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VVVIP 차원 쇼퍼-99화 (99/212)

16. 다음에 밥 한번 먹어요

1시간은 짧다.

케사리니 아몬의 작업실에 들어서자마자 바삐 본론부터 쏟아 내야 했던 이유였다.

쿵!

일단 가지고 온 아갈타의 차원강습병 하나를 꺼내 놓았다. 누군가의 초능력으로 몸이 완전히 마비된 차원강습병은 이 와중에 발버둥 치지도 못하고, 눈동자도 굴리지 못하고, 그저 심장만 미친 듯 뛰고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로브를 푹 눌러쓴 케사리니 아몬은 대번에 큰 관심을 보였다.

[이거 어떻게 한 거야? 왜 자폭을 안 해? 잠깐만… 와! 지금 이거 권능을 처발라 막아 놓은 건가? 무슨 와이번 잡는 데 드래곤 슬레이어를 쓰는 격일세.]

나는 그런 아몬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아몬 씨! 차원강습 시스템을 개조해 보려고 합니다. 나중에는 이거 카피도 하고 싶고요. 연구 좀 부탁할게요.”

아몬이 심플하게 답했다.

[사례는?]

“사례 필요하면 다른 데 가고요. 차원강습 시스템 한번 뜯어 보고 싶어서 안달 난 인챈터가 얼마나 많은지 알잖아요?”

어? 그런데 [만상공감]으로 느껴지는 반응이 어째 싸-했다. 차원강습 시스템이라는 말을 들으면 두근두근 설레어 할 줄 알았는데, 그냥 풀 씹는 소처럼 무덤덤한 감각만 느껴졌다.

후드에 가려 얼굴이 잘 보이지도 않는 아몬이 물끄러며 나를 바라보더니 손을 설레설레 저었다.

[그럼 다른 데 가.]

“에? 진짜요? 차원강습 시스템 안 궁금해요?”

[뭐, 대충 어떤 인챈트가 들어갔는지는 안다. 구조도 알고. 알아도 못 쓰는 지식이긴 하지만… 안 궁금해. 가, 그냥.]

“아이 왜 이러세요.”

나는 돌아서는 아몬의 소맷자락을 잡으며 진땀을 흘렸다.

‘차원강습 시스템에 어떤 인챈트가 들어갔는지 이미 안다고?’

대체 이 사람은 정체가 뭘까? 절대 쓰레기 거리에 있을 실력자가 아니라는 건 예전부터 알았지만, 전략무기에 관해서도 해박하게 알고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만상공감]으로 감지해 보니 허세도 절대 아니었다. 애초에 허세를 부리는 존재도 아니었고.

이렇게 되면 이야기가 달라질 수밖에 없었다.

경력자와 초심자는 다르다.

내가 아는 최고의 인챈터가 이미 차원강습 시스템을 알고 있다면 무조건 그에게 맡겨야 했다.

완벽한 분석을 예상보다 훨씬 빨리 끝낼 수도 있는 이런 기회를 놓칠 수는 없었으니까.

나는 서둘러 외쳤다.

“타키온 500알!”

아, 그의 심장은 타키온 500알에 아무런 감흥도 보이질 않았다.

“아, 망할… 요즘 진짜 돈 없는데……”

“아니, 아니, 말실수예요. 5,000알!”

꿈틀.

그제야 아몬의 근육이 반응을 보였다. 심장은… 느리게 뛰던 게 본래 속도를 되찾는 정도. 대충, 아주 끌리진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영 나쁘지도 않은? 딱 그 정도 반응으로 보였다.

아몬이 심드렁하게 대꾸했다.

[너, 암시장에서 차원강습 시스템 사면 얼마인지 알지? 하나 구하려고 해도 백만 타키온은 든다는 것… 알지?]

그러니까 100만 타키온짜리의 비밀을 고작 5,000알로 퉁치려고 하냐는 소리였다. 말은 그렇겠지. 하지만 나는 만상공감으로 분명하게 잡아냈다. 아몬의 몸은 솔직했다. 5,000알, 나쁘지 않다고 느끼고 있잖아?

아몬의 입장에서는 그럴 것도 같았다. 이미 알고 있다면 분석도 더 쉬울 것이었고, 또 자신이 알고 있는 시스템과 어떻게 다른지 비교하면서 얻는 것도 있을 것이다. 그런 일을 하면서 5,000알을 받으면 쏠쏠한 벌이가 아닐까? 무엇보다도… 아몬이란 사람은 과욕을 부리는 사람이 아니었다. 자의인지 타의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쓰레기 거리에 머물러 있다는 사실만 봐도 알 수 있는 일.

“에이. 이거 한 번 하는 장사 아니잖아요. 분석 잘되고 성과가 나면, 나중에 차원강습 시스템 튜닝 하거나 새로 카피할 때도 여기로 가져올게요. 합당한 사례금 가지고.”

이어지는 내 설득에 결국 아몬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그래. 알겠다, 5,000알.]

아몬이 손짓을 하자, 마비된 아갈타의 차원강습병이 둥실둥실 떠서 아몬의 작업대로 향했다. 인권이고 뭐고 없는 참혹한 모습이지만… 아갈타 놈들한테 저러는 건 하나도 안 미안했다. 아, 애초에 인류가 아니니 인권이란 말도 적용 안 되는 거려나?

실없는 생각을 하며 나는 타키온 5,000알을 주섬주섬 꺼내 아몬에게 건넸다.

예기치 않은 지출에 손이 떨렸다. 안 그래도 요즘 창신 1대랑 창신 2대 장비 맞춰 주고, 각종 산업 진흥과 도시 기능 유지에 필요한 물품들을 타키넷에서 사 오느라 허리가 휠 지경인데… 죽겠네, 정말.

[타키온은 언제 봐도 참 예쁘단 말야.]

나를 놀리려는 건지, 후드 아래로 드러난 아몬의 입이 실쭉 웃음을 짓는다.

욱하는 마음에 뭐라도 한마디 쏘아 주려고 아몬을 바라봤다.

그런데 바로 다음 순간.

웃고 있던 아몬의 입이 굳었다. 어렴풋이 보이던 후드 사이의 얼굴이 어둡게 물들어 이내 아무것도 보이지 않게 되었다.

아몬이 주춤주춤 뒤로 물러섰다.

누가 봐도 이상한 반응.

“갑자기 왜 그래요?”

아몬이 손가락을 뻗어 나를 가리켰다.

[자, 잠깐? 내가 잘못 봤나? 아닌데! 너, 너너, 뭐야?]

그가 이렇게 당황한 모습은 처음 보았다.

“뭡니까?”

[아니 이거… 이거 말이 안 되는데? 이런 건 로드께도 들은 적이 없는… 아니, 이럴 때가 아니지.]

아몬은 허겁지겁 품에서 길쭉한 지팡이와 구슬 따위를 꺼내 허공에 띄워 두고, 나를 바라보며 중얼중얼 주문을 외우고, 구슬에서 번쩍이는 불빛을 확인하고… 별짓을 다했다. 뭔가 나를 해코지하려고 한다기보다는 무언가를 살펴보는 듯했다.

한참을 그렇게 난리를 치던 아몬은 믿을 수 없다는 기색으로 내게 물었다.

[너, 설마 지금 ‘자유’를 발동한 상태야? 아니… 그렇다고 봐도 너무 이상한테? 아니, 근데 애초에 어떻게?]

완전히 혼란에 빠졌는지 안절부절못했다. 그리고 나는 나대로 놀랐다.

“뭔가 봤습니까?”

설마 내가 두 명이 된 걸 알아봤다고?

물론 애초에 ‘자유’를 인챈트한 게 아몬이기는 했다. 하지만 [만상공감]으로 완전히 다른 차원으로 승화해 사용했기에, 아몬이 그걸 알아볼 거라는 생각은 애당초 하질 않았다.

이건 좀 놀라웠다.

내 물음에 아몬은 로브의 머리 부분을 쥐어뜯었다.

[보긴 뭘 봐! 모르겠어! 뭔가 이상한 짓을 했다는 건 알겠는데 뭔 짓을 했는지 전혀 모르겠다고! 너 대체 뭐야? 이거 어떻게 한 거야? 너, 지금 어떤 상태지?]

아몬이 내 손을 덥석 잡고 물었다. 그리곤 또 불에 덴 듯 손을 뗐다. 갑자기 긴장한 어조로 물었다.

[아니신가? 혹시 위에서 오셨습니까? 설마 스승님께서 보내셨나요? 아니, 아닌데……? 아무리 봐도 그건 아닌데… 그럴 리도 없는데… 근데 이 존재감은? 너, 대체 뭐지?]

아몬이 이렇게 절박하게 구는 것은 처음 봤다. ‘로드’, ‘위’, ‘스승님’, ‘존재감’. 뭔가 의미심장한 키워드들이 줄줄 튀어나왔다. 이거, 잘하면 이렇게 걸출한 인챈터가 왜 쓰레기 거리에서 썩고 있는지 그 뒷이야기까지 다 딸려 나올 기세.

하지만 아몬은 빠르게 혼란을 정리하고 정신을 수습했다.

[그래. 그쪽은 확실히 아닌 것 같다… 그래. 아냐. 그냥 ‘자유’에 뭔가 변형을 준 거지? 근데 어떻게? 제발 좀 가르쳐 줘. 지금 어떤 상태인 거야? 어떻게 한 거지?]

아주 흥미롭다.

온몸으로 ‘제발 뭐라도 좀 가르쳐다오.’라는 감정을 표출하고 있는 아몬.

세상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는 듯이 굴었던 위대한 인챈터가 처음으로 보여 주는 절박한 호기심.

이유는 모르겠지만, ‘자유’를 변형한 효과가 아몬에게 아주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가슴 한구석이 짜릿했다.

이건 뭐랄까…….

‘아몬과의 관계를 변화시킬 수 있는 절호의 기회 같은데?’

그런 말도 있지 않은가? 아쉬운 놈이 우물을 파는 거다.

그래서 나도 태도를 바꿨다.

허리를 좀 더 쭉 펴고, 시선은 무심하게 던진다.

“그건 제가 지금은 좀 일정이 바빠서 당장 설명드리기가 어렵고…….”

아몬의 심장박동이 한층 더 쫄깃해졌다.

그 감각을 즐기며 나는 그를 찾아온 두 번째 용건을 꺼냈다. 지나친 나의 업무 부담을 줄여 주기 위해 꼭 필요한 물건.

“오늘은 일단, 상의하고 싶은 게 좀 있었는데요. 혹시 자동기계 같은 인챈트도 가능합니까? 그러니까 [안티소울]을 발휘해서 필요한 곳만 자동으로 알아서 툭툭 잘라 내는 그런 아이템이요. 지구에서는 그런 걸 인공지능 로봇이라고 하는데…….”

이런 아이템이 있다면 장인들이 차원강습 시스템을 분해 조립 할 때마다 내가 옆에 붙어 있지 않아도 될 것이다. 그 아이템이 알아서 초능력의 충돌 여파를 상쇄해 줄 테니까.

일의 효율성이 비약적으로 개선되는 것이다.

나에게는 절박한 문제. 하지만 아몬으로서는 전혀 관심 없는 주제였을 것이다.

내 갑작스러운 화제 전환에 그는 후드 속에서 이를 악물었다.

하지만 감히 그걸 티 내지 못했다.

이를 악물고 잠시 심호흡을 하던 아몬은 이내 부드러운 목소리로 내 질문에 답했다. 아몬도 계산이 빠른 사람이다.

[인공지능 로봇? 음… 에고 시스템을 말하는 건가?]

오, 뭔가 알고 있는 모양이네?

“네. 제가 신경 안 써도 알아서 돌아가고, 복잡하게 터져 나오는 영력을 세밀하게 자를 수 있을 정도로 똑똑하고 강한 것으로요.”

내가 깊은 관심을 보이자, 아몬은 [자유] 주문이 어떻게 변형된 건지 묻고 싶어서 조급한 심장박동을 억지로 다스리며 내 질문에 차근차근 친절하게 대답해 주기 시작했다.

[그 정도라면 에고 시스템의 코어로 쓸 고급 영령이 필요하겠네.]

영령?

처음 들어 보는 개념이었다.

“영령? 그건… 어디서 구할 수 있나요?”

[못 구해. 갯펄 시장 비밀 상점가에 가끔 물량이 나온다는 소문은 들었는데… 물량 나오자마자 팔릴걸? 그 귀한 게 있으면 자기가 쓰지 누가 팔려고 하겠어?]

못 구한다고? 젠장. 다른 방법을 찾아봐야 하나?

고민에 빠진 나에게 아몬이 덧붙였다.

[그런데 너는 고급 영령을 줄줄 달고 다니잖아? 왜 그걸 걱정해?]

응? 고급 영령을 줄줄 달고 다녀? 내가?

‘잠깐만… 혹시?’

[아, 몰랐구나? 너 들고 다니는 단검에도 영령이 있고, 지금 입은 그 로드 비스름한 방어구에도 영령이 붙어 있고, 너 쓰는 주력 장비에는 다 고급 영령이 붙어 있던데? 원래 그렇게 좋은 물건을 완전히 길들이면 고급 영령이 태어날 수밖에 없긴 하거든. 대체 무슨 수로 그렇게 말도 안 되는 속도로 길들이기를 끝마치는지는 이해가 안 가지만… 아무튼 넌 내가 본 사람 중에 제일 많은 고급 영령을 데리고 다니는 사람이야.]

그 말을 듣는 순간.

머릿속에서 벼락이 치는 것 같았다.

맞다. 명품이 나에게 완전히 길들고 나면 살아 있는 것처럼 행동하긴 했다.

스스로 떠오르기도 하고 내 말에 우웅- 하고 울어서 대답할 때도 있었다.

‘그게 영령이었구나!’

[그래. 안티소울을 쓰는 에고 시스템이 필요하다면… 마침 잘됐네! 그 쪼그만 단검 있잖아? 과일 깎아 먹기 좋은 그거. 그걸로 내가 에고 시스템 만들어 줄게. 그리고 이참에 새 칼 만들어 쓰는 게 어때? 요즘 돈도 잘 버니까 훨씬 좋은 칼도 만들 수 있을 것 같은데.]

상상도 못 한 방책이었다.

‘청하가 에고 시스템이 되어 직접 장인들의 업무를 도와준다면 베스트지!’

청하는 내 검로를 잘 알고 있는 녀석이다. 내가 있는 것만큼이나 완벽하게 장인들의 업무를 보조할 수 있을 것이다.

일이 되려고 하니 술술 풀리는 느낌.

나는 아몬의 제안을 바로 받아들였다.

“좋습니다. 그럼 이리저리 잴 것 없이 바로 진행하죠. 그런데… 에고 시스템하고 새 칼까지 하면 공임은 어떻게 됩니까? 요즘 좀 많이 쪼들리는데… 비싼가요……?”

내가 모르는 체하고 자금난을 호소하며 눈치를 보자, 아몬은 후드 속에서 이를 또 꾹 악물었다. 하지만 흘러나오는 목소리는 여전히 상냥하기 그지없었다.

[에이. 뭐 그런 걸로 사례를 받겠어? 우리 사이에.]

그는 내게서 청하를 받아 가며 슬쩍 내 팔꿈치를 쳤다.

[대신 다음에 와서 얘기나 좀 들려줘. 알지? 우리 사이에. 허심탄회하게.]

결국 ‘자유’의 활용에 대해 제대로 된 설명을 듣고 싶어서 다 공짜로 해 주겠다는 의미였다.

‘대체 자유가 어떤 주문이길래 아몬이 이렇게까지 목매는 걸까?’

나는 깊은 호기심을 느끼며 사람 좋은 웃음으로 아몬과 다음번 만남을 기약했다.

“알았어요. 다음에 꼭 밥 한번 먹어요. 다만 오늘은 제가 조금 바빠서 이만…….”

그런데 갑자기 아몬이 돌아서려던 나를 잡았다. 뭐야, 밥 한번 먹자는 대답이 성의 없어서 이러나? 잠시 그런 생각을 했는데, 정작 아몬은 전혀 다른 이야기를 꺼냈다.

[아, 그런데 전에 자네가 보내 준 그 약초꾼 있잖아?]

약초꾼?

[이름이… 아, 아… 뭐더라? 허, 아, 그렇지. 허묵.]

맞다. 그러고 보니까 수련이란 명목으로 허묵을 아몬의 심부름꾼으로 붙였었다. 주로 하는 일이 약초 채집인 모양이다. 그런데 허묵이 왜?

[그 친구가 지금 온다고 좀 보자는데?]

허묵이? 나를?

못 볼 사이는 아니었지만… 지금은 시간이 없었다.

데미안과 까막이가 나타르 쪽에 가 있긴 했지만 나도 거기 한번 들르긴 해야 했으니까.

‘자유’의 지속 시간이 끝날 때까지 남은 시간은 이제 40분 정도. 허묵에게 할애하기엔 아까웠다.

“다음에 이야기하겠다고 전해 주세요.”

그렇게 적당히 거절하고 넘어가려고 했다. 그런데 아몬이 손을 올려 나를 제지했다. 잠시 어딘가에 귀를 기울이는가 싶던 그는 이내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니, 지금 1분 안에 올 거니까 조금만 기다려 달라는데? 잠깐만… 얘 왜 이렇게 다급해? 음… 그러니까 심부름하다가 우연히 아갈타 군인의 뒤를 미행하게 됐다고? 와… 놈들의 습격 계획과 포대의 위치까지 알아냈다는데……? 통신 연결해 줄까?]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