차원을 공격, 점령합니다.

1억에 이르는 아갈타의 차원강습군 총장, 굴타 대장이 전 병력에게 진격을 명령했다.

- 섬멸! 차원강습군을 지원하여 철저한 멸망을 수행합니다.

일명 멸망군. 거신병과 재앙 병기로 무장한 초고도 영능학 부대가 차원강습군의 뒤를 따랐다. 원시 차원이 아닌 차원 문명 간의 전쟁을 위해 준비된 최신예, 최전방의 섬멸 전력이었다. 소시민조차 본 적 없는 제대로된 차원 전쟁용 부대.

- 차원 제독 네리스 대장이 오성장군 아케르 원수의 명령을 받듭니다. 모든 차원 함대 발진합니다.

창조신의 꿈속을 순찰 중이던 모든 차원 함대가 무차별 공격에 나섰고.

- 네. 신살 병기 사출이 준비되었습니다. 어떤 신을 죽이면 됩니까?

아갈타를 차원 문명으로 존립할 수 있게 해 주는 신살 병기들이 활성화되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유서 깊은 차원 문명들 사이에서 은근한 무시를 당하고 있던 아갈타가 자존심을 드높이고 그들 사이에 우뚝 서기 위해 기나긴 시간 준비해 온 군사력의 결정체, 멸세 병기, 그것도 1회용이 아닌 상시 지속형 멸세 병기가 첫 기동을 시작했다.

- 드디어 실전 배치입니까? 세계를 보여 주십시오. 먹어 치우고 오겠습니다.

아갈타가 숨겨 둔 작은 차원의 한 구석에서 신과도 같은 거인이 눈을 떴다. 태고에 멸종했다는 창조신의 후예, 일명 고대신에 비견되는 병기. 어비스 게이트 너머에 존재하는 혼돈의 존재들마저도 찢어발길 수 있다는 궁극의 폭력. 수많은 고대신의 유해와 유물을 섞어 만든 거짓 신, ‘이돌룸(Idolum)’이 바로 그것이었다.

크르르르.

멸세 병기, 이돌룸의 움직임 한 번에 차원이 조각 나고 흔들렸다.

이 압도적인 폭력들의 움직임을 보고받은 아케르는 이를 드러내고 웃었다.

“차라리 잘되었다. 이번 기회에 확실히 보여 준다, 우리 아갈타가 이제 막 차원 문명 반열에 올라선 그저그런 문명이 아니라는 걸. 로랑을 죽인 적들뿐 아니라… 창조신의 꿈속에 존재하는 모든 차원 문명에게 똑똑히 알려 준다. 우리의 힘을, 현재 우리의 위치를!”

그리고 으르렁거리듯 낮게 경고했다.

“하나, 꼭 찾아라, 로랑을 죽인 진짜 원흉을. 찾아내는 게 좋을 거다.”

“충!”

장군들이 입을 모아 복창했다.

아갈타의 최고 지배 계급, 장군들만이 모인 회의장이 오늘만큼은 훈련병 교육 시간보다 더한 군기로 살벌하게 일렁거렸고, 때아닌 아갈타의 무력시위에 인근의 모든 차원 문명은 크게 긴장하게 되었다.

이 모든 게 소시민이 로랑의 손에서 일출을 빼앗던 바로 그 순간 예정되어 버린 일이었다.

뿌드득!

그 귀한 창을 빼앗기고 모두가 보는 앞에서 자기 창에 찔려 죽은 로랑을 생각하는 순간 아케르는 또다시 분노가 치밀어 이를 갈았다.

공적으로 로랑은 아갈타의 젊은 별이었고, 사적으로 로랑은 아주 오래전 자신을 살리고 대신 전사한 가장 친한 전우가 남긴 하나뿐인 혈육이었다. 아들처럼 키우겠노라 맹세했는데…….

‘이 원수는 반드시 갚아 주마.’

공적으로나 사적으로나. 반드시. 로랑의 태양창을 가져간 그놈만큼은 반드시!

“단서는 놈들의 장비다. 놈들의 시체에서 수거한 성검이랑 장비들부터 조사를 시작하고 태양의 창을 지닌 놈의 소재를 찾아내라.”

“충!”

* * *

정말 아름다운 창이 아닌가?

생각만 해도 내 가슴은 든든해졌다.

내 아공간 속에 들어 있는 일출 말이다. 새하얀 몸체에 일출처럼 은은한 황금빛이 배어나는 창두. 정교한 세공들과 장식띠.

눈으로 보면 예술 작품이고, 휘두르면 절세의 병기이며, 그 손맛은… 아!

‘그런 건 얼마쯤 있으면 살 수 있을까?’

도무지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한 건, 상상도 할 수 없게 비쌀 것이라는 사실이다. 왜냐하면… 지금 내 눈앞에 있는 물건들만 해도 입이 떡 벌어지는 가격이지만, 그 품질들은 절대 일출의 발 뒤꿈치도 따라가지 못했으니까.

‘천일시장 명품관이라… 여긴 무슨 기본 단위가 100만부터 시작이네.’

탑골시장 공예 대회에서 심사 위원 ‘병장기의 악몽’은 우리 반월이를 작품으로 인정하고 가격을 300만 타키온까지 불렀다.

그때는 정말 엄청난 가격이라고 생각했는데… 여기에는 그 정도 가격의 물건들이 지천에 널려 있었다.

그리고 그런 만큼…….

‘명품이 아닌 게 없네.’

차원 문명의 진보된 기술로 만들어진 물건인 주제에 하나같이 아우라까지 지닌 명품이었다. 그 모습을 보다 보면 저절로 실감할 수 있었다.

‘내가 탑골시장 위로 오긴 했구나.’

이곳은 탑골시장보다 상위에 있는 시장이었다. 차원 문명들 수준에서 ‘제대로 된 물건’과 함께 ‘고가의 물건’까지 찾아볼 수 있다는 ‘천일의 쇼핑몰’, 일명 천일시장.

수백 년 전의 골동품까지 쌓아 놓고 팔던 이전의 시장들과 달리 1,000일 동안 생산된 물건들만을 판매한다는 콘셉트로 운영되는 시장이었다. 최신 기술들이 적용된 다채로운 브랜드 물건들을 만날 수 있었다.

여기서 우리는 장비를 새로 맞추기로 했다. 나랑 동료들은 명품으로, 화랑단은 좋은 품질의 일반 물건으로.

람시르 덕분에 타키온은 부족하지 않았다.

아갈타의 차원 요새 습격은 귀령용액 제조 시설만 생각하고 벌인 일이었는데, 세상에, 그 선적물들의 가격도 어마어마했다.

람시르는 좋은 가격으로 그 선적물들을 처분해 주었고, 심지어 크르으랑한테 팔려고 했던 성검 500개와 아갈타의 전리품들도 자기가 다 팔아 줄 수 있다면서 크르으랑이 놀랄 만한 가격에 가져갔다. 덕분에 현재 내 수중에는 무려 3,000만 타키온이라는 거금이 있었다. 이게 오랫동안 활동한 네임드 밀수꾼의 저력일까? 이 정도라면 앞으로도 큰 도움이 될 것 같았다.

다만, 어째서인지 람시르의 표정이 표정이 잠깐 슬펐었다. 금세 뒤늦게 민망해하면서 머리를 긁적이긴 했지만 왜 그랬던 걸까? 그런 사소한 생각이 잠깐 스쳐갔지만… 에이, 그게 뭐가 중요해?

중요한 것은 내 눈앞에 펼쳐진 이 명품의 향연!

하지만 지금 이 쇼핑은 단순한 자기만족을 위해서가 아니었다.

‘이번 원정에서 너무 많이 눈에 띄어 버렸지.’

내가 거금을 손에 쥐었다는 소식을 들은 무르물랑은 그거 지구로 보내 주면 안 되냐고, 살 게 많다고 은근히 나를 꼬셨지만 거절할 수밖에 없었다.

아갈타 차원 요새의 생존자들은 우리를 모두 똑똑하게 기억하고 있을 것이고, 그들의 감시 시스템에 우리의 모습이 제대로 기록되었을 것이다. 거기에 밀수꾼 방송까지 탔으니… 거의 우주 대스타 수준으로 알려져 버리고 만 것이다.

물론 해적답게 얼굴 같은 민감한 부분은 다 가렸지만, 드러난 장비만큼은 어쩔 수가 없다.

그러니 장비를 싹 바꾸고 업그레이드해서 우리를 특정 못 하게 외형을 바꿔야 했다.

그래. 다시 말하지만 이건 절대 내가 쇼핑하고 싶어서가 아니다.

그 증거로 당장 여기만 봐도 벌써 저런 애들이 있잖아?

[아냐. 이게 아냐! 당신도 우리 네트워크 소속이잖아! 그거 못 봤어? 차원강습 시스템을 그냥 뎅겅뎅겅해 버리는 성검 시스템? 그런 물건을 달라고!]

아무리 봐도 내 얘기인데 그걸 큰 소리로 떠들면서 진상을 부린다. 무척 수치스러웠다.

[아니, 그건 성검도 성검이지만 그 칼을 휘두르는 사람 솜씨가 미친 것 아니요? 지금 그런 걸 보고 와서 우리 품질을 의심하면 어쩌자는 거요?]

[하, 거 어디서 변명이야? 그래! 천일시장에서 기대한 내가 바보지. 상위 시장에서 찾아보련다!]

[뭐? 변명? 너 지금……! 휴우… 그만, 그만해요. 가세요. 안 살 거면 가!]

진상 손님이 투덜거리며 물러서자 주인은 소금이라도 뿌리듯 푸념했다.

[하… 그 미친놈은 무슨 성검 시스템으로 차원강습 시스템을 벌레 죽이듯 죽이냐고… 말도 안 되는 짓을 해 놔서 여러 사람 피곤하게 만드네, 정말!]

아, 거 미안하게 됐습니다.

속으로는 이렇게 삐딱하게 반문을 할 수 있었지만, 겉으로 우리는 전혀 상관없는 순진무구한 선량한 손님인 척 시치미를 떼고 있어야 했다.

빠르게 동료들과 시선을 교환했다. 이미 장비들을 다 아공간 속에 집어넣고 절대 꺼내지 말자고 합의를 한 상태였지만, 새삼 서로의 상태를 점검해 보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장비를 새로 맞추기 전까지는 계속 이런 상태일 것 같았다.

그런데 그런 우리의 옆으로 아까의 진상이 지나갔다.

비슷비슷해 보이는 진상 동료들을 옆에 끼고 시끄럽게 떠들어 대며.

[그나저나 그분 한번 보고 싶지 않아?]

[보고 싶지! 근데 잘하면 볼 수 있을걸?]

[뭐야. 무슨 소리야?]

[네트워크의 큰손들이 큰 의뢰를 준다고 하더라.]

[큰 의뢰? 왜?]

[다들 저마다 꿍꿍이는 다르겠지만, 일단은 시험이라고 하더라. 그리고 우리도 그 한구석에 끼기로 했으니 잘하면 볼 수 있을 거다.]

뭐 이딴 소리를 떠들며 지나갔다.

빌어먹을 밀수꾼 네트워크. 무법자들의 모임이라 그런지 보안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이따위로 하는데도 용케 안 걸리는구나.

막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였다.

[어이!]

지나가던 진상이 갑자기 우리를 불렀다.

뭐야, 저 새끼. 설마 시비? 이 타이밍에? 하고 벙찌려고 하는데, 까막이가 잽싸게 끼어들었다.

“예, 예. 부르셨습니까?”

[우리가 한 말 들었냐?]

“네? 무슨 말씀 말입니까?”

그러면서 까막이는 팔꿈치로 슬쩍 나를 찔렀다. 오, 역시 이 녀석 진짜 눈치 하나는 끝내주네. 나는 얼른 까막이에게 보조를 맞췄다.

“거… 뭐라고 하셨소? 물건 보고 있느라 못 들었는데.”

그러자 진상 새끼는 만족스럽게 웃었다.

[그래. 들었어도 못 들었다고 하고 살아라. 잘하네. 흐흐.]

그러곤 까막이 어깨랑 내 어깨를 툭툭 치고 지나간다. 별… 같잖은 게… 싶으면서도 나는 일단 참고 까막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잘했다, 인마. 지금 우리 처지가 시선을 끌면 안 되는 처지니까 정말 최고의 대응이었다.

하지만 정작 까막이가 득의양양 웃으며 쳐다보는 건 내가 아니라 데미안이다. 데미안은 가만히 고개를 한 번 끄덕여 주었다. 까막이의 얼굴에 자부심이 깃든다. 어쩐지, 어장 속에 사는 한 마리의 멸치 같은 표정이었다.

그렇게 쇼핑을 이어 가며 나는 방금 진상이 한 말을 떠올렸다.

‘시험이라…….’

아무래도 밀수꾼 네트워크에선 우리에게 의뢰 하나를 맡길 생각인 모양이다. 그 꿍꿍이야 다 알 수는 없는 것이지만… 두 가지는 확실했다. 그 의뢰가 아주 어려운 의뢰일 것이라는 것과 그만큼 보상이 확실할 거라는 것.

할짝.

마른 입술을 핥으며.

나도 모르게 그런 생각을 했다.

‘그 보상을 받으면… 더 좋은 곳에서 더 비싼 쇼핑을 할 수 있게 되는 걸까?’

이번 생의 나는 글러 먹었다.

위험한 임무를 앞두고도 그저 쇼핑할 생각이 먼저 들다니.

정말이지…….

행복하게 글러 먹었다.

할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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