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VVVIP 차원 쇼퍼-105화 (105/212)

4. 물러서지 않았다

사실 서민서는 이미 다 끝장 났을 거라고 생각했었다.

여기까지 시간이 너무 많이 걸렸기 때문이다.

창신 2대에서 50명을 소집, 편성하는 데 5분.

휘오의 도움으로 제천에 집결하는 데 다시 3분.

마족들이 쳐 놓은 결계를 찾는 데 20분에.

캐스터를 연동해 결계를 부분적으로 여는 데 다시 10분.

무려 38분. 기습이라는 상황을 고려한다면 이미 승패가 기울고 상황 종료까지 됐을 수도 있는 시간.

그렇기에 무사한 박민희와 강전구를 보았을 때, 수가 좀 줄기는 했지만 여전히 건재한 창신 1대를 보았을 때 가슴이 벅차오르는 감동을 느꼈다.

옆에서 안절부절 미쳐 가고 있던 김민수도 표정이 활짝 펴지며 쩌렁쩌렁한 고함을 질렀다.

“박민희 씨!”

영력까지 담아서 외쳤는지 전장이 우렁우렁 울릴 정도였다. 마족들조차 전투를 멈추고 돌아봤다.

그러자 검고 긴 머리가 매력적인 미녀, 박민희가 땀과 피로 범벅이 된 머리칼을 쓸어 올리며 분노를 담아 답했다.

“대대장님이라고 불러라, 이 새끼야!”

“대대장님!”

김민수가 얼른 외쳤다. 환하게 웃는 김민수의 얼굴과 눈썹을 찡그리는 박민희의 얼굴이 선명하게 보였다. 오래된 영화의 해피 엔딩과도 같은 장면이었다.

‘근데 저 둘이 이렇게 친했나? 김민수 씨, 보물 찾으러 다닌다고 우리랑 별로 어울리지도 않았잖아?’

서민서는 잠시 의아했지만 이내 마음을 다 잡았다. 어차피 남녀 일인란 게 알 수 없는 것이기도 하고, 그런 건 사실 아무래도 좋았으니까.

‘감동은 여기까지.’

눈앞의 마족 셋은 여전히 위협적이었고, 아차하는 순간 이 해피 엔딩과도 같은 감격은 시궁창 같은 결말로 곤두박질칠 것이다.

마족들은 기다려 주지 않았다.

그들은 곧장 창신 1대를 향해 달려들었다.

잠시 풀어졌던 박민희의 눈이 금세 날카로워졌다.

“다들 이 악물어! 이 새끼들 각오가 달라졌다!”

창신 2대의 등장이 마족들의 태도를 완전히 바꿔 놓았다. 차분히 자신들의 피해를 최소화하며 창신 1대를 잡으려고 하던 마족들이 갑자기 속도를 냈다. 창신 2대가 본격적으로 합류하기 전에 지친 창신 1대에 최대한의 피해를 남기겠다는 악의가 고스란히 느껴졌다.

“빨리! 빨리 합류해!”

김민수가 창신 2대를 이끌고 필사적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결계와 전장 사이의 거리가 꽤 먼 편이라 어느 정도의 시간은 걸릴 수밖에 없었다.

그사이에 마족들과 창신 1대가 다시 맞붙었다.

우우우웅-!

처음 양상은 지금까지와 비슷해 보였다. 창신 1대가 캐스팅 한 주문이 마족들의 접근을 막고 곧이어 달려 나간 박민희와 강전구 그리고 황태성과 임현우가 각각 마족을 상대했다.

하지만 다음 순간이 완전 달랐다.

꽈릉! 카가각!

마족이 초음속을 달리는 박민희의 릴포스 그레이를 그냥 맞으며 그녀를 밀치고 지나갔다. 마족의 옆구리가 쩍 갈라지며 검은 연기가 팍! 퍼져 나갔다.

마족이 입고 있는 차원강습 시스템의 내부 구조가 훤히 들여다보일 정도의 큰 타격. 하지만 그대로 박민희를 밀치고 지나간 마족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창신 1대를 덮쳤다.

다른 두 마족도 마찬가지였다. 창신 1대를 직접 타격하기 위해 기꺼이 손해를 감수했다.

“끄아아악!”

창신대에는 기본적으로 초능력자가 없었다. 초능력을 각성하지는 못했지만 영력에 대한 재능을 타고난, 다른 차원이었다면 마법사나 기사가 되었을 이들을 찾아 훈련시킨 게 창신대였기 때문이다.

타고난 재능으로 차원 문명의 이기들을 금방 사용할 수 있었지만, 창신대 병사들의 신체는 여전히 일반인의 그것과 다를 바 없었다.

그게 마족들이 대열을 파고드는 순간 아무것도 못 하고 10명이 짓이겨진 이유였다.

꽈드드득!

“아악! 아아악!”

팔과 다리가 허공을 날고 피와 살점이 질퍽했다.

그나마 10명에서 피해가 멈춘 것은 그간 창신대가 소시민에게 받은 장비와 훈련의 성과였다.

늦지 않게 반응한 창신 1대의 나머지 병사들은 ‘실드 벨트’를 활성화하고 ‘정지 역장 스틱’을 부러뜨려 바닥에 우수수 뿌렸다. 소시민이 큰맘 먹고 구비해 준 개인 무장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파지지지직!

‘정지 역장 스틱’에서 뻗어 나온 역장이 마족들의 움직임을 일시적으로 봉쇄했다.

하지만 창신대의 근거리 전투 교범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잠시 움직임을 멈추는 정도로는 마족의 위협을 뿌리칠 수 없었다. 최선의 방어는 최선의 공격! 강한 적을 상대할 때는 이쪽도 그만큼 독해야 했다.

“크아! 간다!”

팔이 날아가고 가슴이 찢긴 병사들이 정지 역장에 걸린 마족들을 노려 움직였다. 방금 전 충돌로 이미 죽었어도 이상할 게 없는 상처를 입었지만, 미리 도핑해 둔 언데드 활력제 덕분에 병사들은 머리가 박살 나는 순간까지 끈질기게 움직일 수 있었다.

“죽어! 개 같은 마족 새끼들아!”

살아남을 수 없는 부상을 입은 병사 넷이 정지 역장에 걸린 마족들에게 달라붙었다. 마족들의 뿔에 캐스터를 바짝 붙이고 최후이자 최강의 주문을 캐스팅 했다. 이 모든 과정이 다 소시민이 가르쳐 준 대로였다.

우우우웅-!

“이 씹새들 꼭 죽여라!”

“씨발! 다 죽여 버려!”

병사들이 피를 토하며 마지막 유언을 남겼고.

꽈아앙-!

캐스터와 함께 폭발했다.

눈앞에서 산화하는 병사들. 그리고 충격을 받았는지 잠시 비틀거리는 마족들.

그 사이를 박민희의 목소리가 꿰뚫었다.

“이 악물어! 뿔에 충격을 받은 마족은 일시적으로 감각이 둔해진다! 지금 상처를 늘려! 손해 본 만큼, 아니 그 이상 되돌려 준다!”

병사들의 희생을 애도할 시간 따위는 없었다. 박민희가 붉어진 얼굴로 달려와 릴포스 그레이를 휘둘렀다. 꽈릉! 하고 소닉붐이 터진다.

서민서도 [점멸]을 통해 공간을 넘어와 영력이 깃든 검으로 마족을 베었다. 쩌어엉! 검은 안개가 팍! 하고 터졌다.

- 크아아아아!

마족이 입을 벌리고 고함을 쳤다. 이번 전투에서 마족이 소리를 내는 건 처음이었다.

“방어!”

박민희의 고함이 터지는 순간.

꾸웅-!

마족이 땅을 굴렀다. 기묘한 진동이 사방을 흔들었다. 축구장 크기의 아스팔트 바닥이 가루가 되며 솟구쳤고, 거리의 유리창이 모조리 터져 나가고, 바로 옆의 두 건물은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막대한 영력의 폭발. 그 앞에서 물리적인 방어력 따위는 소용이 없었다. 창신 1대 병사들이 버틴 건 오로지 그들이 차고 있는 실드 벨트 덕분이었다.

하지만.

쨍그랑!

쨍!

쩌어엉!

영력의 폭발은 너무나 무지막지했다.

실드 벨트가 박살 나고, 강력한 압력에 이리저리 휩쓸려 날아가는 병사들이 속출했다.

그 틈을 노린 듯 마족들의 등에서 영력 광선이 수십 갈래씩 뻗어 나왔다. 진형이 박살 난 창신 1대를 단숨에 몰살하겠다는 의도였다.

그때 서민서가 외쳤다.

“저 새끼들 흥분했어요!”

박민희가 답했다.

“나도 알아!”

서민서가 [점멸]로 공간을 넘고, 박민희가 땅을 박차고 앞으로 튀어 나갔다.

마족들이 쏘아 낸 영력 빔이 비처럼 사방을 뒤덮고, 어떤 병사는 그 빔에 꿰뚫려 죽는다. 어떤 병사는 가까스로 발동한 캐스터로 막아 낸다. 피와 살이 터지고 영력이 흔들린다.

피해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건 달리 말하면, 흥분한 마족이 앞뒤 안 가리느라 허점을 크게 드러내고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 크아아아아!

[점멸]로 공간을 넘은 서민서는 시끄럽게 짖어 대고 있는 마족의 등줄기에.

푸우욱-!

영력을 가득 담은 검날을 꽂아 넣었다.

콰직!

소시민에게 영력을 배운 이들 중 가장 특출 난 재능을 가지고 있던 서민서. 구름 강기를 만들기까지 고작 두 걸음 정도 남았다고 평가받는 그녀의 영력은 차원강습 시스템의 방어 체계를 뚫고 중심부 깊숙한 곳까지 닿았다.

꿍!

그 깊은 곳에서 무언가 폭발하는 듯한 작은 울림이 일어났다.

마족이 경악한 눈으로 서민서를 돌아봤다.

- 커헉……! 너……? 영력이……?

박민희를 상대로 싸울 때는 박민희가 사용하는 영력에 대해 조금의 관심도 보이지 않던 마족이었는데, 유독 서민서에게만큼은 소스라치게 놀랐다.

그만큼 서민서의 영력 수준이 높았기 때문이다.

만약 정식으로 스케이트를 배운 적 없는 시골 소녀가 스케이트를 타며 빙글빙글 회전을 하면 ‘와~ 재능이 넘치는구나.’라고 생각하고 넘어갈 것이다.

그런데 만약 그 소녀가 갑자기 트리플 악셀을 해 버린다면? 그건 재능의 영역으로는 설명할 수 없었다. 정식으로 배운 적 없다는 말이 거짓말이거나 그 소녀가 인외의 무언가일 것이다.

마족에게 서민서가 바로 그랬다. 원시 차원에서 있을 수 없는 영력의 활용.

그리고 놈이 놀란 그 찰나가 놈의 생사를 갈랐다.

꽈릉!

소닉붐과 함께 회색빛 검날이 마족의 목을 치고 지나갔다. 파아악! 터지는 검은 연기. 그 뒤에 솟구치는 붉은 피.

지금까지의 검은 연기가 놈들이 입고 있던 생체 슈트 자체의 피였다면 이번 붉은 피는 그 안에 탑승한 마족 본인의 피였다.

전투 개시 1시간 만에 첫번째 마족이 쓰러졌다.

하지만 위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동료들의 죽음에 아랑곳하지 않는 건 마족들도 마찬가지였다.

우드드득!

“아아악!”

찰나의 순간, 한 명의 마족을 쓰러뜨렸다는 그 잠시 잠깐 안도하는 그 순간에 나머지 마족 둘이 창신 1대를 헤집었다. 사람들이 케이크처럼 무너진다. 모골이 송연해지는 비명들.

가장 먼저 나선 건 역시 서민서였다.

퉁!

서민서의 몸이 젤리처럼 튀어 오르더니 포물선의 궤적을 남긴 채 [점멸]로 공간을 뛰어넘어 마족의 뒤통수를 노렸다.

하지만 아까 서민서의 [점멸]을 목격한 마족은 처음부터 그녀의 [점멸]을 경계하고 있었다.

푸우욱!

“끄… 아……!”

마족의 손에 맺힌 구름 강기가 서민서의 어깨를 꿰뚫었다. 찰나의 순간 몸을 비틀었기에 간신히 목을 꿰뚫리는 걸 면했다.

투웅-!

다시 [점멸]로 거리를 벌린 서민서가 땅을 뒹굴었다.

“악… 끄으……!”

구름 강기에 당한 상처는 극도의 고통을 주며 쉽게 회복되지도 않는다. 정신력이 강한 서민서였지만 일어서지 못하고 벌벌 떨기만 했다. 그녀의 영력 수련 수준이 높기는 했지만 아직 구름 강기를 당해 낼 정도는 아니었다.

그래도 다행히 박민희가 서민서가 만들어 준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꽈릉!

박민희는 서민서를 찌른 마족에게 득달같이 달려들었다.

꽈릉! 꽈릉! 꽈르릉!

스스로 감당하지 못할 속도로 미친 듯한 연속 베기와 밀치기로 마족이 창신 1대에게 접근하는 걸 완벽하게 마크했다.

그러면서도 단 한 대의 피격도 허용하지 않았다. 그래야만 했다. 진형이 흐트러진 창신 1대는 디버프를 제대로 유지하지 못했고, 디버프가 사라지자 마족들은 본격적으로 구름 강기 등 고급 전투 기술을 사용하기 시작했으니까.

한 대라도 스치면 바로 낙오였다. 서민서처럼.

그런 조건에서, 박민희는 마족과 초음속으로 합을 겨뤘다.

꽝! 꽝! 꽈르르릉!

누가 봐도 무리하는 모습이었고, 무리할 수밖에 없었다. 다만 오래 지속될 수는 없었다.

“대대장님! 빼십시오!”

“대대장님! 저희 버틸 수 있습니다! 창신 2대가 달려오고 있어요!”

얼마나 그녀의 모습이 위태로워 보였는지.

창신 1대의 병사들이 먼저 나서서 박민희를 만류할 정도였다.

그 뒤에서, 강전구와 황태성, 임현우는 이미 다른 마족을 마크해 내지 못하고 창신 1대와 뒤섞인 상태였다. 창신 1대 자체가 전멸의 기로에 놓인 상황. 그런데도 병사들은 박민희를 걱정했다.

박민희가 그에 답했다.

“지랄 마! 여기서 진형 밀리면 우리 다 죽어! 으아아아아!”

저편에서 창신 2대를 이끌고 죽어라고 달려오고 있는 김민수가 외쳤다.

“민희 씨! 빼요! 빼!”

이제 정말 지척이었다. 30초, 아니 15초만! 15초면 김민수와 창신 2대가 창신 1대에 합류하고도 남는다.

하지만 박민희는 알았다. 마족에게 15초의 시간이 주어진다면 창신 1대에 궤멸적인 피해를 입히고도 남을 거라는 사실을.

혈관이 툭툭 터져서 빨갛게 익은 팔과 다리로, 충혈된 눈과 코피를 줄줄 흘리는 얼굴로, 박민희는 외쳤다.

“막을 수 있어! 있다고! 으아아아아!”

그녀는 물러서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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