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이들의 운명은?
상황이 바뀌었다. 자기 장비에 오만할 정도의 자긍심을 가지고 있던 그들이 이젠 오히려 먼저 업그레이드를 받고 싶어서 안달이 났다.
거기다 대고 한 명 한 명 맞춤 제작을 해 주겠다고 발표를 했더니 환호성마저 터져 나왔다.
하지만 일이라는 게 쉽게만 풀리지만은 않는다.
사람은 잘 안 변하는 법이고.
혹독한 수련과 실전으로 지금의 성취를 이루어 낸 엘리트일수록 더욱 그랬다.
“아무리 봐도 토마스 씨는 검이 어울리질 않네. 무기 바꿔요, 창으로. 최대한 묵직하게. 자요. 이거 한번 잡아 봐.”
토마스가 까막이와 싸울 때 봤는데… 그의 검술은 뛰어났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신체는 검에 맞지 않았다.
나는 그의 몸에 딱 맞춰 주문 제작 한 창을 던져 주었다. 이름이야 ‘성검’이지만 중요한 건 ‘시스템’이기 때문에 굳이 검 형태일 필요는 없었다. 창은 물론이고 심지어 방패 형태로 만들 수도 있다.
급히 만든 물건이지만 내가 직접 지휘를 했기 때문에 꽤나 잘 만들어졌다.
탁!
하지만 성검-창을 받아 든 토마스의 표정은 험악하게 일그러졌다. 무슨 생각인지는 뻔했다.
‘너희가 만드는 무기가 얼마나 뛰어난지는 알겠다. 신념의 검이 그렇게 잘릴 줄은 몰랐으니까. 당연히 나도 겸허하게 받고 감사를 표할 생각이었어. 하지만 이건 아니지! 평생 사용한 무기 종류를 아예 바꾸라고? 갑자기? 이게 말이 돼?!’
뭐 이딴 생각을 하고 있겠지.
이해한다.
스포츠에서도 일류에 도달한 선수들은 자신의 폼을 쉽게 바꾸지 않는 법. 평생 함께한 코치조차도 그런 조언을 쉽게 하기는 어려웠다. 오랜 세월의 시행착오 끝에 자신에게 맞는 훈련법과 자세를 찾아낸 선수를 함부로 뜯어고친다? 선수 인생만 망칠 수도 있다.
그런데 처음 보는 사람이 폼도 아니고 아예 종목을 바꾸라고 하는데 어떻게 침착할 수 있을까? 열받는 게 당연하다.
안다. 아는데…….
‘나는 경우가 다르지.’
[만상공감]이 어떤 능력인가? 딱 1분만 살펴봐도 본인보다 본인을 더 잘 알 수 있는 능력이다. 그렇게 내린 결론이 창이었다. 무기를 바꾸는 데 걸리는 시간과 리스크? 그딴 건 문제도 되지 않을 만큼 토마스는 창을 타고났다.
하지만 그가 이런 사실을 알 리 없고, 차근차근 신뢰를 쌓아 설득할 만큼 시간이 남아돌지도 않았다.
그래서 나는 그냥 허묵을 데려왔다.
“허묵 씨, 전에 말한 특별 훈련 대상자입니다.”
“…진짜 그렇게 합니까?”
“네. 가급적 죽는 사람은 없게 해 주세요.”
“장담은 못 해요.”
“박민희 팀장이랑 서민서도 붙여 줬으니까 힘 합쳐서 애 좀 써 줘요. 부탁할게요.”
현재 이차원에 대한 경험이 가장 많은 건 나를 제외하면 허묵이었다. 킬러 회사의 사장이자 까막이의 예전 보스.
그간 우리가 바빴던 만큼 허묵은 허묵대로 케사리니 아몬 밑에서 각종 심부름을 하며 이차원을 오가느라 바빴던 것으로 안다. 그래서 이젠 영력도 잘 다루고 제법 그럴듯한 차원 여행자 냄새가 났다.
때문에 허묵은 이차원의 인솔자로 딱이었다.
목표는 지구 주변의 약소 차원.
사실상 지구의 차원 연안으로 떠밀려 온 멸망한 세계의 파편들이다, 시간이 지나면 강력한 던전이 되어 지구의 위협이 될 것이다. 강력한 괴물들과 멸망한 문명의 선진 기술(오파츠)이 가득한 용담호혈.
“어디로 가는 겁니까?”
토마스가 퉁명스레 묻길래 나도 짧게 답해 주었다.
“실전 훈련.”
무기 바꾸기를 거부한 인원은 토마스를 포함해 총 13명이었다. 나는 그들에게 정말정말 최소한의 기초적인 영력 훈련만을 시키고 성검 시스템을 사용하는 법을 딱 한 번만 가르쳐 주었다.
“토마스, 이 창을 쓸 때는 하나만 기억합니다. 칼을 쥐는 것보다는 1.3배 정도만 더 꽉 비틀 듯이 세게 쥐고, 칼을 찔러 넣을 때의 타이밍보다 반의반 보만 더 빠르게 짧게 찌릅니다.”
이런 식으로 아주 간략하지만 중요한 팁도 알려 주었다. 이 팁을 잘 사용할 수 있을까? 뭐… 결국엔 자기 복이다.
“원래 본인 무기 계속 쓰고 싶으면 마음대로 하고요. 죽든 말든 상관 안 하겠습니다.”
그렇게 하루 반나절 만에 속전속결로 가르치고 실전 훈련으로 등을 떠미니 다들 표정이 얼떨떨했다.
휘오의 화이트게이트를 지나가며 그들의 시선이 마지막으로 주변을 훑었다.
서부 드래곤힐동 중앙에 솟은 영혼 용광로와 그 주변을 뛰어다니며 일하는 장인들과 연구원들의 얼굴이 그들의 눈동자에 잠시 비쳤다가 사라진다.
그래. 지금 많이 봐 둬라.
‘당장 오늘 밤부터 이 평화로운 광경이 그리워질 테니까.’
그나저나 [만상공감]이 더 강해진 걸까?
게이트를 막 넘어선 이들의 감각이 희미하게나마 잔상처럼 전해졌다.
보였다.
눈앞을 가득 메우는 괴물들이. 하나하나가 만만치 않은 오파츠를 들고 흉포한 숨을 몰아쉬고 있다. 그 살기 넘치는 이차원의 편린들이 흘깃흘깃 보이다가 사라진다.
‘뭐, 뭐야?’
‘다짜고짜?’
물속에서 들리는 소리처럼 게이트를 넘은 이들의 당황성이 귓가를 울리다가 흩어진다.
갑작스러운 전투 상황에 쿵쿵 뛰는 심장. 반사적으로 물러서려는 발걸음, 바쁘게 빼어 드는 무기, 사방으로 굴러가는 눈알.
그래. 게이트를 넘은 이들 13명의 현재 전력으로는 결코 저곳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 내가 준 무기를 들고 내가 가르쳐 준 팁들을 최대한으로 활용하지 않는다면. 설령 서민서와 박민희가 전력을 다해 도와준다고 해도 살아남기 쉽지 않을 것이다.
아주 만족스럽다.
‘역시 허묵. 짬을 거저먹진 않았어.’
허묵은 딱 내가 요청한 그대로의 실전 훈련장을 찾아왔다.
* * *
동맹 조직에서 보내온 정예의 수가 정확히 207명.
그 말은 내가 직접 관리해 줘야 하는 민감한 인적 자원도 무려 200명이나 된다는 뜻이었다.
13명을 실전 훈련장으로 보냈어도 여전히 194명이나 남는다.
나는 하루를 분 단위로 쪼개 가며 길고 어려운 매일매일을 보내야만 했다.
그리고 많은 사람을 상대하다 보면 꼭 그런 사람이 있다.
잘 흥분하고 잘 감격하는데 그걸 잘 정리하지는 못하는 사람.
에른스트는 에스토니아 노래 군단의 선봉대원이었다. 그의 주 무기는 에페. 펜싱 할 때 많이 쓰는 칼로 얇고 길쭉하다.
무기를 바꾸기로 한 이후 그는 완전 꿈에 부풀었다.
“사령관님, 사령관님. 제가 조사를 좀 해 봤습니다!”
금발 머리, 꿈에 푹 젖은 파란 눈동자엔 영혼 용광로를 중심으로 들어선 각종 공방이 한가득 담겨 있고, 그의 입술은 인정사정없이 나풀거렸다.
“제가 조사를 해 봤는데, 성검에 다양한 기능을 넣을 수 있더라고요! 저희 아버지는 말씀하셨어요. 에페는 길이의 싸움이다. 만약 팔이 길게 태어난 게 아니라면… 조잘조잘… 그리고 또 저희 코치님은 말씀하셨죠. 에페란… 재잘재잘… 에… 그리고 이건 제가 17살 때 느낀 건데요… 어쩌고저쩌고… 아무튼, 그러니까 제 성검에는 일단 기본적으로 길이 조절 능력이 들어가면 좋겠고요. 막 고무처럼 막막 탱탱 튕기는 그런 탄성이 있으면서도 금강석 같은 경도도 있으면 좋겠구요. 그 버프라는 건 가능하면 속도 쪽으로 강화를……! 아, 그리고 또 이건 갑자기 생각난 건데요. 혹시 사령관님 생각에는…….”
미친놈아.
맞춤 제작은 내가 너희 몸에 맞춰 준다는 거지 너희 망상을 마음껏 펼치라는 게 아니거든?
물론 만들어 줄 수는 있다. 하지만 그게 본인한테 맞지 않는다는 걸 모르는 인간이 너무 많은 게 문제였다. 그중에서도 이 에른스트라는 작자는 유독 망상이 심했다.
“에른스트 씨? 에른스트 씨의 에페는 길이 100cm, 무게 3kg, 실드오러 출력은 50퍼센트, 블레이드오러 출력은 115퍼센트, 대신 기초 버프 출력을 135퍼센트로 맞출 겁니다. 그 밖에 추가 인챈트는 [탄성] 하나만 넣겠습니다.
“에……?”
에른스트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왜, 왜요? 저, 저 잘할 수 있습니다! 길이 조절 능력만이라도!”
“아뇨. 그런 전투 스타일 감당 못 하십니다. 벌처럼 빠르게 돌아다니면서 강하게 찌르는 스타일로 싸우셔야 돼요.”
“아… 아! 사령관님! 저 잘 모르시는구나! 제가 유럽에서 소문난 올라운더입니다! 만약 칼날이 자유자재로 길어지고 짧아질 수 있다면……!”
“그러니까 그 나쁜 버릇 이제부터 버리십쇼. 그럼 훨씬 강해질 겁니다. 앞으로는 아웃복싱에 카운터 넣는 방식으로 싸우셔야 합니다.”
“아, 사, 사령관님! 잠시만요! 사령관님!”
“이따 훈련 시간에 봅시다.”
바짓가랑이를 잡고 늘어지려는 에른스트를 피하며 걸음을 옮겼다. 분주하게 일하던 장인들이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에른스트를 바라봤다.
차트와 망치를 들고 바쁘게 걸어가던 윤희정 장인은 대놓고 에른스트에게 핀잔을 주었다.
“아, 멍청하게 좀 굴지 말고 사령관님이 하라는 대로 해요. 나중엔 절하고 싶어질 테니까.”
“이봐요! 당신이 제 꿈에 대해서 뭘 안다고 함부로 말씀하시는 거죠?!”
“…하?”
“어……? 그런데 혹시 장인이십니까? 아이코! 제가 말이 헛나왔습니다. 너무 낙담을 하고 있던 중이라… 저기, 혹시 이런 물건도 만들 수 있는지 알려 주실 수 있나요? 저희 조부님께선…….”
“아악! 비켜! 바쁘다고!”
이런 소란은 비단 에른스트 혼자의 문제가 아니라 공방 거리 곳곳에서 벌어졌다.
“저리 꺼져라! 작업에 방해된다!”
“아니! 물건 쓰는 사람 말도 들어봐야 하는 것 아니요?!”
“그것 그렇게 하는 게 아니래도 그러네!”
“아니! 이게 정석인데 무슨 소리요? 나랑 내기할 거요?”
하… 정신없다, 진짜.
200명이나 되는 팔팔하고 잘난 인간들이 활개 치고 돌아다니니 안 그래도 시끄러운 공방 거리가 다섯 배는 더 시끄러워진 것 같았다. 거기에 함께 온 각 동맹 조직의 핵심 장인들과 연구진들까지 더해지니 거의 카오스 상태. 서로 자기가 잘났다고 떠들어 댄다.
‘과도기라는 건가…….’
옛날 중국의 춘추전국 백가쟁명의 시대가 이렇게 소란스러웠을까?
그렇다면 이 혼란과 소란을 잠재우는 방법도 하나뿐이었다.
‘어서 다 조져서 태평한 통일 세상을 이루자.’
훈력 계획을 더욱 독하게 수정하며 이를 부드득 갈았다.
그러고 고개를 돌리는데 구석에 빼꼼 앉아 있는 프랑켄슈타인 인형이 보였다. 피핀 차원의 연출가였다.
‘방송 중인가?’
방송 중이라… 그런 계약이라는 건 알지만 볼 때마다 짜증이 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더 거슬리는 건, 주제에 눈치는 있다는 점.
놈은 흥미진진하다는 듯이 이리저리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내가 바라보니 움찔 놀라서는 죽은 듯이 가만히 있었다. 그렇게 눈치 보는 모습마저 어쩐지 우리를 비웃는 것 같았다. 이제는 협력 관계라지만 역시 좋아할 수가 없다.
하지만 별수 있나.
퉷.
땅에 침을 한 번 뱉고 가던 길을 마저 갔다.
* * *
[크크큭.]
연출가는 소시민이 보이지 않게 되었을 때 혼자 킬킬대고 웃었다.
[이것 참 남는 장사란 말이야?]
생각하면 할수록 이 상황이 신의 선물처럼 느껴졌다. 저주받을 혼돈의 주인들을 끌어들이는 미친 짓까지 불사하며 자신을 압박하던 데미안. 그 모습이 어찌나 멋있던가? 해당 장면은 지금 이 순간에도 빠르게 퍼져 나가면서 시청률 상승을 이끌고 있었다. 동네 구멍가게 수준이었던 연출가의 방송을 중소 기업 크기까지 끌어올린 일등 공신이 아닐 수 없었다.
거기에다.
[크크큭! 결과가 어떻게 되든 나는 손해 볼 게 없다는 말이지?]
데미안이 천명한 대로 지구가 외침을 이겨 내고 스스로 우뚝 서는 결말도 좋았다. 그건 그것대로 훌륭한 다큐 방송이 될 테니까.
반면 분투에도 불구하고 끝내 지구가 몰락하고 루드비히도 같이 패망해 버리는 결말도 좋았다. 시청자들은 아름다운 성공에도 열광하지만 아름다운 이의 비참한 몰락에는 더욱 열광하는 법이었으니까.
아니, 솔직히 다들 어느 정도는 몰락을 기대하고 있을 것이다. ‘안 돼! 안 돼! 제발! 이겨라!’라고 말하며 주먹을 꼭 쥐어도 가슴 한편에서는 이 모든 게 실패하고 비참한 결과가 찾아오는 것을 내심 상상하며 기다리는 것이다. 그 얼마나 자극적인가?
[크크큭. 열심히 떡밥을 던져 주자고.]
데미안은 조건을 걸었다. 지구에 간섭하지 말고 철저히 다큐로 남으라고.
하지만 직접 사태에 개입하지 않아도 시청자들에게 불안감을 조성하고 나쁜 결말을 암시하는 방법은 차고도 넘쳤다. 이 세상 어딘가에는 불안해하는 사람이 꼭 있는 법이니까. 그들의 입을 빌리면 된다.
틱-
연출가가 짜리몽땅한 손을 허공에 휘젓자 영상이 하나 송출되기 시작했다. 비록 인형의 몸에 갇혀 있다고는 해도 적절한 준비만 갖춰진다면 자리에 앉아서 구만리 밖을 내다볼 수 있었다. 그게 방송에 특화된 피핀인의 능력.
연출가가 송출하는 영상 속에서 소시민과 데미안이 동맹 조직과 참가했던 프라하 구시가 광장의 회의실이 모습을 드러냈다.
프라하 구시가 광장 천문시계탑.
세상 모두가 아틀라스 클럽과 행보를 같이할 때 당당하게 NO를 외치고 소시민과 루드비히의 손을 잡은 조직들. 그 수장들이 다시 한자리에 모였다. 이번에는 데미안 루드비히와 소시민이 빠진 비공식 회합이었다.
기다란 탁자가 놓인 회의실에 어슬렁어슬렁 나타난 그들은 한참 의미 없는 인사를 나누다가 모인 지 10분이 넘어서야 슬쩍 자기가 하고 싶었던 말들을 꺼내 놓았다.
“…시작되었군요. 헌터들도 장인들도 이제 막 교육이 시작되고 임무가 주어졌겠어요.”
“예. 엄청 긴장되네요. 다들 그러시죠? 저도 아끼는 친구들을 파견했지만… 명단 보니 다들 쟁쟁하더군요.”
“제대로 배워서 돌아오게 하려면 어쩔 수 없었지요.”
이 자리에 모인 이들의 얼굴에는 공통적으로 ‘어색함’과 ‘걱정’이 묻어 있었다. 조직의 보물 같은 유망주들, 늘 데리고 다니던 애제자나 후배 같은 이들을 남의 손에 붙여 놨으니 걱정하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그런데 파견한 인재들이 하나같이 쟁쟁하니… 소시민 사령관과 데미안 도련님이 과연 잘 통제를 할 수 있을지…….”
“그것도 걱정되고… 또 애초에 그들의 영능학이라는 게 그리 빨리 배우고 익숙해질 수 있는 것인지도 의문이긴 하네요. 저희에겐 시간이 많은 게 아닌데.”
“그렇죠…….”
다들 믿고 있기는 했다.
‘할 수 있다.’라고 생각했으니 남들과 달리 소시민과 데미안에게 판돈을 걸었던 것이다. 하지만 앞날이라는 건 언제나 예측 불가능한 것이고 불안은 필연적이었다.
특히나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후… 그래도 뭐 이제 와서 어쩌겠습니까? 우리는 우리 할 일을 해야죠.”
“예. 회의 시작합시다.”
“네. 일단 동아시아 지역에서 아틀라스 클럽의 움직임입니다. 최근 들어 압박과 견제가 심해져서 아주 난감한 상황이었는데, 갑작스러운 마족 게이트의 출현으로 확실히 편안해졌습니다.”
“북미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다만 조금 특이 사항이…….”
“유럽도 그래요. 그리고 그 특이 사항도 똑같을 것 같습니다.”
모인 수장들이 한숨을 쉬듯 동시에 말했다.
“너무 잘 싸웁니다, 아틀라스 클럽.”
분명 몇 달 전에 파악한 전력만 봐도 이 정도로 차이가 나진 않았는데…….
“대체 무슨 수를 쓴 건지…….”
아틀라스 클럽은 강해도 너무 강해졌다. 오파크를 이용한 마누스 강화술이 놀랍도록 효과적이기도 했지만, 그걸 감안해도 이해가 안 가는 수준. 아틀라스 클럽 간부 대부분이 회귀자라는 걸 모르는 입장에서는 등골 서늘한 초자연현상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마족의 침략 루트가 된 불규칙 던전의 발생은 분명 아틀라스 클럽의 악재였다. 하지만 그 악재를 너무나 굳건히 견뎌 내는 모습을 보여 주자 오히려 아틀라스 클럽의 인기와 이미지는 가파르게 상승해 버렸다.
“하지만 어쩌겠습니까. 한 번 믿었으면 끝까지 믿어야지요.”
“그래도 아틀라스클럽보다 더 뛰어난 활약을 보여 줄 수는 있을 것인지…….”
“무슨 놈들의 후방을 친다고 했었지요? 확실히 걱정되긴 합니다. 솔직히 아틀라스 클럽이 예상 밖의 활약을 해 주니까 세상이 고요한 거지… 이번 마족들의 전투력도 예사롭지 않았습니다.”
“…저희 씽크탱크에서도 아틀라스 클럽이 예전 같은 방식으로 맞섰다면 지구의 3분의 1에서 절반이 점령당했을 거라는 전망을 발표했습니다.”
“자칫하다간 아까운 인재들만 잃는 건 아닐지… 요새 잠도 잘 못 잡니다.”
A 코인을 팔고 전망 좋아 보이는 B 코인을 샀는데, 그때부터 A 코인이 떡상 하는 모습을 보면 이런 기분이 들까? 답은 존나 버티는 것밖에 없다는 걸 알면서도 머릿속으로는 온갖 잡생각이 날뛰는 것이다. B 코인은 대체 언제쯤 그 ‘잠재력’을 보여 줄 것인가? 보여 줄 게 있기는 했던 걸까? 내가 실수한 건 아니겠지? 애꿎은 손톱만 물어뜯긴다.
후…….
모두의 심정을 대변하듯 누군가가 긴 한숨을 쉬었다.
[크크크큭.]
원거리 방송을 통해 그 모습을 지켜보던 피핀 차원의 연출가는 사악하게 웃었다. 조그맣고 못생긴 프랑켄슈타인 인형은 입술을 비틀어 히죽거리며 내레이션 톤으로 중얼거렸다.
[과연- 소시민과 데미안은 저 야만 전사들을 휘어잡고 빠르게 차원 문명의 수준을 끌어올릴 수 있을 것인가? 아니면 리더십을 발휘하지 못한 채 사분오열하여 끝내는 파국으로 치닫고 말게 될 것인가? 이들의 운명은……?]
혼자 큭큭대며 웃던 연출가의 웃음은 데미안의 짜증 섞인 외침이 들려올 때까지 계속되었다.
“연출가! 어딨어! 튀어나와!”
[아, 예옙! 지금 갑니다!]
작달막하고 못생긴 프랑켄슈타인 인형이 후다닥 달려 나가다가 바삐 움직이는 장인들과 연구원들에게 이리저리 차이고 밟힌다.
“뭐야, 이 기분 나쁜 인형은?”
[악! 으악! 비켜! 으헛! 차, 차지 마! 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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