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해적 데뷔전
길고 짧은 건 대봐야 안다.
이런 속담이 왜 존재하겠는가? 세상엔 막상 뚜껑을 열어 보면 예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결과가 나오는 일이 허다하기 때문이다.
싸우면 내가 얻어맞을 줄 알고 눈도 못 마주치고 설설 기다가, 어느 날 한번 들이받아 봤더니 상대가 한 대 맞고 울어 버린다. 그때의 그 허탈함.
반대로 싸우면 자기가 이길 줄 알고 건방 떨었는데 한 방에 너무 아파서 눈물을 터뜨려 버린 상대의 그 민망함.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짜로 싸워 보는 일이 드물기에 많은 이는 여전히 착각 속에 빠져서 산다.
아갈타 3317수색 대대장도 마찬가지였다.
- 적의 포격이다! 지원 요망.
황급히 주변 부대에 통신을 날리면서도 실제로 마음이 급하지는 않았다. 통신을 들은 주변 대대장들의 반응 역시 비슷했다.
- 에이, 뭐야? 진짜 지원 필요해?
- 큭큭. 야, 혼자 못 한다잖아. 기저귀 갈아 주러 가야지 뭐.
- 뷰우우웅신. 크크크.
오랫동안 부대끼며 우애 깊게 지내 온 대대장들은 사려 깊게 자신들의 걱정과 사랑을 전했다.
3317수색 대대장도 진중하게 그에 응했다.
- 이런 후방에서 책이나 읽어야 할 새끼들이… 누가 필요하대? 절차대로 말한 것 아냐, 절차대로!
- 눼에. 눼에.
- 하! 차원 포격이라니, 그래도 이번엔 좀 제대로 된 적인가 봐? 하지만 그래 봤자 4등급 포격인데 그것 가지고 비비긴 어딜 비…….
바로 그때였다.
소시민이 쏜 화살이 2등급 포격으로 격상되어 참호를 때린 건.
옆 부대 대대장들과 시시덕거리던 통신이 통째로 두절되고 진지의 방호 시스템이 다운되었다.
3317수색 대대장은 충격으로 땅바닥을 뒹굴다가 겨우 몸을 일으켰다.
[이런 빌어먹을. 해적 주제에 포격 위력이…….]
방어 시스템을 뚫고 들어온 충격에 짜릿한 통증을 느꼈지만 그는 여전히 크게 걱정하지는 않았다.
‘어차피 포격은 계속될 수 없어.’
인근 차원은 모조리 아갈타의 통제하에 들어가 있는 상황. 금세 주변 포대에서 반격이 가해질 것이다. 포격을 계속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포격은 한 번이 전부였다. 그리고 응집되는 영력의 패턴을 보았을 때 남은 건 백병전이 분명하다.
‘적의 주 무기는… 성검 시스템? 하, 딱 해적의 정석이군.’
제법이지만 그래 봤자 성검 시스템. 한 세대 이전의 무기를 쓰는 적과 백병전으로 싸워서 질 리가 없다. 포격으로 인한 혼란은 대대장인 자신이 잘만 하면 충분히 커버할 수 있다.
‘뭐, 잘하면 지원 오기 전에 끝낼 수 있겠군.’
그는 그렇게 생각했다.
누구에게나.
그럴싸한 계획은 있는 법이었으니까.
* * *
우리의 계획은 단순했다.
포격 그리고 이어진 돌격으로 깔끔하게 제압하는 것.
한데, 전혀 생각도 못 한 풍경 탓에… 나는 조금 당황스러웠다.
‘이런 미친놈들.’
우리 화랑단원들은 내 기대만큼 잘 싸웠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을 수밖에 없었다.
‘대체 누구한테 배워서 저 모양인 거야?’
[만상공감]으로 전해지는 우리 단원들의 감각은 아주 가관이었다.
‘지금 저게 싸우는 중인 거야, 장비 감상 중인 거야?’
일단 죄다 적들의 차원강습 시스템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와… 쟤네는 뭘 입은 거야? 저게 사령관님이 말한 그거야?’
이런 생각을 하고 있지 않을까?
근데…….
츄릅.
입가에 침은 왜 고이는 거냐, 너희?
후욱, 후욱, 숨소리마저 거칠어졌다.
블레이드오러를 칭칭 감은 성검을 휘두르면서도 시선은 그 블레이드오러를 튕겨 내는 아갈타 병사의 손목 방어구에 꽂혀 있는 것이다.
[흥! 그깟 성검 따위로 흠집 하나 낼 수 있을 것 같으냐?]
아갈타 병사는 잘난 척을 했지만 사실 그럴 필요도 없었다.
어차피 우리 단원들은 그 매끈하고 단단하며 영력을 야무지게 잘 머금는 손목 방어구를 이 각도로 보고 저 각도로 보며 저 혼자 꿀꺽 침을 삼을 삼키고 있었으니까.
그런데 또 그렇게 구경 잘하고 있다가도.
“어? 근데 열받네?”
갑자기 화를 내며 성검을 세차게 뿌리는 것이다. 아갈타 병사가 막기 딱 어려워 보이는 타이밍에, 딱 막기 어려운 위력으로.
쩌어엉-!
손목 보호대가 박살 나는 순간 아갈타 병사는 당황해서 외친다.
[크으윽! 마, 망할! 운이 나빴군! 우쭐대지 마라, 해적 새끼야!]
아갈타 놈들은 멍청했다. 운이 아니라 노린 거라는 사실을 몰랐다. 영력이 고르게 뿜어지지 않은 미세한 틈을 노려서, 영력을 최대로 집중한 블레이드오러로 가격한 거다. 실력만 압도적이라면 조선 시대 활로 2차 대전의 소총수와 저격전을 벌여 이길 수 있는 것이다. 이론상으로는 그렇다. 그 정도로 자기 무기에 대한 이해와 숙련도가 차이 났을 뿐이었다.
우리 화랑단원들의 분노가 점점 더 거세지는 것도 바로 그런 이유였다.
‘그 좋은 장비를 그 따위로 쓸 거면 나 줘, 이 새끼야!’
뭐, 이런 마음 아닐까? 그리고 사실… 나도 그 마음 공감 못 하는 게 아니다.
“아… 쓰읍… 나도 차원강습 시스템 하나 있었으면 좋겠는데…….”
나도 없는 차원강습 시스템을 가지고 있는 주제에… 숙련도가 이것밖에 안 돼?
아갈타, 이 배부른 돼지 새끼들!
우우우웅-! 우웅-!
문득 나의 성검 시스템, 반월이가 유독 길게 울었다. 너, 설마 내 마음을 읽기라도 했니?
우웅-!
반월이는 차원강습 시스템에게 지지 않는다고, 본때를 보여 주겠다는 듯이 크게 울음을 토해 냈다.
쿵! 쿵! 쿵!
그러곤 심장이 뛴다. 아닌가? 내 심장이 아니라 반월이의 1,600 넘버링 코어가 뛰고 있는 건가? 아무튼 뛴다! 기운이! 용솟음친다!
심지어 반월이의 버프는 내 몸에만 한정되는 게 아니라 내가 걸친 다른 장비들에도 작용되었다.
촤아악!
등 뒤로 아루카의 날개를 펼쳤다. 무려 타키온 5만 알짜리의 하얗게 빛나는 날개. 안 그래도 [만상공감]으로 인해 성능이 크게 향상된 아루카의 날개에 반월이의 버프가 더해지니…….
우우우웅-!
날개가 태양처럼 빛났다. 섬광탄이라도 쏘아 대는 것처럼 위협적이다. 원한다면 광량을 줄일 수도 있었지만 나는 그러지 않았다.
‘내가 화랑단의 단장이다!’
만천하에 그 사실을 알리며 적진의 중앙을 향해 내리꽂힌다.
스릉-!
예전, 처음으로 초음속에 도달했을 때는 관성 탓에 피가 쏠리고 폐가 짓눌려서 머리가 어지러웠다. 하지만 지금은 아무렇지도 않다.
무기들이 내게 길들면 길들수록 나는 더 강해졌다.
청하는 내 손을 떠났지만 파도는 아직 남아 있다.
파도는 그저 작은 회칼에 불과해 보이지만, 사실 그렇지가 않다.
파도는 나에게 ‘완전히 길들었다’. 나의 분신과도 같다. 파도의 능력이 곧 내 능력이다.
리이이이잉-!
파도가 울며 떠오르고 나와 공명을 일으킨다. 내 몸은 예리한 칼날처럼 나를 가로막는 모든 저항을 가르며 날아간다.
부르르르르-
내 왼편으로는 거인창이 모습을 드러낸다. 마찬가지다. 거인창의 능력은 나의 능력, 반작용을 오히려 작용 방향으로 되돌리는 충격 밀집 기술처럼 나를 뒤로 잡아당기는 관성이 오히려 나를 앞으로 밀어내는 추진력이 된다.
더 이상 음속으로 내 속도를 추정하는 건 의미가 없다. 온 세상이 내 앞으로 무겁게 압축되어 온다. 그리고 그 겹겹이 쌓인 세계를 반월이가 가른다.
번-쩍!
반월이의 칼날에 타오른 가을 하늘처럼 투명하고 푸른 블레이드오러가 하늘과 땅을 나눴다.
범위 내에 있던 차원강습병 셋이 치즈처럼 동강 나 버린다. 예전에 하준광이 차원강습병들을 단숨에 찢어 버리는 모습을 보고 식겁한 적이 있었지. 이젠 나도 그 비슷한 걸 할 수 있다.
[미, 미친… 별빛 강기도 아니고 고작 성검의 블레이드오러로 차원강습병을 반토막 친다고?]
아갈타 놈들은 못 볼 것을 봤다는 듯이 얼어붙었지만… 사실 나는 조금 아쉬웠다. 솔직히 말하면 여전히 하준광에게 미치지 못하는 파괴력이었으니까. 이렇게나 돈과 기술을 처발랐는데도 아직도 그 미친 할아버지는 저 앞에 서 있다.
하지만, 그래도, 다대일의 싸움이라면 나도 나쁘지 않지.
쾅!
다른 한쪽에서 스스로 내리꽂힌 거인창이 차원강습병 하나를 날려 버렸다.
‘튼튼하긴 하네.’
저만한 가속과 버프를 받은 거인창이 차원강습병 하나를 뚫지 못했다.
연출가가 겁준 대로 한 명 한 명이 걸친 차원강습 시스템이 굉장히 우수한 것이다. 하지만.
‘그래서 더 열받네.’
저 좋은 장비를 저렇게밖에 못 다뤄?
꽈직!
[윽!]
뱀처럼 날아든 악몽 사슬이 겨우 자세를 잡으려던 차원강습병의 자세를 다시 무너뜨렸다. 순간적으로 흔들린 방어 시스템 사이로 파도가 날카롭게 파고들어 외부 장갑을 회 쳐 버린다.
[칵! 크악!]
목덜미 피를 뿜으며 뒷걸음질치는 아갈타의 병사. 그리고 그 뒤를 따르는 내 장비들. 이제 차원강습병 하나 정도는 내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고 길들인 무기들만으로 처리하는 게 가능해졌다.
‘괜찮네.’
덕분에 나는 더 안심하고 내 할 일에 집중할 수 있었다. 전투 중에 위험에 빠지는 단원들은 거인창을 비롯한 내 장비들이 어느 정도 커버해 줄 거다. 그사이 나는 내가 봐 둔 타깃을 잡으면 된다.
적 중에서도 유독 화려하고 큰 차원강습 시스템을 걸치고 있는 놈. 아마 대대장쯤 되겠지.
나는 아루카의 날개를 더 환하게 불태우며 그자를 노려보았다. 놈도 마침 나를 보고 있었다. 놈이 외치는 목소리가 들렸다.
[저놈이 대장이다! 집결! 모여! 저놈을 죽여라!]
적의 대대장은 혼자서 나를 어쩔 수 없다는 걸 깨달았는지 자신의 주변으로 병력들을 긁어모았다. 그리고 본인도 구름 강기를 뭉게뭉게 피워 올렸다.
나로서는 무척 실망스러운 대목이었다.
‘에이… 고작 구름 강기야?’
별빛 강기를 깨부수는 손맛을 또 느껴 보고 싶었는데, 그건 조금 아쉽네.
[죽여! 어차피 더 이상 포격은 없다! 저 해적 두목만 잡으면 우리의 승리다!]
구름 강기를 잔뜩 끌어모으고 내게 달려드는 대대장. 그리고 그 뒤를 따르는 병사가… 둘, 다섯, 여덟, 열 명. 딱 열 명이다.
‘아쉽네. 조금 더 모였으면 좋았을 텐데.’
나는 입맛을 한 번 다시고 아공간에서 이성계의 활을 꺼내 당겼다. 온몸이 부르르 떨리고 아득한 영력이 내 손끝에 모여든다. 해일이나 태풍 같은 자연재해를 맨손으로 잡아당기는 듯한 압박감이다.
신과도 같은 이 말도 안 되는 활이 내 손에서 조금씩 길들어 가고 있다는 이 사실이 나로서도 기이하고 신비하다.
[어엇? 대대장님?]
[자, 잠깐……? 저거 뭐야!]
[서, 설마 저게 차원 포격……? 저런 크기로? 말이 안 되는……?]
달려들던 차원강습병들이 기겁을 했다. 자신만만하게 구름 강기를 끌어모았던 대대장마저 서둘러 화살의 경로에서 이탈하려고 몸을 뒤집었다.
[후, 후퇴! 후퇴해!]
하지만 늦었다.
나는 시위를 놓았다.
“잘 먹겠습니다.”
* * *
[끄… 끄으으…….]
연출가의 말이 백번 옳았다. 놈들의 장비는 정말 좋았다. 그 증거로 아직도 안 죽고 고통스러워하잖아?
하늘빛처럼 푸른 블레이드오러를 뽑아 고통스러워하는 차원강습병을 죽여 주었다. 그게 마지막 놈이었다.
전멸. 이로써 이곳에 있던 대대 규모의 부대를 전멸했다. 나는 즉시 휘오에게 물었다.
“후… 휘오, 혹시 통로 열려?”
- 으음… 안 돼. 뭔가가 막고 있어. 목소리 전하는 것도 쉽지 않은데……? 괜찮아? 안에서 흔들어 줘야 내가 가지를 뻗을 수 있을 것 같아!
“어어. 괜찮아. 금방 가지 뻗게 해 줄게.”
역시나. 차원 이동이 막혔다. 아마 주변의 다른 아갈타 부대들이 차원 간섭으로 막아 놓고 미친 듯이 달려오는 중이겠지.
“선배.”
서민서가 내게 손수건을 건넸다.
“오, 감사.”
땀과 피를 닦는데 서민서가 나를 뚫어져라 쳐다본다.
“왜?”
“고생했어요.”
“뭘. 다들 열심히 싸웠는데.”
“다 알아요. 일부러 적들 시선을 혼자 다 끌면서 싸운 것. 화랑단 첫 실전이라고 선배가 무리한 거잖아요.”
역시 눈치가 빨라.
아무리 이성계의 활이 내게 길들고 있다고 해도 한 발 한 발이 몸에 무리가 안 갈 수는 없다. 그런데도 굳이 그렇게 적들을 몰아 잡은 건 화랑단원들이 걱정되어서였다.
실력은 충분하다고 생각했지만, 성검 시스템을 사용하는 첫 실전인 만큼 혹시 어떤 변수가 발생할지 알 수 없었으니까. 하지만 또 굳이 그렇게 대답할 필요는 없지.
“에이. 뭔 소리야? 다들 싸우는 것 못 봤어? 눈 뒤집혀서 싸우던데.”
서민서가 피식 웃었다.
“뭐, 좀 그렇긴 했죠. 아, 마침 오네요. 제일 눈 뒤집혀서 싸우던 사람.”
서민서가 턱짓으로 가리키는 곳을 보니 강전구가 이를 새하얗게 드러내고 웃고 있었다.
‘아, 기억난다.’
이성계의 활을 맞고도 살아남은 적 대대장의 숨통을 끊어 놓을 때였던가? 전투 글러브 형태의 성검을 양 주먹에 찬 강전구가 내 옆을 스쳐 지나가면서 차원강습병 한 놈의 얼굴에 주먹을 연신 내리쳤었다.
‘빌어먹을 놈들!’
쿵!
‘너희는!’
쿵!
‘그 좋은!’
쩍!
‘장비를 가지고도!’
꿍!
‘이렇게!’
쩍!
‘약해 빠진 거냐!’
퍼석!
뭐랄까. 평소에 무게감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오늘의 광기는 대단했다.
“사령관님!”
지금도 평소보다 훨씬 더 환하고 순박한 웃음을 짓고 있었다. 근데 뭐지? 늘 나를 따라다니는 간부급 인사지만 정작 개인적인 대화는 별로 나눠 본 적 없는 사람이 강전구였다. 더구나 그가 먼저 나를 이렇게 찾는 일은 드물었다.
“네, 강전구 주임.”
내가 화답하자 그의 미소가 한층 더 진해진다. 그러곤 고개를 푹! 숙이며 내게 인사했다.
“감사합니다, 사령관님! 정말 감사합니다. 역시 사령관님을 따라다닌 게 제 인생에서 제일 잘한 선택 같습니다!”
뭐, 뭘까? 이 친구는 갑자기 왜 이래? 눈빛으로 서민서에게 묻자 서민서도 모르겠다는 듯이 어깨를 으쓱였다.
“왜, 왜요? 성검 시스템 준 것 때문에 그래요?”
내 물음에 강전구는 자신의 두 주먹을 흘깃 내려다보고는 더 큰 웃음을 지었다.
“아니 전부 다요! 이것도 그렇고 전부 다 말입니다! 하하하! 사령관님! 정말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세상을 다 얻은 듯 웃는 그를 보고 나는 떨떠름한 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아니, 좋은 건 알겠는데 아직 이렇게 막 좋아할 때는 아니지 않나? 진짜 싸움은 아직 시작도 안 했는데… 근데 강전구의 표정은 뭐 거의 파병 나갔다가 훈장 받고 전역하는 병장처럼 해맑았다.
이해가 가지 않아 고개를 갸웃거리는데 아니나 다를까 저편에서 데미안이 연출가를 손에 들고 덜렁덜렁 흔들며 외쳤다.
“사령관님! 적습이라고 합니다! 약 네 개 대대 규모의 적군이래요!”
오, 네 개 대대 규모라… 많다. 하지만 최악으로 상정했던 숫자보다는 적었다.
나는 이성계의 활을 다시 꺼냈다.
“자, 그 이야기는 나중에 다시하고 일단은 싸울 준비 합시다. 강전구 주임, 다들 정렬시켜요.”
강전구는 여전히 환하게 웃었다.
“네! 감사합니다!”
뭐가 그렇게 감사한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강전구는 파이팅 넘치는 태도로 달려 나가 곳곳에 흩어진 화랑단원들을 정렬시켰다.
강전구의 파이팅이 전염되기라도 한 건지, 이제 진짜 싸움이 시작된다는데도 화랑단원들은 긴장하기보다는 더 뜨거운 투지를 드러내고 있었다.
…이번 싸움이 어째서인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나 보다. 일방적인 압승이라서 그런가?
‘뭐… 좋은 일이지.’
저렇게라도 에너지가 넘쳐 주는 편이 낫다.
‘오늘은 지겹게 싸우게 될 테니까.’
나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곳곳에서 하늘이 갈라진다. 아갈타 놈들이 이곳에 오고 있다.
하나하나 박살 내서 놈들의 차원 간섭을 헤집고 휘오가 가지를 뻗게 도와야지.
그러기 위해선.
먼저 놈들의 공격을 받아 내야 한다.
지금은 놈들의 턴이었으니까.
끼리릭!
활을 당겨 허공에 겨누고 외쳤다.
“적의 포격에 대비한다!”
화랑단은 일제히 실드오러를 피워 올리며 복창했다.
“포격에 대비!”
신나서 주변 차원을 약탈하고 있던 아갈타 놈들에게 우리의 존재를 알리는, 기나긴 데뷔전의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