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VVVIP 차원 쇼퍼-86화 (86/212)

3. 과연 그럴까?

어릴 때 봤던 영상 중 잊지 못하는 것이 있다.

꿀벌보다 다섯 배는 더 커 보이는 장수말벌들이 꿀벌 집을 습격한다. 격렬한 저항이 벌집 입구에서부터 일어난다. 하지만 장수말벌의 껍질은 너무나 단단해 꿀벌의 독침이 박히지 않는다. 달려든 꿀벌들은 되레 말벌의 길쭉한 두 다리에 붙잡히고 그 단단한 주둥이에 물려 목이 툭툭 떨어진다.

꿀벌들이 추풍낙엽처럼 쓸려 나간다. 독침도 통하지 않고 드잡이질도 불가능하다. 결국 꿀벌들은 절망적인 전술을 사용한다.

그 방법은 한 번에 수십 마리가 달려들어서 장수말벌을 둘러싸고 날개를 떠는 것이다. 종류를 불문하고 모든 벌은 열에 약하다. 말벌을 둘러싸고 날개를 떨어 스스로 온도를 높임으로써 장수 말벌을 뜨겁게 익힌다. 그 와중에 꿀벌들은 계속 머리가 잘려서 죽고, 또는 탈진으로 서서히 죽어 간다.

그렇게 수십, 수백 마리의 꿀벌이 죽어 겨우 한 마리의 장수말벌을 쪄 죽이는 데 성공한다.

보통 이런 극렬한 저항에도 꿀벌은 패배한다. 장수말벌은 꿀벌이 평생을 모아 놓은 꿀들을 강탈해 간다. 아니, 꿀벌의 시체까지도 음식으로 착취해 간다.

나는 이 관계가 꼭 아갈타인과 지구인 같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또 생각했다.

그래도 지구인은 꿀벌보다는 더 똑똑하니까… 그런 자살 특공식의 전술 말고, 뭔가 더 나은 방법을 찾지 않을까?

하지만 나는 똑똑히 목격했다. 앞으로 수십 년의 시간이 더 지나도 인간은 더 나은 전술을 찾지 못한다는 것을.

그게 이유였다.

‘감격적이네.’

지이이잉-

내 병사 100여 명이 캐스터를 발동시키고 있는 장면에 괜히 울컥하고 콧날이 시큰해지는 건.

‘6만 타키온이나 지를 때에는 속이 쓰렸는데… 그게 다 보상받는 기분이라니…….’

인간은 손톱도, 송곳니도 형편없다. 그런 인간이 이 세상의 지배종이 될 수 있었던 이유는 상대의 약점을 찾아내고 그걸 공략하는 데 무척 탁월했기 때문이다.

약점 공략이라는 건 그렇게 중요하다.

하다못해 풍선같이 나약한 것도 손으로 쥐어 터뜨리려고 하면 은근히 성가시다. 하지만 조그만 바늘이라도 있다면 어린아이도 손쉽게 터뜨릴 수 있다.

이번에 도입한 캐스터의 역할이 바로 그 바늘이었다.

‘이종범의 특기는 마누스로 신체를 강화하고 그 강화된 신체 위에 [팽창]을 덧입혀서 엄청난 속도와 파괴력을 만들어 내는 거야.’

그게 무슨 뜻이냐면, 신체를 가득 채우고 있는 마누스를 교란시키면, 더 이상은 그런 속도와 힘을 낼 수 없게 된다는 뜻이다. 하려면 하겠지만, 제 몸을 박살 내는 자폭이 되고 말 테니까.

예전에 타키넷에서 까막이의 마누스를 날려 버린 곤충 인간의 기술과 비슷한 거다. 물론 상대가 세계급 랭커인 만큼 훨씬 까다로운 일이지만… 저 100명이 들고 있는 캐스터라면 충분히 가능했다. 애초에 그럴 수 있는 물건을 샀으니까.

캐스터의 가격은 600타키온으로, 가격상 최하품을 간신히 벗어난다. 하지만 대부분의 스펙은 400타키온 정도로 형성되는 최하품과 비슷했다. 그런 캐스터를 왜 200타키온을 더 주고 샀는가? 오로지 단 하나의 특별한 기능 탓이었다.

그건 바로 최대 100개의 캐스터가 한꺼번에 연결되어 마치 하나의 거대한 캐스터처럼 기능할 수 있다는 것!

연결된 100개의 캐스터가 실시간으로 연산을 수행해 이종범의 약점을 분석하고 공략했다.

“크윽… 젠장……! 왜 마누스가!”

이종범은 모르지만, 지금 그의 몸에는 100개의 영력 바늘이 꽂힌 상태였다. 이종범의 마누스를 나비 표본처럼 붙잡아 놓는 바늘들.

이종범이 속수무책으로 내게 얻어터지는 이유였다.

물론 정신을 차리고 나면 또 다른 방식의 전투법을 찾아내겠지. 그러니까 지금 몰아쳐야 했다.

쿠직!

옳지!

벌써 얼굴에 꽂힌 정타가 네 개째. 정신 못 차리게 계속 치자!

쾅!

“끅!”

오, 방금은 손맛이 짜릿했다. 저놈, 지금 이가 흔들거린다.

‘자, 한 대만 더!’

제대로 때리면 이빨 하나 시원하게 날릴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런데 옥수수를 털어 주기 위해 주먹을 꾹 쥐고 디딤 발을 내미는 순간, 갑자기 하준광이 끼어들었다.

“자, 자. 서로 주고받았으니, 이제 그만들 진정해.”

하준광은 언제나 말과 행동이 같이 가는 한결같은 사람이었다.

이번에도 ‘진정해.’ 이 한 마디에 맞춰서 자신의 능력 [중력왜곡]을 발휘했다.

꾸우우웅-!

내게 적용되는 중력의 방향이 바뀌었다. 세상이 등 뒤쪽으로 기운다. 멀쩡하던 평지가 나에게만 85도쯤 되는, 깎아지른 절벽이 된다. 심지어 중력의 힘도 10배는 더 강해졌다. 이종범의 위치가 갑자기 내 위쪽으로 바뀌고 한 방 먹여 주려던 주먹은 급격히 땅 쪽으로 기울었다.

‘망할……! 아무리 그래도 이빨 하나는 내놔야지!’

그래야 제대로 전달할 수 있다. 나의 의지와 나의 만만치 않음을!

그 순간 나는 거의 의식도 하지 못하고 움직였다. 화르르! 등 뒤에 메고 있던 아공간 가방 탐貪에서 새하얀 아우라가 세차게 타올랐다.

탐에게는 두 종류의 아공간이 있었다. 하나는 물건을 보관하는 일반적인 아공간. 그리고 다른 하나는 그 무엇이든 흡수할 수 있지만, 과부하되면 붕괴했다가 또다시 재생되는 허공간. 내가 이 녀석을 12,000타키온이나 주고 살 수밖에 없었던 이유였다.

탐은 반경 5미터 내에 있는 모든 것을 허공간이 붕괴하기 전까지 삼킬 수 있었다.

그러니까 일정량의 충격량을 완전 흡수하는 완벽한 보호막을 하나 들고 다니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물론 일반적으로 [중력왜곡] 같은 고차원적인 초능력을 삼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겠지만, [만상공감]이 보조해 주는 이상 그것도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꿀꺽!

이질적인 소리. 하준광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그의 입에서 바람 빠지듯 허망한 의문이 흘러나온다.

“뭐……?”

탐貪이 [중력왜곡]을 삼켰다.

당장 뒤로 떨어져 내릴 듯했던 내 몸이 즉시 균형을 되찾았다. 잠깐 아래로 처졌던 몸을 바로 일으킨다.

쿠직!

땅이 파일 정도로, 디딤 발에 모든 힘을 실어 몸을 일으키고 그대로 오른손을 사선으로 올려 쳤다.

쩌엉!

이종범이 허공으로 붕 떠올랐다. 천천히 몸이 오른쪽으로 돌아가고, 새빨간 피가 몸의 궤적을 따라 나선을 그리며 허공을 수놓는다.

후드득-

땅에 다소곳이 떨어지는 피 묻은 앞니 두 개와 어금니 하나.

저런. 이빨 하나만 깨려고 했는데.

아프겠네.

쿵!

바닥에 엎어진 이종범이 서너 번을 더 굴렀다. 지금 상황이 이해가 안 가는 건지, 잠시 그 상태로 1~2초쯤 미동이 없었다.

“허…….”

하준광이 황망한 얼굴로 땅에 엎어진 이종범을 내려다보았다.

“크윽……! 죽여 버린……!”

하지만 전국 11위는 11위. 이빨을 세 개나 날린 타격에도 이종범은 크게 대미지를 입지 않았다. 오히려 더한 분노와 함께 번개처럼 몸을 일으키려고 했다.

하지만 그의 시도는 하준광에 의해 좌절되었다.

“후… 그만해.”

하준광이 짧게 한숨을 쉬곤 그대로 발을 뻗어 이종범의 어깨를 지그시 내리밟았다.

“억! 혀, 협회장님?”

“잠깐 열 좀 식히고 있어.”

“하, 하지만… 아니, 아닙니다. 알겠습니다.”

하준광이 구두를 떼자 이종범이 주춤주춤 뒤로 물러섰다. 피 칠갑을 한 이종범의 얼굴이 수치심으로 더욱 붉게 물들었다.

그러든지 말든지.

나는 하준광을 마주 보았다. 결국 이 자리는 하준광과 내가 해결을 보아야 하는 자리였다. 이종범을 깨 버림으로써 나는 그런 메시지를 분명하게 전했다.

하준광은 복잡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방금 그건 뭐지? 유물도 사용하는 특별한 사람이니 종범이를 때린 거야 어떻게 이해를 해 본다손 쳐도, 내 [중력왜곡]을 이딴 식으로 상쇄하는 건 본 적이 없는데?”

“글쎄요. 영업 비밀이라…….”

어깨를 으쓱해 보였더니, 하준광이 짧게 한숨을 쉬었다.

“나도 늙었군.”

이젠 확실히 느껴졌다. 그가 나를 보는 시선이 변했다.

꽤나 기분이 좋은 일이었다.

지금까지 그가 나를 보는 시선은 ‘마음에 드는 물건’을 보는 시선. 언제든 자기 주머니에 넣을 수 있지만, 다른 사람들 시선 탓에 고민하고 있는 그런 시선.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잘못 손댔다가는 날카로운 독침을 쏠 수도 있는 장수말벌을 보는 눈빛이다. 그러니까… 그의 눈에 어린 건 최소한의 ‘경계심’. 달리 말하면 최소한의 ‘예의’.

그때 내 귀로 데미안의 메시지가 날아들었다.

- 잘하셨습니다. 하준광은 무식하게 힘으로 밀어붙이는 자이지만, 사실은 그렇게 무식하지는 않습니다. 형세를 읽을 줄 아는, 상당히 약삭빠른 면도 있는 자입니다. 그렇기에 한 나라 최고의 권력자를 자처할 수 있었겠지요. 그것도 이미 대통령이라는 정치적 리더와 걸출한 수호 가문들이 존재하는 나라에서 말입니다.

그렇게 말하니 조금 안심이 되었다. 내 이미지 속에서 하준광은 ‘나도 늙었군. 감히 네깟 놈이 내게 대들 정도라니!’ 하면서 당장 달려들어도 이상할 게 없는 미친 늙은이였으니까.

- 물론, 지난 30년간 사과라는 것을 해 본 적 없다는 인간인 만큼 이번에도 사과를 하진 않겠지만… 적당히 마무리하고 체면 지키는 선에서 물러서려고 할 겁니다. 그러면 적당히 체면 살려 주세요.

데미안의 조언에 나는 미미하게 턱을 끄덕였다. 여전히 하준광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은 상태였다.

그리고 바로 다음 순간.

“거참… 미안하게 됐어!”

하준광이 꾸벅 고개를 숙였다!

“…어?”

데미안의 입에서 멍청한 탄성이 흘러나왔다.

“흐, 큼……!”

나는 목에 사레가 들 뻔했다.

하준광은 우리의 당혹스러움은 아랑곳하지 않고 천연덕스레 말했다.

“거, 그래도 한 지역의 사령관님한테 내가 너무 격의 없이 찾아왔구먼! 이게 사람이 나이가 먹으면 깜빡깜빡해서 말야. 그리고 요 녀석. 요 녀석은 하여튼 과잉 충성이 문제라니까!”

탁!

심지어 자신의 오른팔인 이종범의 뒤통수를 때리기까지 했다.

와, 그런데 이건 조금 놀랐다.

- 대단하네……. 다 큰 어른이 뒤통수를 맞고도 불만을 조금도 보이지 않다니……. 난 선배가 내 뒤통수 때리면 그 손을 물어뜯을 텐데. 아아, 미안. 선배, 난 저렇게 충직할 수 없어요.

뜬금없이 서민서가 휘오의 가지를 통해 목소리가 전해 왔다.

얘는 또 왜 하준광 똘마니한테 자기를 이입하고 있대…….

아무튼 서민서의 말대로였다. 전국 11위의 자존심은 어디로 갔는지, 이종범은 뒤통수를 맞으면서도 그저 조심스럽고 공손한 태도로 하준광의 옆에 서 있을 뿐이었다. 대체 둘 사이에 어떤 시간들이 쌓여 있길래 저런 게 가능한 것일까? 어쩐지 하준광이라는 사람이 가진 저력의 한 단면을 본 것만 같았다.

“아무튼 오늘 일은 미안하게 됐고, 다음에 정식으로 면담 요청 넣어서 오지! 그럼 몸 조심히 잘 있으라고! 루드비히 막내 도련님도! 오늘은 내가 실례했어. 다음에 보지!”

하준광은 손을 휘휘 흔들고 연무장을 떠나갔다. 훌쩍 뛰어서 나타났듯이 떠날 때도 훌쩍 뛰어서 사라졌다.

이종범은 내 쪽을 향해 고개를 푹 숙여서 인사를 하곤 하준광을 따라 사라졌다. 끝까지 충직한 인간이었다. 어떻게 저럴 수 있나 싶을 정도로.

그리고 찾아온 건 고요였다. 그리고 곧 어수선해졌다. 캐스터를 들고 있던 병사들의 긴장이 풀렸는지, 여기저기서 한숨 소리와 소근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뭔가 잠깐 사이에 태풍이 몰아친 느낌.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는 데미안을 향해 말했다.

“와… 그래도 사과를 할 줄은 몰랐는데요? 루드비히가 대단하기는 한 모양입니다. 도련님까지 있으니 계속 강짜 부리기 눈치 보인 모양입니다.”

그러자 데미안이 나를 묘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모르는 척하시는 겁니까?”

“네? 뭐가요?”

내 말에 데미안이 못 말리겠다는 듯 고개를 살짝 저었다.

“결국 하준광의 사과까지 받아 낸 건 전적으로 사령관님의 힘이 아닙니까?”

아니, 하준광에게 만만치 않다는 인상을 준 건 사실이지만 그것만으로 하준광에게 사과까지 들을 수는 없지 않을까? 이종범을 상대로도 고생했는데… 하준광은 어림도 없다. 결국 하준광을 꼬리 말게 한 건 데미안과의 동맹 덕분이라고 생각하는데?

내 말을 들은 데미안이 짧게 한숨을 쉬었다.

“저를 시험하시는 겁니까? 사령관님에게는 이성계의 활이 있지 않습니까?”

아… 그건 그렇지. 이성계의 활에 맞기만 한다면 하준광이라 해도 무사할 수 없을 것이다.

“물론 원래 하준광이라면 그깟 활, 쏘기도 전에 사령관님을 제압할 수 있다고 생각했을 겁니다. 그런데 방금 사령관님이 [중력왜곡]을 파훼하는 모습을 보여 주셨죠. 그 순간 상황이 바뀐 겁니다. 자칫하면 그 화살을 한 대쯤 맞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을 겁니다.”

아……!

“정말 계산이 빠른 자입니다. 힘으로 어떻게 해 보려다가 오히려 자신이 크게 다칠 수도 있다는 걸 깨닫고는 아예 방향을 바꾸었어요. 차라리 사령관님과 관계를 개선해서 사령관님이 가진 힘의 비밀에 접근해 보는 쪽으로요.”

거기까지 말한 데미안이 내게 말했다.

“이걸 다 계산해서 움직이셨다는 거 알고 있습니다. 걱정 마십시오. 제가 어리다고는 해도 루드비히입니다. 이 정도 행간은 읽어 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정말 놀라긴 했습니다…….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하준광의 사과를 받아 내실 줄이야. 30년 내 최초입니다. 세계의 그 어떤 조직도 하준광의 사과를 받지 못했어요. 동맹으로서 자랑스럽군요.”

데미안은 ‘나 잘했지?’ 하는 표정으로 배시시 웃었다.

아아, 그것은 엘리트의 얼굴이었다.

항상 저희끼리만 쿵짝쿵짝 알아 먹고는 정말 그렇지 않냐고 되묻는 얼굴!

…젠장.

나는 아무 말도, 아무 표정도 짓지 않았다.

그런 나를 보고 또 지레 무슨 생각을 했는지 데미안이 피식 웃었다.

“뭐, 이런 식으로 동맹이 자신의 능력을 잘 인지하고 있는지 한 번씩 확인해 보는 것도 좋은 전략이긴 하죠.”

네, 네. 그러시겠죠.

“그럼 이제 제가 보여 드릴 차례군요. 우리 루드비히의 힘이 당신의 타키넷과 합쳐지면 어떤 시너지를 일으킬 수 있는지. 저번에 말씀하신 물건들, 모두 완성되었습니다. 재료도 더 넣고 장인들도 더 추가해서 품질도, 양도 늘었습니다.”

데미안이 아공간 속 아이템을 꺼냈다.

바닥에 주르륵 깔리는 명품 작업화들.

아, 맙소사. 데미안의 등 뒤로 후광이 떠오르는 듯한 착각이 든다.

* * *

타키넷 평의회 소속 통계청.

최근 통계청 중앙에서 점멸하고 있는 숫자 하나가 연일 이슈가 되고 있었다.

부서원들은 자기 일에 집중을 하지 못하고 그 숫자에 대해서 계속 떠들어 댔다.

[미친! 또 올랐어!]

[얼마 전에 1,000퍼센트 갱신했잖아? 근데 이번에 또 2,000퍼센트? 이게 말이 되는 성장 속도야?]

[아무리 원시 차원이라고 해도 이쯤 되면 다시 생각해야 되지 않나? 당장 투자를 좀 해야겠어!]

그들이 보고 있는 숫자는 원시 차원인 지구의 차원 내 총생산(Gross Dimensional Product) 성장률이었다.

작년 동 기간 대비 지구 차원에서 벌어들인 타키온의 양이 20배가 되었다는 그 엄청난 수치에 그들은 경악을 금치 못하고 있었다.

이전에 2배가 올랐을 때는 시큰둥했던 이들도 이제는 함께 열을 올리며 투자를 해야 한다며 호들갑을 떨 정도.

하지만 비교적 지구의 사정을 잘 알고 있던 부서원 하나가 과열되는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었다.

[아서라. 지금 투자하면 쫄딱 망한다.]

[왜?]

[저기, 아갈타에서 침 발라 놓은 데라니까?]

[그게 뭐. 아갈타에 먹히면 그건 그것대로 좋은 거 아닌가? 인프라 깔리고 더 성장할 거 아냐.]

[복속이 아니라 분해를 목표로 한다더라.]

[진짜?]

[응. 이번에 차원 강습병 3,000명 규모로 침공을 준비 중이래.]

[강습병 3,000? 원시 차원에? 진짜 다 죽여 버릴 생각이네.]

[그러니까 투자할 때 아니다.]

[그렇겠네.]

그 말에 과열되었던 분위기는 순식간에 가라앉았다.

다들 흥이 식은 얼굴로 자리에 앉아 하던 일을 다시 뒤적이기 시작했다.

그때 누군가가 말했다.

[어? 또 올랐네. 미친. 이제 3,000퍼센트야.]

[그럼 뭐 하냐, 남의 밥상인데.]

다들 다시 고개를 끄덕이며 자기 일에 몰두하던 그때, 유독 한 명의 부서원만큼은 끝까지 지구의 GDP 성장률에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액체처럼 일렁이는 몸을 가진 그녀는 제 살갗에 이는 파문을 쓸어 보며 또다시 변화하는 GDP 성장률을 물끄러미 들여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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