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VVVIP 차원 쇼퍼-103화 (103/212)

2. 알고 온다니까요

하준광은 자신했었다. 마족 놈들 다 죽일 수 있다고.

하지만 싸운 지 얼마 안 되어 그 생각을 바꿔야만 했다.

“…도망쳤나? 하여튼 신기한 기술을 많이 쓴다니까. 중력도 다루고 공간도 뛰어넘고, 못 하는 게 없네.”

중력으로 옭아맸는데도 마족이 도망칠 줄은 몰랐다.

“오파츠 같은 건가?”

그의 감각이 말했다. 놈들의 손목에서 윙윙 시끄럽게 돌아가던 물건, 바로 캐스터가 놈들을 놓칠 수밖에 없었던 이유인 것 같다고.

“그것부터 부숴 놓을 방법 없나?”

하준광은 입맛을 쩍 다셨다.

“몇 입 먹었지? 나 참, 여기까지 와서 두 입밖에 못 먹었는데… 아쉽네.”

살아 있던 네 놈 중에 두 놈을 죽이고 두 놈을 놓쳤다.

손을 꼼지락거렸다. 밥을 먹다가 뺏긴 것처럼 손맛이 어정쩡하니 근질근질 아쉬웠다. 아무래도 얼른 다른 곳으로 가서 이걸 해소해야 할 것 같았다.

‘마침 서울 곳곳에서 전투가 벌어졌다는 보고도 있었으니까.’

하준광은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데미안이 한 무리의 초능력자들을 수습하는 모습이 보였다.

관심 없었다.

하준광은 데미안이 껄끄러웠다. 자신의 왕국에 초청도 없이 찾아온 옆 제국의 황자. 얽히지 않는 편이 좋았다.

대신 자신이 이곳에 찾아온 이유를 찾아보았다.

‘어딨어?’

근방에서 보이지 않았다. 멀리까지 시선을 돌리니 그제야 투명한 날개를 펴고 어딘가를 향해 바삐 날아가는 뒷모습이 보였다.

하준광은 눈썹을 찌푸렸다.

“뭐야? 인사도 안 하고.”

하준광은 [중력왜곡]을 이용해 몸을 낙하시켰다. 방향은 멀리 멀어지는 소시민을 향해.

* * *

덜컥!

잘 날아가던 몸이 제자리에 붙잡혔다.

그리고 듣기 싫은 목소리가 훅 하고 귓가에 밀려왔다.

“거, 소 사령관님. 어딜 그리 급하게 가시오?”

망할 늙은이. 급하게 가는 줄 알면서도 이렇게 붙잡아? 울컥 분통이 치밀었지만 애써 가라앉히고 간신히 웃는 낯으로 대답했다. 꼬투리가 잡히면 시간만 더 끌릴 뿐이다.

“제 병사들이 제천쯤에서 마족에게 습격을 당했다는 첩보가 있어서요.”

“병사? 아… 그, 창의대?”

“창신대입니다.”

“아, 그래. 그 창신대. 그… 박민희 팀장이 있는 곳인가? 예전에 광화문 경비견 하던 친구.”

“…맞습니다.”

경비견이라니. 내 기분이 다 나빠지는 호칭이었지만, 시간 낭비 하기 싫어서 그냥 수긍해 버렸다.

나는 하준광에게 아주 다급한 상황임을 온몸으로 어필했다.

“저 좀, 급하게 가 봐야 하는데…….”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인사도 안 하고 가나?”

하지만 이 와중에도 하준광은 나를 옭아맨 중력을 풀지 않았다. 아니, 이 미친놈은 오히려 이 상황을 즐기고 있었다. 내가 자신에게 애걸해야 하고, 자신은 이 사소한 부탁을 들어줄까 말까 느긋하게 고민할 수 있는 이 순간 자체를 즐기는 게 틀림없었다.

나를 바라보며 나른하게, 기분 좋게 풀어지는 그의 근육과 감각이 그걸 증명했다. 그래. 이게 바로 ‘우월감’이라는 감각일 것이다. 권력에 미친 늙은이!

나는 입술을 꾹 깨물고 하준광을 노려봤다. 애걸해 봐야 소용없다면 차라리 당당하게 부딪치는 게 나을 것이다.

“도와주신 건 감사합니다. 감사 인사는 나중에 따로 드리죠.”

이제 그만 놓아라. 나 짜증 난다라는 의미를 가득 담고 도발적으로 노려봤다.

내 눈빛이 마음에 안 드는지 하준광이 눈썹을 지푸렸다. 그러곤 비웃듯이 말했다.

“빨리 가서 박민희를 구하겠다는 거지?”

“네. 그러니까……!”

“근데 말야.”

하준광이 내 말을 툭 끊으며 말을 이었다.

“그, 공격당했다는 첩보를 받은 지 벌써 좀 되지 않았어? 나도 비슷한 보고를 들어서 말야.”

“…그런데요?”

“아니. 박민희, 나도 그 친구를 좀 안다고. 1류라 불리기엔 차고 넘치는 실력이지만, 초일류가 되기에는 결정적인 센스와 특별함이 없어. 그런 애들은 말야? 어쩔 수가 없어.”

이 노친네가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거야?

“극복할 수 있는 줄 알거든. 그만한 실력을 쌓기까지 높고 험한 벽들도 다 노력으로 극복했으니 앞으로도 그럴 거라 생각한다 이 말이지. 인정을 못 해, 부족한 점이 있다는 걸. 근데 그러다 보면… 멈춰 서야 하는 때를 놓치고 말아. 이놈들처럼 말야.”

하준광이 오른손을 달랑달랑 흔들었다. 이제 보니 아갈타 병사들의 시신을 오른손에 거머쥐고 있었다. 악취미다.

“누구 잘못도 아냐. 결국 자기 운명에 자기가 들이박은 거거든. 누가 구해 줄 수도 없어. 이번이 아니면 또 다음. 그걸 피할 수 없는 게 자기 운명이라는 거거든. 이 나이 먹다 보면 그런 게 보여.”

아니, 그러니까… 지금 박민희가 이미 죽기라도 했을 거라는 건가?

지금 이게 할 소리야? 그 나이 먹고 할 말 못 할 말 가리는 법은 못 배웠나?

울컥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참지 못하고 그 분노를 쏟아 내려고 하는 순간, 하준광이 손을 흔들었다.

“뭐 해? 가 봐야 한다며?”

몸을 옭아매고 있던 중력이 어느새 사라져 있었다. 결국 이 모든 것이 날 골려 먹기 위해 한 짓인 거다. 제 딴에는 인사 안 하고 간 벌이라고 생각하겠지.

인자한 척 웃는 저 면상을 세게 갈겨 주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다.

나는 이를 빠드득 갈아붙이고 다시 인왕산 공백던전을 향해 날았다.

크하하하하-

뭐가 재밌는지, 하준광은 광소를 터뜨리며 어딘가로 날아갔다. 또 무슨 깽판을 치려는 건지, 아주 신이 나서 날아가는데 순식간에 내 감각을 벗어나 버렸다.

…알수록 짜증 나는 인간이었다.

“젠장. 저딴 인간 때문에 시간 낭비를……!”

인왕산으로 가는 날갯짓을 재촉하던 순간이었다.

‘어?’

문득 위화감이 들었다.

‘내가 왜 인왕산까지 가려고 하지?’

‘왜긴 왜야? 휘오를 통해 화이트 게이트를 열고 곧장 창신 1대를 구하러 가려고 하는거지.’

‘아니, 그러니까 왜 그걸 하려고 인왕산까지 가는 건데?’

‘왜 이래? 그거야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휘오의 가지가 맛이 갔으니까…….’

‘아니… 그러니까, 그냥 내가 가면 되는 것 아니야? 여기 있는 휘오의 가지는 멀쩡하잖아?’

‘어?’

맞다. 급하다고 잊고 있었다.

지금 나는 한 명이 아니었지?

* * *

소닉붐.

어떤 물체가 소리와 같은 속도로 움직이게 되면 그 물체는 자신이 내뿜는 소음과 나란히 이동하게 된다. 소음은 퍼지지 않고 물체와 함께 이동하며 점점 더 커지게 되는데, 이 현상은 그 물체가 음속을 완전히 돌파해 버릴 때까지 이어진다.

그래서 박민희는 조금 자신이 있었다.

꽈르르릉!

자신의 애검, ‘릴포스 한정판 1997 밸런스 그레이’를 뽑아 휘두르는 순간 박력 넘치게 터져 나오는 소닉붐 탓이었다.

초음속의 검. 어지간한 속도 계열 초능력으로도 보여 주기 어려운 기교였다. 그런 힘을 초능력이 아닌 영력 수련으로 얻어 냈으니 자부심을 가질 만도 했다.

거기에 박민희의 새로운 검인 일명 ‘릴포스 한정판 1997 밸런스 그레이’는 대단한 보물이었다. 줄여서 ‘릴포스 그레이’라고도 부르는데, 1997년에 우연히 잡힌 괴물, 악몽 매머드의 상아를 갈아 만든 칼이었다.

사용자에게는 가볍지만, 칼이 향하는 이에게는 한없이 무거워지는 신비한 성질을 지녔다. 거기에 ‘인류의 실수’라고 불릴 만큼 기묘할 정도로 잘 뽑혀 나온 이 시리즈에는 아직도 확인하지 못한 신비한 힘이 잠들어 있다는 소문도 있었다.

소시민과의 대련 중에 그녀의 이전 무기 듀렌달사 2017 다크 에디션이 박살 난 이후, 실의에 빠져 있던 그녀에게 보물 사냥꾼 김민수가 구해 준 보물이었다. 그 까다로운 소시민이 ‘좋은 검이네요. 잘 맞고요. 이건 저도 못 부수겠는데요?’라고 말했을 정도로 빼어난 무기였고, 박민희의 마음에도 쏙 들었다. 마음에 안 들 수가 있나. 도시 전설처럼 내려오던, 세계에 딱 열 자루밖에 남지 않았다던 그 명검 시리즈의 보유자가 되었는데!

그런 검이 초음속을 몇 배나 뛰어넘는 속도로 뿌려진다. ‘이 일격이면 전설 속의 용도 잡을 수 있지 않을까?’ 박민희의 마음속에는 그런 자신감마저 서려 있었다.

칙-!

하지만 박민희가 뿌린 검은 허무한 소리를 내며 엇나갔다.

‘떵!’이나 ‘터덕!’ 같은 소리도 아니고 ‘칙-!’이라니!

당황한 박민희와 달리 머리 부분에 돋아난 뿔로 가볍게 검을 흘려 낸 아갈타의 마족은 아무런 감정의 변화도 보이지 않았다. 그저 눈에서 붉은빛을 뿌리며 빠른 속도로 박민희에게 손을 휘둘렀을 뿐.

‘초음속!’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지만 마족의 손도 초음속을 가뿐히 넘어섰다. 한데 박민희와 달리 소닉붐이 일어나지 않았다. 흘러나온 영력이 공기저항과 같은 물리적 현상을 지워 버린 탓이었다. 박민희로서는 상상도 한 적 없는 고차원적인 영력의 사용.

이렇게 되면 꽝꽝대며 소닉붐을 뿌리는 쪽이 오히려 우스워 보인다.

‘망할! 소시민! 이런 건 가르쳐 준 적 없잖아!’

당연한 일이었다. 소시민의 영능 지배력은 많이 발전했다고 해도 여전히 많이 부족했으니까. 본인이 할 수 없는 걸 가르쳐 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하지만 그걸 모르는 박민희는 마냥 당혹스럽기만 했다.

꽈릉!

까드득!

박민희가 검날을 뒤집어 마족의 손을 받아 낸 건 거의 요행이나 다름없었다. 방어를 위한 움직임도 초음속을 넘어섰기에 소닉붐이 사방을 울렸다. 꽈릉! 온몸이 몸살이라도 난 것처럼 으슬거렸다.

쾅!

박민희의 몸이 뒤로 날아갔다. 관성으로 토가 쏠릴 지경이었다.

‘망할… 정말 강하네……!’

그간 마족과의 전투는 우월한 숫자를 바탕으로 디버프를 잔뜩 묻히고 약화된 마족을 상대하는 식으로 이루어졌었다. 하지만 무려 세 명이나 되는 마족을 상대로는 그 방식이 통하지 않았다. 결국 마족 본연의 강함과 마주쳐 본 소감은… 정말 징글징글하게 강한 놈들이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물러서면 안 돼!’

객관적 전력의 열세. 하지만 박민희가 여태 겪어 온 무수한 싸움들 중엔 이보다 더 나쁜 상황에서도 승리한 적이 있었다.

싸우기로 한 생각. 질 생각 따위는 전혀 없었다.

도중에 멈추는 법 따위, 배운 적도 없다!

‘우리도… 죽어라고 훈련해 왔다고!’

우우우웅-!

그녀의 등 뒤로 벌 떼처럼 일어나는 공명음이 들렸다.

박민희가 외쳤다.

“다시 달려든다! 카운터 준비! 카운터는 [머드]!”

“[머드] 준비!”

소시민이 창신 1대에게 나눠 준 캐스터는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효과적인 대응법을 연산해 캐스팅 하는 자동 캐스팅 기능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소시민은 여기서 만족하지 않았다.

‘진정한 도구 사용자는 도구의 기본 기능에서 만족하면 안 됩니다. 제작자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활용까지 해내야 진정한 도구 사용자라고 할 수 있는 겁니다.’

그의 확고한 철학이 묻어 있던 가르침을 창신 1대는 피를 토하며 몸에 익혔다.

구우우웅-!

창신 1대 100여 명의 캐스터가 절정에 이른 진동을 토해 냈을 때.

마족들도 바로 코앞까지 다가와 있었다. 하나는 계속해서 박민희를 노렸고 나머지 둘은 창신 1대를 직접 노렸다.

박민희가 외친 것도 바로 그때였다.

“카운터!”

“카운터!”

우웅-!

백 여 개의 캐스터가 일제히 진동했다.

휘오오오오!

캐스터로부터 어마어마한 눈보라가 쏟아져서 다가오는 마족들을 정면에서 밀어냈다.

크드드득!

작은 얼음 조각들이 마족들의 외장갑 사이사이로 박혀들었다. 악마처럼 검고 울퉁불퉁하며 뿔이 삐쭉 솟은 놈들의 생체 슈트는 추위에 약한 것인지, 순간적으로 돌출된 근육이 수축되며 움직임이 둔해지는 것이 보였다.

그게 끝이 아니었다.

푹! 쩌저적!

푸푹! 쩌어엉!

땅이 진창이 되어 푹푹 꺼졌다. 마족들의 발이 진창 속에 박히자마자 진창은 쏟아지는 냉기에 꽝꽝 얼어붙어 마족들의 움직임을 방해했다.

본래 캐스터들이 연산한 최적의 대항 주문은 [블리자드]. 하지만 창신 1대는 블리자드에 진창을 만드는 [머드] 주문을 더해 효과를 극대화했다.

이게 카운터 전략의 핵심이었다. 자동 캐스팅 되는 주문을 파악해 순간적으로 그 위력을 배가해 줄 수 있는 다른 주문을 함께 캐스팅 하는 것. 계산이 어려워서 그렇지 성공만 한다면 캐스터의 효율을 100퍼센트 끌어올릴 수 있는 전략이었다.

그게 끝이 아니었다.

“던져!”

“던져!”

둔화된 마족들을 향해 동그란 병들이 우수수 떨어졌다. ‘다섯 번째 정령의 눈물’이라 불리는 액체가 가득 들어 있는 병이었다. 한 방울을 먹구름에 떨어뜨리면 비가 눈이 되어 내리게 된다는 극빙의 액체들이 마족들 위로 자욱하게 쏟아졌다.

아-아-아아!

요정의 노랫소리 같은 것이 들리고, 차가운 냉기가 사방으로 폭발했다. 마족들이 순간적으로 얼어붙었다.

주문 시너지에 이어서 적절한 타이밍에 쏟아진 소모품 공격.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마족들을 멈출 수 없었다. 마족들의 뿔이 붉게 빛났다. 차원강습 시스템이 대응을 시작한 것이다.

지그르르르!

마족들의 눈이 붉게 빛났다. 전신이 뜨거워지며 얼음이 녹고 증기가 펄펄 끓어올랐다. 생체 슈트를 입고 있는 마족들은 지옥에서 걸어 나오는 로봇처럼 눈보라를 녹여 버리며 묵묵히 전진할 뿐이었다.

“밀어내!”

박민희가 자신의 애검 릴포스 그레이를 잡고 마족에게 달려들었다.

쾅! 콰앙! 쾅!

그녀가 릴포스 그레이를 휘두를 때마다 소닉붐이 시끄럽게 터지고, 마족은 뒤로 주춤주춤 물러났다. 급격히 얼었다가 녹은 생체 슈트는 일시적으로 기능이 크게 저하되어 아까처럼 박민희를 쉽게 상대하지 못했다.

“우오오오오오!”

피 칠갑을 한 강전구도 괴성을 지르며 또 다른 마족에게 달려들었다. 전속력으로 달리다가 마족과 부딪치려는 순간 [무게증가]로 자신의 무게를 최대한으로 키웠다. 무게를 아무리 늘려도 달리던 속도는 줄어들지 않았다. 강전구는 그 상태 그대로 어깨 보호구를 앞세워 마족을 밀어 버렸다.

꽈아아앙!

강전구에 부딪힌 마족은 강전구가 밀치는 대로 뒤로 쭉쭉 밀려났다.

마지막 남은 마족은 창신 1대의 1중대장과 2중대장을 맡고 있는 땅울문의 황태성과 관혼 임가의 임현우가 밀어냈다. 황태성의 어깨로 마누스의 아지랑이가 피어올랐다.

황태성은 스모 선수처럼 마족을 밀어붙였다. 그때마다 발생하는 강력한 진동이 마족의 자세를 무너뜨렸다.

그 사이로 임현우의 창이 서너갈래로 갈라지며 마족의 급소를 노렸다. 마족은 간단한 뒷걸음질로 공격을 피했지만 그게 황태성과 임현우가 바라는 것이었다.

둘은 땀을 뚝뚝 흘리면서도 쉼없이 공격을 퍼부어 마족이 계속 물러설 수밖에 없도록 만들었다.

싸움은 계속 이런 식이었다.

마족은 창신 1대의 대원들을 먼저 죽이고자 했다. 그들이 뒤에서 자꾸 훼방을 놓는 바람에 싸움이 원활하지 않았던 탓이다.

당연히 박민희, 강전구, 황태성, 임현우 같은 창신 1대의 강자들은 다가오는 마족을 뒤로 밀어내는 데 목숨을 걸었다. 창신 1대의 디버프가 약해지는 순간 모조리 전멸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마족들은 그냥 맥없이 물러서지 않았다.

꽈과광!

뒤로 밀려나면서도 놈들이 쏟아 낸 광선 중 몇 개가 창신 1대의 방어막을 뚫었다.

“끄아아악!”

처절한 비명이 울려 퍼졌다. 병사 한 명이 당한 것 같았다.

‘아홉 명째인가?’

박민희는 이를 악물고 마족을 끝까지 몰아붙였다.

흔들려서는 안된다.

피해는 폭발물과도 같아서, 까딱 잘못하면 도미노처럼 연쇄반응이 일어나는 것이다.

가벼운 잽 하나가 잽 두 개, 세 개가 되고, 그것마저 허용하면 그다음엔 묵직한 스트레이트와 어퍼컷 훅이 연달아 들어와서 쿵! 하고 누워 버린다.

정신 바짝 차리고 후속타를 잘 쳐 내다 보면, 불현듯 거꾸로 한 방 먹여 줄 기회도 오는 것이다.

바로 지금처럼!

꽈릉!

쩌엉-

카가가각!

초음속의 검이 휘둘러지고 이번에는 아까와 달리 짜릿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마족의 가슴팍에서 불똥이 팍 튀더니, 검은 연기와 같은 것이 질질 새어 나왔다. 그건 마족의 피였다.

처음으로 그럴듯한 상처를 입은 마족이 뒤로 훌쩍 물러섰다. 자기 상처를 한번 보고 박민희를 한번 본다. 로봇처럼 무자비해 보이기만 하던 마족의 눈빛에 처음으로 감정이라는 것이 실렸다. 그것은 ‘황당함’ 또는 ‘답답함’.

박민희는 그 모습을 보고 기분 좋게 웃었다.

쿨럭!

더 몰아붙이고 싶지만 숨이 턱까지 차올랐기 때문에 박민희도 뒤로 훌쩍 물러섰다.

쿨럭! 쿨럭!

아… 숨이 차서 그런 거라고 생각했는데, 다시 보니까 속이 터졌는지 기침에 피가 섞여 나왔다.

그래도 박민희는 꿋꿋하게 버티고 섰다.

‘아직 질 수 없지. 저 곰탱이도 저렇게 버티고 있는데.’

박민희가 옆을 흘깃 바라보았다. 거기에는 강전구가 듬직하게 서 있었다. 온몸에 피가 흘러서 사람인지 핏덩이인지 구분이 가지 않았지만, 두 다리만큼은 튼튼하게 대지를 밟고 머리로는 하늘을 이고 있다.

강전구가 박민희의 시선을 눈치채고 씨익 웃었다.

“좀만 버티죠. 지원이 올 겁니다.”

“지원? 어떻게 알고. 우리가 습격을 받았다는 걸 알기는 알겠어? 통신도 다 두절됐는데. 그리고 우리 소 사령관님 바빠서 지구에 없을 수도 있다.”

“누가 사령관님이 온대요?”

“그럼 누가 와.”

“오겠죠. 통신이 두절되어도 박민희 대대장님이 어디서 뭐 하는지 알아낼 만한 사람이.”

“그게 뭔 개소리야?”

박민희가 인상을 팍 쓰며 강전구를 돌아보자 강전구는 어깨를 으쓱 들어 보았다.

바로 그때였다, 멀리서 김민수의 외침이 들린 건.

“박민희 씨!”

멀리 보였다, 결계를 걷고 나타나는 김민수와 서민서 그리고 그 뒤로 늘어선 창신 2대가.

특히 김민수의 글썽거리는 눈동자와 박민희를 확인하고 기뻐서 활짝 웃는 입매는 그 먼 거리에서도 확실하게 보였다.

그걸 본 강전구가 히죽 웃었다.

“거봐요. 알고 온다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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