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그때는 말야
대체 몇 날 며칠을 싸운 걸까?
‘미친놈! 미친 새끼! 우릴 다 죽이려는 거야?’
토마스는 울고 싶었다.
땀이 스며든 눈은 앞이 안 보일 정도로 쓰라렸다. 눈이 쓰라리다니! 이런 감각이 대체 얼마 만인지…….
마누스가 점점 커져서 흔히 1류라고 부르는 경지에 이르렀던 5년 전. 그때 이후로 토마스는 눈이 불편한 적이 없었다. 강대한 마누스가 뿜어져 나와 피부 바깥 한 뼘 정도를 특별한 영역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 영역으로는 빠른 총알도, 작디작은 바이러스조차도 침범하지 못했다.
하지만 마누스를 쥐어짜고 또 쥐어짜 내 마른걸레처럼 아무것도 남게 되지 않은 지금은… 고작 땀과 먼지가 눈동자를 침범해 시큰시큰한 고통을 선사하고 있었다.
하지만 괴물들은 끝이 보이질 않았다.
토마스는 절망했다.
‘그냥 수만 많은 게 아냐… 이건 이길 수가 없어… 어떻게? 오크들이 어떻게 이토록 강한 거지?’
오크. 최소 2미터가 넘는 신장을 지니고 있으며 고릴라를 멸치로 보이게 만드는 육중한 근육을 자랑하는 인간형 괴물. 쉽게 발견되는 종류였고, 그리 강하지도 않아서 2류나 3류 시절에나 상대하던 놈들이었다. 원래 여기에 모인 헌터들의 솜씨 정도면 아무리 그 수가 많다고 해도 일방적인 학살이 되어야 옳다. 하지만 이놈들은 달랐다.
크아! 크아! 크아!
크르륵! 크륵!
울음소리부터가 그랬다. 이성을 잃고 마구잡이로 내지르는 짐승의 포효가 아니라 장교의 지휘와 병사들의 복명복창처럼 절도 있고 조직화된 함성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우우우우웅-
‘빌어먹을……!’
놈들이 쓰는 장비가 달랐다.
‘어떻게 모든 놈이 오파츠로 무장을 하고 있냐고!’
어쩌다 한 번씩 발견되는 오파츠가 여기서는 사방에 굴러다녔다.
우우우웅-
오크들은 지칠 대로 지친 일행에게 달려들지 않았다. 오히려 거리를 유지하며 길쭉한 막대기를 내밀었을 뿐. 막대기의 끝은 꿀벌의 꼬리처럼 강력한 진동을 일으키며 점점 환하게 빛났다. 저 빛이 절정에 이르면 광선이 쏟아져 나오리라. 하나하나는 별게 아니지만 모이면 상당한 압박이 되었다. 특히 지금처럼 완전히 탈진한 상태에서는…….
‘이번엔… 못 막아.’
마누스가 고갈되었다. 이제 튕겨 내기는커녕 피해 낼 여력조차 남지 않았다. 그 결과는 명백했다.
죽음.
토마스의 눈에 절망이 깃들고, 그건 이내 분노가 되어 타올랐다.
“소시민!”
아니, 어떻게 이런 끔찍한 던전에 덩그러니 던져 놓을 수가 있단 말인가? 뭐? 새로운 무기에 익숙해지라고? 그 새로운 무기라는 건 오늘 처음 잡아 봤다! 사용법이랍시고 가르쳐 준 대로 휘둘러 봤지만, 그 실드오러니 블레이드오러니 버프니, 그 무엇도 제대로 발현되지 않았다. 그러니까 그건 그냥 명분인 거고 실제로는 여기서 그냥 죽으라는 의도였던 게 아닌가?!
어째서? 단지 평생의 무기를 버리고 뜬금없이 창을 잡으라 하던 그 명령을 거부했다는 이유만으로?
마침내 진실(?)을 깨달은 토마스는 하늘을 보며 절규했다.
“비열하고 간악한! 소시민! 설마 이런 함정을 준비해 놨을 줄이야! 강철기사회는 이 일을 결코 잊지 않을 거다!”
주변의 일행도 같은 생각인지 회한과 억울함이 가득한 눈빛으로 이를 악물었다.
하지만 그 순간, 모두가 잊고 있던 ‘인솔자’ 허묵이 혀를 차며 핀잔을 던졌다.
“웬 개소리? 이봐요! 성검 하나씩 다 나눠 줬잖아요? 아, 그쪽은 성창이라고 해야 하나? 아무튼 마누스 떨어졌으면 그걸 쓰면 되지 웬 궁상입니까, 궁상이!”
그 말을 듣는 순간 토마스의 심장이 쿵쿵! 뛰었다. 그건 괴물과의 전쟁터를 전전하던 전사로서의 본능과도 같은 것이었다.
‘아! 원흉이 저기 있었구나!’
허묵이 하는 말을 곰곰이 따져 볼 마음은 없었다. 분노가 생각을 앞질러 행동으로 표출된다.
‘죽여야겠다!’
생의 마지막 순간, 작디작은 복수라도 감행하고 죽겠다는 구체적인 악의!
‘그래! 그리고 놈이 준 창은 아직 예리하지! 네놈들이 변명으로 삼은 이 창으로 죽어라!’
들고 있던 검은 오크들에게 던져 버렸다. 비싼 검이었지만 이미 이가 다 나가서 너덜너덜한 상태. 신념의 검 대용으로 비싼 값에 구매했지만 역시 신통치가 않았다.
대신 사용법을 배운 뒤 한 번도 쥐지 않은 창을 들었다. 손에 익지 않은 무기지만 딱 한 번만 제대로 찌르면 된다. 그렇게 창을 손에 쥐는 순간…….
‘…어?’
후우우웅-!
바람이 불었다. 아니, 파도가 밀려왔다.
마른걸레처럼 마누스를 짜내고 짜낸 육신 위로 흥건한 물이 스며드는 기분이었다.
기본적으로 ‘시스템’이라는 이름이 붙는 병기는 스스로 영력을 생산해 기동하는, 반쯤은 살아 있는 것 같은 무기들이었다.
성검은 그 스스로의 힘만으로도 얼마든지 이적을 불러일으켰다.
여태 자기 힘을 쥐어짜 내 무기에 담기만 했던 토마스로서는 어안이 벙벙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이게… 대체?’
힘을 다 짜내서 몸속은 텅 비고 정신은 죽음을 앞두어 예민해진 탓이었을까?
분명 아까 소시민에게서 배울 때는 느끼지 못했던 기묘한 힘이 창의 중심에서 뻗어 나와 토마스의 전신을 푹 잠기게 하는 게 느껴졌다. 마누스와는 완전히 달랐다. 훨씬 순수하고 훨씬 지고한… 설마 이게?
“이게… 영력?”
이후의 행동 역시 전사로서의 본능이었다. 한 번 들으면 세 가지쯤은 알 수 있는 수재의 재능도 그를 뒷받침했다. 일단 영력을 느끼고 나자 소시민이 가르쳐 주었던 그 단 한 번의 사용법을 따라 저절로 몸과 영혼이 움직인 것이다.
성검 시스템의 첫 번째 능력.
버프.
쓰라리고 침침하던 눈이 촉촉하고 투명해진다. 경련이 일어나던 삼두근과 대퇴근이 신비한 힘으로 이완 되더니 더 크고 단단해진다. 감각이 확장된다. 두근두근 뛰는 수십, 수백의 심장 소리가 들리고, 오파츠를 쥔 오크의 손가락 마디 하나하나가 다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성검 시스템의 두 번째 능력.
실드오러.
우우웅-
콰우우우!
창 자루에서 흐릿한 황금색 서광이 일어났다. 까막이가 사용했던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연약하고 흐릿한… 옅은 새벽 공기 같은 실드오러였지만, 그것만으로도 오크들이 쏘아 낸 섬광을 잡아먹을 수 있었다. 죽음은 비껴 나갔고, 그 앞에 열린 건 미지의 세계. 이젠 그 안으로 뛰어들 일만 남았다.
블레이드오러.
토마스는 소시민의 조언을 떠올렸다.
‘칼 쥘 때보다 1.3배 더 세게. 꽉 비틀 듯이. 찔러 넣는 타이밍은 칼보다 반의반 보만 더 빠르고 짧게.’
꾸우욱!
‘어?’
창 자루를 잡은 손에 힘을 주었을 때 토마스는 뒷목을 타고 오르는 소름을 느꼈다.
‘창이… 손에 달라붙는다!’
칼을 쥘 때는 정도 이상으로 손아귀에 힘을 쥐면 칼자루가 삐걱거렸다. 굳이 흠이라고 말할 것까지는 없지만, 엄밀하게 말하면 힘이 균일하게 분산되지 않고 어긋나는 부분이 있기에 그런 소리가 나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 창은 달랐다. 토마스의 손 모양대로 착 감겨서 소리조차 나지 않도록 균일하고 곧게 힘을 받아들인다. 꾹 누르면 손자국이 남는 점토처럼 손을 꽉 잡아 준다.
두근.
절로 흥이 났다.
자신도 모르게 칼을 찌를 때보다 반의반 보 더 빠르게 발이 나간다. 등 근육을 살짝만 튕겨서 짧게 찌르고 뺐다.
창끝에서 흐릿하게 피어오르는 블레이드오러.
버석!
공간을 격하고 정면을 점하고 있던 오크 다섯 마리가 일직선으로 꿰뚫었다.
얇게 살얼음이 낀 셔벗을 젓가락으로 콕! 하고 찌르는 듯한 중독적인 손맛!
손과 발이 저절로 움직였다. 콕콕콕 찌르다 팍! 하고 창을 휘두르면 오크들이 우수수 무너진다.
후둑, 후드득.
젖은 머리칼을 타고 땀이 땅바닥에 흥건하게 떨어진다.
성검-창에서 시작된 영력이 전신을 휘돌고 있었지만, 탈진 수준에 이른 피로를 모두 없애 주진 못했다.
하지만 다르다.
방금 전까지는 고통스럽고 절망적인 탈진이었다면, 지금은 신나게, 끝까지 내 역량을 다했을 때 느껴지는 그런 상쾌한 탈력감이었다.
더, 더 창을 휘두르고 싶다. 창이 이렇게 재밌는 거였나? 이대로 녹아서 사라져도 좋아! 창을 더 휘두르고 싶다. 소시민 사령관님이 가르쳐 준 대로 1.3배 더 세게 쥐고 반의반 보 빠르게 들어가서 짧게 찌르고! 또 찌르고!
정신없이 주변을 휩쓸다가 둘러보니 네 명 정도를 제외하고 나머지 아홉 명은 다들 토마스와 비슷했다. 토마스보다 조금 더 흐릿한 오러를 뿜어내는 이도 있었고, 토마스보다 명백히 진한 오러를 뿜어내는 이들도 있었지만… 공통점은 다들 입꼬리가 귀에 걸리도록 환하게 웃고 있다는 점이었다.
성검 시스템을 손에 쥐고도 끝끝내 성검을 발동시키지 못한 네 명만이 당혹스럽고 어딘지 처량한 얼굴로 서 있을 뿐이었다.
‘나도 저럴 뻔한 건가? 이 끝장나는 기분을 못 느낄 뻔했다고?’
그런 생각에 토마스는 새삼 가슴이 철렁했다. 반사적으로 허묵을 돌아보았다.
그는 묻고 싶었다. 이거냐고. 이게 소시민 사령관님이 말한 그것이냐고. 그래서 우리를 이곳에 보낸 거냐고. 멍청한 내가 감히 그분의 의도를 곡해한 거냐고.
하지만 터질 듯한 감정은 말로 정리가 되지 않았다.
결국 토마스의 입에서 나온 건 말로 형상화되지 못한 바보 같은 감탄사에 불과했다.
“…아아?”
하지만 허묵은 다 알고 있다는 듯이 살짝 눈을 내리깔고 짧게 고개를 끄덕여 답했다.
“아아.”
찔끔, 토마스의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그들이 옳았다.
깊이 반성하며 토마스는 다시 한번, 자기 손에 딱 달라붙은 창을 내려다보았다. 그저 놀랍고 경이로웠다.
‘대체… 소시민 사령관님은 이것들을 어떻게 알게 되고, 또 만들 수 있게 되신 걸까?’
어떻게 인간이 이런 기적에 닿을 수 있는 것인지.
영능학.
그것은 토마스로서는 상상조차 불가능했던 거대하고도 놀라운 세계였다.
* * *
영능학.
모든 것에 대한 학문.
그것이 있기에 이 방대한 차원들이 서로 연결되어 끝없는 번영과 발전을 구가할 수 있었다.
원시 상태의 지구도 이제는 그 대열에 합류해야만 했다.
그리고 그러기 위해 꼭 필요한 조건.
그건 바로 막대한 자금이었다.
무르물랑은 그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때문에 고민은 신중히 했으나 일단 돈을 쓰기로 마음을 먹고 나면 그다음부터는 거침이 없었다. 더 큰 돈을 더 빨리 쓰기 위해 혈안이 된 사람 같았다.
그 결과 서부 드래곤힐동에는 매일매일 새로운 구조물이 들어섰다. 새로운 도구, 새로운 시설이 추가될 때마다 성검 시스템의 생산 속도도 점점 더 빨라졌다. 눈에 띄게 향상되는 생산성에 장인들은 처음에는 행복한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나중에는 충혈된 눈으로 고통의 비명을 질렀다.
“으악! 또 새로운 장비입니까? 아직 이전 것도 다 못 익혔어요!”
“자자, 같이 익혀, 같이. 동시에 익히면 되지.”
“그걸 어떻게 동시에 합니까? 그리고 또 저한테 다른 장인들 교육까지 떠넘길 거잖아요! 못 해요! 그냥 쓰는 것도 아니고 남 가르쳐 줄 정도로 사용법을 익히고 숙달하려면 얼마나 힘든지 알아요?”
“아, 다른 방법이 없잖아?! 나는 타키넷 가서 또 신상 사와야 되는데! 윤희정 장인이 제일 습득이 빠르잖아! 자자, 할 수 있어. 내가 뇌를 각성시키는 물약도 줄게.”
“으아아악!”
어디선가 윤희정 장인이 울부짖고 그 옆에서 무르물랑이 어르고 달래는 모습은, 하루에 한 번씩은 목격되는 서부 드래곤힐동의 일상 풍경이었다.
그런데 그렇게 새로운 시설 때문에 벅찬 숨을 몰아쉬어야 하는 건 장인과 연구원들뿐만이 아니었다.
무르물랑은 생산 시설뿐만 아니라 훈련 시설에도 적지 않은 투자를 감행했다.
그리고 마침내 ‘악몽의 시간’이라는, 경험의 체감 시간을 늘리고 영적, 신체적 변화를 가속화, 극단화하는 아주 바람직하고 훌륭한 훈련 시설을 설치하기에 이르렀다.
‘악몽의 시간’을 활성화한 훈련장에선 훈련하는 이들이 하루를 한 달처럼 길게 느끼며 쉽게 자신의 한계를 맞이하게 되었다.
인기 만화나 소설에 자주 등장하는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훈련장과의 차이점은, 실제로 시간이 그만큼 오래 흐르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영력을 컨트롤하는 능력은 빠르게 상승시킬 수 있어도 영력의 절대량 증가에는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점과 육체적, 심리적으로 과부하가 일어나게 된다는 점이 있었다.
하지만 단 1주일의 훈련도 7달처럼 느끼게 해 주는 훈련의 가속 효과는 이런 단점을 전부 만회하고도 남는 장점이었다.
덕분에 훈련은 순조로웠다.
실전 훈련을 보낸 13명을 제외하고 남은 194명, 그들은 이제 막 쥐똥만 한 영력을 피워 내는 수준에 그쳤지만 영력을 제어하고 활용하는 능력만큼은 소름이 돋을 만큼 빠르게 발전했다.
다들 처음에는 즐거워했다.
훈련을 하면 하는 만큼 변화가 금방금방 드러났기 때문이다.
다이어트도 막 시작했을 때가 가장 극적으로 살이 빠지고, 웨이트 트레이닝도 막 시작했을 때가 중량이 쭉쭉 늘어나서 재밌는 법이었으니까.
진짜 힘들어지는 것은 일정 수준을 넘긴 다음부터였다. 20점을 맞던 사람이 70점을 받게 될 때까지 쏟아야 하는 노력보다 90점 맞던 사람이 100점을 받기 위해 들여야 하는 노력이 훨씬 더 큰 것처럼.
뚝, 뚝뚝.
훈련장 바닥으로 땀이 흥건하게 떨어져 줄줄 흐른다.
처음 훈련을 시작했을 때만 해도 감동으로 반짝거리던 눈들은 점점 빛을 잃었고, 그 대신 짜릿한 독기가 눈동자를 채우더니 요즘은 그 독기마저도 빠져나가고 그저 어떻게든 떨어지지만 않고 싶다는 절박함만이 남았다.
여기서 훈련한 지 5일, 체감 시간으로는 다섯 달 만에 이들은 두 번째 정체기에 부딪혔다. 하지만 그들이 정체기에 들어섰다고 해서 나는 진도를 늦춰 주지 않았다. 우리에겐 시간이 없었고, 단기간 내에 진짜 차원 해적처럼 보일 정도로 단련하기 위해서는 앞으로 이런 정체기를 최소 세 번에서 많게는 다섯 번까지도 넘어야만 했다.
훈련은 독했다.
“아직 여유 있네. 영력 출력을 10퍼센트 늘려.”
“잠깐! 발가락 쪽 출력이 일정하지 않잖아!”
“장난해? 몇 번 말했어! 신장 쪽 영력 밀도가 불균형하다고, 너!”
모두의 감각이 손에 잡힐 듯 들여다보인다.
그들을 어떻게 괴롭힐 수 있는지, 무엇이 부족하고 그걸 어떻게 단련해야 할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돌아보면 피가 되고 살이 되는 훈련이지만 당장 당하는 입장에서는 지옥. 못하는 것만 골라서 반복 수행 하다 보면 누구든 자신감을 잃기 마련이었다. 무얼 해도 잘하고 젊은 나이에 자신만의 방식을 확립해 당당하게 ‘최정예’라는 이름을 거머쥐었던 그들에게, 반복되는 실패란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이었다.
다 함께 ’악몽의 시간’이 적용된 훈련장에서 합숙했기 때문에 나는 이들이 밤마다 나누는 대화, 혼잣말을 모두 [만상공감]으로 들을 수 있었다.
‘오늘 설명은 하나도 이해할 수 없었다…….’
‘난 똥이야… 재능이 없어…….’
‘영력이 뭔지 알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그건 영력이 아니었던 건가… 대체 어디서부터 다시 검토해야 하는 거지?’
‘침착하자. 여태 도전해서 실패한 적 없잖아? 이번에도 결국엔 그럴 거야. 버티자. 버티는 놈이 이기는 거야.’
‘하지만… 과연 시간 내에 가능할까? 정해진 시간 동안 원하는 경지에 도달하지 못하는 인원은 즉시 훈련에서 배제한다던데.’
‘차라리 몰랐으면 좋았을 텐데. 이제 와서 훈련 배제라니. 이 감각을 알고 나서 더 배우고 훈련할 수 없다니!’
‘그런 불명예는 견딜 수 없지. 젠장…….’
사방에서 들려오는 가지각색의 목소리. 하지만 그 내용들은 마치 한 사람의 말처럼 서로 연결되어 있었다. 소속도 성격도 모든 게 서로 달랐지만, 같은 훈련을 받으며 조금씩 서로 비슷비슷하게 스트레스를 받고 비슷비슷하게 고민을 하게 된 것이다.
흑… 흑흑.
가끔 우는 소리도 들렸다.
정예 중의 정예라는 인간들이 이 무슨 추태인가 싶을 수도 있지만, 이 역시 ‘악몽의 시간’이 주는 효과였다. 육체적, 정신적으로 극한에 이르게 하는 것. 극한으로 몰린 상태에서 자꾸 실패하는 도전을 반복하다 보면 마음이 무너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다른 이들이었으면 아마 이미 미치거나 포기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걸 견뎌 낸다면… 영적으로 빠른 성장이 가능하겠지.’
영력을 성장시키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중 하나가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는 것이다.
마음이 무너지지만 않는다면 이들은 더 강해질 것이다.
그만큼 마음이 더 삭막해질 가능성도 컸지만…….
‘뭐, 삭막하면 삭막한 대로 더 해적 같아 보이고 좋을지도?’
그리고 솔직히 이건 내 기준에서는 힘든 것도 아니고 삭막한 것도 아니다. 암만 힘들다고 해도 지구가 다 망해 가던 지난 생에 비할 수 있을까?
‘참내. 지금 애들은 모르겠지.’
그때는 말야… 막, 어? 어휴… 이것들아, 이건 그에 비하면 칠 성급 호텔이다, 호텔. 미리미리 이렇게 강하게 해 주는 걸 고마운 줄이나 알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