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VVVIP 차원 쇼퍼-88화 (88/212)

5. 일단 한 놈 잡자

물론 대한민국의 심장부가 무방비였을 리는 없다.

청와대에서는 던전에서 발견한 최고급 오파츠들이 저절로 발동해 무려 서른 겹이나 되는 방어막을 형성했다.

서른 겹의 방어막. 그것은 아주 멀리서도 보일 정도로 높고 푸르렀다. 신이 만든 성채처럼 든든했다.

하지만 그날.

사람들은 보았다.

콰드드드득!

아갈타의 악마들이 쏘아 낸 은빛 안개가 서른 겹의 방어막을 홍시 껍질처럼 손쉽게 찢어 버리는 모습을. 양파 껍질을 까는 숙련된 손길처럼 은색 안개가 몇 번 왔다 갔다 하자 서른 개의 방어막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은색 안개는 전혀 기세가 줄어들지 않은 채로 하강, 청와대를 덮었다.

인간들이 이룬 것 따위는 완전히 무시해 버리는 압도적인 강함의 도래였다.

푸스스스-

처음 안개가 퍼져 나갔을 때, 청와대에 있던 사람들은 눈을 끔뻑였다.

응?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진 거지?

방어막을 소멸시키는 기세를 보고 자신들도 한순간에 가루가 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주 잠시 동안 그들에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서로가 서로를 멀뚱멀뚱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건 착각이었다.

은빛 안개는 그저 기다리고 있었을 뿐이다.

- 여기는 청와대입니다! 방금 거대한 안개가 청와대를 공격했습니다!

- 와~ 형님들, 방금 보셨어요? 그 방어막들을 그냥 한순간에 갈아 버리네요. 와, 씨… 뭐지. 상대도 안 되는 거 아닌가? 아이쿠! ‘빨리 들어가라’ 님 달풍선 100,000개! 100,000개 감사합니다! 네네, 그럼 지금 바로 들어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 우리 집이 청와대 근처거든? 여기 지금 완전 난리났어. 씨바… 크리스마스 이브에 이게 무슨 꼴이냐.

자신이 강림한 곳에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되기를.

그리고 마침내 모두가 청와대를 바라보고 있을 때.

은빛 안개는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쿠구구구궁-!

보이지 않는 손이 뿌리째 뽑아 버리듯 청와대가 흔들리며 하늘로 떠올랐다. 그와 동시에 창밖으로는 사이렌이 울려 퍼졌다.

- 긴급 상황! 긴급 상황! 강력한 저주와 정신 간섭을 감지했습니다. 지금 즉시 화면에서 시선을 떼십시오. 지금 즉시 청와대 또는 협회와 무혼 권가와 관련한 모든 뉴스를 끄십시오. 반복합니다. 지금 즉시…….

창밖을 울리는 사이렌이 가져다주는 거대한 불길함에 많은 사람이 뉴스를 껐다. 컴퓨터 화면을 바꾸고 화들짝 놀라 핸드폰을 침대 위로 던졌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모두가 그 지시를 따른 건 아니었다.

“어, 어어… 저게 뭐야?”

“강선욱 장관 아니야?”

“어, 저 사람 알아. 대변인인데?”

“대통령이다!”

“아악! 어떻게 저런!”

청와대는 하늘에 떠오른 채 고무찰흙처럼 박살 났다.

TV에서 보던 유명인들이 둥실둥실 끌려 나와 마른 걸레처럼 쥐어짜지고, 학대당하는 인형처럼 여기저기가 뽑히며 하나하나씩 공개 처형을 당했다.

그걸 본 사람들은 바닥이 꺼지는 듯한 충격을 받았다.

별로 관심 없던 연예인이 죽어도 충격을 받는 게 사람이었다.

그런데 누구나 얼굴을 알고 때론 욕하고 때론 찬양하던 사람들이, 좋든 싫든 자신들을 이끌고 지키는 리더라고 알려졌던 사람들이… 고통스럽게 살려 달라 애원하며 찢어발겨지는 장면은… 구토가 치미는 공포였다.

그렇게 정도 이상의 충격을 받은 사람들에게는 2차적인 저주가 옮겨붙었다.

“허, 헉! 누구세요?”

아무도 없는 방구석을 향해 혼자 소스라치게 놀라 뒤를 돌아보았고.

우드드득!

자기 혼자 목이 꺾여 사망하는 이들도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이들은 더 큰 공포에 사로잡혔다.

“다, 다 죽을 거야. 다 죽게 된다고!”

이 세상 어디에도 안전지대가 없는 것 같았다. 그런 저주였다.

전국 각지에서 벌어지는 일이었다. 목이 꺾여 죽지는 않았다고 해도, 영상을 본 이들은 하나같이 극심한 공황장애와 우울증에 빠져들었다. 그들의 음울함을 타고 저주는 자꾸만 주변으로 퍼져 나갔다.

제대로 전쟁을 시작하기도 전에, 이미 많은 사람의 마음 속에 ‘이미 졌다.’라는 마음이 스며들었다.

* * *

“역시 이렇게 되네.”

현재로서는 알아도 막을 수가 없는 공격.

이제 회귀한 지 채 1년이 안 됐는데, 예정도 없이 이런 고난도의 영능학적 공격이 들어와 버리면 제아무리 잘난 회귀자 영웅들이라고 해도 완전히 막는 건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래도 피해를 많이 줄였다.

나는 직속 회선을 통해 정부에서 날아온 공문에 주목했다.

- 대통령 생존. 소위 말하는 영상은 정신 간섭이 만들어 낸 환상에 불과함. 청와대가 완파된 것은 사실이지만, 주요 인사들은 전원 생존해 있음. 유언비어에 휘둘리지 말 것.

- 공황장애와 우울증이 빈발! 심리 현상이 아닌 신비 현상으로써, 공포와 우울을 먹고 전염되는 저주의 일종. 조직 내부의 항명이 이어지더라도 즉결 처형은 엄금. 공포를 유발해 저주를 더 멀리 퍼뜨릴 수도 있음. 격리시키고 경과를 지켜볼 것. 다만 이미 저주에 잡아먹혀 은빛 안개를 내뿜는 자는 신속히 처형할 것. 단, 던전에서 발견된 B급 이상의 해주 아이템 또는 [디스펠], [용기부여] 등의 초능력으로 저주를 소멸시킬 수 있음.

- 각지의 던전이 터지고 불규칙 던전들이 빠르게 생성되는 중. 곳곳에서 시가전 발생.

- 지휘 계통을 따른 별도의 지시가 있을 때까지 각자 관할 구역을 사수할 것.

- 대한민국 헌터 협회도 핵심 기능을 유지하고 있으니 곧 지원이 이루어질 것.

- 승리할 수 있다!

지난 생과 비교하면 아주 빠른 대처였다.

비단 정확한 행동 요령을 알려 준 공문만이 아니었다. 저주가 퍼지기 전에 경고 방송으로 피해를 크게 줄인 것도 훌륭했고, 대통령을 살린 것도 큰일이었다.

많은 이가 대통령의 참혹한 죽음을 보았다고 하지만, 그건 환상이었을 것이다. 누군가 죽긴 했지만, 그게 대통령은 아니라는 것을 공문 전송과 거의 동시에 이루어진 대통령의 대국민 방송이 증명했다.

‘대통령은 살렸네.’

지난 생의 아갈타 침공 때는 대통령부터 죽고 시작하는 바람에 난리가 났었으니, 회귀자들도 철저히 준비를 했던 것이다.

회귀한 지 1년도 되지 않았다는 걸 생각하면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하다.

그리고 곧이어 대한민국 헌터 협회 협회장 하준광의 시국 선언이 이어졌다. 협회에는 자동으로 보호막을 형성하는 유물 ‘에디슨의 전구’가 있으니, 별다른 경고나 조력이 없어도 가장 중요한 부분은 모두 지킬 수 있었을 것이다.

‘겨우 치명타는 피했어.’

하지만 이런 훌륭한 대처로도 낙관할 수 없을 만큼 사태는 만만치 않았다.

나는 창문을 열어젖혔다.

웨에엥- 웨에에에!

창문 밖은 난리였다. 아갈타의 마족들이 고의로 연결시키고 터뜨린 던전들 탓에 각양각색의 괴물이 몰려나와 있었다. 전후방이 따로 없었다. 전 국토가 전장이 되었고 각 지역 사령관들은 정규군과 예비군 모두를 소집해 전투를 준비했다.

크리스마스 이브에 일어난 날벼락 같은 참사였음에도 많은 시민은 기민하게 반응했다.

“야, 이 개자식들아!”

“또 당할 줄 아냐!”

“다들 동대 집합 장소로 튀어 나가!”

“동대가 멀리 있는 사람은 일단 현 지역 동대로 모여! 현 자리 사수 또는 한꺼번에 수송이 있을 거야!”

처음 보는 시민들끼리도 빠르게 정보를 교환해 가며 자신이 있어야 할 자리를 향해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집에서 가족들과 케이크를 자르던 부모들도 그랬고, 손을 마주 잡고 길을 걷던 다정한 커플들도 그랬다.

“살아서 꼭 다시 만나자.”

그런 말을 하며 연인들이 달려 나갔고

“시발, X 같네. 다 죽여 버리고 싶다.”

그 사이를 헤치며 험악한 인상으로 튀어 나가는 솔로들도 있었다.

다들 대단했다.

생각해 보면, 육삼공 참사의 충격이 있었던 게 고작 반년 전이었다. 또다시 이런 대규모 침공을 만나 크게 좌절하고 마음이 꺾일 법도 했는데… 사람들은 마냥 좌절하지 않았다. 좌절이 깊어지면 그게 더 큰 분노로 바뀔 수도 있는 것일까?

하긴. 바퀴벌레도 처음 한두 번이 끔찍하다. 죽여도 죽여도 자꾸만 기어 나와 내 생활권을 침범하면 종국에는 다 죽여 버리겠다는 악다구니밖에는 남지 않는다. 시민들은 치를 떨며 살기등등하게 집합 장소로 향했다.

“아, 아빠. 아빠!”

“괜찮아! 피난소 들어가서 기다려! 내가 대갈통이 깨지는 한이 있어도 저 개자식들, 다 죽여 버릴 테니까!”

평화롭던 시절의 영화 속 이야기와는 많이 다른 모습이었다. 전쟁에 나서야 하는 어른들, 두려워하는 자식. 그 모습을 보며 마음이 흔들리는 부모. 이런 클리셰는 현실에서는 의외로 흔치 않았다. 요즘 사람들이 옛날 영화를 보며 ‘참 순진들 하시네.’ 하고 비웃는 이유였다.

피가 거꾸로 솟는 분노 앞에서는 때론 가족도 뒷전이었다. 이 역시 인간 본성의 한 단면.

그렇게 시민들은 각자의 역할을 잘 수행하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나는 분명히 느꼈다. 그 사이사이에 숨어 있는, 온몸이 으슬으슬 떨리는 끔찍한 감각을.

누군가 소리쳤다.

“시발, X까!”

“우린 다 죽을 거야……!”

“대통령도 죽었다고! 누가 우리를 지휘한다는 거야? 너희는 방금 전 대통령의 시국 방송을 믿는 거야? 그거 다 조작이야. 이미 우리는 끝장 났다고!”

“항복… 항복하면 적어도 그렇게 무참하게 찢겨 죽는 건 피할 수 있지 않을까?”

미디어를 통해 청와대와 협회, 무혼 권가가 무너지는 장면을 본 사람들이었다. 강력한 정서적 충격을 주는 장면을 목격한 이들에게 스며든 저주. 그것은 일종의 기생 생명체와도 같았다. 좌절하고 체념한 그들은 굳이 거리로 나와서 정부의 발표가 모두 거짓이며 우리는 모두 패배했노라고 주변을 선동했다. 그렇게 말하는 그들의 몸에서는 아까 청와대를 덮쳤던 은색 안개 같은 것이 아른거렸다.

그들의 목소리를 들은 이들은 급속도로 분노와 의욕을 잃어 갔다. 그 목소리가 단순한 목소리가 아닌 정신 간섭과 저주가 깃든 목소리였기 때문이다.

“어… 설마? 정말인가?”

“대통령이 죽었다고?”

“이미 패배했다고?”

물론 모두가 당한 것은 아니었다. 저항하는 이들도 있었다.

“지랄하네! 싸워 보지도 않고 무슨 개소리를 하는 거야?”

하지만 그런 그들을 맞이하는 건, 이미 마음이 텅 빈 채 저주의 숙주가 되어 버린 이들의 섬뜩한 눈빛이었다.

“아냐……. 이미 끝났어. 여기에도… 이미 공격이…….”

우드드드득-!

“끄아아아아-!”

저주에 완전히 먹힌 자의 말로였다. 은빛 안개가 어른거리던 몸이 높이 떠오르고 몸은 종잇장처럼 구겨진다. 사람이 썩은 토마토처럼 터져 버리고 나면 그 주위로 은빛 안개가 더 짙게 퍼져 나갔다.

여러 차례 이어진 전쟁으로 정신 무장이 단단히 된 지구의 시민들조차 멘탈이 흔들릴 만큼 참혹한 죽음과 비명이 거리 곳곳에서 반복되었다.

물론, 내가 관할하는 용산 2지역구의 상황은 조금 달랐다.

- 알파 팀, 감염자를 포착했다. 즉시 해주 작업에 돌입한다!

- 폭슬롯도 감염자를 포착했다. 해주 작업에 돌입한다!

우리 지역의 정규군은 벌써 1주일 전부터 5분 대기조를 꾸려서 언제든, 어떤 방식의 침공에든 반응할 수 있게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용산 2지역구 인구, 8만

소속 정규군, 600명.

그중 초능력자는 6명.

하지만 나는 초능력을 각성하지 못했을 뿐 상당한 영적 잠재력을 가진 이들을 200명이나 새로 찾아냈다.

과연 지구인들은 놀랄 정도로 영적 재능이 넘쳤다. 오랫동안 격리된 채 영력이 봉쇄되었던 반작용인 걸까?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지구인들의 평균적인 영적 재능은 다른 차원의 평균을 아득하게 웃돈다.

그렇기에 내가 찾은 200명은 다른 세상에서 태어났으면 뛰어난 마법사나 무인의 재능이 있다고 판별되었을, 그런 재능을 갖춘 사람들이었다. 나는 그들을 정예 부대로 재편성한 것이다.

세 달. 짧은 시간이었지만, 재능 넘치는 그들은 다른 차원 문명의 영능학적 장비들을 완벽하게 숙달할 수 있었다.

바로 그들이 내가 이번 전쟁에서 준비한 비장의 수단이었다.

나의 기반을 지켜 줄 200명의 정예 병력.

서민서가 휘오의 가지를 통해 현 상황을 전달했다.

- 창신 부대가 제 역할을 잘해 주고 있어요! 벌써 300명 넘게 해주를 받았어요!

“오케이. 사람들 통제 잘하고, 해주 작업 마치고 방어선도 어느 정도 꾸려지면 창신 1대만 데리고 휘오가 열어 주는 게이트를 타고 넘어와.

- 후우… 괜찮을까요?

“날뛰는 괴물들이야 창신 2대와 우리 예비군 전력이 있으면 문제없어. 그동안 훈련 열심히 했잖아? 진짜 문제는 이쪽이지.”

- 마족… 말이죠?

“그래. 결국 아갈타에서 넘어온 3,000명의 차원 강습병이 핵심이야. 놈들이 있는 한 던전은 계속 터질 거고 어디선가 자꾸만 그 은빛 안개 같은 게 날아들 거야. 우리가 아무리 애를 쓰고 막으려고 해도 학살이 벌어질 수밖에 없다고. 적어도 우리 용산구에서는 그런 일이 안 벌어지게 해야지. 그러려면…….”

나는 눈앞에 떠오른 홀로그램을 바라봤다. 서울 일대의 지형이 3차원 홀로그램으로 표현되어 있고, 붉은 점 10개 정도가 곳곳에 흩어져 있는 게 보였다.

- 그런데 놈들 위치는 대체 어떻게 찾아낸 거예요?

“추적기를 샀지. 놈들이 구매한 개인용 통신 장비를 추적할 수 있는 추적기. 한 놈당 하나씩 가지고 있을 테니 사실상 놈들을 전부 추적할 수 있는 추적기일걸? 생각보다 잘돼서 나도 놀랐네.”

- 와… 걔들은 보안 신경 안 써요? 허술하네.

“지구가 원시 차원이라고 방심한 거야. 해병대가 조선 시대로 쳐들어가는데, 굳이 돈을 더 들여서 통신 보안용 장비를 사들이진 않을 거 아냐? 대신 초능력을 이용한 감지는 계속 방해하고 있을걸? 어쩌면 마족 놈들 위치를 찾아낼 수 있는 게 지구에서 내가 유일할 지도 몰라.”

- 진짜 사기네요. 타키넷에서 거래할 수 있다는 거.

서민서가 혀를 내둘렀다.

그래. 아직 적이 눈치채지 못한 우리의 힘. 사실 우리도 다른 차원 문명과 교류를 하고 있다는 것. 그게 내가 놈들을 상대로 우위에 설 수 있는 요소였다.

그러니까… 계속 그 기반을 유지할 수 있게…….

신중하고 은밀하고 신속하게.

“일단은 한 놈 잡자.”

나는 홀로그램 속에서 빛나는 점 하나를 노려보았다. 유독 용산과 가까이에 머물러 있는 점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