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VVVIP 차원 쇼퍼-91화 (91/212)

8. 화이트 게이트

사람들에게는 저마다의 계획이 있다.

괴물과 끝나지 않는 전쟁을 이어 가고 있는 이 시대에도 그건 마찬가지였다.

가령 이런 식이었다.

‘매일 회사 나가고 틈틈이 예비군 활동도 하고… 너무 빠듯하고 살기 힘들지만 그래도 악착같이 저축하고 있으니까 2년 내로 작은 집이라도 살 수 있을 거야. 괴물이 침공하면 부서질 수도 있으니까 튼튼할 필요도 없고 컨네이너 빌딩이면 돼. 그래도 최소 4년은 안전하게 살겠지? 그러다가 설령 집이 무너진다고 해도… 뭐 그때를 대비해서 계속 저축도 하고… 그렇지. 나중에 은퇴한 다음에라도 자식들한테 피해 안 끼치려면 전공 점수도 쌓아 놓아야 돼. 그래야 은퇴 지구에서 자식에게 걱정 안 끼치고 안전하게 살지. 아… 앞이 안 보인다. 할 게 너무 많아. 에효. 그래도 어쩌겠냐. 열심히 살다 보면 어찌어찌 살아지긴 하겠다.’

이렇게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어찌어찌 변수까지 고려하며 10년 뒤, 50년 뒤를 계획했다.

하지만 심리학자들에 따르면 사람이 가진 가장 서투른 능력 중 하나가 미래 예측.

평화롭던 시절, 사랑을 속삭이는 연인들조차 그런 말을 자주 하곤 했다.

‘너하고 이러고 있을 줄은 몰랐는데…….’

현재의 감정과 처지를 미래로 연장해 보려는 시도는 대개 실패한다.

내겐 가망이 없을 것 같았던 사람과 기적처럼 함께하게 되기도 하고, 별 감흥이 없던 사람이 어느덧 불쑥 다가와 있기도 하다. 물론 기적처럼 옆에 아무도 남지 않게 되는 일도 허다했고.

미래는 언제나 예측을 조롱한다.

하물며 전쟁은 오죽할까?

매일매일 출근하던 회사. 밤늦게 퇴근해 돌아가던 집.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그 모든 걸 하루아침에 버리고 피난길을 오를 때는 모른다.

정신 없이 길을 재촉하다가 목이 마르면 개울물에 머리를 처박고 꿀꺽꿀꺽 물을 마시다가 문득 고개를 들었을 때, 그때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드는 것이다.

‘아, 시발… 이 타이밍에 이렇게 될 거라곤…….’

곳곳에서 타오르는 연기, 허공에 뜬 드론들이 레이저 포인터로 안내하는 피난로, 배가 고프다고 우는 첫째. 추위에 벌벌 떠는 둘째. 뛰다가 다리를 삔 아내. 그런 걸 보면 뒤늦게 머릿속이 아득해지는 것이다.

사실 피난이 그렇게 유별난 일은 아니었다. 대격변 이후 수십년째 이어진 전시 체제. 피난 한 번 안 가 본 사람이 어디 있을까?

하지만 문제는 언제나 그게 하필 ‘지금’일지 몰랐다는 것이고, 그게 이렇게 X같았다는 사실을 문득문득 잊어버리고 살았다는 데에 있었다. 매년 여름을 겪어도 매년 그 더위가 놀랍고 매년 겨울을 겪어도 매년 그 추위에 당황하는데… 전쟁은 그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모든 계획이 사라져 버린 황무지에서 벌벌 떨다 보면 마음은 쿠크다스처럼 부스러지는 것이다.

‘이번엔 살아남을 수 있을까?’

위기가 사람을 강하게 만든다고 하지만, 그것도 영웅들에게나 그런 것이다. 순도 높은 미스릴이라면 때릴수록 강해질지 몰라도, 흔해 빠진 잡철은 때릴수록 강해지는 게 아니라 도리어 산산조각 나 못 쓰게 되기 십상.

그나마 예비군들이 제때 집결해서 저항을 시작한 지역들은 이 절망을 분노로 바꿔 내기라도 했을지 모르지만, 기반 시설이 파괴되고 보급도 끊겨 버려서 이렇게 속절없이 피난에 올라야 했던 이들에게는 좌절감이 더욱더 깊이 배겨 들었다.

거제에서 해양 괴수의 가죽을 가공하는 어피魚皮 장인 김석훈 씨도 그랬다.

어느 날 갑자기 해양 괴수들이 몰려와 경계 중이던 군함을 침몰시켰고, 정박된 배와 항구를 박살 냈다.

거기에서 끝이었다면 피난은 없었을 것이다. 오히려 새로운 대괴수용 함선을 건조하기 위해 어피 주문량이 늘어났겠지. 하지만 이번엔 뭔가 달랐다. 처음엔 어피 가공을 위한 촉매제들의 수급이 줄어들더니 머지않아 전기가 끊겼고 곧이어 도로가 끊겨서 식량 수급이 불가능해졌다는 삐라가 살포되었다. ‘시민 여러분 당황하지 말고 드론의 신호를 따라 진주시로 피신하십시오.’ 며칠째 일도 없이 어피 가공공장에 나와 있던 장인들이 그 삐라를 보고 얼굴이 하얗게 질려 집으로 달려 나갔다.

그게 어제였다. 저마다 가족들을 데리고 예비군 훈련에서 배운 대로 피난민들끼리 느슨한 대열을 갖춰 진주시로 향했다. 도로가 파괴되고 그 도로에 하체가 말이고 상체가 오크 같은 괴물들이 뛰어 다니고 있었기에 부득이 산을 넘고 강을 따라 길을 잡았다.

짐을 이고 가족을 데리고 가려니 50킬로미터 남짓한 그 길이 아득하게 멀게만 느껴졌다. 앞서 걷던 피난자였는지… 사람의 시체와 괴물의 주검이 함께 발견될 때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김석훈 씨는 눈을 질끈 감고 기도했다.

부디 우리 가족 앞에는 괴물이 나타나지 않기를. 집에서 들고온 예비군용 소총과 공장에서 가지고 온 해양 괴수의 이빨로 만든 창을… 부디 쓸 일이 없기를. 그도 초능력을 각성한 능력자였지만, 그의 능력은 생산에 특화된 것, 괴물과 드잡이할 자신은 솔직히 없었다.

기도가 통한 것일까? 김석훈 일행은 괴물과 조우하는 일 없이 진주시 외곽 천황산 요새에 도착할 수 있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정부가 1차 집결지로 삼았던 그곳은 이미 지옥이었다.

“흑… 흑흑……! 어차피 우린 모두 죽게 될 거야!”

“으아아악! 닥쳐 개자식아!”

“끝이야… 다 소용없어. 소용없다고!”

“씨발, 저놈 죽여!”

요새 곳곳에서 은빛 안개가 넘실거렸다.

절망한 이들이 종말의 예언을 쏟아내면 그 주변으로 은빛 안개가 퍼져 나가 점점 더 많은 사람들에게 달라붙었다.

우드드득! 콰지지직!

“꺄아아아아!”

“키힉, 키히힛”

안개가 짙어질수록 기괴하게 사지가 꺾여 죽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공포에 질린 비명소리가 사방에 울려 퍼졌다. 당하기 전에 먼저 죽이겠다며 은빛 안개에 둘러싸인 사람들에게 달려드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그 시도조차도 더 많은 공포를 만들어 낼 뿐이었고, CKM복합체는 빠르게 퍼져 나갔다.

김석훈 씨와 그의 가족들은 처음에는 멍하니 그 광경을 바라보기만 했다. 이게 무슨 상황인지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이 상황을 어렴풋이 이해했을 때 그의 마음을 감싸 안은 것은 지독한 공포였다. 정신 간섭과 저주가 만들어 내는 공포는 생산직 능력자인 김석훈의 마음마저 갉아먹을 정도였다.

능력자가 아닌 그의 가족들의 상황은 더더욱 심각했다.

김석훈의 아내 한지수가 심하게 떨리는 목소리로 그를 불렀다. .

“여, 여, 여… 여, 여보……!”

그녀의 머리칼에 은빛 안개가 묻어 있었다. 김석훈은 본능적으로 느꼈다. 좋지 않다. 당황하면 안 돼. 침착해야 돼. 그는 침을 꿀꺽 삼키고 아내의 어깨를 끌어안았다. 그녀를 안심시키기 위해.

하지만 아내의 뒷말을 듣는 순간, 김석훈은 더 이상 침착함을 유지할 수 없었다.

“아, 아, 아이들이……!”

덜덜- 덜덜-

아내보다도 더 크게 몸을 떨고 있는 아이들. 눈자위가 하얗게 드러나고 입가에는 얼핏 거품이 묻었다. 김석훈을 소스라치게 놀라며 두 아이를 끌어안았다.

“안 돼. 안 돼. 얘들아! 정신 차려!”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마음이 산산히 부서지는 것 같았다. 태어나서 겪어 본 적이 없는 공포가 초보 아빠인 김석훈의 온 신경을 잠식했다. 눈앞이 점차 차가운 은빛으로 물들고 있었다. 이러면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아이들이 위험하다고 생각한 순간 치미는 공포를 막을 방법이 없었다.

김석훈은 깨달았다.

‘아, 끝장이구나.’

자신의 힘으로는 자신은커녕 가족을 지키는 것도 불가능했다. 심장만 미친 듯이 쿵쾅대고, 당장이라도 이성이 날아갈 것 같았다.

‘누가 제발… 제발 누가 좀 도와줘……!’

간절하게 빌었지만 실제로 무언가를 기대했던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거기에 대답하는 목소리가 있었다. 자신이 끌어안은 두 아이의 어깨를 툭툭 치며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야, 야, 겁먹지 마. 뭐 저런 거에 겁먹고 그래. 내가 네 나이 땐, 하루에 껌 백 통씩 못 팔면 쌍칼 새끼한테 뺨 스무 대씩 맞고 그랬어. 저딴 거 쌍칼 새끼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야.”

중학생? 고등학생? 그게 헷갈릴 정도로 앳된 목소리였다. 하지만 목소리와 달리 말하는 내용은 아주 훌륭한 꼰대였다.

‘누구지?’

김석훈이 잘 움직여지지 않는 고개를 삐걱삐걱 들어 목소리의 주인을 바라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작은 소년이었다. 세상 다 산 것처럼 날카로운 눈매를 보면 고등학생 같은데, 키를 보면 중1? 중2? 상당히 작았다. 자연 갈색이 아닌, 정말 빛을 받아도 칠흑처럼 까만 눈동자와 머리칼이 인상적이었다.

그때 웬 하얀 손이 불쑥 나타나서 소년의 볼살을 쭈욱 잡아당겼다. 귀여운 인상에 성격 좋고 예쁜 아가씨였다.

“으이그. 요, 요 꼬마 꼰대. 불쌍한 애들한테 설교질이나 하구.”

“아! 아악! 아! 아파요. 민서 누나!”

서민서는 버둥거리는 까막이를 놓아주지 않은 채, 파국으로 치닫고 있는 천황산 요새를 바라보았다.

“하여튼… 난감하네. 피난민들 사이에서 장인들 섭외하러 왔더니, 난리도 아니잖아?”

“누나! 아, 누나! 이것 좀 놔줘오…….”

서민서가 팔짝팔짝 뛰는 까막이를 놓아주자, 까막이 볼을 문질문질하며 헤헤 웃었다.

“헤… 그래도 지구 오니까 볼 꼬집혀도 좋다.”

그 말이 서민서의 마음 한구석을 찔렀는지, 서민서가 애틋한 눈길로 까막이의 머리를 쓰다듬어 줬다.

까막이는 그 손길을 거부하지 않고 실실 웃으며 주변을 둘러보고 있었다.

김석훈으로서는 황당했다. 이 참혹한 풍경 속에서 저렇게 실실거리며 장난이나 치고 있다니. 어른으로서 따끔하게 한 마디라도 하고 싶었다. 하지만 다음 순간 김석훈은 소스라치게 놀랐다.

“훌쩍… 아빠… 무서워…….”

“흐에에엥…….”

눈이 뒤집어져서 덜덜 떨기만 하던 아이들이 어느새 정신을 차리곤 그의 품 안에서 꼼지락거리고 있었다. 언제부터였지? 김석훈은 깨달았다. 까막이가 아이들의 어깨를 툭툭 치며 훈계를 한 순간부터 아이들의 상태가 호전되었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았다. 그냥 확신할 수 있었다.

‘이 사람들이다. 이 사람들이 우릴 살릴 수 있다.’

그는 쩍쩍 갈라지는 목소리로 필사적으로 말을 꺼냈다.

“도와… 도와주세요.”

그러자 까막이가 피식 웃었다.

“아저씨 기술 있어요? 우리 왕초가 기술 있는 사람만 데려오랬는대.”

하지만 서민서가 까막이의 옆구리를 툭, 치자 건들건들 건방 떨던 까막이가 쭈글쭈글 기가 죽었다.

“아우… 이거 비싼 건데…….”

“쓰려고 사 온 거니까 아낌없이 써.”

“예엡.”

까막이가 품에서 동그란 구슬 같은 것을 꺼내 서민서에게 건넸다.

“아까 말했다시피 열 한 개 방위 정확한 위치에 정확한 타이밍으로 동시에 터뜨려야 돼요. 할 수 있죠 누나?”

“당연하지 인마. 다녀올게.”

구구구궁-

서민서의 주변 공간이 흔들린다 싶은 순간.

번쩍!

천황산 요새 11개 위치에서 일제히 신성한 광휘가 터져 나왔다. [점멸]을 연속으로 시전한 서민서가 동시에 11개의 위치에 구슬을 터뜨린 것이다.

“후욱… 휴… 많이 늘었다고 생각했는데도… 열 한 번을 한 번에 뛰면 엄청 토 쏠리네.”

순식간에 할 일을 마치고 돌아온 서민서가 창백한 얼굴로 숨을 몰아쉬었다.

하지만 김석훈은 거기에 집중할 수 없었다.

갑자기 나타난 신성한 빛이 낮게 깔리며 온 세상을 빛나게 하고 있었다. 눈 내린 설원처럼 전혀 낯설고 새롭게 펼쳐지는 풍경.

‘이 빛은 뭐지……?’

공포로 폭주하던 김석훈의 심장 박동이 천천히 가라앉았다. 정말 거짓말처럼 순식간에 두려움이 사라졌다.

들불처럼 번져 나가던 은빛 연기는 황홀한 빛 속에서 스르르 녹아 사라졌다. 아내를 돌아보았다. 아내의 표정도 편안해 보였다.

죽고 죽이고 두려워하던 사람들은 갑자기 찾아온 빛에, 그 마음을 녹이는 따스함에 어리둥절해서 주변을 바라보았다. “천국? 나 죽었나?” 라고 중얼거리는 사람도 있었다.

그 기묘한 고요 속에서 까막이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언제 뛰어나갔는지 천황산 요새 가장 높은 곳에 서서 온 요새에 퍼진 빛을 홀로 받고 있었다.

“자, 이중에서 내가 던전 소재 좀 다룰 줄 아는 기술자다! 이쪽으로 헤쳐 모여요! 자격이 되는 기술자면 용산 2지역구가 책임지고 먹여 주고 재워 줍니다! 절대 안전 보장!”

그 말을 듣는 순간 김석훈은 고민하지 않았다. 아내의 손을 잡고 두 아이를 끌어안고 달려나갔다. 까막이가 있는 곳을 향해서.

‘잡는다. 무슨 일이 있어도 잡는다. 급여? 없어도 좋아. 먹여 주고 재워 주고 지켜 주기만 하면 분골쇄신한다.’

무보수 노동? 그런 것은 본래 그의 인생 계획에 없는 것이었다. 하지만 인생의 굴곡은 언제나 계획의 범위를 넘어서는 것.

김석훈은 고민하지 않았다. 그와 그의 가족을 위한 새로운 동아줄이 바로 저 앞에 있었다.

* * *

반신반의하며 시작했던 기술자 구출 작전.

하지만 막상 시작하고 나니 그 성과는 놀라웠다. 작전을 시작한 지 1주일 만에 벌써 전국에서 몰려든 기술자가 300명을 넘어섰다. 내가 [만상공감]으로 나름 실력을 테스트해서 받았는데도 이 정도였다. 더 무서운 것은 이게 이제 시작이라는 것. 이대로라면 공방거리가 아니라 공단을 차리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 놀라운 성공만큼 전황은 참혹했다.

‘하… 이 많은 기술자가 지난 생에는 다 죽었을 거라는 소리잖아?’

생각만 해도 오싹했다.

‘이러니 말년에 지구에서 명품 하나 보기가 그렇게 어려웠던 거지.’

이번에는 그렇게 허망하게 죽게 두지 않을 것이다.

한 명, 한 명 살뜰히 살려서 실력이 좋으면 직접 데려오고, 실력이 그저 그래도 일단 살려두면 전체 산업에 이바지할 테니 충분히 이득이었다.

그래서 한 명이라도 더 살리기 위해 총력전을 벌이고 있었다. 타키넷에 박아 두었던 까막이까지 동원해서 굴리고 있으니 말 다했지.

하지만 내가 아무리 돈과 인재를 동원하고 데미안의 힘까지 빌렸다고 해도, 휘오가 없었다면 이 작전은 처음부터 성립하지 못했을 것이다.

[아아, 배고프다아.]

아름드리 나무 하나가 지탱하고 있는 거대한 동굴형 던전.

그 한가운데서 휘오는 작은 입을 벌려 칭얼거렸다.

그랬다. ‘입을 벌렸다.’

지금 내가 말하는 휘오는 절에서 볼 수 있는 커다란 은행나무만큼 크게 성장한 세계수를 말하는 게 아니었다. 아, 물론 그 녀석이 맞긴 한데… 뿌리가 박혀 있어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는 그 본체 말고, 일종의 나무정령의 모습으로 구현된 휘오의 정신체를 말하는 것이다.

손바닥만 한 크기의 남자애인지 여자애인지 알 수 없게 그냥 동글동글하게 생긴 귀여운 녀석. 배고프다고 입을 크게 벌리자 귀여운 송곳니가 보였다. 나무 주제에 왜 송곳니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무척 귀엽다.

[일 너무 많이 시켜어.]

휘오는 또 투덜거렸다.

“야, 밥 많이 줬잖아.”

[요즘은 줘도 못 먹어어. 너무 많이 먹었어어. 졸려어.]

신발 사업을 하며 서른 알씩 한달에 두 번씩 먹였던 휘오의 밥은 매주 서른 알씩으로 바뀌었다가 급기야 사흘에 서른 알씩으로 폭증을 했었다.

이렇게 계속 먹여도 되나 싶었던 어느 날, 휘오는 저 손바닥만 한 요정으로 변해 나를 멀뚱멀뚱 바라보았다.

동그란 얼굴. 큰 눈, 하지만 약간 반항적인 눈매. 초록색 머리카락에 잎사귀로 만들어진 옷. 반투명한 형체.

그냥 보는 순간 알았다.

아, 휘오구나.

녀석도 자기소개를 하지 않았다. 자연스럽게 내 어깨에 내려앉아서는 [누나느은?] 하고 서민서의 안부를 물었을 뿐이었다. 그걸 듣고 한 번 더 확신했었다. ···이 새끼 휘오가 맞구나.

아무튼 휘오가 이렇게 성장한 덕택에 전국의 기술자들을 모두 흡수한다는 우리의 원대한 계획은 제대로 빛을 발할 수 있었다.

“알았어. 이번 일만 하고 조금 쉬어.”

[야악속 했어어?]

눈을 가늘게 뜨며 휘오가 화이트 게이트를 열었다.

게이트 너머는 제주도였다.

그래. 마침내 휘오가 공간을 뛰어넘어 원하는 장소에 게이트를 열 수 있게 된 것이다.

휘오가 자유롭게 화이트 게이트를 열 수 있는 거리는 녀석이 처음 뿌리를 내린 인왕산 공백던전을 중심으로 반경 1,500km. 한반도와 일본 일부, 그리고 만주쪽까지도 어느 정도 포함하는 대단한 영역이었다.

덕분에 나는 용산구에서 제주도까지 한 걸음에 넘어가는 기적을 보여 줄 수 있다.

나는 손가락의 휘오 녀석의 머리를 한 번 쓰다듬고 게이트를 넘었다.

제주도.

이번에는 기술자 구출 외에도 해야 할 중요한 일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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