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소울챔버
감정사 릭은 인상을 찌푸렸다.
‘추하군.’
그의 시선은 소시민에게 꽂혀 있었다. 그는 지금도 또 손을 들고 추하게 가격을 올리는 중이었다. 큰발줄무늬 족속인 크르으랑 씨는 귀공자처럼 하얗던 얼굴에 까만 가로 줄무늬가 생겨날 정도로 노여움에 떨었다.
‘사지 못할 거라면 똥이라도 뿌리겠다는 건가?’
정말이지 실망스러웠다.
‘안목 있는 사람을 발견했다고 좋아했는데… 이런 소인배라니.’
경쟁은 이미 끝났다. 소울챔버를 구성하는 제일 중요한 요소인 통. 이번 경매에는 그 통으로 쓸 만한 아이템이 딱 두 개 있었다. 그리고 그 두 개가 이미 모두 크르으랑 씨에게 넘어갔다. 대신 소시민은 ‘파사의 금령’과 ‘침묵의 깃털’을 비교적 싸게 구입했지만… 이미 소울챔버 구성은 물 건너간 상태다.
하지만 소시민은 경매에 계속해서 참가했다. 진짜 물건을 사려는 것도 아니면서 계속 끼어들어 가격만 올리고 빠졌다. 물건을 못 산 분풀이를 하는 것이다.
릭은 그가 이해가지 않았다.
왜 자신의 귀중한 시간을 써서 적을 만든단 말인가? 이득 없이 손해만 따르는 헛짓거리가 아닌가?
‘졸렬해…….’
너무 추해서 더 이상은 쳐다보기도 어려웠다.
때마침 새로운 경매가 시작되어서 릭은 시선을 진행자에게로 돌렸다.
[자!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특별 상품 ‘물의 정령왕이 익사한 용액’입니다. 물의 정령왕이 익사를 했다는 아이러니의 결정체! 신기하기 짝이 없는 물건을 소유할 기회입니다. 여차하면 이걸 술로 담가 마셔도 좋습니다. 정령왕 담금주! 아무나 누릴 수 있는 호사가 아니지요. 자, 시작가 400만 타키온입니다!]
특별 상품 경매가 시작됐다. 워낙 신기한 물건인 만큼 릭의 고용주도 호기심을 보였다.
[저건 어때? 정령왕 담금주라니, 좀 끌리는데……? 영력 성장에도 좋지 않겠어?]
릭은 물건을 살피다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기분을 내고 싶으신 거라면 말리지는 않겠습니다. 하지만 가격에 비해 효용은 크지 않습니다. 전형적으로 스토리텔링을 통해 가격을 뻥튀기하는 상품입니다. 영력을 원한다면 아까 불사조의 알을 사서 프라이 해 드시는 게 훨씬 나을 것 같습니다.]
정령왕이라는 네이밍부터가 그랬다. 어떤 차원에서 정령왕으로 추앙받는 존재가 다른 차원에서는 그냥 좀 신기한 영물로 취급받는 일은 흔했다. 물론 팸플릿에 실린 용액의 성질과 그 안에 녹아든 영력을 보면 ‘정령왕’이라는 이름이 부끄럽지 않은 수치이긴 했지만… 시작가가 400만 타키온이라는 건 말도 안 된다.
‘불사조의 알의 일반적인 시세가 500만~600만 타키온이다. 정령왕이 빠져 죽었다는 특이점만 빼면… 정령왕의 시체가 살아 있는 불사조 알보다 나을 이유가 없지. 300만 타키온이면 충분해.’
아니나 다를까, 눈치만 살피고 선뜻 손을 드는 사람이 없었다.
그래도 주최 측이 특별 상품으로 지정하고 열심히 스토리텔링을 한 만큼 600만 타키온 정도에 거래가 되지 않을까… 그렇게 예상하며 느긋하게 구경하는 릭이었다.
그런데…….
“500만!”
갑자기 소시민이 손을 번쩍 들었다. 이상한 일이었다.
‘어? 저 촌놈이 소울챔버와 아무 상관도 없는 아이템에 손을 든다고?’
이상하다 이상하다 생각하던 어느 순간, 어떤 벼락 같은 깨달음이 릭의 머리를 치고 지나갔다.
‘어, 잠깐?’
그의 눈에 ‘물의 정령왕이 익사한 용액’이 크게 들어왔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용액이 아니라 그 용액이 담겨 있는 ‘물병’이 눈에 가득 들어왔다.
‘잠깐, 잠깐… 설마… 이게 말이 되나?’
모두가 용액에 관심을 가지고 있을 때 설마 저 남자는 용액이 담긴 병에 관심을 가진 건가? 물의 정령왕과 그걸 익사시킨 용액을 담을 정도로 영적으로 무궁하고 넓은… ‘통’에?
‘설마… 이번 경매에서 통으로 쓸 수 있는 아이템이 두 개가 아니라 세 개였다고?’
소름이 확 끼쳤다. 하지만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왜냐면…….
‘저 빈병에 대한 감정 내용은 팸플릿에도 없잖아?’
정령왕을 담을 정도의 물병이라면 소울챔버의 ‘통’으로 쓰이는 게 가능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건 그냥 예상의 범주이지 검증된 영역이 아니었다. 그런데 거기에 500만 타키온을 태운다고?
‘아니면 그냥 눈으로 보고 알았다거나… 근데 그게 말이 돼?’
분명 이성은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하는데… 릭의 마음은 자꾸만 저 영롱한 물병으로 빨려 들고 있었다. 소시민의 올곧은 눈동자를 보고 있으면 저 물병이 어쩌면 아까 나왔던 불사조의 알보다 더 훌륭한 소재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크르으랑! 크르으랑은 어떻게 생각할까?’
릭의 시선이 크르으랑으로 향했다. 그리고 보았다. 자신보다 더 놀란 듯 벌떡 일어나서 입을 쩍 벌리고 있는 크르으랑의 모습이.
크르으랑은 다급히 손을 들고 외쳤다.
[800만! 그리고 검증을 요청한다! 물병! 그 물병에 아까 내가 산 불사조의 알을 넣었다 꺼내 봐!]
‘아! 그런 방법이 있었구나!’
릭은 감탄했다. 크르으랑이 제시한 건 통으로써의 기능을 가장 빨리 검증할 수 있는 방법이었다. 더 큰 것이 더 작은 것에 담길 수는 없는 노릇. 만약 저 물병이 불사조의 알을 무리 없이 받아들인다면… 통으로써의 가치가 오히려 불사조의 알보다 높다고 볼 수 있었다.
그리고… 모두가 보는 앞에서 불사조의 알은 아무 무리 없이 물의 정령왕이 익사한 물병 속에 들어갔다가 나왔다.
아, 저거면 가능성이 있다!
릭은 감탄했다.
[아…….]
한편 크르으랑은 이상한 신음을 내며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아아…….]
그가 신음을 내뱉는 사이 소시민은 긴장한 얼굴로 손을 들었다.
“810만!”
크르으랑이 울 듯한 표정으로 소시민을 돌아보았다. 그러곤 고개를 떨구었다. 더 이상 남은 돈이 없었던 것이다.
그걸로 낙찰이었다.
릭은 그제야 완전히 깨달았다.
‘이래서 크르으랑을 괴롭힌 거구나!’
분풀이가 아니었다. 소시민은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크르으랑의 여력을 쪽쪽 빨아먹으며 기다린 것이다. 진짜 돈을 배팅해야 하는 이 순간을!
‘이거다!’
그때 릭은 깨달았다. 자신이 항상 찾아다니던 ‘진짜’를 발견했다는 사실을.
* * *
‘휴… 죽는 줄 알았네. 거기서 800만을 부를 줄이야.’
망했다는 차원에 웬 놈의 돈이 그렇게 많은지…….
‘그래도… 다 해서 1,050만 타키온에 필요한 재료를 다 샀다!’
완제품으로 사려면 훨씬 비싼 것을 아주 저렴한 가격에 사 온 셈이었다. 이제 파산할 걱정은 없다…….
그렇게 생각하니 다리에 힘이 풀려서 주저앉을 뻔했다. 그런 나를 붙잡아 준 건, 의외로 나타르가 데려온 사막발굽인이었다. 그가 커다란 손으로 내 뒷목 깃을 달랑 들어 올리며 말했다.
[대체 어떻게 알고 그걸 샀는지 모르겠지만… 잘됐군. ‘파사의 금령’, ‘침묵의 깃털’과의 호환성을 생각하면 ‘물의 정령왕이 익사한 물병’이 ‘불사조의 알’보다 훨씬 더 나을 것 같다. 괜찮은 물건이 나오겠어.]
그러고는 손이 근질거리는지 벌떡 일어났다. 어서 만들러 가자고 나를 재촉하려다 말고 뒤늦게 뭔가를 깨달았는지 자기 이마를 짚었다.
[아…….]
여기 온 게 자기 의지가 아니었다는 사실이 생각난 것이다. 화를 내야 하는데 좋아하고 앉았으니 심경이 복잡한 모양이다. 그는 나와 나타르, 내 손에 들린 물병을 번갈아 보더니 한숨을 푹 쉬고 말했다.
[빌어먹을. 일단 그걸 조립하고 보자.]
아, 거 사람 참 진솔하다.
“좋슴다!”
[그, 그래, 가자구!]
우리는 의기투합해서 기운차게 경매장을 빠져나갔다. 작업은 지구에서 하기로 했다. 그래야 지구의 장인들이 보고 느끼는 게 있을 테니까.
물론 지구로 가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타키넷은 환상 차원이기에 모든 차원에서 쉽게 접근할 수 있지만, 타키넷에서 출발지가 아닌 다른 곳으로 이동하는 건 전혀 다른 문제였다. 특히나 오지인 지구까지 가려면 수없이 많은 차원을 경유해야 하는 것이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세계수인 휘오의 조력과 탑골시장에서 운영되는 운송 서비스가 합쳐지면 꽤 빠르게 차원들을 건너뛸 수 있다는 건데… 그렇다 해도 시간과 비용이 꽤나 들었다.
그래도 그럴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고 나는 지구행을 강행했다.
“갈 길 멀어요. 서두르죠.”
[잠깐! 잠깐만요!]
그때, 갑자기 누군가가 우리의 앞길을 가로막았다.
길이로 보면 인간의 절반 정도로 키가 작다.
너비로 봐도 인간의 절반 정도로 호리호리하다.
언뜻 보면 초등학생 어린아이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가늘고 뽀얗고 귀족적으로 생긴 남자가 외눈 안경을 치켜올렸다.
“안녕하세요. 감정사 릭이라고 합니다. 방금 경매 정말 인상적으로 봤습니다.”
먼저 불쑥 다가오는 사람치고 제대로 된 사람은 드물다. 그건 타키넷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경계심을 띠며 대꾸했다.
“그래서요?”
그러자 릭은 아주 우아하고 공손하게 허리를 접어 인사를 올리며 말했다.
“실례가 안 된다면 따라가고 싶습니다.”
응? 이건 또 무슨 헛소리야?
“소울챔버를 조립하시려는 것 아닙니까? 제가 무상으로 돕겠습니다! 돕게 해 주십시오! 그냥 잠깐만 따라다니며 지식을 교류하고 싶을 뿐입니다!”
강렬한 열정이었다.
[만상공감]을 통해 릭의 심장이 쿵쿵 뛰는 게 느껴졌다. 체내를 도는 모든 체액이 하나의 목표와 꿈을 향해 정렬되듯 전신이 욱신거렸다. 외눈 안경 너머로 빛나는 눈동자는 마치 별을 품은 듯했다.
‘거짓말은 아니겠네.’
이런 신체 반응을 지어낼 수 있을 것 같지가 않다.
그리고.
‘왜 이러는지는 모르겠지만… 방금 무상으로 돕겠다고 했지?’
히죽.
어후, 나도 모르게 웃음이.
* * *
마침내 지구로 돌아왔을 때 나는 가슴이 터질 것만 같았다. 아갈타 병사 100명을 몰살하고 개선했을 때보다 더 큰 충만감이 가슴을 채웠다.
보라!
해냈다!
내가! 외차원의 돈이 썩어 주체를 못 하는 놈팽이들과! 선혈 낭자한 악전고투 끝에! 소울챔버를 거머쥐었다!
완제품이 아니라고 비웃지 마라! 완제품보다 더 대단한 녀석이 될 조립식 재료들을 바로 내가! 내가 사 왔다!
드래곤힐동의 연구원과 장인들이아!
우리를 새로운 영능 공학의 세계로 안내할 물건이 바로 여기에 있어!
하루 일을 보람차게 마치고 치킨을 사 들고 귀가하는 아버지의 기분이 이럴까?
발걸음이 자꾸만 빨라졌다. 드래곤 힐동의 공방 거리로 들어와서 곧장 중앙 구역을 향해 달렸다. 중앙 구역은 마화 용광로가 있던 곳으로 공방 거리의 심장과도 같은 곳이었다. 모든 장인과 연구원이 그곳에 모여 뚝딱뚝딱 미래를 만들어 갔다.
‘아, 근데 지금은 좀 휑하겠다. 영혼 용광로 건설 때문에 영자 용광로도 폐쇄했잖아?’
그걸 생각하니 조금 아쉬워졌다.
얼른 용광로 건설을 시작해야겠다고 마음먹으며 중앙 구역에 들어섰다. 그리고…….
“오오?”
내 예상이 틀렸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물론 거대 용광로는 없었다.
하지만 거대 용광로보다 더 뜨거운 인간들이 그 자리에 있었다.
땅! 땅! 땅!
누군가는 망치질을 하고.
사각, 사각, 사각!
누군가는 미친 듯이 수식을 적는다.
“아! 그것 그렇게 하면 안 된다니까요?”
“아니, 윤희정 장인! 된다니까. 내 말이 맞아!”
한쪽에서는 다투고
“자자, [염동력] 싱크 맞춰! 동시에! 하나, 둘, 셋!”
“으쌰!”
다른 쪽에서는 협력하고, 사람 하나하나가 망치가 되고 모루가 되고 집게가 되어 서로 부딪치고 공명하며 영혼 용광로의 도면을 그리고 부속품을 하나하나 생산해 내고 있었다.
푸쉭! 푸쉬이익!
용광로 없이도 뭘 만들고 붙이느라 쉼 없이 연기가 피어오르고 스팀이 뿜어졌다.
턱 끝까지 내려온 다크서클로도 그들의 열정을 가릴 수는 없었다.
이들이야말로 내가 가진 가장 큰 자산. 나의 자랑.
서부 드래곤힐동!
[허… 기세만큼은 제법……!]
쿠탈나르 씨가 눈가의 칼자국을 씰룩이며 저도 모르게 감탄성을 흘릴 정도였다.
하여튼 그도 천생 공돌이였다. 처음 끌려왔을 땐 화가 머리 끝까지 나서 눈도 안 마주치더니, 이제는 통성명도 하고 기분 좋게 흥분해서 심장을 쿵쿵 울리기도 했다.
막상 작업을 앞두니까 손이 근질근질한 것이다.
[어이.]
나를 부르며 재촉까지 하길래 나는 씨익 웃었다.
‘바쁜 사람 여기까지 모셔 놓고 시간 끌 필요 없지.’
즉시 탐貪을 열고 이번 경매의 전리품들을 꺼냈다.
쿵!
‘물의 정령왕이 익사한 물병’을 꺼냈다. 크기는 2리터짜리 페트병 크기의 유리병이었지만, 1톤 트럭에 맞먹는 무게를 자랑했다.
그 탓에 굉음이 울렸고, 모두의 시선이 나에게 향했다.
“어?”
“사령관님?”
나는 그들에게 웃어 주며 파사의 금령을 꺼내고 침묵의 깃털을 꺼냈다.
크기는 크지 않다. 하지만 그 물건들에 깃든 심상치 않은 힘을 느낀 건지 장인들과 연구원들은 하던 일을 멈추고 홀린 것처럼 우리의 주변으로 다가왔다.
그때 무상 노동을 전제로 따라온 릭이 각종 재료들을 꺼내 주재료들 주변에 주르르 늘어놓기 시작했다.
[사막발굽인이시니까… 모래유리식 조립법을 쓰실 거죠? 거기에 맞춰서 재료들을 추가해 봤습니다. 이것들을 더하면 훨씬 퀄이 올라갈 거예요.]
릭의 말에 쿠탈나르 씨의 두꺼운 입술이 히죽 웃음을 그렸다.
[뭘 좀 아는 녀석이군.]
쿠탈나르 씨가 거대한 철봉을 꺼냈다. 울룩불룩한 팔로 철봉을 까득 소리가 나게 휘어잡고 등 뒤의 혹등이 두 배는 부풀 정도로 숨을 크게 들이마시더니, ‘물의 정령왕이 익사한 물병’에 철봉을 후우욱! 불었다.
우우웅-!
맑은 공명음을 내며 푸르른 물병이 쇠처럼 붉게 물들더니 철봉이 물병과 딱! 달라붙었다.
후웅! 후우우웅!
쿠탈나르 씨가 숨을 불어넣고 철봉을 빙글빙글 돌릴 때마다 물병이 크기를 불렸다. 페트병만 하던 것이 정수기 통만 해지고 물탱크만 해졌다가, 이내 물병의 경계가 사라졌다.
“와!”
“허어……!”
차원 문명의 신기한 기술을 지켜보던 장인들이 하나같이 탄성을 질렀다.
이건 나도 놀랐다.
어느새 따라 나온 서민서가 중얼거리는 게 들렸다.
“와… 무슨 공간을 빵처럼 접어 버리냐…….”
공간 계열의 초능력자인 만큼 명확하게 느낀 모양이다. 정말 공간이 기묘하게 접혔다. 덕분에 물병 표면은 접힌 공간 속으로 숨겨지고 물병 속에 든 액체만 푸르르게 허공을 점유했다. 모세의 기적처럼 액체가 스스로 서 있는 모양새다.
일단 여기까지 진행되고 나자 조립은 순식간이었다.
파사의 금령이 영롱한 소리를 내며 푸르른 액체 중앙에 자리 잡아 영력장을 생성했고, 침묵의 깃털도 쿠탈나르 씨가 훅훅 불어 대자 쭉쭉 커지는가 싶더니 푸르르게 드러난 ‘물의 정령왕이 익사한 용액’을 살포시 감쌌다. 릭이 준비한 각종 부가 재료들이 이리저리 빛나며 액체 속으로 흡수되었다.
최종적인 형태는 땅 위로 솟구친 어항 모양의 거대한 물덩이였다. 예전 마화 용광로나 영자 용광로만큼이나 큰 크기였고, 푸르게 일렁이는 물의 표면을 가느다란 실과 같은 침묵의 깃털이 헐겁게 감싸고 있었다.
영능학 기술을 몇 세기쯤은 앞당긴 듯한 신비로운 모양새였다.
[후… 소울챔버를 건설하는 건 나도 정말 오랜만이군. 거기다가 이거… 명품이야. 이 정도면 최신식 중급 소울챔버 수준은 될지도.]
쿠탈나르 씨가 철봉을 아공간으로 던져 버리며 땀을 닦았다.
나는 감격에 겨워 이제 막 완성된 소울챔버를 올려다보았다. 푸르른 그것은 마치 살아 있는 생물처럼 천천히 부풀었다 꺼지며 이따금 영롱한 광채를 하늘과 땅에 던지고 있었다.
새로운 용광로의 뼈대가 될 소울챔버가 마침내 공방 거리 중앙 구역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