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VVVIP 차원 쇼퍼-135화 (135/212)

14. 독 더하기 독은 꿀?

객관적으로 보면 우리는 아주 성공했다.

탑골시장 공예 대회 우승! 이 업적을 타키넷에 처음 발 들이고 채 1년 6개월도 지나기 전에 이루었다고 하면 누가 믿을까?

하지만 이 모든 영광은 여전히 신기루와 같았다.

무르물랑의 말처럼.

“지구가 사라지면 이것도 다 끝장이지.”

시시각각 좁혀 오는 아갈타의 위협. 이걸 벗어나는 궁극적인 방법은 하나뿐이었다.

“언제까지 이렇게 벌벌 떨 순 없어. 얼른 시설을 키우고 영적 산업 혁신을 통해 아갈타의 위협에서 벗어나야 돼.”

무르물랑이 제시한 방법은 심플했다. 산업을 키워서 우리의 쓸모를 증명한 다음 유력한 문명과 대등한 조건으로 합병하는 것. 그것이 아갈타의 위협에서 벗어날 가장 현실적인 방법이라고 했다. 뭐, 꼭 그 방법이 아니더라도 결국 우리가 우리의 기반을 지키기 위해서는 산업 발전에 모든 역량을 집중해야만 한다는 것엔 나도 이견이 없었다.

하지만.

데미안은 눈썹을 찌푸리고 말했다.

“하지만 당장 침공을 막지 못하면 그 모든 투자가 다 소용없죠.”

딜레마.

근본적인 문제 해결에 더 집중하느냐, 아니면 당장 눈앞에 닥친 위기 해결에 더 집중하느냐. 어설프게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고 하다가는 둘 다 망하고 마는 난제였다.

그런데 그때 머릿속을 스치는 생각이 하나 있었다.

앗! 잠깐… 이거 어쩌면……?

“도련님! 아까 동맹 세력한테 나눠 줄 게 필요하다고 했지요?”

내 질문에 데미안의 표정이 밝아졌다.

“아, 네! 그러니 역시 일단은 무장에도 통 크게 투자를 하는 게 좋겠지요? 무기를 잔뜩 사서 동맹에게도 나눠 줘야 되니까요. 사령관님 생각도 그런 거죠?”

하지만 나는 데미안의 의견을 따를 생각이 없다.

“아니, 잠시만요. 그 전에 아까 그 이유로… 아틀라스 클럽의 세력 확대를 들지 않았습니까? 벌써 세력이 커져서 위협이 된다고.”

데미안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네. 맞습니다. 때문에 지금 우리 동맹 세력을 다져 놓지 않으면 세 싸움에서 밀릴 가능성이…….”

오케이.

손가락을 딱! 튕겼다.

그래. 결국 문제는 권승리가 이끄는 아틀라스 클럽이 힘이 넘쳐서 문제라는 것. 잘됐네! 좀 치사하지만… 지금은 중요한 분기점! 이것저것 가릴 때가 아니었다.

나는 목소리를 낮췄다.

“우리… 한 턴 째죠!”

“…네?”

“오!”

표정이 갈렸다. 데미안은 당황해하고 무르물랑은 재밌다는 듯이 물방울을 튀긴다.

“이번에 우린 시설 건설에 올인 합니다. 무장에 대한 투자는 최소화하고, 대신 소수 정예로 부대 딱 하나만 만들죠. 나머지는 전부다 시설 투자로 갑니다.”

“아, 아니, 그렇게 하면 당장 다가오는 아갈타의 공격은……!”

도련님, 미안하지만 우리 그냥 양심을 팝시다.

“이독제독으로 가는 겁니다.”

독과 독이 싸우면 꿀맛이 된다는 기적의 레시피!

똑똑한 둘은 내 계획을 단숨에 이해했다.

“아…….”

“오! 역시 뛰어난 사업적 수완이라니까? 투자할 맛 난다!”

데미안의 표정은 어정쩡하게 굳었고, 무르물랑은 하얀 포말이 일어나도록 활짝 웃었다.

* * *

531차원강습 연대와 347차원강습연대.

두 연대를 묶어 총지휘를 맡게 된 아포테틴 중좌는 쉬는 시간에도 차원강습 시스템을 해지하지 않았다. 거대한 근육을 타고 휘몰아치는 영력을 감추지 않은 채 이마 부근에 달린 거대한 나선형의 뿔을 치켜들며 물었다.

[그래서, 지금 지구로 차원강습을 할 수 없다?]

[그, 그렇습니다. 관측 사상 유례가 없을 정도로 강력한 차원 격류에 둘러싸여 있습니다. 강습 포트에 실어서 소수의 인원으로 강습하는 건 가능하지만 대규모 상륙은 어렵습니다.]

[호? 그럼 이전의 그 패배자는 어떻게 상륙을 했지?]

[주기적으로 차원 격류가 약해지는 때가 있는데 그때를 노렸다고 합니다.]

[젠장. 운도 없군. 인피니티 게이트를 열어야 하나?]

[2개 연대와 전략 병기를 모두 이송하기에는 비용이 지나치게 많이…….]

[지나치게? 그게 어느 정도를 말하는 거지?]

[죄, 죄송합니다! 바로 정확한 숫자를 뽑아 오겠습니다!]

황급히 떠나는 부하를 보며 아포테틴은 이를 악물었다.

예기치도 못한 복병이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여기까지 와서 발을 뺄 수도 없다. 장군, 그중에서도 무려 두 개 사단을 이끄는 군단장님이 직접 지시한 명령이다. 무조건 제대로 수행해야 했다.

‘사재를 다 털어서라도 빨리 완수해야 돼!’

군단장의 명령이란 그런 것이었다. 합당한 이유가 있더라도 수행해 내지 못하면 큰 불명예가 되고, 쉽고 당연한 성공일지라도 제대로 수행해 내고 나면 큰 영광이 따르는 것. 휘하 장교들에게 갹출을 받고 개인적으로 대출을 껴서라도 수행을 앞당겨야만 했다.

그런데 그때, 전혀 상상치도 못했던 행운이 그에게 미소를 지어 주었다.

생체 슈트의 헬멧 부분도 쓰지 않고 활짝 웃으며 뛰어든 부관이 전해 온 소식이었다.

[사, 사령관님!]

[뭐냐?]

이때까지만 해도 아포테틴은 헬멧도 제대로 쓰지 않은 이 군기 빠진 놈을 제대로 혼쭐내 줘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어지는 보고를 듣는 순간 그 모든 생각은 깨끗이 날아가 버렸다.

[수색대가 발견했습니다!]

[응?]

[차원 격류에서 지구와 연결된 ‘부서진 세계’를 발견했습니다! 시간을 두고 차근차근 이동하면 전 부대가 지구로 넘어갈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한 게이트라고 합니다!]

[……!]

엄청난 행운이었다. 막대한 타키온을 소모하지 않고도 두 개 연대가 넘어갈 수 있는 수준의 게이트라니?

[즉시 인근 차원에 포대를 설치하고 강습 대대를 보내 지구 내 교두보를 확보하도록!]

[네!]

아포테틴은 미소를 지었다. 충분한 전력에 운까지 따르니 지구를 정복하는 건 순식간이리라.

원시인이지만 매우 강력한 권능을 사용하니 주의해야 한다는 보고를 받기는 했다. 하지만 그건 3,000명이 와서 400명이 넘는 전사자를 낸 637차원강습 연대, 패배자들의 보고.

이번에 파견된 531연대와 347연대는 차원이 달랐다.

훈련 수준이 다르고 무장 수준이 다르다.

권능만 믿고 설치는 원시인들 따위.

아포테틴은 사흘 밤낮이면 절멸할 자신이 있었다.

* * *

아직 세상 사람들은 잘 모른다.

다들 그저 오파츠를 마누스로 바꾸는 비법이라는 달콤함에 빠져 아틀라스 클럽의 꽁무니를 졸졸 따라다닐 뿐이지.

그들은 모른다. 아틀라스 클럽과 손을 잡는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하지만 나는 안다. 그 영웅들이 가진 치명적인 약점을.

물론 지난 생에는 그게 약점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걸 약점이라 지껄이는 자들을 꾸짖고, 그들이 날 비웃을 때도 이 한 몸을 헌신했지.

그래. 한평생 그렇게 살아 줬으니까… 이번에는 나도 좀 그 약점을 한번 이용해 볼까 한다.

- 발견됐어! 넘어온다! 근데… 진짜 괜찮아? 쟤네는 막아야 되는 것 아니었어? 갑자기 던전의 게이트를 더 크게 만들어 달라니…….

혼란스러워하는 휘오를 위해 살짝 설명을 해 주기로 했다.

“뿌리를 뻗을 때 큰 바위 같은 것에 막혀서 더 이상 뿌리를 뻗을 수 없다고 쳐 봐.”

- 음… 생각만 해도 답답해. 뭐가 막고 있으면 부수는 데 시간 한참 걸려.

“그치? 근데 만약 누가 그 큰 바위 한쪽에 구멍을 살짝 뚫어 주면 어떨까?”

- 좋지! 그 구멍으로 뿌리를 뻗으면 쉬워!

“그래. 그런 거야. 원하는 방향으로 오도록 조작할 수 있는 거지.”

- ……?

휘오는 아직 어려서 내 말을 바로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두고 보면 녀석도 이게 어떤 작전이었는지 이해를 할 수 있으리라.

“아무튼… 시작됐다고 하니까 우리도 가죠.”

데미안과 서민서가 내 뒤를 따랐다. 눈앞으로 크고 아름다운 르네상스 시기의 광장이 나타났다.

프라하 구시가 광장.

갑자기 던전이 나타난 대격변 이래로 프라하는 유럽의 중심지, 아니 나아가 세계의 중심지로 급부상했다.

지리적으로 유럽의 중앙에 위치했을 뿐만 아니라 지금까지도 좋은 자원이 발굴되는 중요 던전이 다섯 개나 이곳에서 발생했기 때문이다.

최초 던전 브레이크가 일어났을 때 체코가 무너지는 참사가 일어났지만, 그 이후에는 오히려 유럽 각지의 헌터들이 몰려들어 세계 최초의 헌터 협회와 길드가 이곳에서 탄생했다.

때문에 프라하의 중심부, 예전에는 관광객을 상대하는 기념품 가게와 식당들로 붐볐다는 구시가 광장에는 지금도 수십 개가 넘는 길드의 본부와 지부가 난립한 ‘헌터 타운’이 형성되었다.

때문에 이번 동맹 조직들과의 총회는 구시가 광장 끄트머리에 있는 천문시계탑 일대를 점유한 루드비히 가문의 지부에서 열게 되었다.

‘휴우- 살벌하네 그래.’

광장에 들어서는 순간, 마주 보고 서 있는 여러 조직의 능력자들이 내 [만상공감]의 영역 안으로 들어왔다.

크게 나누면 두 부류였다. 루드비히 지부가 있는 천문시계탑을 중심으로 한 우리 동맹 세력이 전체의 1/4 정도를 차지한다. 그리고 나머지는 전부 아틀라스 클럽과 협력하고 있는 조직들이었다.

지금 광장에는 경비를 서는 각 조직의 능력자들 사이로 노골적인 견제와 대립이 흐르는 중이었다.

“저 머저리들은 저기 모여서 뭐 하고 있대?”

“무슨 회의한다던데? 중국하고 미국에서도 왔다더라.”

“진짜 바보들인가?”

“그러게 말이야. 루드비히가 대단하긴 하지만… 이쯤 되면 너무 시류를 못 읽는 것 아닌가? 지금은 누가 봐도 아틀라스 클럽에 붙어야 되는 타이밍인데.”

“잘됐지 뭐. 우리에게도 기회가 돌아오게 되는 거야.”

아틀라스 클럽을 따르는 조직의 능력자들은 노골적으로 우리 동맹을 노려보고 다 들리게 비웃음을 던졌다.

‘그런데 어째… 우리 쪽 분위기가 뒤숭숭하네?’

아틀라스 클럽을 따르는 쪽이 숫자가 훨씬 많기는 했지만, 우리 동맹들 역시 이름만 대면 다들 알 법한 명문 조직들. 하지만 이런 노골적인 견제에 대한 그들의 반응은 의외로 미온적이었다. 대항을 하기는커녕 오히려 자기들끼리 수군거리기 바빴다.

“망할… 이건 말도 안 돼요!”

“위에서 결정한 걸 어떻게 하냐.”

“하지만 실제로 피해를 보고 있잖아요! 우리 정예가 가서 루드비히 막내 도련님을 도왔다는데, 돌아온 게 뭐예요? 우리가 노예도 아니고, 남 좋은 일만 하고 그 대가는 없고!”

“좀 기다려 봐. 그래서 오늘 총회를 한다잖아.”

“총회를 해도요! 요즘 뒤처지는 것 못 느끼세요? 예전에는 쳐다보지도 못하던 것들이 술집에서 막 시비 건다니까요? 근데 더 웃긴 거는 막상 싸워 보면 버거워요! 걔네 엄청 빨리 강해진다고요! 마누스를 막 뻥튀기하잖아요!”

“좀 기다려 보자. 영능학이라는 것의 가능성에 기대를 거는 거잖아. 다 생각이 있으시겠지.”

“그거 솔직히 입증된 것도 없잖아요! 소시민 그 작자 사기꾼 아닙니까?”

“어이, 어이. 마음은 알겠지만 말이 좀…….”

호오?

대놓고 불만을 성토하는 젊은 능력자도 있었다. 느껴지는 감각으로는 솜씨가 제법인 것 같은데… 자기보다 못한 이들에게 뒤쳐진다는 생각에 안달이 나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이제 곧 알게 되겠지, 자기들이 잡은 줄이 더 튼튼하고 비싸다는걸.

‘이제 슬슬 시작될 때가 됐는데?’

저벅저벅.

구시가 광장을 천천히 가로질러 걸었다. 이러쿵저러쿵 시끄럽던 능력자들의 시선이 우리에게 쏠린다. “헛? 저기 루드비히 막내 도련님 아냐?”

“그 옆에는?”

“저자가 소시민인가?”

이런 중얼거림이 물결처럼 광장 곳곳으로 퍼져 나간다.

그리고 마침내 천문시계탑 앞 쪽에 포진해 있던 우리 동맹 측 경비원들이 우리를 발견하는 순간-

뗑! 뗑! 뗑! 뗑! 뗑!

천문시계탑이 18시 정각을 알리며 종을 치기 시작했다. 거대한 톱니바퀴로 움직이는 아름다운 시계. 인형들이 움직이고, 종소리가 주변을 시끄럽게 한다.

우우웅- 우웅-

지이잉! 지잉!

그리고 동시에 우리 동맹을 제외한 다른 이들의 휴대폰이 우는 소리로 광장이 시끄러워졌다. 아틀라스 클럽에서 보내 온 전체 메시지였다.

‘아, 타이밍 좋고!’

누군가 메시지를 읽는다. 거기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각 대륙에 돌발성 던전 발생! 다수의 마족 포착! 아틀라스 클럽과 협력 관계에 있는 모든 능력자는 즉시 지정된 던전으로 향해 방어전을 준비하십시오! 마누스 비술 계약에 의거, 본 소집에 응하지 않는 모든 능력자는 향후 아틀라스 클럽이 제공하는 모든 특전(마누스 비술 포함)을 이용할 수 없게 됩니다!>

권승리가 퍼뜨린 마누스 비술.

처치 곤란의 오파츠로 쉽고 빠르게 마누스를 강화할 수 있는 기적의 비술처럼 느껴졌겠지만… 세상에 공짜는 없다.

세계를 구하기 위해 모든 것을 바친 우린 영웅님들과 손을 잡으면 정말 싸울 복이 터지게 된다는 것을 이번 기회에 모두가 알게 될 것이다.

갑자기 시끄러워지는 광장을 보며 동맹 측 경비원들이 떠드는 소리가 들렸다.

“뭐래? 뭐래? 무슨 일이래?!”

“어… 아틀라스 클럽에서 갑자기 소집을 한다는데?”

“무슨… 이렇게 많은 인원을 고용한다고?”

“아니… 보수는 없다는… 것 같은데 이게 말이 되나?”

“엥? 그게 무슨 말이야. 국가나 협회랑 막 밀당 하고 그런 것도 없이 바로 투입? 보수도 없이?”

“응. 따르지 않으면 특전을 다 취소하겠다고 협박했대.”

“아, 아니, 그렇게 해서 아틀라스 클럽에 이득이 되는 게 있나?”

“그러니까… 무슨 정의의 용사들도 아니고.”

“아무튼… 우리는 소집될 일 없으니 그건 좋네.”

우리는 그런 소란의 한복판을 가로질렀다.

시끌시끌하던 경비원들은 그제서야 정신을 차리고 자신들의 방식대로 경례를 하거나 인사를 건네며 길을 터 주었다.

우리가 지나가고 등 뒤로 다시 그들이 떠드는 소리가 [만상공감]을 통해 들려왔다.

“토마스, 너 아까 엄청 불평했지? 루드비히랑 소시민이랑 손잡는 것 맘에 안 든다고.”

“어, 음… 그게…….”

“내가 볼 때는 우리 길드장님이 돈 냄새를 잘 맡으신 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으음…….”

저 친구가 제대로 봤네.

그래. 그게 우리 계획이다.

아갈타의 첨병은 잠시 아틀라스 클럽에 맡겨 두고, 그사이 우리는 제대로 돈을 벌고 제대로 돈을 쓸 작정이다. 그러기 위한 총회였다.

‘권승리 님, 미안해요. 그래도 한 턴 정도는 벼텨 줄 거라 믿어요.’

나는 남들은 모르는 사실을 또 하나 알고 있었다.

아틀라스 클럽은 강하다.

구세의 영웅들이 모인 그들은 정말정말 강하다.

그 영웅들이라면 내가 탑골시장 공예 대회를 준비하던 그 몇 달이면 상상을 불허할 정도로 강해지고도 남았을 것이다.

그러니… 이 계획은 성공한다!

각 길드와 가문의 수장들이 모여 있는 홀로 걸어 들어가며 나는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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