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화전 양면 전술
백두산 천지.
눈이 내려 새하얗게 얼어붙은 그 꼭대기에서 권승리는 환하게 웃었다.
“거봐. 내가 말했잖아. 소시민 사령관 진짜 장난 아니라니까?”
멀리 떨어진 곳에 있는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며 어깨까지 들썩일 정도로 기뻐했다.
“아, 증명? 하여튼 진짜 까다롭게 구네… 아무튼 잘했어. 검웅 씨가 맘에 드는 일을 할 때도 있네? 여차하면 나도 도울게. 응. 제대로 잡아다가 소시민 사령관 앞에 촤악 깔아 줘. 그리고 이번에는 생색 좀 내자. 이렇게까지 해 주는데 자꾸 외차원하고 교류하면 진짜 서운할 수 있다. 뭔가 좀 변화를 보여 달라. 뭐 그 정도 요구는 해야지.”
헤실헤실 웃다가 야무진 표정을 지으며 신신당부를 한다.
그러더니 천천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갑자기 환한 웃음이 가득하던 그녀의 얼굴에 백두산 꼭대기보다 더 차가운 냉기가 몰아쳤다.
“아, 여기? 다 정리했어. 좀 늦었는지, 화산분화가 시작됐더라고. 다행히 아직 가능한 단계길래 ‘없던 일’로 만들었어. 그랬더니 마족들이 알아서 기어 나오더라. 10마리쯤 죽였어… 에이, 진즉 알았으면 얘네들도 생포해 놓는 건데. 응? 내 걱정을 하는 거야? 걱정 마. 다 비틀어 놨지. 아갈타 놈들. 누가 죽였는지 꿈에도 모를 거야. 누가 누굴 걱정해? 검웅 씨나 조심해.”
그녀의 발치에는 검 하나가 깊이 꽂혀 있었다. 검이 꽂힌 바닥에서는 용암이 들썩였지만 밖으로 솟구치려던 용암의 흐름은 검 끝을 기점으로 완전히 꺾여서 다시 땅속 깊은 곳으로 되돌아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 주변으로 시커먼 시체들이 흩어져 있었다. 뿔이 돋아난 전투 슈트 따위 소용도 없이, 갈기갈기 찢겨서 몇 구인지 세기도 어려운 시체들이 어지러이 즐비해 있었다.
기묘하게도 피는 단 한 방울도 보이지 않았다.
* * *
또 언제 잠이 들었던 걸까?
눈을 떠 보니 밤이었다.
‘…거의 나았나?’
온 근육이 욱신거리고 빵빵하던 영력은 물먹은 천처럼 무겁게 축 늘어져 있었지만… 분명 회복 중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기분 좋은 열기가 온몸을 어루만진다. 근육과 뼈가 자라고 재생이 안 된다는 연골마저도 다시 자라는 이 감각.
물이라도 마시려고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러다가 침대 옆 창가에 기대 앉은 서민서를 보았다. 피곤했는지 잠들어 있다. 달빛이 내려 그녀의 얼굴 반쪽을 부드럽게 비춘다.
‘아… 민서 왔구나?’
놀라지는 않았다. [만상공감]으로 그녀가 있음을 이미 느끼고 있었으니까. 오히려 내가 놀란 건, 녀석이 내 옆에 있는 걸 너무 당연하게 생각해서 특별히 의식하지도 않았다는 점이었다.
가족이라는 게 이런 걸까? 의식하지 않아도 곁에 있고 다시 돌아올 자리가 되어 주는 사람.
‘짜식…….’
나는 잠이 든 녀석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 손길을 느꼈는지 서민서가 보시락거리며 눈을 떴다. 그녀의 까맣고 동그란 눈동자가 나와 마주친다.
깜빡. 깜빡.
서민서는 창틀에 머리를 기댄 그대로 나를 바라보다가 배시시 웃었다.
“이제 몸은 좀 괜찮아요?”
“거뜬하지.”
“그럼 백두산으로 가나?”
“백두산은 왜?”
“한라산 화산 폭발을 막는다면서요. 그거 막았으면 백두산도 막아야 되는 거 아니에요?”
착한 녀석이다. 이 녀석, 전생에 오래 살아남았으면 아마 영웅이 되었을 것이다. 기술자들을 구조하러 전국을 누비는 피곤한 일도 사명감을 가지고 기쁘게 하는 녀석이었다. 그래서 파트너로 까막이를 붙였지. 서민서만 있으면 기술자를 구하는 것보다는 사람들 구하는 것에 더 신경을 쓸 것 같았거든.
“백두산은 걱정 없대.”
“에? 왜요?”
“거기엔 권승리 아가씨가 직접 갔대.”
“오, 그럼 무혼권가의 주력이 파견된 건가?”
“아니… 혼자 간 모양인데, 그거면 충분한가 봐.”
의문이긴 했다. 권승리가 그렇게 강한가? 그녀가 싸우는 모습도 보긴 봤었다. 어비스 게이트 앞에서 하준광과 드잡이질을 했었지. 그 나이를 생각하면 믿어지지 않게 강하긴 했지만… 글쎄? 혼자서 마족들을 다 상대할 정도인가? 하지만 최치국은 권승리에 대해서는 거의 종교에 가까운 믿음을 보였다.
워낙 자신만만하길래 나도 더 이상은 의문을 제기하지 않았다.
뭐… 알아서 잘 하겠지.
가장 신비에 싸여 있었으나, 가장 강할지도 모른다고 늘상 회자되던 영웅이 바로 권승리였으니까.
“음… 그래도 되나? 그 아가씨 너무 어리던데. 아기아기하던데…….”
서민서는 권승리가 걱정되는지 살짝 미간을 모았다가 흘깃 시계를 보더니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에이. 뭐, 내가 무혼권가까지 걱정해 줄 입장은 아니지. 아무튼 선배. 저 갑니다? 빨리 나아요.”
“벌써 가?”
“당연하죠. 지금 사방이 난리예요. 한 명이라도 더 구해야지. 아참, 이거 받아요!”
서민서는 늘어지게 기지개를 한 번 켜고 내게 야구공만 한 구슬 하나를 던졌다.
“이게 뭐야?”
“자라탕이래요. 그거 테이블 위에 깨뜨리면, 뜨끈뜨끈한 자라탕 한 상이 떡 차려집니다.”
자라? 먹으면 장수하고 남자에게도 좋다는 그거?
갑자기?
“아니. 이번에 구해 준 사람이 한식 장인이라잖아요. 친한 선배가 몸져 누워 있다고 했더니 그게 그렇게 몸에 좋대요. 새해 선물도 못 해 줬는데 선배 생각나서 구해 왔죠. 그거 엄청 비싼 거예요. 자라 값만 100만 원은 줬다니까요.”
아니 무슨 뜬금없이 자라를 백만 원이나 주고? 그리고 몸에 좋다는 게… 그, 오래 산다는 그 말 하는 거지? 뭐 남자한테 좋고… 그거 아니지?
“아! 아무튼 그거 먹고 얼른 일어나요. 나 진짜 갑니다!”
공간이 드드득 진동하더니 서민서가 꺼지듯 사라졌다. [점멸]까지 써서 떠나다니… 뺨이 살짝 붉게 물들어 있었던 것 같았다. 선물을 준 게 부끄러운 걸까, 아니면 선물로 자라탕을 준 게 부끄러운 걸까.
“알 수가 없네.”
때마침 창밖이 하얗게 밝아 오고 있었다. 회복 중인 몸은 여전히 열기를 훅훅 뿜어내고 있다.
해가 다 뜨고 나면 나는 어제보다 더 강해져 있을 것이다.
…여러모로.
* * *
어느 날 아침.
최치국은 용산 제2지역구 사령부의 마당으로 1톤 트럭들을 거느리고 당당한 보무로 나타났다.
나는 비서 김세희 씨의 보고를 받자마자 벌떡 일어나서 창가에 섰다.
차문 너머로 수행 인원들에게 뭐라고 지시를 내리는 최치국의 모습이 보였다.
그의 뒤로 트럭들이 하나둘 도열하고 있었다.
‘가만, 저게 몇 대야? 넷, 여섯, 여덟… 왜 이렇게 많아? 열, 열 넷?”
무려 14대의 트럭이었다!
짐칸엔 모두 파란색 방수천으로 꽁꽁 감싸인 무언가가가 실려 있었다.
그 모습을 보는 순간, 내 심장이 너무 크게 뛰어서 가슴을 뚫고 나올 것만 같았다.
‘우와! 우와아아-! 설마 저게? 진짜 저게 전부 다?’
보이진 않아도 [만상공감]으로 알고 있다. 저게 전부다 그게 맞다. 그런데도… 그런데도 믿기지가 않는다.
한 다섯 개 정도 될 줄 알았는데, 열네 개라고?
고아원에서 처음 받았던 크리스마스 선물 이래로 이렇게 기뻤던 적이 있었던가? 나는 창문을 벌컥 열고 그대로 연무장을 향해 뛰어내렸다.
그 사이 최치국은 뜸 들이는 것도 없이 그대로 트럭 뒤에 쳐진 방수천을 휙휙 걷어 냈다. 과연 농담을 모르는 사나이답다! 최고다.
우와… 우아아아아-!
방수천 아래 드러나는 것들은 아갈타의 차원강습병들이었다. 그것도 한창 차원 강습 시스템을 발동해서 머리에 뿔이 돋아나고 몸 전체가 부푼 상태. 몸무게가 상당한지 트럭 하나에 하나씩 앉아 있었다.
‘와, 저걸 어떻게 생포한 거지?’
자세히 살펴보니, 저마다 상태가 달랐다.
어떤 놈은 인지 능력이 완전히 맛이 갔다. 놈의 감각은 온통 뿌옇게 흐려져서 마치 꿈속에 있는 것 같았다.
또 어떤 놈은 인지 능력은 멀쩡했다. 내가 다가가자 나를 또렷이 바라본다. 하지만 위기감은 완전히 상실한 상태였다. 지금 자신이 어떤 처지에 있는지 모르고 그냥 바보처럼 나를 바라보고만 있었다.
또 다른 놈은 나를 또렷이 인지하고 분노한 건지, 겁먹은 건지 심장이 쿵쿵 뛰기도 했다. 하지만 몸을 움직이지 못하고 완전히 마비되어 있었다.
‘와… 이거 완전 초능력 박람회잖아?’
차원 강습병 하나하나에게 적용된 초능력이 다 달랐다. 지구인들이 가진 초능력의 위대함을 보여 준다고 하더니… 정말 제대로 준비해 온 최치국이었다.
‘열네 명이나 되는 것으로 보아선 한반도 안에서 잡아 온 물량은 아니다. 분명 다른 나라의 회귀자들과 연합 작전을 펼친 거겠지.’
제주도에서 잡은 여섯에 내가 따로 잡은 한 놈. 그리고 권승리가 정리했다는 백두산에는 무려 열 명이나 되는 마족이 있었다고 들었다. 그럼 한반도에서만 벌써 17명의 마족을 처치한 게 된다. 거기서 14명을 더 잡으면 사실상 대한민국의 마족은 씨가 마르는 셈이 되는데, 그건 말이 안 됐다. 내 탐색 장치에 따르면 여전히 서울시에만 일곱 명이 넘는 아갈타 놈들이 활동하고 있었으니까.
그러니 저 14명은 국제적으로 모아 온 놈들이라는 추측이 타당했다.
하지만 그걸 감안해도 정말 엄청났다.
‘고작 나흘 만에 차원강습병 14명을 생포해서 내 앞에 대령시키다니.’
마른침이 절로 목구멍을 넘어갔다.
‘회귀자들… 저력이 정말 대단하구나.’
놀라운 건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이 전투 슈트는 어떻게 침묵시킨 겁니까? 전투 슈트는 스스로 주변 환경을 인지해서 주인이 자력으로 도망칠 수 없다고 판단될 때는 자동으로 자폭을 할 텐데…….”
내 의문에 최치국이 씩 웃었다. 그걸 묻기만을 기다렸다는 듯이 자신감 넘치게 대답했다.
그의 손가락이 차원강습병들을 하나하나 가리켰다.
“이놈. 이놈은 [환술]로 속였습니다.”
환술? 전투 슈트는 무생물이다. [환술]로 속일 수 있을 리가 없을 텐데?
최치국이 씨익 웃으며 답했다.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시는군요. 경지에 도달한 [환술]은 무생물조차 속일 수 있습니다.”
그리곤 여유롭게 그 옆에 있는 차원강습병을 가리켰다.
“그리고 옆에 이놈. 이놈은 [결빙]으로 얼렸습니다.”
결빙? 그렇게 얼려 버리면 당연히 자폭을 해야 하지 않나?
최치국의 웃음이 더욱 진해졌다.
“그건 무엇을 얼리느냐에 따라 다르지요.”
…무엇을 얼렸길래?
“시간을 얼렸습니다.”
와… 미친.
최치국의 손가락이 또다시 움직였다.
“저놈. 저놈은 [절개]로 ‘자폭’이라는 개념 자체를 잘라 냈죠. 그리고 그 옆에 놈은 제가 직접 힘을 썼습니다. 자폭할 때 나오는 에너지를 [굴절]시켜서 다 분출시켜 버렸지요.”
최치국의 손가락이 옆으로 옆으로 움직일 때마다, 내 귀에는 천둥이 우르르 치는 것 같았다.
최치국의 의도가 선명하게 느껴졌다. ‘다시는 지구인들을 무시하지 마라! 초능력이 가진 가능성이 얼마나 크고 위대한지를 느껴 보아라…….’ 그 의도, 내게 분명히 전달되었다.
‘이 정도였어?’
몰랐다. 회귀자면 뭘 하나, 지난 생에 나에게 이런 최상급의 초능력을 견식해 볼 기회 따위는 없었으니까.
그렇기에 나는 더욱더 전율할 수밖에 없었다.
‘상식 밖이잖아?’
자폭은 차원 문명들 간의 기밀 유지를 위해 사용되는 기능이었다. 그중에서도 차원강습시스템에 적용된 것은 정말 지독할 정도로 정교한 자폭 기능이었다. 타키넷의 기기묘묘한 기술로도 해제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차원강습 시스템이 암거래 시장에서 100만 타키온이라는 말도 안 되는 가격으로 거래가 되지 않던가?
그런데 그런 엄청난 기능을 이렇게 갖가지 방법으로 무효화시킬 수 있다고?
초능력의 활용이 이 정도라고?
내 생각의 틀이 완전히 무너지고 새로운 지평이 열렸다.
‘이거 정말 잘만 하면… 만들 수 있는 거 아니야?’
차원강습 시스템의 자체 생산!
원래 지구의 기술만으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아무리 내가 [만상공감]으로 차원강습 시스템을 낱낱이 해부해서 알려 주면 뭐 하겠나? 그건 조선시대 기술자가 핵융합 발전소의 설계도를 쥔 것과 다름이 없었다. 그런데… 그런데… 이 초능력이라는 게 기가 차다. 유해의 마을이 보여 준 기술력도 그랬고… 정말 이 정도라면? 어쩌면 지구에서 내가 생각한 것 이상의 물건들을 만들어 내는 것도 가능한 거 아니야?
저절로 침이 고이는 상상이었다. 심장이 가슴을 뚫고 나올 것 같았다.
‘아니, 아니지. 그렇게 멀리 보고 벌써부터 욕심 부릴 필요도 없어.’
이미 내 눈앞에 이렇게 완벽히 요리된 차원강습병들이 배달된 이상, 할 수 있는 건 정말 많았다.
‘애초 목표는 튜닝이었잖아?’
차원강습 시스템의 커스터마이징. 그건 이미 달성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이렇게 훌륭한 샘플이 열네 개나 있는걸? 분해하고 재조합하고 업그레이드하고! 다 할 수 있다. 다 할 수 있다!
오직 나만을 위한 차원 강습 시스템! 심지어 그걸 하고도 몇 개 남을 거다. 그건 동료들에게 나눠 주면 되겠지.
와… 미친. 이게 정말 꿈이 아니라고?
“굉장… 하군요?”
꿀꺽.
크게 넘어가는 침.
그런데 그런 나를 보며 최치국이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했다.
“하지만 공짜로는 못 드립니다.”
“네?”
아찔하다.
아니 검웅 양반 그게 무슨소리요?
“약속해 주시죠. 외차원으로의 출입을 줄이겠다고요.”
최치국은 완전히 정색하고 말했다.
“당장 그만둘 수 없다면, 단계적으로라도 줄이는 방안을 마련해 보죠. 저희가 이만큼 협력한 만큼… 그 정도 요구는 할 수 있다고 보는데요?”
허어…….
당연히 내 입장에서는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지구의 초능력으로 이렇게 대단한 일을 할 수 있다는 걸 알았으면 당연히 교류를 더 늘려야지, 무슨 개소리야?
하지만 이 마당에 그런 소리를 대놓고 할 수는 없다.
‘뭐라고 대답하지?’
어떻게 하면 손해를 안 보면서도 양보하는 듯한 모습을 보일 수 있을까?
그때, 내 머릿속을 번개처럼 지나가는 생각이 있었다.
‘그래, 맞아! 어차피 앞으로 한 달 정도는 이거 분해하고 튜닝 설계하느라 타키넷에 갈 필요도 없잖아? …좋아. 이걸 써먹자.’
나는 고심하는 척을 하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음… 어렵군요. 그럼 이렇게 할까요?”
“경청하겠습니다.”
“일단 앞으로 한 달간은 타키넷에 출입하지 않겠습니다. 아니… 정리해야 할 게 있으니 딱 한 번만 다녀오고, 그 후 한 달간 출입을 금하도록 하지요.”
“그럼 한 달 후에는 어떻게 하실 겁니까?”
“그건 그때 가서 다시 협상해 보죠. 제 목숨줄을 두고 하는 협상인 만큼 그 정도는 양해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한시적 중지라는 거군요.”
“네. 저도 해 오던 게 있는데 한 번에 모든 체제를 바꿀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일단 작은 약속들부터 이행해 가며 조금씩 신뢰를 쌓는 방식이 낫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리고 일주일에 두 번씩은 외차원에 갔는데 한 달간 가지 않게 된다면 그건 저한테는 정말 엄청난 일입니다.”
틀린 말은 하나도 없었다. 다만, 앞으로 한 달간은 딱히 안 가도 상관이 없다는 사실을 말하지 않았을 뿐.
과연 최치국은 내 말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였다.
“음… 일리가 있습니다. 그럼 그렇게 하죠. 그럼 일단 먼저 신뢰의 의미로 가지고 온 선물을 넘기겠습니다. 조금씩 조금씩 거리를 좁히고 마침내는 뜻을 함께 하게 되길 바랍니다.”
최치국이 흔들리지 않는 단단한 눈빛으로 나를 마주하며 악수를 청했다.
나는 조금 찔리는 마음으로 그 손을 잡았다.
“잘 생각하셨습니다. 무혼권가의 최치국 단장님.”
그래. 미안합니다. 검웅 씨.
“저도 당신들과 뜻을 함께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있습니다.”
나는 결국 당신들과는 함께할 수 없어요. 저한테 지구는 1순위가 아니거든요. 하지만 여러분들의 원조는 필요합니다.
“이번 한라산처럼 제가 필요할 때는 언제든 불러 주세요. 이번 협상처럼 윈윈이 되는 경험이 점점 많아지면 좋지 않겠습니까?”
그러니 제가 쓸 수 있는 건 이 유서 깊은 방법뿐입니다.
앞으로 협상을 타진해 가며 뒤로는 뒤통수 칠 방법을 모색하는 전술…….
그래요.
화전 양면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