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VVVIP 차원 쇼퍼-126화 (126/212)

5. 너, 남은 돈은 있니?

[잠시 쉬었다가 다음 경매를 이어서 진행하겠습니다. 중앙에 다음 경매 순서인 물건들을 전시해 둘 테니 살펴보고 계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특히 이번 특별 경매 상품 중 하나인 ‘물의 정령왕이 익사한 용액’이라는 물건을 주목해 주십시오. 범상치 않은 사연이 있는 만큼 많은 관심 바랍니다.]

첫번째 소울챔버가 3,200만 타키온이라는 고가로 팔려 나간 직후 휴식 시간이 부여되었다.

그사이 자리를 비웠던 나타르가 후다닥 돌아와서 앉았다. 다른 사막발굽인과 함께였다.

‘저자가 영능 공학자인가?’

그는 덩치가 나타르보다 두 배는 더 컸고, 눈가에는 칼자국이 있고 갈기가 덥수룩했다. 되새김질을 하는지 질겅질겅하며 그는 내 옆에 털썩 주저앉았다. 인사조차 하지 않고 그저 충혈된 눈으로 정면만 응시한 채였다.

그의 감각이 내게 흘러 들어왔다. 그는 온 세상을 다 때려 부수고 싶은 분노를 간신히 간신히 참아 내고 있었다.

휘오의 가지를 통해 나타르에게 내 생각을 전달했다.

- 저기요? 이분 되게 화난 것 같은데……? 혹시 자식을 인질로 잡고 협박해서 데려온 건 아니겠죠?

- …아, 차라리 그럴……? 아오! 자세히 묻지 마! 아무튼 네 말대로 데리고 왔어! 이제 네가 알아서 해!

이 인간 대체 무슨 짓을……?

아니, 아니다. 정신 차리자. 내 알 바 아니지. 나타르 씨가 알아서 했겠지. 자기 짐은 자기가 져야지. 암.

꿀꺽 침 한 번 삼켜서 뻔뻔함을 얼굴에 두르고 옆의 눈에 칼자국이 난 사막발굽인에게 말했다.

“우리 목표는 아이템들을 조합해서 소울챔버를 만드는 겁니다.”

그러자 그가 커다란 눈으로 나를 들여다보았다.

그의 감각은 풍선과도 같았다. 언제 분노로 빵! 터져도 이상하지 않은 풍선. 그리고 방금 그 풍선 속에 바람이 조금 더 들어갔다.

그의 커다란 눈과 기다란 속눈썹이 대서양에 몰아닥치는 폭풍처럼 흔들렸다.

나를 한참 노려보더니 이윽고 사막의 모래폭풍 같은 거칠한 목소리로 말했다.

[필요한 재료는 세 가지. 비어 있는 통과 영력장, 강력한 안티소울. 통은 하늘처럼 크고 텅 비어 있어야 한다. 그 안에서 일어나는 그 어떤 변화에도 무너지지 않고 모든 것을 수용하고 상쇄하도록. 영력장 발생장치는 작은 영력으로도 그 무궁한 빈 통을 아우루는 영력장을 만들어 낼 만큼 심오해야 한다, 안티소울 장치는 찰나에 무한대로 발산하는 영력 요동을 캔슬 할 정도로 정밀하고 강력해야 한다.]

내가 이해를 하든 말든 자기는 그냥 자기 할 말을 하겠다는 투였다. 다행히도 나는 그가 하는 말을 완벽하게 이해할 수 있었다.

그래서 물었다.

“후보는 이미 골라 놓았습니다. 우선 빈 통으로 쓸 아이템인데요, 불사조의 알 어때요? 알은 하나의 세계이고 그중에서도 불사조의 알은 무한한 가능성을 품고 있으니까. 알 표면에 공간 왜곡 진을 그리면 알 속에 물건을 넣고 빼는 것도 문제가 안 되고요. 그리고 저 알은… 좀 특별해 보입니다.”

사막발굽인의 눈썹이 꿈틀! 움직였다.

[불사조의 알… 괜찮은 아이디어이군. 가능하긴 하다.]

“그리고 영력장 발생 장치는 저기, 저쪽에 있는 저주 토템을 이용하고 초정밀 안티소울 장치는 저기 저쪽에 있는 ‘사신의 낫’을 쓰면 되지 않을까요? 내가 아는 인챈터가 안티소울을 더 강력하게 인챈트 해 줄 수 있으니 충분할 거예요.”

이런 작업을 처음 해 보는 것이라 내심 긴장하고 있었는데, 말을 하면서 스스로 생각을 정리하니 이건 된다는 확신이 들었다. 나는 기대에 차서 나타르가 데려온 사막발굽인을 쳐다보았다.

그러자 그가 입을 질겅질겅하며 답했다.

[괜찮다. 방금 팔렸다는 하급 1번 소울챔버의 십 분의 일에 해당하는 출력은 충분히 나올 듯하다.]

나는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무슨 소립니까? 소재들 간 영력 상성이 이렇게 끝내주는데! 세 배면 몰라도 10분의 1이라니? 말도 안 돼!”

사막발굽인의 칼자국이 꿈틀거렸다.

하지만 그는 끝까지 나랑 눈 한 번 안 마주치고 질겅거리며 쏘아붙였다.

[영력 상성만 잘 맞으면 손 자르고 대신 발을 붙여 놔도 기능에 아무 문제가 없나?]

“…….”

그의 말에 토 달 수가 없었다.

나는 [만상공감]으로 대략적인 궁합은 볼 수 있었지만, 실제로 아이템들을 조합하는 과정에는 무지했으니까.

나는 질문을 바꿨다.

“왜 그렇게까지 출력이 떨어지죠?”

그는 질겅거리며 답했다.

[불사조의 알은 무한한 생명이고 저주 토템은 그 생명에 기생하는 영력이다.]

“맞아요. 그래서 천적 효과 때문에 오히려 각자의 출력이……!”

[그건 이론일 뿐이다. 애초에 서로 안 붙으려는 것들을 억지로 붙여 놓으려면 이런저런 걸 덕지덕지 바르고 붙여야 하는데, 그 과정에서 출력이 깎인다. 그게 싫으면 최상위 문명의 공방을 찾아가라. 그런 데서 퍽이나 불사조의 알로 소울챔버를 만들어 주겠군.]

그의 커다란 입술이 비웃음으로 뒤틀렸다.

[그리고 사신의 낫으로 안티소울을 담당하는 건… 땅을 발굽으로 안 파고 무릎으로 파는 거나 다름없는 짓거리. 영력 상성이 어떻든 실제로는 효율이 떨어진다.]

나는 고집부리지 않았다.

그가 말해 준 것들을 머리에 새기며 다시 후보군을 정리했다.

“오케이… 그럼… 이런 조합은 어때요?”

다행히 규모가 큰 경매였고, 그만큼 후보로 삼을 물건은 제법 있었다.

나는 치열하게 후보를 골랐고, 그 과정에서 무척 화가 나 있는 우리의 사막발굽인은 아주 훌륭한 파트너가 되었다.

화가 나 있기 때문인지 원래 성격이 그런 건지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신랄했고, 그렇기에 영성, 물성 조화가 너무 뛰어나서 포기하기 힘들었던 조합도 결국에는 포기시키고 마는 강력한 단호함을 보여 주었다.

그렇게 열띤 논쟁 끝에 얻은 최종 후보는 다음과 같았다.

통 -‘불사조의 알’.

영력장 발생기 – ‘파사의 금령金鈴’.

안티소울 장치 – ‘침묵의 깃털’.

줄곧 화가 나 있던 사막발굽인조차 놀랄 만큼 괜찮은 구성이었던 모양이다.

[‘파사의 금령’이 물 속성이라 불사조의 알과 안 어울리는 면이 있지만… 구조적 안정성은 뛰어나다. 하급 1번으로 팔린 소울챔버보다 최대 1.8배는 뛰어난 물건이 나오겠군.]

거칠거칠하던 그의 목소리가 조금은 부드러워졌다. 표정이 살짝 풀리며 눈가의 칼자국도 조금 순해 보였다.

그가 당부했다.

[일단 ‘불사조의 알’은 꼭 확보하도록 해. 네 말이 사실이라면… 진짜 보물이다. 그것만 확보하면 다른 재료를 한두 개 놓쳐도 무조건 여기서 판매하는 완제품 소울챔버들 보다는 좋은 걸 만들어 낼 수 있을 거다.]

아무리 화가 나 있어도 장인은 결국 장인. 물건이 될 것 같자 이제는 먼저 나서서 제법 의욕을 보이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기다리던 물건의 경매가 시작되었다.

하지만…….

[네. 다음 상품은 어떤 차원에서 망자들을 관리하기 위해 만든 무기이지요. ‘사신의 낫’, 시작가 50만!]

[100만.]

[낙찰되었습니다.]

[다음 상품은 저주를 내리는…….]

[150만.]

[낙찰되었습니다.]

분위기가 이상하게 흐르고 있었다. 나타르가 진땀을 흘리며 말했다.

[저, 저 새끼? 죄, 죄다 사들일 모양인데?]

호랑이 귀에 꼬리를 한 흑발의 남자.

우리가 후보로 봤다가 빼놓았던 아이템들도 가리지 않고 사들이고 있었다. 의도가 명확했다. 조합해서 소울챔버를 만들 수 있는 물건이라면 가리지 않고 죄다 사들이겠다는 것.

아니 씨… 무슨 패배해서 망했다는 차원에서 온 인간이 왜 이렇게 돈이 많은 건데?

그 와중에 나타르가 데려온 사막인간은 두꺼운 입술을 질겅이며 차갑게 비웃음 날렸다.

[너희, 쟤보다 돈 많나? 크, 웃기지도 않는군. 나한테 그딴 짓까지 하면서 데려와 놓고 아무것도 못 사고 망하는 건가? 한심하긴…….]

아니, 그러니까 대체 무슨 짓을 했길래…….

휴, 아무튼 그가 옳았다.

‘이대로 가면 불사조의 알을 못 살 수도 있어…….’

만약 내가 본 것을 호랑이도 보았다면… 틀림없이 그럴 것이다. 절대 불사조의 알을 포기할 리가 없었다.

‘어떻게 해야 하지?’

다시 후보 목록을 처음부터 끝까지 되짚어 보았다. 내가 놓친 게 없는지.

그때, 기적처럼 내 시선을 사로잡는 아이템이 하나 있었다.

* * *

[그럼 이어서 다음 상품 경매를 시작합니다. 이번 상품은 무궁한 가능성을 품고 있는 물건이지요! 애완용으로도 좋고 새로운 엔진 설계에도 좋은 ‘불사조의 알’입니다! 시작가는 200만 타키온부터!]

“300만!”

나는 진행자의 호명과 동시에 손을 들었다. 나를 바라보는 시선들에서 비웃음이 짙어졌다. ‘나쁘지 않은 물건이지만 300만? 그 정도 가치는 없지 않나?’ 이런 생각들을 하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400만.]

내가 부른 액수를 가볍게 뛰어넘는 호가가 나왔다. 시선을 돌렸다. 호랑이 귀에 꼬리를 가진 흑발의 남자가 나를 뚫어져라 노려보고 있었다.

나는 입술을 가볍게 깨물었다. 대체 돈이 얼마나 있는 거냐? 좀 보자.

“500만!”

[600만.]

호랑이 남자는 내 호가가 끝나기 무섭게 100만을 더 붙였다. 일말의 고민도 없어 보인다. 하지만 나는 느꼈다.

‘저 새끼… 심장 박동이 빨라졌어.’

액수가 올라가자 긴장한 것이다.

그래. 돈을 펑펑 쓰며 부속 아이템들을 사들이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자금이 넉넉할 리가 없다. 저쪽도 있는 것 없는 것 다 털어서 나온 게 분명했다.

‘그렇다면… 불사조의 알에는 얼마까지 쓸 거지?’

내가 알아낸 걸 저 남자도 알고 있다면 아마 끝까지 갈 것이다.

[600만! 600만 나왔습니다! 네, 그렇죠! 불사조의 알! 유용성으로 따지면 별게 없지만 또 펫에 환장한 수집가들 사이에서는 부르는 게 값인 법이죠! 과연 얼마까지 갈지 기대됩니다! 600만! 더 없습니까?]

진행자가 재촉을 하고 주변은 시끌시끌해졌다. 대체로 우리를 비웃는 목소리들이었다. 불사조의 알이 그렇게 희귀한 것도 아니고, 저기 어디에 600만 타키온의 값어치가 있냐, 동태눈깔 아니냐 하는 왁자한 비웃음들.

‘모르고 하는 소리.’

하지만 불사조의 알이라고 다 같은 불사조의 알이 아니었다.

‘저 알은 지금 꿈을 꾸고 있었다고!’

간혹 그런 알이 있다. 태어나기도 전에 꿈을 꾸고 있는 알. 그리고 그 알은 영원히 태어나지 않는다. 알 속에 자신만의 우주를 만들고 노는 데 푹 빠져 있는 것이다. 그 어떤 알보다도 크고 무한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지만 영원히 태어나지 않는… 마치 잠재력과도 같은 그런 알.

‘600만이 아니라 1,500만이어도 아까울 게 없는 물건이야.’

너도 그걸 알고 있나?

지금 그걸 확인할 것이다.

나는 차분하게 손을 들고 외쳤다.

“800만!”

그 순간 호랑이 남자가 고개를 번쩍 들고 나를 노려봤다. 이글이글 불타는 눈이 이렇게 묻는 듯했다. ‘너도 알고 있구나?!’

그가 이를 부드득 갈며 외쳤다.

[1,000만!]

천만 타키온이 나왔다.

‘대단하네. 진짜 알고 있었어, 알이 꿈꾸고 있다는 걸…….’

나는 [만상공감]이 있어서 안다고 하지만 저 호랑이는 어떻게 알아낸 걸까? 과연 세상은 넓고 대단한 사람은 많았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저 호랑이는 돈을 더 쓸 수밖에 없었다.

나는 다시 손을 들었다.

“1,200만.”

갑자기 주변이 조용해졌다. 더 이상 우리를 비웃는 이들은 없었다. 다들 눈동자만 굴리고 있었다. 물건에 비해 액수가 너무 커지니 이젠 도리어 우리의 의도가 궁금해진 것이다. 하지만 그들 수준에선 우리가 노리는 게 무엇인지를 알아내기란 불가능했다. 그저 닥치고 구경할 수밖에.

침묵 속에서 가슴이 답답해 터질 것 같은 호랑이가 욕설과 함께 입을 열었다.

[씹… 1,300만!]

훗.

성공이다.

[1,300만! 더 없으십니까? 1,300만! ‘불사조의 알’은 ‘크르으랑’ 씨에게 1,300만 타키온으로 낙찰됩니다!]

나는 손을 털고 어쩔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때 호랑이, 아니 크르으랑 씨와 눈이 마주쳤다.

그는 줄곧 인상을 구기고 있다가 갑자기 득의의 미소를 지었다.

‘어떠냐? 이 경매장에 나와 있는 가장 훌륭한 ‘통’은 내 차지가 되었다. 예상보다 돈은 많이 썼지만… 결국 내가 이겼다!’

그의 눈이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그래서 난 웃음으로 화답했다.

‘그래. 그것 너 가져.’

내 태연한 태도에 크르아랑이 미간을 구기며 고개를 갸웃거린다.

나는 그런 그에게 속으로 물었다.

‘근데… 너, 이제 남은 돈은 있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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