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생일
다시 며칠이 지나서 2018년 3월 30일.
그날 서민서는 갑자기 아침부터 나를 찾아왔다.
“왜?”
“아니 그냥. 오늘은 선배를 따라다니고 싶어서.”
“그래라.”
녀석은 슬금슬금 방으로 들어와서는 붕대로 꽁꽁 싸맨 내 왼팔을 들여다봤다.
“아직 많이 아파요?”
“잠은 잘 만해.”
솔직히 많이 아프다. 별빛 강기에 당한 상처는 매초마다 팔을 뽑아내는 듯한 통증을 줬다. [만상공감]으로 다른 감각으로 신경을 분산하지 않았다면 불면증으로 미쳐 버렸을지도 모른다.
진보하지 못한 문명에서는 보통 상처 부위를 영구히 잘라 내는 게 치료 방법이라나 뭐라나. 하지만 나에겐 다른 좋은 방법이 있었다.
[엄마!]
휘오는 여전히 나보다 서민서를 더 좋아했다. 게이트를 넘어서자마자 초록색 머리칼을 휘날리며 민서의 품에 폭! 안겨 들었다. 민서는 달려드는 고양이를 안아 들 듯 능숙하게 녀석을 쓰다듬으며 구시렁거렸다.
“엄마라고 부르지 말라니까?”
[헤헤. 어제는 새로운 차원으로 가지를 뻗어 봤어!]
휘오는 민서의 어깨에 자기 머리칼을 부볐다.
하는 짓은 저래도 이제 많이 컸다. 발음도 아주 또렷해졌고, 본체도 무럭무럭 자랐다.
원래 동굴이었던 이곳은 이제 거대한 나무가 푸른 하늘을 이고 있는 초원이 되었다. 물론 진짜 하늘과 초원은 아니지만, 적어도 휘오의 가지가 미치는 공간은 휘오가 창조한 세상이라도 되는 것처럼 휘오가 원하는 대로 되었다.
비록 규모는 작아도 정말 ‘세계수’라고 부를 만한 존재가 되어 가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녀석과 교감함으로써 나는 내 부상을 조금씩 완화할 수 있었다.
“휘오, 시작하자.”
[응!]
서민서의 품에서 실컷 어리광을 피우던 휘오가 잔가지 하나를 타고 내 어깨로 넘어왔다. 한 일곱 살쯤 되는 아기 같던 크기가 금세 고양이처럼 작아져서는 내 어깨 위에 사뿐히 앉는다.
그사이에 나는 멀쩡한 오른손을 휘오의 본체 위에 올리고 이어서 이마를 대고 기댄다. 휘오의 줄기는 나무 주제에 감촉은 말랑하고 향기는 상쾌하다.
그러고 나서 [만상공감]으로 녀석을 느끼기 시작했다.
지구라는 차원의 핵에 뿌리를 내린 세계수. 지구의 영력을 먹고 성장하며 자신이 받아들인 것보다 더 큰 영력을 만들어 지구에 돌려주는 신비의 존재.
내가 [만상공감]으로 휘오와 더 깊이 동화되는 만큼 녀석의 몸을 타고 흐르는 순수한 영력이 내 몸도 타고 지나간다.
찰랑찰랑-
강물이 강변 모래를 닦아 내는 듯한 감각이 팔을 간지르면 별빛 강기의 잔재가 조금씩 조금씩 쓸려 나간다.
고통이라는 탄환을 아주 천천히 녹아내린다. 팔의 통증도 잊히고, 가슴에 턱 얹힌 듯한 죽은 이들에 대한 기억도 서서히 잊혀져 간다. 요즘 내가 제일 좋아하는 시간.
“헤… 선배 그렇게 미소 짓는 것 오랜만에 보네.”
눈을 살짝 뜨니 서민서가 옆에서 히히 웃더니 나를 흉내 내 휘오의 본체에 손과 이마를 대고 기대는 모습이 보였다. 나는 녀석에게 조언을 해 주었다.
“쉬이- 집중해.”
“집중?”
“응. 감각을 지워. 집중이란 건 감각을 지우는 거거든. 원하는 것 딱 하나만 빼고 말야.”
“휘오의 영력만 느끼고 다른 감각은 다 지우라고?”
“그렇지. 숨 쉬는 소리도 안 들리게, 심장 뛰는 소리도 안 들리게…….”
“흐음…….”
두근- 두근-
그리고 서민서의 심장박동이 점점 조용해졌다.
조금씩 휘오를 타고 흐르는 영력이 서민서에게도 흘러 들어갔다. 나에 비하면 눈꼽만큼 적은 양이었지만…….
그래도 정말이지.
‘참 잘해.’
영력에 관련된 건 비상하게 뛰어나다. 내가 지금 하고 있는 건 상처를 치료하는 것뿐만 아니라 영력 수련에도 무척 좋은 방법이었다. 효과가 좋지만 아무나 흉내 낼 수는 없고, 감각이 아주 예민한 사람들만 할 수 있는 비법. 자식… 그렇게 일찍 죽지 않았다면 지난 생에도 결국엔 이렇게 재능을 꽃피웠을까?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문득 정령 형태의 휘오가 배부른 고양이처럼 내 어깨 위를 뒤척거렸다.
[흐음- 좋네. 한쪽엔 엄마, 한쪽엔 시민.]
…쟨 엄만데 왜 나는 그냥 시민이지?
[히히- 좋다.]
하긴… 아빠라고 부르는 것보다는 낫나?
[히히.]
그렇게 오전 내내 나랑 민서는 휘오에게 기대어 시간을 보냈다.
* * *
차원강습 시스템이든 성검 시스템이든, 영능학적 장비들에 꼭 필요한 핵심 부품이 있다. 바로 ‘코어’가 그것이다.
코어에서 영력이 생성되고 뿜어지고… 아무튼 코어가 있어서 모든 초월적인 현상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만큼 코어는 다루기 까다로웠다. 어느 정도로 까다롭냐면, 그걸 제작하는 건 아예 엄두도 못 내는 거고 그걸 수입해서 원하는 물건에 안착시키는 것조차도 아직 우리에겐 불가능할 만큼 까다로웠다.
“그게 그렇게 어려워요?”
서민서가 묻자 무르물랑이 답했다.
“어. 네 영혼을 뽑아서 전봇대에 집어넣는 것만큼 어려워.”
“윽… 비유를 해도 왜…….”
“하지만 해내야지. 무조건.”
그래. 그게 우리가 당면한 문제였다.
무르물랑의 요구를 들은 나타르는 무척이나 흥분한 상태로 그녀에게 따지고 들었다.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코어조립이라니! 그건 너무 무리한 요구 아니요! 지구는 원시 차원이라고!]
악을 박박 써 가면서 말하는 그의 말을 정리해 보자면, 이제 막 나무 조각상을 깎을 줄 아는 원시 부족에게 반도체 조립을 요구하는 수준의 요구라는 것 같다.
[심지어 코어 조립만 하라는 게 아니라… 그렇게 만든 장비로 탑골시장의 공예 대회에서 입상을 하라고?! 그거 3개월 뒤에 열리는 그것 아니요? 내가 여기 소시민이하고 동업해서 10년쯤 뒤에 해 보고 싶었던 게 공예 대회 입상이요! 근데 그걸 3개월 뒤에 해내라고?]
안 그래도 두꺼운 나타르의 입술이 두 배는 더 크게 부풀고, 걸쭉한 침이 입에서 튀었다. 그는 그 정도로 흥분했다.
하지만 무르물랑의 표정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그녀는 표면에 잔물결 하나 일으키지 않고 나를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소시민.”
“응.”
“내가 투자 꽤 했다는 것 인정하지?”
당연히.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여태까지 그녀가 쏟아부은 액수만 아마 2,000만 타키온 가까이 될 거다. 거기다가 돈만 준 게 아니라 자기 시간까지 바쳤고, 아갈타와의 전쟁에서도 앞장섰다. 이런 투자자 또 없지…….
그러니까, 내 생각에 그녀는 자격이 있었다.
“그래. 그럼 슬슬 성과를 보여 줘. 갯펄시장에서 신발 쪼가리나 팔고 앉아 있는 꼴 더는 못 봐.”
“그러니까 탑골시장 공예 대회에서 입상을 해라? 그러려면 코어 조립 정도는 필수고?”
“응. 그 정도 아니면 이 이상 내 돈과 시간을 쓸 가치가 없지.”
“그동안 너는 잠시 고향에 다녀오고?”
“영능학 커리큘럼 짜 준 것까지가 내가 생각한 거야. 오래 자리 비웠으니 가야지. 근데 다녀온다라… 글쎄? 공예 대회 입상 소식을 듣는다면… 다시 돌아오겠지?”
오, 그러니까 입상 못 하면 안 돌아온다?
무르물랑은 대놓고 ‘손절’을 예고했다.
나 같으면 여태 투자한 돈과 시간이 아까워서라도 손절 못 할 텐데… 그녀는 아무런 흔들림 없이 확고했다. 녀석은 완전히 마음을 정했다. 자신의 선택에 대해서든 나의 능력에 대해서든, 아무튼 일말의 의심도 없는 것이다.
그리고 나 역시 의심하지 않았다.
오히려 옆에 있던 서민서가 흥분했다.
“씨이…….”
뭔가 친구라고 생각했는데 냉정한 모습을 보이니까 분하고 치사한데, 일방적으로 도움받은 게 사실이니까 뭐라 말은 못 하겠고. 그런 기분인 것 같다.
하지만 뭐… 무르물랑에겐 자격이 있다.
그보다 나는 다른 게 궁금했다.
“근데 왜 이걸 데미안 빼놓고 얘기하자고 한 거야?”
나는 데미안과 완벽한 동업을 약속했다. 굵직한 사업 파트너인 나타르와 무르물랑이 다 모인 이 자리는 사실 서민서보다는 데미안이 함께해야 하는 자리였다.
내 질문에 차갑던 무르물랑의 몸에 파문이 일었다. 녀석은 조금 망설이더니 말했다.
“좀 알아볼 게 있어서.”
“그게 뭔데?”
“루드비히가의 배후. 아직은 확실하지 않은데… 좀 위험할 수도 있어.”
배후?
그 말을 듣는 순간 떠오른 말이 있었다. ‘루드비히는 악마와 계약했다’. 지난 생에부터 지금까지 널리 퍼진 루머. 근데 그게… 진짜였어?
내가 의문에 휩싸인 그 순간, 무르물랑은 제 몸의 물결을 불안하게 출렁거렸다.
“혹시 너라면 뭔가를 찾아낼 수도 있는데… 혹시 루드비히의 뒤에 있는 것을 찾아내더라도 지금은 싸우지 마.”
“왜? 위험하다며.”
“위험하니까. 적을 늘릴 필요는 없어. 아직은.”
“…그럼 데미안은? 괜찮은 거야?”
“그건 네가 입상을 하면 얘기하자.”
어?
이건 좀 열이 올랐다.
“무르물랑, 데미안이 위험하냐고.”
“그러니까, 입상하면 얘기하자고.”
너무하네. 최치국이 죽은 걸 본 게 최근이라 기분이 싱숭생숭한데…….
하지만 무르물랑은 내가 열을 낼수록 오히려 차가워졌다. ‘분하니? 하지만 지금 네 수준이 그 정도야. 너 혼자서는 무언가를 알아낼 수도 없고, 다가오는 미래에 저항하지도 못해’라고 말하듯이. 녀석은 점점 차갑게 나를 노려보았다.
정말 열받는 건, 그게 당장은 사실이라는 거고.
뿌득.
나는 이를 갈고 말했다.
“세 달 뒤에 보자.”
“그래. 나도 다시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게 끝이었다. 무르물랑은 손을 흔들고 그대로 떠나갔다. 뒤 한 번 돌아보지 않았다.
“재수 없는 물 덩이 새끼.”
서민서가 중얼거리길래 나는 피식 웃고는 녀석의 손을 잡았다.
“에?”
“가자. 맛있는 것 먹으러.”
“에? 갑자기?”
“응. 오늘 생일이잖아.”
서민서가 갑자기 굳었다.
그래. 3월 30일. 서민서의 생일이었다. 그리고 그 말은 내가 회귀한 지 딱 1년이 흘렀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말도 안 되게 많은 일이 있었네…….’
사령관이 됐고, 내 개인 전투력도 초일류라 불러도 손색이 없고, 무르물랑이 있다가 없어졌고, 수백 명에 달하는 아갈타 병사를 죽였고 퀴니세인도 죽였다. 최치국도 죽었다.
‘어쨌든… 많은 진전이 있었어.’
성공이냐 실패냐라고 굳이 따진다면 압도적인 성공이었다.
마음에 안 들고 슬픈 일들도 있지만… 그래도 오늘을 축하해 줄 수 있는 서민서도 이렇게 살아 있었다.
“알고 있었어요?”
“응. 생일 선물로 맛있는 것 사 줄게.”
“에? 그걸로 퉁치게요? 생일인데?”
“그래서 종일 따라다니게 해 줬잖아.”
“그게 무슨 선물인데요!”
따지면서도 서민서의 입꼬리는 웃고 있었다.
자식.
문득 이 녀석의 웃음이 어떤 약속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전히 골치 아픈 일들이 눈앞을 가로막고 있고, 또 앞으로도 슬픈 일들은 얼마든지 일어나겠지만… 그래도 어쨌든 다음 1년도 꽤 재밌고 보람찰 거라는 약속.
역시 회귀는 멋진 일이었다.
* * *
어느 호텔의 최상층.
국빈급 인물이 아니라면 돈이 많아도 머물 수 없는 방. 안 그래도 한국에서 가장 비싸고 화려하다고 이름이 높은 곳이었는데, 작년 내내 이곳에 머문 한 사람 때문에 더욱더 화려하고 비싸게 꾸며진 곳이었다.
그 한가운데 서울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소파에 앉아 데미안 루드비히는 중얼거렸다.
“그런 종족이 있다는 말이지…….”
그간 데미안은 타키넷에서, 또 무르물랑을 통해서 비밀스럽게 계속 추적해 왔다. 자신과 자신의 가문을 장난감처럼 생각하는 그 악마에 대해서.
그리고 최근 그 정체에 대한 실마리 하나를 잡았다. 타키넷에서 입수한 자료들과 무르물랑에게 요청한 자료들 사이에서 ‘그놈’의 말과 행동을 완벽하게 설명하는 차원 문명 하나를 찾아낸 것이다. 그 와중에 무르물랑이 가문의 비밀에 대해 눈치를 챈 것 같았지만, 이제 그런 건 상관이 없었다.
“진짜… 나는 장난감이었던 거야?”
그곳은 관음증에 미친 문명이라고 했다. 저개발된 문명에 나타나 신이나 악마 행세를 하며 딜레마를 주고, 그들이 고민하고 고통받는 모습을 방송을 통해 자기들끼리 돌려 보며 낄낄거리는 종족.
데미안 루드비히는 가문이 멸문에 처한 그 상황에서 놈들이 아버지에게 내밀었다는 딜레마를 떠올렸다.
데미안의 눈이 새파랗게 빛났다.
“개새끼들…….”
안 그래도 비참한 기분이 더욱 깊게 가라앉았다.
데미안의 시선이 서울의 야경을 훑었다. 최상층에서 보니 다 자신의 발밑에 깔린 듯이 보이는 도시. 하지만 정작 데미안의 기분은 반대였다. 펼쳐진 도시가 너무나 거대하고 화려한 불빛들 사이로 보이는 그림자들이 너무 진해서 숨이 막힐 것만 같았다. 땅과 하늘이 뒤집힌 것만 같다.
데미안은 멀미를 느끼며 시선을 돌렸다. 도시와 하늘이 맞닿는 경계선, 그 너머가 탈출구라도 되는 것처럼 뚫어져라 응시했다.
‘근데… 소시민 사령관에겐 이제 이 도시도 작겠지.’
여태 데미안이 소시민에게 준 도움은 주로 자원과 인재에 관련되어 있었다. 서부 드래곤힐동의 빠른 발전은 전적으로 데미안이 공급해 준 무제한의 자원과 전문 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하지만 소시민은 그걸로 키워 낸 창신대로 아갈타의 정예 병력 100명을 전멸시켰다. 심지어 전사자는 고작 열두 명. 이곳에서 시작했지만 이제 이 도시는 그에겐 너무나 작았다.
반면에…….
‘그동안 나는 뭘 했던 거야……?’
깨문 입술이 아팠고 꾹 움켜쥔 주먹이 아팠다. 데미안은 그날 자신을 떠올렸다.
‘머저리.’
권승리가 퀴니세인에게 맞섰을 때, 최치국이 강력한 아갈타 장교를 죽이고 퀴니세인에게 한 방을 먹여 줄 때까지…….
‘난 그냥 리디아 뒤에 숨어 있었지.’
처음 느껴 보는 기묘한 감정이 데미안의 전신을 휘어감았다. 아니, 휘어감았다는 말은 옳지 않았다. 최치국의 장례식에 다녀온 이래 줄곧 그 감정에 푸욱 잠겨 있었으니까.
손끝이 저리고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는 기분.
웬 똥 덩어리가 되어 버린 기분.
그 똥 덩어리가 좋은 침대에 눕고 비싼 옷가지를 걸치고 우쭐거린 듯한 부끄러움.
숨만 쉬어도 죄를 짓는 기분.
머리속까지 빨갛게 달아오르는 이 기분.
그건 자괴감이었다.
자존감이 무너진 것이다.
말을 배우는 순간부터 자신이 얼마나 잘났는지를 주입당하는 루드비히로서는 단 한 번도 느껴 본 적 없는 감정.
최치국이 죽었다. 나는 아무것도 못 했다.
세상에, 이런 기분이 있을 줄이야.
- 도련님… 괜찮으십니까?
“…….”
리디아가 물었지만 데미안은 대꾸할 수 없었다. 똥구덩이에 빠진 이 상황을 극복하기 전까지는 다른 이들과 하하호호 떠들 수가 없을 것 같았다.
때문에 데미안은 결심할 수 있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꿈도 꾸지 않고 있었던 계획을. 아주 먼 훗날에나 시도해 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던 그 목표를. 지금 달성해야겠다는 결심을.
‘그러고 나서… 소시민 사령관의 기반을 세계로 확장한다.’
권승리가 이끄는 루키들로 구성된 의문의 조직이 세계 각국에 뻗어 있음을 확인한 후였다. 이젠 소시민도 그런 세계적인 자리로 나아갈 때가 되었다.
그런데 그러기 위해서는…….
‘내 개인적인 지원이 아닌 루드비히 가문 전체의 지원이 필요하다.’
그리고 바로 거기에 큰 문제가 있었다.
데미안의 아버지 로버트 루드비히가 데미안에게 아공간 창고를 몰래 건네준 이유이기도 했다.
루드비히가의 악마가 데미안이 루드비히의 자원을 맘대로 움직이는 것을 그냥 지켜볼 리가 없었다. 또 분명 온갖 말도 안 되는 ‘딜레마’를 조건으로 제시할 테니까. 그래서 아버지는 남몰래 아공간 창고를 만들었던 것이다. 데미안이 자유롭게 소시민과 협력할 수 있도록. 하지만 소시민의 발전은 예상보다 훨씬 빨랐고, 벌써 그것만으로는 부족한 순간이 찾아왔다.
그러니까 지금이 바로 평생 꾸던 꿈을 실현할 때였다.
‘그 악마를… 넘긴다!’
그 정도는 해내야 소시민의 파트너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정도는 해내야… 이 무너진 자존감을 다시 쌓을 수 있을 것이다.
‘싸움을 준비해야 돼.’
어둠 속에서 데미안의 눈이 빛났다. 그것은 열정 같기도 하고 광기 같기도 했다.
‘다시 태어나는 거다. 과거에서 벗어나서, 바로 오늘이 새로운 생일이 되는 거야.’
데미안은 말했다.
“하준광에게 전화 걸어. 요즘 왕따당하는 기분일 테니까, 내 제안을 거절하지 못할 거야.”
-7권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