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VVVIP 차원 쇼퍼-83화 (83/212)

19. 최강의 능력

데미안은 점점 오래 생각에 잠겼다. 주변을 두리번거리곤 다시 내 얼굴을 기묘한 눈빛으로 바라보다가 다시 생각에 잠기곤 했다.

그러는 사이 우리는 쓰레기 거리를 관통했고, 중간에 케사리니 아몬의 집을 들렀다.

거기서 나는 우선 허묵의 일부터 처리했다.

“이쪽은 알죠? 허묵 씨.”

[전에 본 적 있지.]

“여기서 일 배우고 싶대요. 잔심부름 시키고 타키온 한두 알이라도 찔러주세요.”

내 요청에 허묵이 반응했다.

“잔심부름?”

나는 그를 무시하고 계속 아몬에게 말했다.

“인챈트 재료 많이 썼죠? 재료 채집 퀘스트라도 주세요. 나름 자기, 세계수도 가지고 있는 사람이니까 세계수의 힘으로 차원을 넘나드는 것에 큰 부담도 없을 거예요. 전투력은 뭐… 쓰레기 거리 수준에서 꿀릴 사람은 아니고, 특기로 은신 관련 권능이 있어요. 재료 채집에 딱 적합하죠.”

[호오.]

케사리니 아몬이 흥미를 드러냈고, 허묵은 이게 대체 무슨 소리냐는 표정으로 인상을 일그러뜨리고 나를 쳐다봤다.

나는 그런 허묵의 귀에 속삭였다.

“쓰레기 거리 제일의 인챈트 실력을 가진 대마도사예요. 여기서 일을 배운다면 앞으로 시장에서 코 베일 일은 절대 없어요. 거기에 심부름값으로 타키온 한두 알씩만 받아도 허묵 씨 입장에서는 쏠쏠하지 않아요? 알잖아요. 지구에서 타키온 구하는 게 얼마나 지랄 같은지.”

“그, 그야 그렇지만……. 나는 회사 사장이라고! 심부름 다닐 시간이…….”

“어허, 단순 심부름이라 생각하면 안 되죠. 인턴이에요, 인턴. 앞으로를 위한 투자요. 큰 걸 먹으려면 크게 써야죠. 우리 지구인 입장에서는 케사리니 아몬 같은 인물의 곁에서 일을 할 수 있다는 건 돈 주고도 못 얻을 배움의 기회 아닙니까? 새로운 일을 하고 싶다면 그 분야의 밑바닥부터 시작하시라고요.”

“으음…….”

“심지어 케사리니 아몬 씨는 쓰레기 거리에서는 유례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정직하고 후하신 분이에요. 이건 기회입니다. 놓치지 마세요.”

“음… 고, 고마워.”

결국 허묵은 수긍하고 말았다. 어떤 일이든지 맡겨 달라며 케사리니 아몬에게 고개를 숙였다.

[뭐, 내 입장에서도 검증은 필요하니까. 일단 간단한 심부름을 하나 주지.]

아몬은 허묵을 내려다보다가 손가락을 따악-! 튕겼다.

그 순간 허묵의 감각이 폭발했다. 아몬이 보내 온 감각들이었다. 이미지와 소리와 냄새가 어떤 논리적 구조를 따르며 따악-! 하는 한순간에 머릿속으로 박혀 들었다. 그 의미는 너무도 명징했다.

‘여기서 동쪽으로 삼백 보, 북쪽으로 다시 이백 보. 개의 얼굴을 하고 코에 점이 있는 인물을 만나라. 그의 고향 차원으로 넘어가서 붉은 이파리와 푸른 이파리, 노란 이파리가 번갈아 피는 특정 식물을 1톤가량 수집해 오라. 위험한 괴물이 서식하는 지역이니 조심할 것. 수당은 타키온 6알. 해당 차원을 오가는 데 드는 비용인 타키온 3알은 알아서 지불할 것.’

아주 빠르고 정확한 의사소통 방식이었다.

허묵은 ‘엇?’ 하면서 잠시 멍한 표정을 짓더니, ‘음… 알겠습니다. 바로 수행하죠.’ 하며 바로 자리를 떴다. 워낙 지시가 명확하니 행동 역시 지체 없다.

‘좋네.’

내가 일일이 가르치는 건 소모적이다. 이렇게 아몬에게 맡겨 놓으면 몇 개월만 굴러도 쓸 만해질 것이다. 타키넷에서의 거래에서나 전쟁에서나. 그리고 이 방법이면 부수입도 얻을 수 있지.

허묵이 떠난 직후, 나는 케사리니 아몬에게 손을 내밀었고 케사리니 아몬은 내게 타키온 2알을 던졌다.

“자, 수수료.”

“넵. 수수료 25% 잘 받았습니다.”

2알.

이제 10만 단위의 타키온을 굴리는 나에겐 있으나 없으나 한 액수였는데도, 참 이상하지. 이 2알이 입속의 사탕처럼 그렇게 달달했다.

서민서가 나를 보고 뜨악한 표정을 지었다.

“서, 선배? 이게 뭐예요?”

“아니, 전에 보니까 인챈트하시느라 재료도 많이 소진하고 피로해하시는 거 같길래, 심부름꾼 안 필요하냐고 물어봤었지.”

[있으면 데려와 보라고 했지. 그랬더니 총 임금의 25퍼센트를 수수료로 달라고 하더군. 뭐, 그러라고 했어.]

서민서가 입을 벌리고 나를 쳐다보았다. 흔들리는 눈빛이 어쩐지 나를 비난하는 듯하여 나는 얼른 뻔뻔한 표정을 짓고 말했다.

“마. 인력 사무소가 수수료 25퍼센트 먹으면 싼 거지.”

진짜로 싼 거다.

나와 함께 온갖 잡다한 알바를 해 온 서민서라면 잘 알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서민서는 여전히 흔들리는 눈빛으로 침을 꿀꺽 삼켰다.

“선배, 혹시 나중에 일 시킬 때 저한테는 수수료 깎아 주면 안 돼요? 한 10퍼센트 정도로.”

얘 봐라, 얘. 역시 처세가 좋네.

“봐서.”

“아, 선배! 쫌.”

쪼끄만 게 소매를 잡고 늘어진다. 어허, 왜 이래? 하는 거 봐서 정한다니까.

옥신각신 서민서랑 장난을 치고 있는데, 그사이 데미안 루드비히는 케사리니 아몬의 작업실 곳곳을 구경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촌 동네 꼬마가 본다고 뭘 알아?]

케사리니 아몬이 그런 데미안에게 괜히 시비를 걸었다. 진짜 시비는 아니고 장난을 치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까막이를 챙겨 준 것도 그렇고, 애들한테 은근히 신경을 잘 써 주는 사람이었다.

데미안이 머쓱해하며 답했다.

“아… 이거, 아무리 봐도 우리 집안 사람인 마에스터 우드필 솜씨라서요. 그런데… 뭔가 완전히 달라졌군요?”

[응? 너희 집안 사람?]

케사리니 아몬이 관심을 드러내며 데미안에게 다가갔다. 데미안은 아몬의 작업대를 유심히 살피는 중이었다.

그러고 보니 저 작업대를 만들어 준 게 루드비히 가문의 마에스터 우드필이었다.

아몬의 까다로운 요구대로 만들어야 했기에 안 하겠다고 나자빠지는 우드필을 데미안이 애교까지 부려 가며 완성시켰던 작업대. 데미안이 기억하는 것도 당연하다.

[이야… 이거를 너네 집에서 만든 거였어? 반가워, 반가워. 야, 이거 엄청 잘 쓰고 있어. 생각한 것보다 더 가치가 있는 물건이더라고.]

“그렇습니까? 만들어 낼 당시에는 디자인이 너무 특이해서 마에스터 우드필이 이딴 식으로 만들면 안 된다고 길길이 화를 냈었는데.”

[그거야 지구인들이 무식하니까 그렇지. 이건 인챈트를 해야지 비로소 완성되는 보물이거든.]

“어떤 인챈트가 들어가죠? 이 작업대 수준이면… 비싸게 팔 수 있는 건가요?”

[작업대에 들어가는 일반적인 인챈트는 다 넣고, 알려 줄 수 없는 비밀도 몇 개 들어가고. 가격? 가격은 뭐… 상위 시장에서 이런 거 사려면 새것도 한 2,500알은 줘야 할걸?]

에? 2,500알? 나한테선 130알에 사 갔었는데……?

아몬이 나를 돌아보며 말했다.

[그거야 그냥 껍데기 가격이고. 여기에 한 인챈트만 백 개가 넘는다, 백 개가. 추가로 들어간 재료도 많고. 그리고 그 2,500알도 신품일 때 가격이지. 지금은 나한테 좀 길들어서 값이 더 뛰었을 거야.]

와… 백 개가 넘는 인챈트? 자기 작업대라고 공을 많이 들였나 보다.

그런데 데미안은 그보다는 다른 포인트에 더 관심을 보였다.

“…이미 사용한 중고인데 가격이 더 비싸다고요?”

[응? 무슨 소리야? 그냥 물건이 아니잖아? 오라가 있다고, 오라. 아… 참. 너, 지구인이지? 지구인들이 이쪽으로 꽝이라는 걸 자꾸 잊어버리네. 저기 소시민 씨는 워낙 잘 알고 있으니까.]

그 말에 데미안이 다시 나를 돌아보았다.

‘또 저 눈빛이네…….’

뭐라 설명할 수 없는 묘한 눈빛이었다. 데미안은 그렇게 잠시 나를 바라보다가 다시 시선을 돌렸다.

“오라……. 그건 지구에서는 예술품에 쓰는 말입니다. 그렇군요. 예술품이라 생각하면 중고품이 오히려 가격이 더 비싸다는 걸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예술? 흠… 뭐… 혼을 발견하지 못한 족속들에겐 그런 개념이 있다고 듣긴 했는데……. 뭐, 그렇게 이해할 수도 있을 것 같아.]

“그렇군요……. 오라가 생길 정도의 명품은 더 비싸게 팔린다…….”

[그렇지. 하지만 너희처럼 영능학이 꽝인 곳에서는 오라 판별도 쉽지 않을걸? 대체 저 인간은 어떻게 그렇게 물건을 잘 보는지 모르겠지만.]

그 말에 데미안이 또 나를 보았다. 묘한 기색이었던 눈동자에 점점 빛이 더해지고 있었다. 심장은 쿵쿵 뛰고, 입꼬리 근육이 당기고, 솜털이 오소소 일어나고…….

뭐야? 왜 저래? 무섭게…….

* * *

데미안 루드비히에게는 수신 호위 리디아 위트필드가 있다. 나랑은 안면도 있는 사이였다.

하지만 평소에는 그 존재감을 전혀 드러내지 않기에 나도 그 존재를 보통은 잊고 살았다.

그래서 많이 놀랄 수밖에 없었다.

“도련님! 도련님, 안 됩니다! 도련님!”

아몬의 집을 나온 뒤 다음 목적지는 갯펄 시장이었다.

그런데 갯펄 시장으로 넘어가려는 찰나, 사단이 생기고 말았다.

우리는 갯펄 시장 쪽에 있고 리디아 위트필드는 경계 바깥에 있었다.

리디아 위트필드는 비눗방울 막 같은 결계를 사이에 두고 데미안을 간절히 불렀다.

“도련님! 위험합니다! 이쪽으로 넘어오세요!”

그런 그녀의 모습을 보며 나는 생각했다.

‘와, 씨……. 리디아 씨는 대체 어디서 튀어나온 거야?’

지구도 아니고 환상 차원인 타키넷에까지 저렇게 불쑥 나타날 줄이야.

남은 하수인 계정 2개를 각각 서민서와 데미안에게 주고 갯펄 시장으로 넘어오는 순간, 차원이 일그러지더니 리디아 위트필드가 소환되었던 것이다.

리디아는 나타나자마자 갯펄 시장의 결계를 파괴하려고 난리를 치다가 그게 안 되자 저렇게 애처롭게 애걸했다.

이게 웬일이래…….

“아…….”

데미안 루드비히가 난처하다는 듯 나를 바라보았다.

“혹시 리디아 위트필드까지 입장시켜 주실 수 있나요?”

“아뇨. 이미 제가 사용할 수 있는 하수인 계정을 모두 사용했습니다. 그리고 향후 한 달간은 취소하고 재지정할 수도 없습니다.”

“곤란하네요…….”

“근데 지금 이게 대체 무슨 상황입니까? 리디아 씨가 여기까지 어떻게 온 겁니까?”

내 질문에 데미안은 살짝 입술을 물고 고민하다가 털어놓았다.

“그게… 리디아와 저를 묶어 주는 오파츠가 있어요. 제가 위험에 빠지거나 경호가 불가능한 장소로 향하게 될 때면 리디아를 강제 소환 하죠. 아무래도 오파츠가 이 결계 너머를 ‘경호가 불가능한 장소’로 인식한 모양입니다.”

‘그런 오파츠도 있었어? 진짜 지난 생에는 왜 죽었는지 모르겠네.’

데미안의 오파츠는 분명 제대로 기능했다. 타키넷의 시장을 가르는 결계는 자격이 되지 않으면 넘을 수 없는 태고의 결계. 차원 문명에서 난다 긴다 하는 강자들도 손댈 엄두도 내지 못하는 강력한 결계인 만큼, 그 너머가 ‘경호가 불가능한 장소’인 건 당연했다.

리디아 위드필드가 분통을 터뜨렸다.

“젠장! 어째서 이제야 소환이 이루어진 거지? 원래는 이런 결계를 넘기 1분 전에는 소환이 되어야 하는데!”

음… 리디아는 분한 모양이지만 사실 그게 당연했다. 여기는 환상 차원 타키넷. 전 차원계를 통틀어 가장 강력하고 위대한 신비가 깃든 장소. 한낱 오파츠의 힘으로 간파하고 간섭할 수 있는 장소가 아니다. 오히려 거의 반 발자국 차이로 이곳까지 리디아를 강제 소환 해낸 오파츠가 전설적인 위용을 보인 것이다.

하지만 그 사실을 알 리 없는 리디아는 그저 이를 부득부득 갈았다. 마누스를 최대로 발휘하는지 펄펄 끓는 무쇠솥과도 같은 아지랑이가 그녀의 전신을 덮었다.

어휴… 쓰레기 거리에서 저러다가 차원 붕괴 되는데.

“도련님, 거기서 나오세요. 소시민! 당장 도련님을 보내라. 그렇다면 실수로 생각하고 책임을 추궁하지 않으마.”

그녀의 어조는 단호했다. 정말 난감했다.

‘이거… 일단은 도련님을 내보내야 할 것 같은데……?’

리디아는 적대하기엔 버거운 상대. [만상공감]이 느끼는 감각에 따르면 저 여자… 하준광만큼이나 무섭다. [만상공감]으로도 제대로 파악이 안 된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지금 저 마누스 자체도 아주 위험했다. 저러다가 차원 붕괴라도 일어나서 리디아가 죽으면 도련님에게 면목이 없지……. 그래, 일단은 도련님을 내보내서라도 리디아를 진정시키자.

하지만 데미안이 나를 가로막으며 먼저 나섰다.

“리디아, 진정해. 거기서는 마누스를 쓰면 안 되니까 마누스는 가라앉혀.”

“도련님…….”

스르륵-

당장 미쳐 날뛸 것 같았던 리디아가 데미안의 한마디에 마누스를 누그러뜨렸다. 놀라울 정도로 말을 잘 듣잖아?

“그리고 리디아, 나는 지금 돌아갈 생각이 없어.”

“네? 도련님 그건 안……!”

“아니. 지금이 맞아. 나는 소시민 씨가 내게 보여 주려는 것을 봐야 돼, 지금. 지금이야. 알잖아? 내 목숨이 걸려 있다는 거.”

목숨?

갑자기 웬 목숨? 동맹을 맺기로 했을 때 목숨까지 함께하자고 했던 그것인가? 하지만 석연치 않다.

데미안의 감각은 깊이… 정말 아주 차갑고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고, 그 말을 들은 리디아 위트필드도 피가 식는 것처럼 순식간에 냉정해졌으니까. 무언가 그들끼리만 아는 오래된 사연이 있는 듯했다.

“그리고…….”

데미안 루드비히가 나를 바라보았다.

“확실히 깨달았어. 이곳이야말로 내가 줄곧 궁금해했던 그 모든 비밀을 찾을 수 있는 곳이야. 그리고 소시민 씨의 안내가 없으면 나는 결코 이곳을 제대로 알아볼 수가 없어, 리디아. 걱정 마. 적어도 이곳에서 나를 더 잘 보호해 줄 수 있는 건, 네가 아니라 여기 소시민 씨야.”

“도련님, 하지만 이곳에는 괴물들이…….”

리디아가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녀의 영력을 느낀 탓에 인근에 있던 주민들이 모조리 뛰쳐나온 상태였다. 차원 붕괴의 위험성 때문에 영력 사용이 금기시되는 쓰레기 거리에서는 당연한 일이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살기 넘치는 표정을 하고 리디아를 노려보고 있었다.

리디아의 눈에 그들은 그저 피에 굶주린 괴물일 뿐이다. 말소리가 해석되어 들려도 소통이 가능하리라 생각되지 않을 것이다. 그게 일반적인 지구인의 한계였다.

내가 볼 때 데미안은 안전한 시장 안에 있는 것이지만, 리디아가 볼 때 데미안은 강력한 괴물이 득실거리는 던전에 갇혀 있는 상태. 말 몇 마디로 이해해 줄 만큼 단순한 편견이 아니었다. 리디아는 데미안의 신변이 걱정될 것이다.

그런 리디아의 태도에 데미안이 웃었다. 나를 돌아보았다. 다시 그 묘한 눈빛이었다. 눈이 별처럼 빛난다. 아… 조금 달라졌나? 이제야 데미안의 눈에 담긴 감정을 알 것 같다.

“리디아, 최강의 능력이 뭐 같아? 너처럼 모든 걸 다 얼려 버릴 수 있는 강력한 초능력이 최강의 능력일까?”

“네? 갑자기 무슨 말씀을…….”

“내가 확실히 느꼈거든. 최강의 능력이 무엇인지는 사람들마다 다 생각이 다르겠지만, 적어도 이곳 타키넷에서 만큼은 소시민 씨가 최강이야.”

“네에?”

“난생 처음 보는 온갖 괴물의 욕구도 단번에 파악하고, 우리가 가진 힘으로 이 괴물들을 어떻게 만족시킬 수 있는지도 순식간에 알아내지. 자신에게 제일 필요한 물건을 바로 찾아내서 만족스러운 거래를 이끌어 낸다……. 이런 능력은 루드비히의 대상인들을 다 합쳐도 불가능하거든. 이 낯선 세상에서, 이 낯선 존재들 사이에서 소통을 하고 거래를 하려면 경험에 따른 분석이 아닌 보는 순간 파악해 버리는 완벽한 직관이 필요하니까.”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혼란스러워하는 리디아를 향해 데미안이 정색을 하고 말했다.

“돌아가란 뜻이다. 네가 걱정할 일은 일어나지 않을 테니까. 가서 기다리고 있어. 근사한 사업 계획을 가지고 돌아갈 테니까. 그거 하나로 형님들보다도 훨씬 강력한 기반을 쌓을 수 있을 거다.”

데미안이 나와 눈을 마주쳤다.

묘한 눈빛에 담겨 있던 감정이 이제야 구체화되었다.

그건 확신이었다.

어둠 속에서 길을 잃었던 자가, 자신이 나아가야 할 길을 찾았을 때의 그 짜릿함이었다.

데미안은 내게서 어떤 답을 찾았다.

“저는 원래 수신 호위 없이는 어디도 가지 않아요. 태어날 때부터 그랬죠. 하지만 오늘 그 원칙을 깹니다. 이곳 타키넷, 제 목숨을 걸겠습니다. 가요. 이곳에 동업자가 있다고 했죠? 소시민 씨가 뛰어난 판매 솜씨를 보여 주었으니 이번엔 제가 루드비히의 자본을 보여 드리죠.”

흔들림 없는 확신으로 꽉 찬 눈동자.

미래를 향해 쭉 뻗어 나가는 감각.

총총총.

대뜸 앞장서서 가 버리는 데미안을 나는 엉겁결에 뒤따랐다.

뒤에 남겨진 리디아가 입속으로 중얼거린 소리가 [만상공감]에 살짝 걸려 전해졌다.

“도련님이 날 떠났어……. 설마 지금이……! 이럴 때가 아니다.”

곧이어 어딘가로 역소환되었는지 리디아의 기척이 사라졌다.

-5권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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