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잘난 이들의 워크숍
무르물랑은 우리에게 공예 대회 입상을 요구했다.
그렇다면 공예 대회에는 어떤 작품을 출품할 것인가?
‘칼이지.’
사실 고민할 건더기도 없다.
현재까지 내가 소유해 본 칼은 고작 두 자루.
첫 번째는 청하. 녀석은 과도였다. 지금은 아몬이 에고 시스템으로 개조해서 더는 무기로 쓰지 않고 있다.
두 번째는 파도. 녀석은 회칼이다. 현재 내가 소지한 유일한 칼.
‘용납할 수 없는 일이지.’
나는 무기를 가리지 않고 다 잘 쓰지만, 그래도 좋아하는 무기가 뭐냐고 하면 당연히 칼이었다. 그럴 수밖에. 창이나 망치와 달리 칼은 몸체의 대부분이 상대를 해치기 위한 날카로운 금속이었다.
조그마한 창끝으로 콕! 찌르기 위해 이리저리 포지션을 잡아야 하는 창과 달리 칼은 가까워도 좋고 멀어도 좋다. 칼자루 근처에서부터 칼끝까지의 날을 다 이용해서 쭉 썰어도 좋고, 뾰족한 끄트머리로 콕! 찔러도 좋다. 몸 구석구석 살벌하지 않은 곳이 없는 흉악한 무기.
그런 주제에 거북이 꼬리처럼 짧고 귀여우면서도 고급스러운 반전 매력을 뿜어내는 손잡이! 세상에 아름답지 않은 무기가 어디 있겠냐마는 그중에서도 칼의 아름다운은 특별한 것이었다.
그런데 정작 나에겐 제대로 된 칼이 없다니!
하준광에겐 차사검이 있고.
최치국에게는 수호검이 있었고.
박민희에게도 릴포스 그레이가 있는데!
그런데 나에겐 짧은 회칼 파도가 전부라니? 이게 말이 되나?
‘그래. 어차피 우승을 노리는 거라면… 제대로 하자고.’
코어를 넣은 명품 칼. 그러니까 일종의 성검 시스템을 만들 것이다.
‘그래, 성검.’
그 외에 다른 출품작은 있을 수 없다고 나는 굳게 마음먹었다.
하지만 그 첫걸음부터 만만치가 않았다.
[성거엄? 성검 시스템은 개뿔! 일단 코어 조립부터가 불가능하다니까! 이봐, 소시민! 코어 조립을 하려면 코어와 코어가 들어갈 물체를 영자 단위로 완전히 해체했다가 융합하는 영혼 용광로가 필요하다고! 그게 얼마짜리 시설인 줄은 아나? 억 단위야! 타키온이 억 단위라고! 우리가 조립을 한다는 건 말이 안 된다니까?]
이건 나타르였다. 그는 시작도 하기 전에 초를 팍팍 치면서 제 가슴을 쿵쿵 치며 답답해 했다.
반면에 케사리니 아몬은 제 일 아니라는 듯이 느긋하게 설명을 풀어놓았다.
[성검 시스템이라고 불릴 정도의 인챈트라면… 내 공방에선 못 하지. 4레벨 수준의 연구실 시설이 필요하다고. 4레벨이 어느 정도냐고? 흠, 지금 내 공방이 2.5레벨 정도 될 거고, 아갈타 문명의 최신식 연구실이 6레벨 수준쯤 되려나? 너네 지구의 공방 시설? 아마… 0.5레벨 정도 되겠지. 뭐, 재료는 제법 그럴듯하게 가져온 것 같지만. 안 돼. 못 만들어.]
케사리니 아몬은 내가 산더미처럼 가져온 각종 소재를 바라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러더니 입에 침이 고이는지 쩝쩝 입맛을 다시며 은근슬쩍 물었다.
[근데 저 재료들 어차피 못 쓸 거, 나 좀 주고 가면 안 돼?]
말도 안 되는 소리. 데미안이 창고를 대개방해서 내준 귀하디귀한 소재를 어디? 성검 시스템 제작 정도가 아니면 아까워서 못 쓴다.
[어차피 다 실패한다니까? 못 만들어. 봐 봐. 쟤네도 그걸 아는 눈치인데?]
아몬이 가리킨 곳에는 산더미 같은 소재들을 뒤적거리며 격론을 벌이고 있는 지구의 장인들이 있었다. 분명 아까까지만 해도 처음으로 와 본 타키넷에 잔뜩 긴장해서 굳어 있었는데, 물건을 만들 재료가 눈앞에 그득해지자 언제 그랬냐는 듯이 팔팔 살아서 떠들어 대는 모습이었다.
“아니, 칼을 만든다며? 그럼 일단 단단한 소재를 써야 할 것 아녀?”
파도를 제작했던 명장, 김용수 옹이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니, 이것 샘플을 좀 보십쇼. 이게, 이게 말이 좋아서 검이지, 진짜 검 같아요? 나노 기술을 아주 소꿉장난으로 만들어 버리는 초정밀한 영적, 물리적 구조가 안 느껴지십니까? 단순히 단단한 소재를 고른다고 되는 게 아니라니까요? 이 구조를 재현할 수 있는 복합 소재를 개발해야죠!”
[리뷰]라는 초능력을 이용해 아이템 설계에 있어서 내가 아는 한 가장 뛰어난 능력을 보여 주는 함필진 교수의 일갈이었다.
한편 유해의 마을 최고의 검장劍匠이라고 하는 호국 선생은 혼자 낮게 중얼거렸다.
“이거 그렇게 하는 게 아닌 것 같은데…….”
그러면서 정작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자기도 설명을 하지 못하고 중얼거리기만 하는 호국 선생이었다.
그리고 또 다른 쪽에선 데미안이 보내 준 최고의 소드 마이스터 베논이 투덜거렸다.
“배에는 캡틴이 한 명만 있어야지. 이렇게 캡틴이 많으면 뭐 어쩌자는 거야?”
한 마디로 개판이었다.
내가 알고 있는 가장 실력이 뛰어난 생산자들을 한자리에 모아 놨지만, 시너지는커녕 부정적인 소리만 늘어놓으면서 겉돌고 있었다.
그 꼴을 보고 있던 케사리니 아몬이 슬쩍 비웃음을 머금었다.
[안 된다니까? 심지어, 설령 쟤네가 어떻게 어떻게 성검의 구조를 흉내 낸다고 해도 내가 인챈트를 못 해, 시설이 안 돼서. 그니까 소재나 좀 남기고 돌아가. 정신 사납다. 남의 작업실에서 뭐 하는 거야?]
옆에선 나타르가 자기 가슴을 쿵쿵 치며 끼어들었다.
[심지어 인챈트를 어찌어찌 한다고 해도 코어 조립이 불가능하다니까!]
이 사막발굽 인간은 내 어깨를 덥석 잡고 흔들었다.
[우리 괜히 헛돈, 헛시간 쓰지 말자. 응? 그냥 째자, 째! 응? 이미 투자가 이뤄진 걸 뱉어 내라고 하겠어? 무르물랑인지 걔는 이제 꺼지라고 하고. 아, 이미 꺼졌지? 그니까 그냥 신경 끄고 우리 신발이나 만들자. 더 업그레이드하고, 좀 더 복잡한 수공품 만들어서 팔자. 응?]
나는 고개를 저으며 나타르 씨의 손을 떼어 냈다.
글쎄, 다들 안 된다 안 된다 하는데… 나는 된다는 걸 안다.
꼼수에 편법이긴 하지만, 적절한 타이밍 조율과 ‘기적’만 있다면 그 비싸디비싼 시설들에서나 가능한 작업을 지구에서도 할 수 있다는 걸 안다.
[만상공감]으로 이미 면밀하게 조사해 본 뒤였다.
지구에는 좋은 속담이 있지 않은가?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되지.’
시작은 짭이어도 끝은 찐이 될 수 있는 게 세상의 이치. 꼼수로라도 시작만 하면 된다.
“마이스터 베논?”
“불렀소?”
“여기. 이게 코어라는 겁니다. 제일 단순하고 약한 코어지만 아무튼 코어는 코어죠.”
손톱 크기의 별처럼 파랗게 빛나는 코어를 베논에게 던졌다. 코어를 감정해 보던 베논의 눈에 알 수 없는 감탄과 호기심이 떠오른다. 지구에만 살아 본 이에게 이런 코어는 처음 보는 물건일 테니까 신기할 수밖에.
“그걸 한번 여기 이 만년필하고 융합해 보세요.”
나는 그에게 희미한 백색 아우라를 가진 명품 만년필을 건네주었다.
“흠… 알겠소.”
두 가지를 쥐고 견주어 보던 베논은 이내 눈을 감고 둘을 융합하기 시작했다. 베논이 비록 칼을 만드는 장인이라고는 하지만 [융합]은 거의 대부분의 장인이 보유하고 있고 자신 있어 하는 초능력. 곧 전혀 다른 물질과 성질을 가진 만년필과 코어가 액체처럼 서로 섞이기 시작했다.
그것을 본 나타르가 기함했다.
[어? 어어? 아무리 수준 낮은 코어라고 해도 저걸 어떻게… 어?]
나타르의 두꺼운 입술 사이로 바람이 새어 나왔다. 코어가 만년필 속으로 완전히 녹아들어 가 만년필이 파랗게 빛을 뿜어내기 시작하자 그의 숨소리는 점점 더 거칠어졌다.
하지만.
쩌적! 푸스스스-
코어와 부드럽게 융합이 되는 듯했던 만년필이 큰 소리를 내며 쩍! 갈라지더니 이내 가루가 되어 부스러졌다.
“끙! 역시 안 돼.”
마이스터 베논은 어느 정도 예상을 했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옆에서 어느새 [리뷰]를 발동한 채 관찰하던 함필진 교수가 설명을 했다.
“영자 구조가 융합되지 못했군요. 코어에 담긴 영력이 흔들리자 만년필이 그냥 붕괴해 버렸어요.”
“원래 강한 힘을 품은 대상일수록 초능력을 이용해서 융합하기 까다로운 거니까…….”
나한테 영능학을 배운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실전에 그럴듯하게 대입해 설명을 하는 함필진 교수였다.
또 그 설명을 다들 알아들은 듯 다들 실패를 당연하게 받아들이며 고개를 끄덕끄덕했다.
하지만 나타르의 생각은 다른 것 같았다.
[저, 저, 저… 어떻게? 아니, 실패하긴 했지만 영혼 용광로 없이도 저 단계까지 갈 수가 있다고? 심지어… 폭발은 왜 저렇게 작은데?]
그의 놀란 표정을 보며 마이스터 베논이 불현듯 불쾌해하며 눈썹을 찌푸렸다.
“이봐! 나를 뭘로 보고… 당연히 이 정도는 하지! 내가 베논인데! [융합] 관련 초능력을 가진 장인 100명을 모아 봐라! 코어랑 만년필 붙이기도 전에 대폭발을 일으키겠지! 하지만 나는 다르지! 내가 마이스턴데!”
그의 자부심 가득한 일갈에 유해의 마을에서 온 호국 선생이 옆에서 작게 중얼거렸다.
“저 정도는 다 하지 않나……?”
그 말을 듣고 베논이 눈을 부라리는 동안 김용수 명장은 함필진 교수가 [리뷰]로 기록한 아까의 융합 과정을 다시 살펴보며 고민에 빠졌다.
“영력의 충돌은 사령관님이 준 파도의 [안티소울]로 제어가 가능하지?”
“그렇죠. 하지만 충돌만 막는다고 둘이 붙는 건 아니에요. 완벽한 기술과 타이밍 그리고 설명할 수 없는 기적이 필요할 것 같은데요?”
그 말을 들은 나타르가 뒤늦게 정신을 차린 듯 소리쳤다.
[그, 그래! 좀 놀라긴 했지만 여전히 어림도 없어! 무려 영혼의 용광로라고! 아무리 괴물 같은 권능이 있다고 해도 그 무지막지하게 비싼 시설을 개인의 힘으로 대체할 수 있을 것 같아? 기적이라도 빌리지 않는 이상 불가능한 거라고!]
그러자 호국 선생이 다시 작게 중얼거렸다.
“기적……? 유해의 폭포?”
[으, 응? 뭐라고?]
어쩐지 움찔 놀라는 나타르를 위해 내가 친절히 설명해 주었다.
“아, 고대신의 잔흔이 있거든요. 지구에서는 그걸 이용해서 물건을 만들기도 해요. 가끔 기적이 깃들곤 하죠.”
나타르가 입을 헤 벌렸다. 입술을 우물오물하며 뭔가를 계산하는 듯하더니 이내 멍청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아, 아니. 그래도 말이 안 되는데……? 근데 왜 되, 될 것 같지? 아니 안 되는데? 근데 어…….]
혼란에 빠지는 나타르를 지켜보며 케사리니 아몬이 흥미롭다는 듯이 팔짱을 꼈다.
[호오?]
후드에 가려진 얼굴, 살짝 드러난 입매가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그러곤 개인적인 궁금증을 묻기라도 하는 것처럼 목소리를 낮춰서 내게만 들리게 말했다.
[이봐, 설령 이 말도 안 되는 계획이 통한다고 치자. 야만인이 원시적인 주술과 뛰어난 손재주로 상위문명의 복잡한 공정을 흉내 낼 수 있다고 치자고. 그렇다고 해도 이걸 한 번 만들고 말 게 아니잖아? 채산성을 맞추려면 어느 정도 대량생산을 할 수 있어야 할 텐데… 그걸 가능하게 할 만한 자본이 있어? 까막이한테만 이야기 들어 봐도 지구에서 네 입지가 좀 하찮던데? 차원 전체로 치면… 0.0005퍼센트? 뭐 그 정도가 네가 장악하고 있는 영향력이라며? 투자가 가능할까? 무르물랑이라는 물주도 지금은 없다면서?]
0.0005퍼센트라… 그 말이 틀리진 않았다. 내 영역이라고 할 만한 건 용산구 제2지역이 전부였으니까 지구 전체로 따지면 하찮은 영향력이겠지. 차원 문명의 기술을 흉내 내기 위한 자본을 확충하기에는 태부족이었다.
하지만 내게는 무르물랑 말고도 든든한 물주가 또 있었다.
“괜찮아요. 데미안 루드비히가 있으니까. 전에 인사도 했잖아요? 그 친구가 지구 전체의 자본을 제게 끌어다 줄 겁니다.”
[그럴까? 근데 보통 원시 차원이 큰일을 도모하면… 결국엔 지들끼리 싸우다가 망하던데?]
내전… 이라.
그건 나도 솔직히 불안하긴 했다. 결국 지구의 독자 기술을 발전시키려면 지구의 역량을 결집해야 하는데, 그러다 보면 회귀한 영웅들과 경쟁 구도가 생길 수밖에 없었으니까. 안 그래도 최근 관계가 틀어졌는데, 더욱 사이가 나빠질 일이 잔뜩 남아 있는 셈인 것이다.
하지만 아몬과 같은 파트너 앞에서 약한 모습을 보일 수는 없지.
나는 자신감 있게 웃으며 대꾸했다.
“괜찮대두요. 데미안은 돈도 엄청 많은데… 심지어 미래도 볼 수 있다구요.”
[호?]
건성으로 대답하는 척하지만 나는 그의 요란스러운 감각을 느끼고 있었다. 그는 지금 상황을 꽤 흥미로워했고 뭔가 고민을 하고 있었다.
나는 그런 아몬의 팔꿈치를 쿡 찌르며 넌지시 제안했다.
“지구로 같이 가요. 거기서 그 연구 시설 레벨 4인지 뭔지에 한번 도전해 봅시다.”
[…….]
잠시간의 침묵 뒤에 케사리니 아몬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뭐, 나쁠 것 없겠지. 고대신의 힘이란 것에는… 전부터 관심이 있었으니까.]
“나타르! 나타르 씨도 일단 지구로 한번 오세요! 영혼 용광로를 재현하려면 현장 답사 해야죠!”
[아? 어? 으, 어, 으응. 그, 그러지.]
지구 최초로 외계인 노동자가 입국하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