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VVVIP 차원 쇼퍼-90화 (90/212)

7. 기적과 기회

아틀라스.

홀로 하늘을 짊어졌다는 그리스 신화 속 거인의 이름.

회귀한 영웅들은 그 거인처럼 자신들의 희생과 헌신으로 지구를 지켜 내고자 했다. 그들이 진행하는 프로젝트의 이름이 아틀라스 프로젝트인 것에는 그런 사연이 있었다.

사실 터무니없는 소리였다. 진보한 이계인들의 침공으로부터 지구를 자유롭게 하겠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나름대로 확고한 근거 세 가지가 있었다.

첫째, 법칙을 비틀어 신조차 죽일 수 있는 자, 신살자神殺者 권승리.

둘째, 측량할 수 없는 힘을 가진 유물.

셋째, 법칙을 벗어나 기적마저 일으키는 유해.

아갈타의 침략이 가시화되는 순간, 회귀한 영웅들이 각지의 유해를 찾아간 것엔 그런 사정이 있었다.

청와대와 협회 그리고 무혼 권가가 CKM 복합체의 공격을 받았던 날, 최치국 역시 한라산 깊은 곳에 숨겨져 있는 ‘유해의 메아리’를 찾아갔다. 아직 회귀자들만이 알고 있는 비밀 장소였다.

‘여기서 답을 찾을 수 있을까?’

적과 싸우기 위해서는 적을 알아야했다. 본래라면 만안자가 훤히 알고 있었을 것이지만, 아갈타의 마족들이 무슨 장비를 썼는지 만안자는 놈들을 꿰뚫어 볼 수 없었다. 때문에 부득이 이곳까지 찾아와야만 했다.

후우우우웅-

유해의 메아리는 거대한 동굴의 형상을 하고 있었다.

최치국은 침을 한 번 삼키고 동굴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설령 반작용이 일어나더라도… 어떻게든 답을 찾아간다.’

유해라는 것은 불가사의한 현상. 방문자의 간절한 마음이 전혀 예상치 못했던 기적을 불러일으킬 때도 있었지만, 때로는 그 어떤 반응도 이끌어 내지 못하거나 심하면 역풍을 맞을 때도 있었다. 마치 자연처럼 때로는 아주 자애로운 듯했고, 때로는 아주 잔인한 듯도 했다.

하지만 달리 방법이 없었다.

‘유해의 메아리는 질문을 던졌을 때, 그 질문에 반응을 해 준다. 대략 40퍼센트의 확률로 답을 줬다고 했던가? 부디… 잘되었으면 좋겠네.’

그래도 유해들이 이차원의 침략에 꽤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 같다는 가설이 있었으니… 거기에 기대를 걸어 보기로 했다.

최치국은 약간의 긴장을 느끼며 동굴 안을 살폈다.

후우우우- 우우우우-

무언가 말이라도 하려는 듯, 동굴은 바람을 머금고 기묘한 소리를 만들어 내고 있었다.

자세히 보면 지나가는 바람에 형체가 보였다. 파도 포말처럼 하얗게 부서지는 바람의 경계. 한반도에서 가장 강력할 뿐 아니라 가장 신비한 유해로도 손꼽히는 ‘유해의 메아리’.

그 본체는 이 동굴일까, 아니면 동굴을 메우고 용처럼 꿈틀대는 이 바람일까? 그런 생각을 하며 최치국은 동굴의 중심을 향해 걸었다.

휘이이이이-! 퀴이이이잉-!

바람이 한 마리의 용이라면, 그 용은 동굴 중심에 똬리를 틀고 있었다. 중심부에 가까워질수록 바람은 더욱더 세차게 제 살을 비비며 몰아닥쳤다.

최치국은 마누스를 잔뜩 끌어올리고 나서야 겨우 한 발자국 한 발자국, 바람을 헤쳐 나갈 수 있었다. 그러나 중심부에 거의 다 도달했을 때에는 활활 타오르는 듯한 마누스로도 감당이 되지 않았다. 자주포를 퍼부어도 너끈하게 비껴 낼 수 있는 [굴절]의 능력까지 끌어올렸지만, 이곳의 바람은 터무니없이 무겁기만 했다.

툭, 투툭.

한겨울이었는데도 송글송글 맺힌 땀이 턱을 타고 미끄러져 땅에 떨어졌다. 높디높은 절벽이라도 오르는 것처럼, 최치국은 한 걸음 한 걸음을 힘겹고 무겁게 끌고 나가 겨우겨우 동굴의 중심에 섰다.

후우우우우우우우우-

그가 중심에 서는 순간 칼날처럼 휘몰아치던 바람이 일시에 가라앉았다. 잔잔한 저음을 내며 최치국을 중심으로 천천히, 부드럽게 회전했다. 마치 ‘할 말이 있으면 해 보라.’라는 듯이, 바람은 고요하게 최치국에게 집중해 주었다.

최치국은 손수건을 꺼내 범벅이 된 땀을 한번 닦아 내곤 권승리에게 설명을 들은 그대로 읊었다.

“유해의 메아리시여. 묻습니다. 이 땅에 침범한 침략자들의 위치를 알고 싶습니다.”

알고 싶습니다. 알고 싶습니다. 알고 싶습니다.

바람 소리가 잦아든 동굴 속에 최치국의 목소리가 메아리가 되어 울려 퍼졌다.

몇 번 울리면서 멀어지는 그런 단순한 메아리가 아니었다.

요정 수천 마리가 일제히 속삭이는 것처럼, 최치국의 목소리가 수천, 수만 갈래로 복사되어 퍼져 나갔다.

후우우우오! 후우웅!

한순간 바람이 크게 불었다.

알고 싶습니다. 알고 싶습니다.

최치국의 목소리를 실은 바람이 세상 끝까지 달려갈 것처럼 동굴 밖으로 몰려 나갔다. 그리고 갑자기 정적이 찾아왔다. 정적은 꽤 오래 지속되었다.

최치국이 칼자루를 쓰다듬으며 지루함을 달래던 어느 순간, 한라산에서 백두산까지 달렸던 바람이 다시 동굴 안으로 몰려들었다.

휘이이이오오오오오이이이이!

몰려드는 바람에는 어떤 분노 같은 것이 서려 있는 듯했다.

아득히 멀리서 날아온 듯한 메아리가 최치국의 귀를 파고들었다. 아니 귀를 넘어 머릿속에까지 각인되었다. 한꺼번에 쏟아지는 이미지들.

그것은 인간의 언어가 아니었지만, 그걸 듣는 즉시 최치국의 머릿속에는 마족들의 위치가 선명하게 그려졌다.

‘수도권에 15명……. 그리고 구 북한 지역까지 통틀어서 대한민국 영토 전역에 20명. 또… 백두산과 한라산에 각기 3명씩?’

유해의 메아리가 알려 준 정보는 예상과는 다른 것이었다. 일단 규모가 너무 컸다.

‘한반도에만 40명이 넘게 파견되었다고?’

그리고 아주 껄끄러운 사실도 있었다.

‘백두산과 한라산에?’

간악한 아갈타의 마족들이 백두산과 한라산에 무려 3명씩이나 분포한 이유. 최치국은 단 한 가지 가정밖에는 떠올릴 수 없었다.

‘벌써 화산을 폭발시키겠다고?’

지난 생의 악몽이 떠올랐다. 한라산과 백두산이 일시에 폭발하고 한반도 전역이 화산재로 덮였던 그날. 한여름이 갑자기 한겨울로 변했던 그날. 그는 자신의 검이 얼마나 무력한지를 깨달았다.

으득.

최치국은 이를 악물었다. 원래라면 5년 뒤에나 일어났어야 하는 일이었다.

‘침략 속도가 너무 빨라. 아가씨가 적어 준 연대표와 너무 큰 차이가 난다.’

적의 행보는 상상 이상으로 전격적이었다.

나비효과. 소시민과 회귀자들이 만들어 온 작은 변화들이 쌓여서 아갈타의 본성에서 새로운 사령관이 파견되는 결과를 불러온 탓이었다.

하지만 지금 그에겐 그런 걸 따질 틈도 없었다. 시간이 없었다. 화산 분화 같은 것은 의외로 금방 작업을 끝낸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으니까.

‘어떻게든 해야 돼.’

준비 시간이 부족했다거나 적들이 너무 세게 나왔다거나, 이런 건 변명이 될 수 없다고 최치국은 생각했다.

새옹지마라는 말이 있다. 당장은 빠른 적의 침략이 아찔하게 느껴질지라도, 어떻게든 잘 넘기다 보면 오히려 이 상황이 득이 되는 순간도 올지 몰랐다. 그러니 좌절하기보다는 현재에 대응하기 위해 각오를 다하는 게 중요했다.

‘어쨌든, 회귀자인 우리가 책임지고 상황을 수습해야 하는 거다. 일단… 여기 한라산에 있는 놈들은 내가 처리하자.’

객관적으로 보면 최치국의 힘으로는 아갈타의 마족 셋을 당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그래도 최치국은 싸우기로 마음먹었다.

‘한라산이 화산 폭발을 일으키는 모습은 다시 보고 싶지 않아.’

그는 원래 그런 사람이었다. 패배가 확실시되던 싸움에 나서는 게 이번이 처음도 아니었다.

발록이 서울을 파괴하던 그때, 누가 봐도 열세인 최치국이 나섰고 모두의 예상을 깨고 이겼다. 그리고 영웅이 되었다.

두려움?

그보다 마음에 서는 것은 그저 시퍼런 각오뿐.

그렇게 마음을 다지고 동굴 밖으로 나서려는 최치국. 그런 그의 귀로 유해의 메아리가 속삭이는 소리가 들렸다. 꿈속에서 들리는 소리처럼 아주 멀리서 아주 미약하게 웅얼웅얼 들리는 듯한 목소리.

최치국은 그 목소리에서 선명한 분노를 느꼈다.

[도와주마.]

“어?”

최치국이 자리에 우뚝 멈춰 섰다.

휘오오오오-

바람이 최치국의 몸을 감쌌다. 그것은 마누스와 비슷한 듯하면서도 전혀 달랐고, 또 한편으로는 초능력과도 비슷한 느낌을 주는 기묘한 힘이었다.

최치국은 이 신비한 바람이 앞으로 계속 자신과 함께할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동시에 그 정체도 알 수 있었다.

‘…기적!’

아주 낮은 확률로 유해가 일으킨다는 그 기적. 그 강대한 힘이 최치국을 감쌌다. 그 안에서 최치국은 선명하게 느꼈다.

‘유해는… 아갈타의 마족들에게 분노하고 있어.’

최치국은 유해의 분노를 대변하는 존재가 되었다. 모르긴 몰라도 유해가 준 힘이 있다면… 아갈타의 차원 강습병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을 것 같았다. 그야말로 기적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힘.

‘어쩌면 나의 분노와 유해의 분노가 일치한 탓일지도…….’

문득, 그 드물다는 기적이 때마침 지금 발현한 게 마냥 우연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해의 정체가 대체 무엇인지, 왜 아갈타에 분노하는지, 그 이유는 모르겠지만…….

최치국은 동굴의 중심부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후우우우-

동굴 속 바람은 대답이 없었다.

* * *

아니, 내가 무슨 기적을 바라기를 했어, 로또를 바라기를 했어? 그냥 합리적으로 대가를 지불하고 강해지고 싶다는 거잖아? 근데 이건 너무 부당한 거 아냐?

눈물이 핑 돌 것 같은 심정으로 나는 나타르에게 다시 물었다.

“얼마요?”

물론 진짜로 못 들어서 되묻는 게 아니었다. 이런 내 심정을 짐작하는지, 나타르는 다시 액수를 알려 주기보다는 그런 터무니없는 가격이 정해진 배경을 설명해 줬다.

[말했잖아. 차원 강습 시스템은 제대로 된 군수용 물자라서 통제가 빡세다고. 시중에 풀리는 게 얼마 없어. 제작 기술도 각 차원 단위에서 극비로 관리하고.]

“그래서, 사려면 하나당 100만 타키온은 줘야 한다고요?”

[그래. 공급이 제한된 탓에 생긴 가격이야. 뭐… 그런 암거래를 전문으로 하는 꾼이면 또 어떻게 단가를 낮출지도 모르겠는데… 적어도 내가 아는 방법 중에는 없어.]

너무 분한데 또 이해가 아주 안 가는 것도 아니기는 했다. 통제된 물건이라는 게 그런 거였다. 마약이 금지된 나라라면 생산 단가가 천 원인 마약이 10만 원에 팔릴 수도 있는 거고, 총기가 금지된 국가라면 65만 원짜리 소총이 2,000만 원에 팔릴 수도 있는 것이었다. 그나마도 적절한 인맥이 없다면 구할 수 없으리라.

안다. 아는데 억울했다.

“후… 결국 지금은 못 산다는 거네요.”

[그래……. 신발 매출도 많이 떨어졌어. 100만 타키온이면 앞으로 한 1년은 열심히 벌어야 하는 돈이야. 그런데 그 돈을 그렇게 쓰기엔 너무 아깝잖아? 지금 너네 차원 상황을 생각할 때 고작 차원 강습 시스템 하나에 100만 타키온은 사치라고.]

나타르의 말이 맞았다. 그래서 입맛이 썼다.

내가 말없이 인상만 찌푸리고 있자, 나타르가 내 눈치를 슬쩍 보더니 물었다.

[전황은 어때?]

전황? 전황은 엉망진창이었다. 아갈타가 침공하고 고작 일주일 사이에 대한민국에서만 10만 명이 넘는 사망자가 발생했다. 전사한 능력자의 수도 1,000명을 훌쩍 넘겼다. 하지만 사망자보다 더 끔찍한 것은 기반 시설의 파괴였다.

병원이 무너지고 약품 공장이 파괴당하고, 오수가 역류하고 수도와 전기가 끊겼다.

그 처절했다던 육삼공 참사 때도 이렇지는 않았다. 괴물들은 그냥 눈앞에 보이는 것만 부숴 대니, 오히려 땅에 묻힌 각종 배관 시설과 비상 전력망 같은 것은 멀쩡했던 것이다.

하지만 지금, 인류의 산업은 마비되고 도시는 황무지가 되어 갔다. 내가 기억하던 미래의 모습처럼.

그래도 나는 어떻게든 용산구의 공방을 계속 가동시키고 식량과 약품 등 필요한 물자를 공급하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었다. 어려움이 많았지만, 신식 장비로 무장한 창신 1대와 창신 2대의 활약 덕분에 주변 지역보다는 사정이 좋았다. 아직까지는.

내 푸념을 들던 나타르가 혀를 찼다.

[아갈타 놈들, 너희 세계의 문명을 기초부터 말려 죽이려고 하고 있구나? 지독하네.]

그래. 정말 빌어먹을 놈들이다.

[그런데 산업이 마비가 되었다고?]

그랬다. 지구인들도 바보는 아니니 핵심 산업은 어떻게든 방어하고 있었지만, 이미 무너진 산업이 많았다. 훌륭한 기술자들과 장인들이 뿔뿔이 흩어져 피난길에 오르고, 전도유망한 공학자들이 배를 곯으며 죽어 가고 있을 것이다. 이런 사태가 몇 년만 지속되어도 지구의 문명은 퇴보하고, 성장 잠재력은 뿌리째 썩어 버리고 말겠지.

그런데 나타르가 말했다.

[그러면 그거, 기회 아니야?]

…무슨 미친 소리를 하는 거지?

[아니, 그렇잖아. 일자리를 잃고 목숨마저 위험해진 기술자, 장인, 공학자……. 그거 다 공짜로 부려 먹을 수 있는 인력이잖아? 너네 역사에서는 그런 일 없었어? 전쟁 중에 오히려 기술이 급격히 발달하는 거. 그게 다 오갈 데 없는 기술자들을 거두면 밥 주고 잠만 재워 줘도 감지덕지하면서 일하니까 그랬던 거 아냐?]

아니,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지금 우리 기반 시설을 지키는 것만 해도 힘에 부치는데 어떻게 추가로 기술자들을 데려오라고……! 그리고 기술자들은 뭐, 맨손으로 일하나? 다 생산 설비에 자원이 갖춰져야… 음? 근데 잠깐……. 그것도 기술자가 엄청 많아지면 괜찮으려나?

[기술자가 먼저지. 무리를 해서라도 일단 데려오기만 하면 필요한 건 자기들끼리 알아서 만들 거 아냐? 그래도 안 되면 필요한 거 다 타키넷에서 구매해! 내가 돈 빌려줄게. 그렇게 일단 물량만 뽑기 시작하면 그걸 갯펄 시장에서 팔고, 그 돈으로 또 너희 병사를 무장시키고, 그 힘으로 더 많은 기술자와 자원을 확보하고…….]

“어… 잠깐만요?”

나는 손을 들어 신나서 외치는 나타르의 입을 막았다. 그리고 신중하고 냉정하게 계산을 해 보았다. 정말 나타르의 말처럼 될까? 될 수 있을까?

앞으로 재 보고 뒤로 세 보고… 검토 끝에 나는 중얼거렸다.

“…될 거 같은데?”

[그렇지? 좋아! 이참에 사업을 확장해 보자고!]

나타르가 커다란 입술로 푸르르 웃으며 손을 뻗었고 나는 얼결에 그 손을 잡았다.

나라에 위기가 올 때가 진짜 큰돈을 벌 기회라더니… 차원에 위기가 올 때도 그랬던 걸까?

누가 머릿속의 청동 종을 뎅- 하고 울린 것처럼 얼떨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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