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전쟁은 이미 시작되었다
그런 기대를 하기는 했다.
여기는 갯펄 시장이다. 타키넷에서 가장 규모가 크다. 고급 물건은 없지만, 가성비가 좋은 물건을 대량으로 구매할 수 있다. 그러니까 군대의 ‘보급’에 있어서 꽤 매력적인 시장. 어쩌면 보급품을 사러 온 아갈타의 군 간부와 마주치게 되지 않을까?
하지만 큰 기대는 아니었다.
사실 지난 생에도 갯펄 시장에서 아갈타인과 마주치기는 쉽지 않았다. 아갈타는 상당히 발달한 문명으로서 최하위 시장인 갯펄 시장까지 오는 경우는 많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딱 마주칠 줄이야.’
운 좋게 타이밍이 맞았나? 하지만 단순한 우연은 아니었다.
‘비밀 상점가를 몰랐다면 영영 만나지 못했을지도 몰라.’
벌써 분위기가 달랐다. 제대로 된 군 간부 느낌이 드는 인물이 다섯 명이나 몰려들어서 심각한 이야기를 나눈다.
아마 일반 갯펄 시장은 그들 수준에 안 맞는다고 해도 이곳 비밀 상점가만큼은 그들의 기준도 충족하는 게 아니었을까? 어쩌면 이곳이 아갈타의 주요한 보급처 중 하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이럴 때가 아니었다. 이건 아갈타의 정보를 캐낼 절호의 기회!
[갑자기 왜 멈추십니까? 저기가 캐스터를 파는 곳입니다.]
“아닙니다. 바래다주셔서 감사합니다.”
나는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이 안색을 고쳤다. 괜히 시선을 끌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차고르 씨를 돌려보내고 천천히 가게를 둘러보는 척하며 아갈타 군인들의 대화를 엿들었다. 물론 그들은 주변으로 목소리가 퍼져 나가지 않게 하는 아이템을 사용했지만, 말하거나 듣는 이의 감각을 [만상공감]으로 전달받을 수 있는 내게는 소용이 없는 짓이었다.
[너, 뭐 하는 새끼야?]
응?
처음 엿들은 한마디가 심상치 않았다.
다짜고짜 욕설을 내뱉고 있는 것은 무리의 중심에 서 있는 아갈타인이었다. 다른 이들보다 키가 작고 덩치가 왜소하지만, 쭉 째진 눈매와 창백한 노란색 눈동자가 한눈에 보기에도 ‘독하다.’라는 인상을 전해 주고 있었다.
아갈타인답게 살짝 잿빛이 도는 피부색 덕분에 눈앞의 다른 아갈타인을 노려보는 그의 인상은 꼭 영화에 나오는 흡혈귀처럼 섬뜩했다.
[죄송합니다!]
대꾸하는 군인의 심장은 마구 뛰고 있었다. 근육들도 미세한 경련을 일으켰다. 극심한 공포. 목소리를 떨지 않은 것이 용할 정도였다. 실제로 그는 목소리를 떨지 않기 위해 전신에 힘을 꽉 주고 있었다.
‘…목소리가 떨려 나오면 더 혼나는 모양이네.’
정말 애처롭게 버티고 서 있었다. 아무래도 중앙에 선 노란 눈의 아갈타인이 무리에서 가장 계급이 높은 모양이었다. 성정도 잔혹하기로 유명한 것인지, 그의 주변에 서 있는 아갈타인들은 다들 바짝 긴장하고 있었다.
[왜? 인원이 부족해? 그래서 원시 차원 놈들한테 발릴 거 같아서 무서워?]
[아닙니다.]
그 대답을 들은 아갈타인의 노란 눈동자가 한층 더 가늘어졌다. 그가 성큼 앞으로 한 발을 내디디며 고개를 숙이고 있는 부하의 발을 밟았다. 그 한 발자국이 어찌나 쾌속한지 중간 과정은 잘라 낸 것처럼 보이지 않았고, 그냥 제자리에서 사라졌다가 발부터 불쑥 땅에서 솟아난 것처럼 보였다.
꾸직!
우드득!
[끄……!]
분명 뭔가가 부스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만상공감]이 등줄기를 타고 끔찍한 고통을 전달해 주었다.
적당히 걸러 냈음에도 불구하고 가슴이 철렁해질 정도이다. 하지만 발이 부서진 아갈타인은 신음조차 제대로 내지 않았다. 그는 필사적으로 가슴을 바로 펴고 자세를 잡았다.
[잘하자. 너희가 무능력한 탓에 나도 이 오지까지 불려 오게 된 거잖아?]
[네! 결과를 만들겠습니다!]
[그래. 그러니까 딴소리하지 말고 보급품이나 제대로 골라.]
노란 눈의 아갈타 간부가 부하에게서 시선을 떼고 좌판의 캐스터 하나를 집어 들었다.
부하는 으스러진 발로 부동자세를 취하느라 식은땀을 뻘뻘 흘리는데, 정작 본인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한가로이 움직였다.
그가 살펴보는 캐스터는 팔찌처럼 손목에 착용하는 형태였고, 작동시키면 푸른 홀로그램이 손바닥 위로 떠올라 조작을 할 수 있는 물건이었다.
[확실히 이게 좋은 것 같아. 얼마라고 했지?]
[1,500알입니다.]
[1,500알에 이 정도 성능이라니……. 볼수록 훌륭해. 3,000알짜리에도 안 밀리잖아?]
캐스터를 한마디로 정의한다면 개인용 주문 생성기, 일명 PSC(Personal Spell Creator)이다.
개념은 간단하다. 방어막 주문이 필요할 때 방어막 주문이 인챈트된 아이템을 사고, 예리함 주문이 필요할 때 예리함 주문이 인챈트된 아이템을 사는 것이 불편하지 않은가? 그럴 때 캐스터가 있으면 모든 게 한 번에 해결된다. 원하는 주문을 캐스터에 로드할 수도 있고, 인챈트를 할 줄 안다면 직접 주문을 생성해 넣을 수도 있었다.
그야말로 차원 문명의 스마트폰에 해당하는 문명의 이기.
노란 눈의 아갈타인은 재밌는 장난감을 만지듯 캐스터를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여기 마감 봐. 어지간한 차원 격류에도 끄떡없겠어. 지구같이 짜증 나는 격류 너머에 있는 오지에서는 딱이지. 하지만 최고는 바로, ‘오버 클럭’ 기능이야. 1,500알짜리가 오버 클럭이 되다니……. 정말 혁명적이지 않아? 오버 클럭으로 위력을 강화하고 그 원시인들의 기를 초반에 팍! 눌러 버리는 거야. 첫 번째 공격에서 저항 의지 자체를 분쇄해 버리는 거지.]
[과연 그렇습니다, 사령관님.]
아, 노란 눈의 아갈타인 신분이 사령관이었나 보다. 생각보다 훨씬 더 거물이잖아? 쿵쿵, 커지려는 심장박동을 [만상공감]으로 억눌렀다.
[그래. 그렇게 하자고. 예산도 부족하고 인원도 부족하지만, 해 볼 만해. 안 그래? 기왕 이렇게 된 거 이걸 기회라 생각하고 임하라고. 알지? 지구에 만만치 않은 비밀이 숨겨져 있다는 거.]
[아, 들어 봤습니다. 비정상적으로 권능 사용 인구가 많은 것도 그렇고, 활동 중인 신의 유물이 발견되는 것도 그렇고……. 심지어 저번에는 어비스 게이트를 소멸시켰다는 소문까지 돌았습니다. 분명 연구 가치가 큰 차원 같습니다.]
[그래. 그런데도 본국의 지원은 적지. 현재 본국이 수행 중인 전쟁이 여러 개이니 어쩔 수가 없어. 그런데 말이야…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점령에 성공한다면 어떻게 될까? 이 비밀 많고 잠재력이 풍부한 차원의 통치 임무가 누구에게 돌아갈까?]
[서, 설마……!]
[그래. 이런 오지에서 쎄빠지게 고생하는데, 적어도 그 정도 보상은 있어야 하지 않겠어? 어쩌면 너희 인생에 다시 오지 않을 기회니까 똑바로 하자.]
[예!]
[캐스터는 이걸로 3,000개 주문 넣어. 총공세 날짜를 이미 잡아 놨으니까 3달 뒤까지는 나와야 된다. 주문 세팅은 차원 격류를 피해 없이 건널 수 있게 해 주는 결계 주문이랑, 권능 사용을 방해하는 주문. 그리고 강력한 한 방 공격 주문들로 빠방하게. 알겠지? 이번 한 번의 총공세로 놈들의 주력을 꺾을 수 있게 확실히 해.]
[예, 사령관님!]
[그럼 이동.]
노란 눈의 아갈타 간부는 그대로 등을 돌려 떠났다. 두 명이 그를 보좌하며 따라갔고, 나머지 두 명이 남아 가게 주인과 대규모 물량을 구매하는 것에 관해 흥정을 시작했다.
아까 발등이 으스러진 아갈타인이 식은땀을 흘리며 회복 주사로 발등을 치료하고는 아무 일 없다는 듯 협상을 이끌고 있었다.
이 모든 광경을 지켜보던 나는 머리가 띵해졌다.
‘총공세라고?’
그것도 최소 세 달 뒤였다.
세상에……. 생각할수록 기가 막혔다.
‘나도 나름 대비를 한다고 했는데…….’
침을 꼴깍 삼켰다.
‘역사가 많이 바뀌었잖아?’
아갈타의 총공세라니……. 적어도 올해나 내년에 일어날 일은 아니었다.
* * *
훈련. 처음에는 어렵지만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르고 나면 오히려 쾌감이 올라온다. 정체기가 오기 전까지는 매일매일 강해지는 자신과 폭발하는 잠재력에 휴식도 잊고 몰두하게 되는 것이다.
타키넷에서 급히 귀환해서 보니, 동료들이 다 그런 상태였다.
심장은 쿵쿵 기분 좋게 뛰고, 살갗의 감각은 예민해져서 공기 중의 작은 흐름도 놓치지 않는다. 호흡은 커지고 자신감도 절정에 달한다.
영력은 영혼의 힘. 영력 수련은 영혼을 일깨우고 그 영혼에 종속된 육체의 가능성마저 일깨운다. 영력 수련을 하면 기분이 안 좋을 수가 없었다. 존재 자체가 확장하는 듯한 짜릿함에 머리가 어질어질할 것이다.
서민서가 크게 웃었다.
“하하하, 선배! 이거 봐요!”
녀석의 손이 반짝거렸다. 영력이 만들어 낸 빛이 스파크가 튀듯 반짝반짝했다.
‘…뭐야? 언제 이렇게 늘었어?’
박민희, 강전구, 심지어 바쁘다면서 뺀질뺀질 훈련을 빠지던 보물 사냥꾼 김민수도 많이 늘기는 했다. 다들 영력에 대한 재능이 있었으니까.
하지만 서민서의 발전은 당혹스러울 정도였다. 영력의 절대량이 부족하기에 스파크로 보이는 것이지, 영력만 충분했다면 스파크가 아니라 타오르는 불길 같았을 것이다.
저 적은 영력이 스파크를 만들 정도로 집적되다니……. 영력 제어에 있어서 하나의 절정으로 이루어지는 경지인 구름강기를 만들기까지 고작 세 발자국 정도 남은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어처구니없는 발전이었다.
당연히 나의 수준도 뛰어넘은 지 오래였다. 물론 영력의 절대량은 내가 산불이면 서민서가 모닥불일 정도로 차이가 컸지만… 그래서 더 놀라웠다. 저 적은 영력으로, 이 기초적인 훈련으로 이 정도까지 성장한다고? 심지어 이렇게 빨리?
“헤헤, 요즘 선배 따라다니면서 싸우다 보니까 갑자기 감이 확 오더라고요!”
제주도도 그랬고 밤의 던전도 그랬고, 최근 들어 서민서의 수준을 훌쩍 뛰어넘는 전장을 전전하기는 했었다. 그 때문에 별다른 활약을 보이지 못한 서민서였지만, 확실하게 깨달음은 얻어 냈던 모양이었다.
그래서일까? 서민서는 근래에 보기 드물게 환하게 웃었다.
하긴, 그간 녀석의 싸움은 조기 축구회 수준의 실력으로 K리그 1군, 2군이 시합하는 데 끼어든 식이었다.
하지만 영력을 확실하게 깨우친 지금, 녀석은 진심으로 홀가분해했다. 늘 무언가가 얹힌 듯 답답하던 녀석의 명치가 시원해질 정도로.
툭!
서민서가 땀에 젖은 머리를 내 어깨에 기댔다.
“후… 겨우 해냈네. 근데 그거 알아요?”
“힘들었지만 재밌었다고?”
“어? 어떻게 알았지?”
서민서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떻게 알기는. 이 녀석 심장박동이 딱 재밌어 하는 심장박동이었다. 진심으로 영력을 다루는 걸 즐거워하고 있었다.
“이제 다음에는 뭘 해 보면 돼요? 영력이라는 게 다루면 다룰수록 되게 신박하게 다룰 방법이 많을 것 같다는 느낌인데.”
서민서가 물었다.
재능도 엄청난 녀석이 이렇게 즐기기까지 하다니……. 아마 제대로 된 교육을 받을 수 있다면 더 엄청난 성장을 보여 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너무 아쉬웠다.
정말 아쉬웠다.
‘이 이상의 수련법이나 기술은 나도 모르는데…….’
잘난 척하긴 했지만, 결국 내가 아는 영력 수련법은 기초 중에서도 기초에 불과했다.
영력 수련법은 차원 문명들 사이에서도 극비로 취급되는 것. 고급은커녕 초중급의 수련법조차 현재로서는 구할 방법이 없었다.
신발도 신고 다니지 않는 아마존 밀림 속 원주민이 가끔씩 도시로 나가 산수 교재 같은 것은 구해 올 수도 있지만, 고등 수학과 관련된 최첨단 기술을 배워 올 수 없는 것과 비슷한 이치.
‘누군가 영력 수련하는 모습을 볼 수만 있다면 꽤 도움이 될 텐데. [만상공감]으로 그 방법을 훔쳐볼 수 있을 테니까.’
하지만 남의 기감이 미칠 수 있는 곳에서 영력 수련을 하는 정신 빠진 놈이 있을 리 없었다.
나는 서민서를 보았다. 즐거움으로 휘어진 녀석의 입꼬리를 보자니 등록금을 대 줄 수 없어서 대학을 포기시켜야 하는 부모님 같은 마음이 든다.
‘어후… 젠장. 그래도 어쩔 수 없잖아.’
아쉽기는 하지만 당장 어쩔 수 없는 것에 목매고 있을 때는 아니었다.
설령 다음 단계의 영력 수련법을 안다고 해도 그걸 가르쳐 줄 상황도 아니었고.
나는 아쉬움을 꿀꺽 삼키고 민서의 어깨를 잡아 녀석과 눈을 똑바로 마주쳤다.
“민서야.”
“응?”
“앞으로 세 달 있다가 대규모 침공이 있을 거 같아.”
“어?”
기분 좋게 웃고 있던 서민서의 얼굴이 굳어졌다. 흥겹게 달아올랐던 텐션이 알코올처럼 날아가 버렸다. 그 빈 바닥을 부글부글 끓는 분노가 서서히 메웠다.
서민서뿐만이 아니었다. 내 목소리를 들은 동료들 모두의 얼굴이 굳었다. 특히나 얼마 전까지 군인이었던 박민희의 얼굴은 악귀와도 같이 일그러졌다.
“대규모 침공?”
서민서가 되물었다.
“응. 타키넷에서 우연히 들었어.”
“규모는요?”
“개인 장비를 3,000개 주문했으니 최소 3,000명이겠지.”
“뭐 하는 놈들인데요?”
“아갈타인. 우리가 마족이라고 부르는 놈들이야.”
“개새끼들…….”
육삼공 참사가 얼마 지나지 않은 만큼 분노는 빠르고 격렬했다.
“그럼… 어떻게 할 거예요?”
“마족이라고 불릴 정도로 강력한 놈들이 3,000명이나 몰려오는 건, 고작 나라 하나를 어떻게 하겠다는 건 아니겠지?”
“전 세계가 전장이 된다?”
“맞아. 세계 곳곳에 타격을 가하고 적어도 대륙 하나와 싸워 교두보를 확보하는 게 목표겠지.”
큰 전쟁이 될 것이다. 휘말리지 않을 방법은 없었다.
“우리는 그 난리 통에서 용산구 2지역의 생산 시설과 주요 자원들을 보호해야 돼.”
이번 생은 영웅이 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에도 싸워야만 했다. 아직은 지구라는 기반을 포기할 때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제 <테라>가 수공예 브랜드 이미지를 잡고 인지도를 쌓아 가는 중인데……. 이번 전쟁으로 생산에 차질이 생기면 손실이 너무 커.’
아무리 내게 10만이 넘는 타키온이 있다고 해도, 그걸 믿고 타키넷으로 기반을 옮기는 건 현명한 판단이 아니었다. 먹고사는 데 지장이 없게 돈은 벌 수 있겠지만, 사고 싶은 것을 다 살 수 있을 정도의 풍족함은 누리지 못하게 될 것이었다.
‘아직은 더 벌고 싶어. 한 번에 10만, 아니… 100만 타키온씩 버는 그런 거래도 해 보고 싶다고.’
그러니 앞으로 세 달간 내가 해야 하는 일은 명확했다.
“세력을 키우고, 전투력을 높일 거야. 나도, 너희도. 그리고 내 휘하의 사령부 소속 부대원들도.”
“세 달… 남았는데, 좀 촉박하겠네요.”
“그러니까 이제부터는 다른 건 하지 말고, 영력을 이용한 전투 스타일을 확립하고 숙달하는 데 중점을 둬.”
“네.”
“그리고… 무장을 새로 맞추자.”
결국 단기간에 전투력을 올리는 가장 좋은 방법은 누가 뭐라고 해도 머릿수를 늘리는 것과 무장을 업그레이드하는 것.
다행히 무장을 업그레이드하는 건 내 전문 분야였다. [만상공감]이 내게 모든 사람 한 명, 한 명에게 딱 맞는 최적의 아이템을 골라낼 수 있는 안목을 선사해 줄 테니까.
하지만 여기에는 문제가 하나 있었다.
“그런데… 예산이 돼요?”
“빠듯하게. 일단 여기 있는 사람들은 내가 책임질 수 있는데…….”
서민서, 박민희, 강전구, 김민수, 까막이. 이렇게 내 심복이라고 할 수 있는 이들까지는 타키넷에서 직접 아이템을 구해 줄 수도 있었다. 조금 애매한 관계지만 협력 상태인 허묵은 타키온을 대출해 주는 형태로 장비를 맞춰 줄 수도 있었고.
“사령부 소속 군인들은요?”
하지만 서민서의 물음처럼 용산구 2지역의 지역 방위군은 달랐다. 그들까지 타키넷의 물건으로 무장시킬 수는 없었다. 그렇다면 지구의 물건으로 무장을 시켜야 하는데……. 그러면 필요한 건 타키온이 아닌 지구의 화폐였다.
“선배… 돈 없지 않아요?”
얼마 전까지만 해도 고시원에 살던 나에게 재산이란 게 있을 리 없다. 믿을 건 사령부의 예산인데, 그것마저도 현재 넉넉하지 않은 상황. 그간 타키온 벌이에만 집중하고 지구의 화폐를 등한시한 대가였다.
하지만 그것도 해결 방법은 있다.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타키넷에 가 있는 동안 비서 김세희 씨의 문자가 하나 와 있었다. 면담 요청이 있으니 나오는 대로 회신을 달라는 문자였다.
전화를 걸었다. 김세희는 첫 번째 연결음이 끝나기도 전에 전화를 받았다.
- 네, 사령관님.
“도련님은 돌아오셨습니까?
- 네. 이번에 서부 드래곤힐동에 입주할 장인들 수십 명과 함께 돌아오셨습니다. 사령관님을 찾으시길래 곧 오실 거라고 말씀드렸더니 한 시간째 응접실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마침 물주가 선물을 들고 나를 찾아왔다.
보급은 전쟁의 꽃
전쟁은 이미 시작되었다.