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VVVIP 차원 쇼퍼-144화 (144/212)

6. 큰 그림

소시민이 원정을 가 있던 사이, 용산 제2지역구 사령관저.

그저 회의가 열리고 있을 뿐이었지만, 마치 전장과도 같은 치열한 열기가 가득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최단 시간 내에 인류의 문명을 차원 문명 수준으로 끌어올린다는 원대한 목표, 그것을 위해서는 모든 결정이 ‘최선’에 닿아야만 했으니까.

스타십 크래프트나 워록 크래프트와 같은 실시간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에서조차 건물을 언제 어떻게 짓느냐 하는 소위 ‘심시티’에 따라 운영의 효율과 향후 유불리가 크게 차이가 나게 되는 법.

무려 인류를 발전시키는 계획이 얼마나 치밀하게 계산될 필요가 있는지는 말해 봐야 입만 아픈 것이다.

무르물랑이 끌어온 막대한 타키온. 아직 그것은 한낱 숫자에 불과했다. 그걸로 무엇을 살지, 언제 살지, 어떻게 배치할지 최선의 계획을 세워야 그 돈은 비로소 가치를 갖는다.

때문에 회의는 끝없이 계속되었다.

무르물랑은 말했다.

“대충 어떤 시설들을 우선적으로 설치할지는 정했네. 그럼 지금부터는 상상력이 필요해. 자, 영혼 용광로가 중심이야.”

그녀의 말을 윤희정이 진지하게 이어받았다.

“영혼 용광로가 중심… 그렇다면 그 앞으로 코어 조립 시설을 배치하는 게 좋지 않을까요?”

윤희정의 말에 감정사 릭이 살며시 고개를 저었다. 틀린 풀이 과정을 지적해 주는 수학 선생님처럼 차분하면서도 단호했다.

“윤희정 장인은 아직 작은 스케일로 생각하는 버릇이 있어요. 수평으로 확장하는 빌드뿐만 아니라 수직, 위아래로 확장하는 빌드 역시 염두에 두세요.”

“어? 그러면… 지하를 파야 하나요?”

“지하를 팔 수도 있고 오히려 영혼 용광로를 위로 한 단 띄울 수도 있죠. 전에 설명드렸죠? 부양 건축술.”

“아……! 확실히 영혼 용광로를 띄워 놓고 그 아래와 주변에 관련 시설들을 배치하면……! 그렇다면 이런 형태는 어떨까요?”

“아주 좋은데요? 와… 선입관을 뛰어넘는 대단한 발상입니다. 저도 하나 배웠습니다. 아예 이런 구조라면 차원을 두 개 더해서 5차원적 공간 구조로 이렇게 연결을 하면…….”

“5차원 빌드! 역시! 훨씬 더 효율이 나오겠어요! 그럼 그 구조는 이렇게!”

“호오……!”

평소와 같은 패턴이었다. 릭이 방향을 정해 주고 윤희정이 신선한 아이디어를 더해 주며 회의를 진전해 나간다. 함께 지혜를 모아 최선의 방법을 찾는 동시에 지구인인 윤희정에게 차원 문명의 노하우를 전수해 주는 과정이기도 했다.

뛰어난 습득력과 응용력을 보여 주는 윤희정이었지만, 배운 것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아무래도 더 넓은 시야로 사고하는 릭의 도움이 필요했다.

그런데 그건 릭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 자리에서 시야가 가장 높은 것은 최상위 문명 출신이자 평의회의 엘리트 직원이었던 무르물랑이었으니까.

그녀는 가만히 지켜보고 있다가 입을 열었다.

“아냐. 그게 아니야, 릭.”

“네?”

“릭은 여전히 가난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어.”

“가난하게요?”

꿀꺽. 릭이 침을 삼켰다.

무려 5차원 빌드라는 하이엔드에 가까운 계획을 구상 중인데 그게 가난하다고?

무르물랑은 손가락 끝의 물방울을 톡! 튀기며 말했다.

“그래. 지금 투자금이 억 단위라고, 억. 잘된다 싶으면 더 투자할 거고. 그런데도 그런 정적인 시설 배치를 생각해서야 쓰겠어?”

릭이 펄쩍 뛰어올랐다. 그의 얼굴이 흥분으로 빨갛게 물들었다.

“네? 잠깐만요. 설마 동적인 시설배치? 설마! 정말입니까? 저 그런 건 말로만 들어 봤는데! 저희 고향에도 그런 건 없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 무르물랑이 씨익 웃었다. 우월감이라도 느끼는 것처럼 느릿하게 일렁이는 물결을 만들며.

“그래. 아예 할 거면 영혼 용광로를 중심에 두고 궤도식 빌드로 만들자고. 건물이 굳이 한자리에 고정되어 있을 필요 있나? 건물 자체가 움직이면서 재료를 수급하고 공정의 효율을 높인다. 건물이 아니라 하나의 살아 숨 쉬는 생명, 아니 우주를 만드는 것과도 같지.”

꿀꺽.

릭이 침을 삼켰다. 그의 눈이 별처럼 반짝거렸다.

윤희정은 릭과 무르물랑이 나누는 대화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정확히 깨닫지는 못했지만, 아무튼 대단한 것을 이야기한다는 사실만큼은 눈치채고 손에 땀을 쥐었다.

‘건물이… 막 움직이는 거야? 궤도? 태양계처럼?’

잘은 모르겠지만 막연한 상상만으로도 대단한 계획 같았다. 그런 게 용산 한복판에 들어선다면? 200층짜리 건물이나 최신식 대형 스타디움만 하나 지어도 나라가 들썩이는 세상에서, 그런 게 등장한다면 도대체 어떻게 될까? 미래 도시를 운운할 수준이 아니었다. 모두가 외계 도시라며 입을 떡 벌리게 될 것이다.

잔뜩 흥분한 릭은 숨을 빠르게 몰아쉬며 물었다.

“그, 그런데 그렇게 하면 건설비가 너무 늘어나지 않을까요? 아무리 1억이 넘는 타키온이 있다고 해도 그런 식으로 쓰면 부족하지 않겠습니까?”

그건 참 기묘한 표정이었다.

릭은 분명 입으로는 부정적인 근거를 대고 있었지만 표정은 아주 간절했다. 지금 자신이 제기한 부정적 근거가 곧바로 반박당하길 바라는 표정이랄까? 그만큼 그는 궤도식 빌드를 간절하게 보고 싶어 했다.

무르물랑은 릭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아, 돈 걱정은 하지 마. 돈은 부족하면 더 벌고, 그래도 안되면 투자금을 더 끌어오면 돼! 오히려 문제는 공사 시간이 더 늘어난다는 건데… 거기 하준광 씨, 아틀라스 클럽은 아직 잘 버티고 있지?”

무르물랑이 휘오의 가지를 손에 쥐고 묻자 휘오의 가지가 부르르 떨리며 하준광의 대답을 돌려주었다.

- 너무 잘 버티고 있지. 예상을 훌쩍 뛰어넘을 정도로. 근데 이딴 것 물을 거면 나한테 통신 넣지 마라. 나 협회장이다.

휘오의 가지를 손에서 놓은 무르물랑은 것 보라는 듯이 어깨를 으쓱였다.

“들었지? 아틀라스 클럽이 잘 버티고 있다잖아. 기왕 째기로 한 건데 이런 상황이면 한 번 더 째야지. 차라리 돈 더 들여서 제대로 첨단 빌드로 짓자고. 그래서 초장부터 확실한 경쟁력을 가져가는 거야!”

무르물랑은 다시 휘오의 가지를 잡았다.

“거기, 협회장님! 부지 마련은 문제없지? 서부 드래곤힐동은 이제 너무 작잖아. 동부 드래곤힐동 합병은 당연한 거고, 용산구 전체로 공업 시설을 늘릴 작정이야. 토지권리랑 이주 문제 같은 건 빨리 해결해 놓으라고.”

- 이미 착수했으니까 네 꼴릴 때 움직여라. 그리고 말했지. 이딴 것 물을 거면 통신 넣지 말라고, 이 외계인 새끼야.

하준광의 살벌한 경고를 무시하고 다시 휘오의 가지를 품에 넣은 무르물랑은 어깨를 한 번 으쓱하고 미소를 보였다.

“쫄지 마. 상상력을 발휘할 거면 크게 크게 발휘하자고. 공간도 드래곤힐동이니 용산구니 하는 그런 작은 단위에 머물지 말고, 한반도 전체, 대륙 전체! 크게 크게! 달 식민화! 태양계! 은하! 막 이 정도 규모까지도 한계 없이 상상해 보자 이거야! 다른 것도 아니고 차원 문명을 건설하는 거잖아. 당장 들어가는 비용보다는 앞으로 훨씬 더 거대해질 문명의 기초를 어떻게 튼튼히 세울 것이냐, 그 백만 년 대계를 생각하라 이거야!”

무르물랑의 목소리와 움직임에는 패기가 가득했다.

릭과 윤희정은 감탄과 동경이 가득한 눈빛으로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 * *

휘오의 그늘 아래.

무르물랑은 조심스러운 눈빛으로 내 눈치를 살폈다.

“가능… 하겠지? 이 타이밍에는 제대로 한번 지르는 게 나을 것 같아서… 다만 문제는 네가 해낼 수 있냐 없냐인데… 근데 너라면 가능할 것 같았어. 응. 그래서 해 보려고. 아니, 하기로 했어. 그래서! 어… 때……?”

이 자식. 다 정해 놓고 온 주제에 막상 부탁하려고 보니 너무 어려워 보였나 보다. 내 눈치를 엄청 살폈다.

근데, 아니 이런 건 애초에 나랑 상의를 해 보고 결정해야 되는 것 아닌가?

“아니. 쪼금 어려운 요구인 건 알지만, 그래도 네가 이 정도는 해 줘야지. 내가 이런 원시 차원에 아낌없이 투자하는 건 다 너 믿고 하는 건데… 소시민, 나는 네 능력을 믿는다!”

오, 무르물랑은 뻔뻔하게 나왔다. 그래도 일말의 양심은 남아 있는지 내 시선을 계속 피하며 딴청 부리는 척을 한다.

아이고, 머리야… 기절했다가 깨어나자마자 이런 숙제라니.

그러니까… 정리해 보자. 크게 보자면 판매 루트랑 밀수 루트 이렇게 두 가지가 필요하다는 건가?

“맞아! 이제 대량생산 시설들을 들여 오고 있으니까 그 뽕을 뽑아야지. 재고가 쌓일 틈도 없이 팔아 치울 루트가 필요해. 그래야 나도 투자를 더 할 만한 각이 생긴다고.”

“근데… 사실 판매 루트는 걱정 안 해도 되는 것 아닌가? 내가 탑골시장 공예 대회에서 우승했잖아. 우리가 만든 물건 사겠다는 사람 많을 것 같은데?”

“물론 사겠다는 사람 많지. 이미 기술력을 증명했으니까. 하지만… 말했잖아. 한 번 더 배 쨀 거라고. 시설 투자를 늘려도 안정적일 정도가 되려면 그 정도 팔리는 걸론 안 돼. 단체 주문이 팍팍 늘어야 되는데… 우리가 지금 하려는 게 무기장사잖아?”

우리의 주력 상품은 성검, 그러니까 무기이다. 그런데 무기라는 건 그 특성상 대량으로 구매하는 고객이 한정적이며 신뢰가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

내가 비록 공예 대회에서 우승을 했다고 해도, 그건 그저 반월이라는 단 하나의 성검을 평가한 것에 지나지 않았다. 개인 고객이라면 몰라도, 한 번에 수백, 수천의 발주를 넣는 큰 조직들은 아직 우리의 대량생산 능력을 신뢰하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르물랑은 지금 내게 큰손 고객들을 물어 오라고 요청하는 것이다. 그 방법은 나 알아서 하라는 거고.

“그리고 저것도 팔아야지.”

무르물랑이 턱짓으로 가리킨 건 데미안이 정리하고 있는 전리품이었다. 아갈타 놈들을 죽이고 뺏어 온 200개가 넘는 차원강습 시스템과 각종 군수물자들이 이리저리 분류되어 있었다. 도망치는 와중에 저것 챙긴다고 진짜 힘들었는데… 또 저렇게 쌓여 있는 모습을 보니까 피로가 싹 사라지는 것 같았다.

그나저나…….

‘저 많은 걸 데미안이 다 정리한 건가?’

내가 기절해 있는 동안에도 쉬질 않았는지 피로해 보이는 데미안.

마침 까막이가 데미안에게 따뜻한 코코아를 건네는 모습이 보였다.

“이것 좀 먹고 해요.”

데미안의 입맛을 고려했는지 아주 고급의 코코아였다. 까막이 녀석… 데미안의 친구가 되겠다는 계획을 아직 포기하지 않은 것 같다.

“어, 그래. 너는 저쪽 차원강습 시스템들 살펴봐. 상태 깨끗한 애들만 모아서 부속품 하나도 빠짐없이 파악해서 적어 놔.”

하지만 아주 고급의 코코아를 손만 뻗어 받아 든 데미안은 까막이와 눈도 마주치지 않은 채 일을 지시할 뿐이었다. 친구가 아니라 하인을 대하는 태도.

까막이가 충격받은 표정으로 얼어붙자 데미안이 흘깃 그를 올려다보더니 말했다.

“아… 미안. 우리 가문 직원인 줄 알았군. 방금 요청은 잊어 주게. 우리 직원에게 다시 맡기지.”

그 사무적인 태도에 까막이는 또 어쩔 줄을 모르고 손을 휘휘 저었다.

“아, 아뇨. 아뇨. 괜찮아요. 내가 도울게. 돕게 해 줘요.”

“어… 고맙군.”

그러곤 다시 서류로 시선을 내리는 데미안을 본 까막이가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터덜터덜 일을 하러 간다.

나도 모르게 실소를 머금으며 그 모습을 지켜보는데, 무르물랑이 말했다.

“전리품 챙긴 건 정말 잘한 일이야.”

“그래야 해적 같아 보일 테니까.”

“거기다 쏠쏠한 수입도 챙기고 말이지.”

무르물랑은 기분이 좋았는지 온몸에서 물결을 일렁이다가 갑자기 정색을 하고 내게 말했다.

“하지만 저것 잘못 처분했다가 꼬리 밟히면 큰일 난다? 그래서 신뢰할 수 있는 밀수 루트를 찾아 달라는 거야. 정상적인 판매 루트도 중요하지만 밀수 루트도 엄청 중요해. 그게 있어야 해적질한 걸 팔고, 또 일반적으로 구할 수 없는 전략물자랑 안보 시설들도 구매하지.”

머리가 아프다.

중요하다는 건 충분히 알겠는데… 문제는 그 방법이다.

하지만 무르물랑은 밀수 루트 찾는 걸 도와주거나 하다못해 어떻게 찾아야 하는지 알려 줄 수가 없는 모양이었다.

“힘내! 나는 내정을 하고 너는 해적질을 하고, 이렇게 정했잖아? 알지? 해적질은 그냥 죽이고 뺏는 게 다가 아니다? 해적질도 비즈니스야. 뺏은 걸 팔고 은신처에 필요한 걸 새로 사 오는 것까지가 네 역할이야. 인정?”

무르물랑이 얄밉게 조잘거리다가 내가 노려보자 얼른 입을 다물고 딴청을 부렸다. 원시 차원 출신인 나한테 탑골시장 공예 대회에서 입상하라는 요구도 뻔뻔하게 잘하던 녀석이 이렇게 눈치를 보는 걸 보면 본인 스스로도 정말 어려운 요구라고 느끼는 모양이다.

하지만… 뭐, 녀석 말이 틀린 건 아니었다.

내 일이 맞다.

‘어떻게든 해내야지.’

무르물랑의 요구인데. 아무리 어려워도 해내야 되는 거다.

‘무려 1억 타키온이나 쾌척해 줬잖아? 나도 내 몫은 해야지.’

사실… 무르물랑은 내게 정말 고마운 존재이다.

지금도 문득문득 모든 게 꿈만 같았다. 원래 나는 지구를 버리고 혼자 잘 먹고 잘 살 계획을 세웠던 놈이 아닌가? 그런데 지금 이렇게 거대한 계획을 꿈꿔 보고 있는 건 모두 무르물랑 덕분이다.

그리고…….

‘지난 생에는 하루하루 매일이 이것보다 더 어려웠어.’

간신히 2류에 턱걸이한 그 실력으로 가장 험한 전쟁터를 전전하며 괴물을 죽이고 겨우겨우 살아남던 하루하루. 밑바닥에서 밑바닥 괴물들과 개싸움이나 벌이던 그 순간이, 차원 문명들 사이에서 부대끼는 지금보다 훨씬 더 힘들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분명히 그랬다. 웃기지도 않지.

그러니까… 이쯤은 아무것도 아니다. 방법이야 어떻게든 부딪쳐서 찾아내면 되는 거다.

무르물랑이 내 눈치를 보다가 물었다.

“방법이… 있겠어?”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알아봐야지. 일단 한번 찔러 볼 만한 사람, 아니 호랑이는 하나 있으니까.”

엉덩이를 털고 일어났다. 아무래도 쉬고 있을 때가 아닌 모양이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